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가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2의 테슬라’로 주목받았던 미국의 수소 트럭 스타트업, ‘니콜라’가 결국 ‘파산 보호’를 신청한 겁니다. 자산을 팔아 빚을 갚고 법원의 감독 아래 회생을 시도하게 됩니다. 한국의 법정 관리와 비슷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니콜라가 다시 질주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회사가 보여 준 포부의 크기와 실제 회사가 갖고 있는 실력의 크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2014년 설립된 니콜라는 10년 동안 실체도 없는 회사의 미래 가치를 팔아 회사를 운영해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회사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속였죠. 투자자들도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도박을 하듯 돈을 던지고 뺐습니다. 문제는 이런 ‘투기’에 가까운 현상이 니콜라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한때 유니콘으로 추앙받았던 많은 회사가 ‘좀비’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주식 시장
니콜라는 2020년 나스닥에 상장합니다. 다만, 자력으로 상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의 힘을 빌렸습니다. 쉽게 말해, 돈을 끌어모을 만한 능력을 갖춘 투자 회사가 서류만 있는 회사를 설립한 뒤 돈을 모으고, 능력은 되지만 상장하기엔 모자란 유망 기업을 인수해서 상장하는 방식입니다. 즉, 니콜라는 자력으로 상장하기에는 모자란 시점에 미래의 가치를 인정받아 주식 시장에 진입한 겁니다.
무리해서라도 상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호황이었거든요. 2020년 초반은 하락장이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이었죠. 하지만 니콜라가 상장한 6월에는 1만 선을 돌파합니다. 이 역시 코로나19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지원금 성격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시장에 풀면서 투자 시장으로 흘러들 돈이 많아진 겁니다.
이 호황을 니콜라도 누렸습니다. 상장하자마자 주가는 두 배로 뛰어올랐습니다. 한때 미국 완성차 BIG 3로 꼽히는 포드의 기업 가치를 추월하기도 했죠. 테슬라의 뒤를 이을 유망한 스타트업이 화려하게 나스닥에 등장했으니, 시장의 반응은 당연했던 겁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니콜라는 2022년까지 실제 트럭을 단 한 대도 만들어 팔지 못했거든요.
사기극의 전말
주식 시장은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합니다. 니콜라는 회사의 미래를 아주 멋지게 포장했고요. 사실, 미국은 승용차보다 픽업트럭이 더 인기 있는 나라입니다. 등록된 화물 트럭 운전자는 약 350만 명, 이들이 운송하는 화물은 연간 100억 톤에 달합니다. 미국 전체 화물의 70퍼센트가 트럭에 실려 운반되는 겁니다. 멀게는 동쪽에서 서쪽까지 4500킬로미터를 횡단해야 하는데, 당시의 전기차 기술로는 어림없었죠. 마력도 부족했고 운행 지속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니콜라는 그걸
해결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수소 에너지를 사용해서 말이죠.
그런데 포장이 과했습니다. 선을 넘었죠. 니콜라는 2018년, 자사의 수소 트럭이 문제없이 도로를 달리는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상용화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미래를 바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스닥 상장 후 얼마 되지 않은 2020년 9월, 그 영상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트럭을 언덕에서 굴려 놓고는,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죠.
니콜라는 자신들의 기술력을 솔직히 보여 준 적이 없었습니다. 투자자들이 믿고 싶은 것을 보여 줬을 뿐입니다. 물론, 전문가도 속을 만큼 대담하거나 교묘하긴 했습니다. GM, 한화 그룹 등이 대규모 투자에 나섰을 정도니 말이죠. 하지만, 그 속임수는 의심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일 만한 것이었습니다.
공매도의 시대
니콜라가 트럭을 ‘언덕에서 굴렸다’라는 사실을 폭로한 것은 미국의 ‘
힌덴버그 리서치’라는 투자 회사입니다. 니콜라뿐만 아니라 인도 최고 재벌인 아다니 그룹의 분식 회계
의혹, 슈퍼 마이크로컴퓨터의 회계 조작 등을 밝히기도 했죠. 투자 회사가 이런 의혹을 밝혀내는 까닭은 ‘공매도’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말해 이 회사의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데에 베팅하는 투자죠.
회사의 가치가 너무 높게 평가되어 있는 데다 주주들에게 알리지 않은 커다란 문제까지 안고 있다면, 공매도 투자 회사로서는 좋은 기회입니다. 힌덴버그는 그런 회사를 찾아 공매도를 걸어 돈을 벌어 왔습니다. 니콜라 같은 회사들 말이죠.
사실 공매도는 개미 투자자로서 달갑지 않은 단어입니다. 대부분이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주가가 오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가를 끌어내려야 이득을 보는 공매도 전문 투자 회사는 ‘공공의 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힌덴버그 같은 회사는 ‘행동주의 투자 기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표적으로 삼은 기업들의 부정행위나 조작 등을 밝혀내 사법 당국이 미처 발견해 내지 못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게끔 하니까요.
개미 투자자로서도 공매도 기관이 늘 적인 것은 아닙니다. 섣부른 루머로 주가를 끌어내리려 한다면 피해를 볼 수밖에 없겠지만, 니콜라의 경우처럼 언제든 터질 일을 터뜨렸다면 더 커질 수 있었던 피해를 줄여 준 셈이 되겠지요. 하지만 공매도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힌덴버그 리서치의 창립자인 네이트 앤더슨이 회사 문을 닫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쏟아지는 비난에 건강까지 해쳤다고 합니다. 힌덴버그뿐만이 아닙니다. 《
월스트리트저널》은 저명한 공매도 세력들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더 많이 투자할수록 더 간절해집니다. 경기와 관계없이 미국이 10년째 투자 시장 호황을 누리고 있는 까닭은 사람들의 투자 심리가 식지 않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만큼 공매도 세력을 향한 시선은 날카로워지고 비난은 커집니다. 2016년 265건에 달했던 전 세계 공매도 공격 건수는 2023년 110건으로 급감했습니다.
좀비 스타트업의 등장
니콜라는 힌덴버그의 공매도 리포트 이후 위기에 처합니다.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창업자인 트레버 밀턴은 사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 혐의로 징역 4년의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