서울 밖으로 밀려난 쓰레기
쓰레기와 가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시의 외곽으로, 그늘로 밀려난다는 점입니다. 서울 외곽에 들어선 난지도 매립지는 가난을 불러들였습니다. 넝마를 줍던 사람들, 고물을 수집해 팔던 사람들이 난지도로 찾아들었습니다. 난지도 주변에서 땅콩이나 귀리 농사를 짓던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쓰레기장에 삶을 기대기 시작했고요.
이들은 쓰레기 트럭이 싣고 와 쏟아놓은 쓰레기 더미에서 팔 수 있을 만한 것을 골라낸 뒤 쓰레기를 평평하게 펼쳤습니다. 다음 트럭이 오면 같은 일을 반복했죠. 난지도와 고물상이, 고물상과 폐품 시장이 연결되어 20세기 방식의 ‘리사이클링’ 경제가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치명적이었습니다. 난지도 주변은 ‘관리되지 않는 땅’이었고, 악취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쓰레기를 태우는 시각에는 망원동 너머까지 까만 연기가 차올랐고, 한강으로 중금속이 함유된 폐수가 흘렀습니다. 난지도 주변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들어찼죠.
1993년, 15년 동안 9200만㎥ 규모의 쓰레기가 매립된 후 더 이상 쓰레기를 묻을 곳이 없어진 난지도는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광화문이나 강남에서는 보이지 않는 서울, 난지도의 역사가 바뀐 것은 2002년입니다. 문을 닫은 난지도 매립지의 쓰레기 산을 덮어 공원을 만들고 월드컵경기장도 건설했습니다. 상암동 일대에는 월드컵파크
아파트 단지가 가득 들어섰고요. 방송국도 옮겨오면서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난지도라는 이름은 공원 한켠으로 밀려나고, ‘디지털미디어시티’라는 생경한 이름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난지도를 향했던 쓰레기는 어디로 가게 되었을까요. 쓰레기는 서울 밖으로 밀려납니다. 인천 서구에 건설된 수도권 매립지입니다. 서울 밖에 묻고, 서울의 끝자락에서 태우는 식으로 서울은 쓰레기 문제를 ‘묻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처음 수도권매립지를 조성하던 1992년 당시에는 부지가 허허벌판이었지만, 21세기 들어 청라국제도시, 한강신도시 등이 들어선 것입니다.
아파트의 도시
대단지 아파트가 품을 수 있는 것은 초등학교뿐입니다. 쓰레기는 못 품습니다. 주민 반발은 선거철 표심이 되죠. 더 이상 쓰레기를 서울 바깥으로 옮겨 버리기 어려워진 겁니다. 애당초 약속은 2016년도까지였지만, 협상과 거래 등으로 수도권매립지 사용 기한이 2025년까지로 미뤄졌습니다. 이제 서울은 서울의 쓰레기를 알아서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상암동에 매일 1000톤 분량의 쓰레기를 추가로 태울 수 있는 소각장을 건설하고자 하는 겁니다.
서울 안에도 쓰레기 처리 시설이 있습니다. 소각 시설입니다. 옛 난지도 근처의 마포자원회수시설을 비롯해 양천, 강남, 노원에 자리 잡고 있죠. 강남에 소각장이라니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입지를 보면 서울의 끝자락입니다. 성남시와의 경계 근처입니다. 양천은 아파트 단지 주변입니다. 그래서
민원이 끊이지 않았죠. 상암동에 위치한 마포자원회수시설은 고양시와의 경계 근처입니다. 다만, 이곳은 개발 이후 발전을 거듭한 지역입니다. 멀끔한 아파트 단지에서 마포자원회수시설의 굴뚝이 보입니다. 여기에 소각장을 더 짓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입니다. 주민들이 반대할 만하죠.
내가 버린 쓰레기라면 반발하는 쪽에서도 군색할 겁니다. 하지만 서울에 네 곳밖에 소각장이 없으니, 남이 버린 쓰레기도 우리 동네에서 태워야 합니다.
법에는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쓰레기는 쓰레기가 발생한 곳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현실에선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최근 5년간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은 매일 3300톤의 쓰레기를 버립니다. 팬데믹 시기에 그 양이 조금 늘어났던 것을 감안해도 엄청난 양이죠. 만약 마포구에 소각장이 추가로 들어온다면 기존의 소각장을 폐쇄하는 2035년까지 1750톤 규모의 쓰레기를 매일 처리하게 됩니다. 서울 쓰레기의 절반 이상입니다.
이것을 님비라 해도 될까
사실,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쓰레기 무단투기범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 반발할 주민이 적은 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습니다. 도시에 건물을 올리며 발생하는 건축 폐기물, 공장을 돌리며 발생하는 산업 폐기물 등이 외딴 시골로 향하는 겁니다. 2018년 경북 의성에서 발견된
쓰레기 산 같은 것이 그 흔적입니다. 아직도 전국 곳곳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생활 쓰레기는 그렇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지역명이 버젓이 적힌 종량제 봉투에 담겨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 우리는 서울에 쓰레기를 버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전 같으면 보이지 않는 외곽에, 소외된 지역에 처리장 부지를 선정했겠지만, 서울에는 더는 비어 있는 땅, 보이지 않는 땅이 없습니다. 서울은 모든 곳이 가치 있고 비싼 도시가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쓰레기를 버릴 곳이 더 이상 없어졌습니다. 새로운 소각장은 어디든 기어이 들어설 테지만,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기준치보다는 낮다고 하지만, 쓰레기를 태우는 일은 의심스러운 연기와 엄청난 탄소 발자국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연합 폐기물 지침이 힌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 쓰레기처리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Prevention)’를 꼽고 있거든요. 다음으로는 재사용, 재활용, 연료 등의 자원으로 변환 등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쓰레기 종량제 봉투 가격이 오른다면, 재활용 분리수거에 리워드가 생긴다면, 유의미한 변화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마포구에서 소각장 건립 반대 운동을 벌였던 주민들은 생활 속에서 쓰레기를 줄이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울 시민 모두가 하루에 100g의 쓰레기를 덜 버린다면, 1000톤의 쓰레기를 아낄 수 있습니다. 새로 지을 소각장의 처리 용량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버릴 것인지에 골몰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덜 버릴지부터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시작은 덜 사는 것, 덜 만드는 것으로 가 닿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