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벅스 주가가 상승했습니다. 2025년이 시작된 이후 22퍼센트 포인트 넘게 상승했으니, 급등이라 할 만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전문 경영인 출신의 새로운 CEO를 맞은 스타벅스가 2025년에는 본격적으로 실적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죠. 기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스타벅스가 직원들을 해고합니다. 1100명, 전체 직원의 약 7퍼센트를 감축하는 겁니다.
주식 시장은 반겼지만, 사람을 잘라서 실적 개선을 해야 할 만큼 스타벅스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가격입니다. 예전처럼 자주 들리기에는 너무 비싸졌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사실이긴 합니다. 미국 스타벅스의 ‘아이스 블론드 바닐라 라테’ 한 잔은 7.25달러, 우리 돈으로는 만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좀 이상합니다. 우리는 스타벅스에 저렴한 커피를 마시러 간 적이 없으니까요. 사실, 스타벅스는 비싸져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 가격만큼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로컬
한국인의 삶을 상징하는 언어 중에 ‘세권’이란 것이 있죠. ‘쿠세권’에 살아야 생필품 떨어질 걱정 없이 살 수 있고, ‘의세권’에 살아야 큰 병이나 만성 질환이 있어도 고생스럽지 않게 종합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습니다. ‘스세권’에 살면 큰맘 먹지 않아도 슬리퍼를 끌고 스타벅스로 향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스타벅스를 일종의 ‘누릴’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는 겁니다.
스타벅스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한 연구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미국 얘기긴 하지만요. 컬럼비아 대학교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한 마을에 스타벅스가 생기면 이후 7년 동안 매년 한 곳에서 세 곳의 새로운 회사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우연이나 마법 같은 것이 아닙니다. 카페는 언제나 새로운 상상력과 기회가 자라는 곳이었으니까요.
17~18세기, 영국에는 색다른 대학이 있었습니다.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이라는 별명이 붙은 커피 하우스 얘깁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직접 만나 배우고, 토론하고, 혁신할 수 있는 공간이었죠. 물론 그곳에서는 학위 대신 커피를 내줬지만요. 커피 하우스는 다양한 이론과 사유, 주장이 뒤섞이는 공간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막시밀리앙 미송은 런던의 커피 하우스 몇 곳을 방문한 후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커피 하우스에서는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따뜻하고, 얼마든지 오래 머물 수 있죠.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으며, 아는 사람들을 만나 일을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단돈 1페니만 있으면 됩니다.”
Penny university
마치 17세기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타벅스를 찾은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덕분에 낯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짧은 잡담을 나눌 수도 있었죠. 마을 주민끼리의 잡담입니다. 아주 느슨한 연결고리이지만 결과는 강력했습니다. 가정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곳에서 지역 주민들이 모여 대화하고, 생각을 교환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은 창업자들에게 기회였으니까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자금을 조달할 방법을 상의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구했죠.
커피를 판다고 어디나 ‘페니 대학’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논문은 스타벅스가 지점을 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카리브 커피’ 신규 지점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두 체인 모두 따뜻한 색채, 부드러운 조명, 아늑한 인테리어 등의 요소를 통해 고객들이 오랫동안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매장을 꾸몄죠. 넓은 테이블, 4인 소파, 개별 좌석 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혼자 집중하기에도, 대화를 나누기에도 적합하고요. 무엇보다 근처의 다른 손님과 눈이 마주칠 기회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커피를 파는 ‘던킨도너츠’에서는 그런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커피 맛이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미국의 던킨도너츠 매장은 포장 손님을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계산한 뒤 커피를 들고 떠나죠. 가정도 아니고 직장도 아니지만 나에게 친숙한 ‘제3의 공간’은 될 수 없는 곳입니다.
격리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들여 오래 머물게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드는 분위기. 그것이 스타벅스에서만 살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감염병은 스타벅스의 모습까지 바꿔버렸습니다.
스타벅스가 손님을 환영하는 방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객의 이름을 불러주는 문화입니다. 어떤 커피숍이라도 단골손님이라면 직원과 통성명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겠지만, 스타벅스는 그런 친밀감을 단골손님에게만 제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님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컵에 작은 인사말을 적어줬죠. 음료가 나오면 매장 안에 다 들리도록 이름을 외치고요.
그런데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빠르게 퍼지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컵에 인사를 적어주던 서비스는 사라졌고, 손님들은 모바일 앱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죠. 스타벅스는 일종의 써브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길고 어려운 커피 음료 주문을 내 취향대로 할 수 있는 곳. 그래서 그 음료를 틱톡에 자랑할 수 있는 곳. 하지만 종종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곳 말입니다.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달라지자, 직원들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손님에게 따뜻한 응대를 하며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기술이 중요했지만, 이제 스타벅스는 매뉴얼대로 음료를 만들어내는 저숙련 파트타이머들의 일자리가 되었다는
불만이 튀어나옵니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특유의 살가운 분위기가 돌아오지 않은 데에는 달라진 직원 구성도 한몫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