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반려동물을 만들겠다는 스타트업이 나타났습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형광 토끼’,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는 ‘저자극성 고양이와 개’ 등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완전히 황당한 얘기는 아닙니다. ‘로스앤젤레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이 회사의 창립자는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바이오 해커, 조시 제이너입니다. 제이너는 이미 오딘(Odin)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가정용 유전공학 키트를 판매하고 있죠.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잎의 색을 바꾼 식물이나 해파리의 유전자를 이용해 빛을 내는 박테리아를 배양시킬 수 있는 가정용 키트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광 토끼를 만들어 판매하겠다는
계획은 샬레 위에서 빛나는 야광 박테리아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을 인간의 욕망을 위해 직접 창조한다는 아이디어는 불경스럽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죠. 가늠도 할 수 없는, 그래서 대비할 수 없는 위험을 불러오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도 들고요. 하지만 제이너의 아이디어는 전혀 창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Bio-Art
지난 2000년 시카고 예술학교의 에두아르도 카츠(Eduardo Kac)가 형광 토끼를 선보였습니다. 색소 결핍이 있는 알비노 토끼에 발광 해파리에서 추출한 형광 유전자(GFP, Green Fluorescent Protein)를 주입한 겁니다. 이 토끼에 적외선을 쬐면 형광색으로 빛납니다. 프랑스 국립작물재배연구소와의 협업이었지만, 이 ‘작품’은 연구가 아니라 예술이었습니다.
이런 작업은 ‘바이오 아트(Bio-Art)’라는 장르로 명명됩니다. 사례는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담배, 껌, 머리카락 등을 공공장소에서 수집한 후 DNA를 추출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 얼굴을 만들어 낸
전시도 있었죠. 작가마다 작품에 담는 메시지는 제각각이겠지만, 바이오 아트는 논란을 몰고 다닙니다. ‘인간에게 이럴 자격이 있나?’라는 질문부터 DNA 정보는 누구 것인지, 생명의 조건과 권리는 무엇인지 등을 질문하게 됩니다.
형광 물고기
다만, 바이오 아트는 화이트 큐브 안에 갇혀 있습니다. 작품으로 창작되어 전시되고 논의된 후 끝입니다. 하지만 판매 목적으로 유전자 조작 동물을 만드는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아직 형광 토끼를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형광 물고기’는 살 수 있죠. 그것도 아마존에서
클릭 한 번이면 됩니다.
글로피시(GloFish)라는 이름의 ‘상품’입니다. 어둠 속에서 형광 빛깔로 빛나는 이 물고기는 원래 환경 감시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1999년, 싱가포르 국립대 연구팀이 환경 감시를 위해 연구하던 내용을 미국의 청년 사업가들이 상품으로 발전시켰습니다. 2004년 1월 시장에 처음 출시될 때까지는 비난과
우려가 따라붙었습니다. 신기한 반려동물을 만들기 위해 보건적, 환경적 리스크를 짊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시장 논리가 이겼습니다. FDA는 식용이 아닌 동물이므로 유해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글로피시는 출시와 함께 소위 ‘대박’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