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시대, 영국이 면화로 세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까닭은 지도 덕분이었습니다. 삼각측량법을 이용해 인도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담아냈죠. 수탈의 도구였습니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후 한반도에 스파이를 잠입시켜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침략을 위한 준비로 말이죠. 제국주의 시대는 정확한 지도를 가진 국가가 승리하는 시대였습니다.
지도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정확히는 힘을 상징하고 돈이 됩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에 지도를 요구합니다. 구글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이름으로 말이죠.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구글은 한국 정부에 이미 세 차례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거절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승낙할 가능성이 큽니다.
공공재
종이 지도의 시대에는 사람이 지도를 그렸습니다. 돈이 있어야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것도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죠.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는 모두 별다른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전 세계의 자세한 지도를 무한정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수혜 같은 것이겠지요.
종이 지도와 디지털 지도의 차이는 물성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GPS의 유무가 지도의 유용성을 가릅니다. 네이버 지도를 켜면, 지도 정보는 네이버 서버에서 가져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용자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고자 하는지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GPS 센서를 통해 파악하게 됩니다.
GPS는 3개 이상의 위성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기술입니다. 1970년대부터 미국 국방성에서 개발되었죠. GPS 정보만 있으면 깊은 바닷속의 핵잠수함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으니, 당시에는 일종의 안보 기술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합니다.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 007편이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격추당합니다. 뉴욕에서 출발해 김포국제공항으로 돌아오던 중에 조종사의 실수로 항로를 벗어난 겁니다. 탑승객 269명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군사용으로 개발된 GPS 데이터가 민간에 개방됩니다. 무료로 말입니다. 그러니 GPS는 일종의 공공재하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도 데이터는 어떨까요?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의 지도 데이터는 세금으로 제작됩니다. 국토지리정보원이라는 공공 기관이 담당하고, 무료로
개방되어 있죠. 학술 및 연구 목적은 물론, 영리 목적의 이용까지 자유롭습니다. 즉, 네이버나 카카오, SK텔레콤의 지도 서비스는 국토지리정보원의 공간 정보를 가공해서 제공하는 것입니다.
무역 장벽
세계 지도를 보며 우리 동네 주민 센터로 가는 길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지도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려면 더 자세하고 정밀한 지도가 필요하지요. 국토지리정보원이 제공하는 지도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그중에서 축척 5,000분의 1 고정밀 지도가 일반적인 지도 서비스에 적용됩니다.
그런데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구글 지도에는 이 고정밀 지도가 적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해외에서는 잘 쓰던 구글 지도가 한국에서는 유독 쓸모 없어지는 까닭입니다. 정확한 대중교통 정보나 길 찾기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구글이 갖고 있는 지도의 축척이 자세하지 않은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해외로 가지고 나갈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글의 서버는 미국을 비롯해 대만, 핀란드, 아일랜드 등 전 세계 8개 국가에 흩어져 있죠. 구글 지도에 데이터를 적용하려면 먼저 해외 구글 서버에 저장해야 합니다. 이게 법으로 막혀 있습니다. 종이 지도 시대의 문법으로 생각하면, 적국에 우리 정밀 지도를 넘겨줄 수 없다는 뜻이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시대에는 맞지 않는 법이라는 생각도 들지요.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요청을 하면 정부가 협의체를 구성해서 허가해 줄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구글은 앞서 세 차례 한국 정부에 정밀 지도 반출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죠. SK텔레콤이나 네이버, 카카오는 공짜로 쓰고 있는 정밀 지도 데이터, 왜 구글에는 문을 열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가 요즘 카카오맵을, 네이버 지도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카카오맵은 카카오T 서비스와 연동됩니다. 네이버 지도에는 동네 맛집 정보와 별점 리뷰가 가득하죠. 지도는 우리 일상에 가장 밀접한 정보를 담고 있는 플랫폼인 동시에 모빌리티 산업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커넥터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그 시장을 개발하고 키워 왔는데, 여기에 구글이라는 엄청난 경쟁자를 끼워 줄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괘씸죄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 택시를 부르지만, 해외에서는 우버를 부르죠. 우버가 2019년 상장(IPO) 당시 밝힌 데이터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구글 지도 API에 지불한 비용은 58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약 836억 원입니다. 게다가 구글은 2018년 지도 API 이용 요금을 1400퍼센트 인상했죠. 지도를 독점하고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