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도 타격을 입기는 했습니다. 다만, 신세계는 2019년 SSG.COM을 선보이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죠. 반면 홈플러스는 대형 마트 중에서도 대응이 늦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결과 홈플러스는 2018년부터 꾸준히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2021년부터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요. 빚은 많고 돈은 못 버니 신용 등급이 하락했습니다. 홈플러스가 돈을 더 빌리려면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MBK는 홈플러스의 회사 가치를 올려 비싼 값에 되팔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모펀드 운용사와 마찬가지로 말이죠. 사모펀드는 투자자에게 보통 5년 정도의 기한을 두고 투자를 받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5년 안에 회사를 어떻게든 리뉴얼해서 다시 팔고 빠졌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아무리 구조 조정을 하고 재무 효율화를 꾀해도 회사 가치가 올라가기는커녕, 이커머스에 밀리고 이마트에 치이며 경쟁력을 잃기만 합니다.
결국 MBK는 빚을 갚기 위해 홈플러스 매장을 팔기 시작합니다. 돈이 필요해 매물을 내놓는 것을 시장이 다 아는 상황이니 장사 잘되는 매장부터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0년 1호점인 대구점을 매각한 이후 점포 20여 개를 팔았습니다.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대형 마트가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까닭은 규모의 경제입니다. ‘많이 살 테니 싸게 납품해 달라’는 요구가 공급 업체에 먹히니까요. 하지만 점포 수가 줄어들면 바잉파워(Buying Power)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물건을 편리한 입지에서 싸게 판다는, 대형 마트의 본질을 지키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문제는 리더십
전문가들은 홈플러스의 추락을 시대적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유통의 헤게모니가 이미 이커머스쪽으로 넘어갔다는 겁니다. 대형 마트 전체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홈플러스가 먼저 위기를 맞은 것뿐이라고요.
사모펀드 운용사가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분명, MBK는 실패했습니다. 마음도 급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기적인 경영 전략은
후순위가 되고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다 보니 스스로의 경쟁력을 도려내서 팔아치우는 식으로 버텼습니다. 급변하는 유통 시장에 적응하지도 못했고요.
저는 두 분석 모두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맞는 말이긴 하지만요. 이커머스 시대에도 회사 가치를 꾸준히 올리고 있는 대형 마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국의 ‘월마트’입니다.
미국도 이커머스의 시대로 접어든 지는 오래입니다. 쉽게 말해, 아마존이 유통을 장악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미국 가정의 70퍼센트 이상에 당일 배송이 가능하고, 2017년에는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을 인수했으니, 오프라인에까지 그 영향력을 뻗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소비자 구매액 기준으로 아마존이 월마트를 제쳤던 2021년에는 ‘
월마트의 위기’가 공공연히 언급되곤 했죠.
월마트가 흔들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위기감도 느꼈고요. 2016년 월마트는 아마존의 대항마로 불리던 이커머스 스타트업, 제트 닷컴(Jet.com)을 인수합니다. 하지만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2020년 월마트는 제트 닷컴을 포기하죠.
이후 월마트는 대형 마트의 기본을 재정비합니다. 매장을 수리하고, 코로나19 사태로 바빠진 직원들의 급여를 인상하죠. 미리 주문을 넣어 놓고 퇴근길 매장에 들르면 준비하고 있던 직원이 나와 트렁크에 바로 상품을 실어 주는 서비스도 시작합니다.
별것 아닌 듯싶지만, 한국의 대형 마트와는 전략의 결이 다릅니다. 요즘 대형 마트에 가보면 물건이 진열된 공간에 진입하기 전까지 각종 보험 등의 가입 상품 부스, F&B 업장 등을 한참 지나야 합니다. 매장 안에서는 예전보다 직원이 줄어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계산대는 줄어들고 대신 키오스크가 생겨 고객이 직접 물건을 스캔하고 포인트와 결제 방법을 챙겨야 합니다. 한국 대형 마트는 예전보다 피곤해졌습니다.
마트에서 고객은 어떤 가치를 원할까요. 물건을 저렴하게 사고, 그 구매 과정을 경험으로써 즐기고자 합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온라인으로 사과를 사는 것보다는 눈으로 직접 쌓여 있는 사과를 보고 고르는 편이 더 즐겁죠. 물건의 위치를 직원에게 묻거나 계산대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결제를 진행해 주는 캐셔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월마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월마트의 CEO가 무려 월마트 인턴을 거쳐 점장까지 지낸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현장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라는 얘깁니다.
반면 MBK 인수 이후 홈플러스의 역대 CEO들은 주로 CFO 출신의 회계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회사를 허투루 운영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숫자를 들여다보기만 해서는 마트의 주된 소비자인 중장년 여성들이 키오스크 이용에 아직 익숙지 않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들의 장보기가 조금 덜 즐거워졌다는 사실을 알기 어려울 겁니다.
월마트는 보너스 등을 포함하면 점장의 연봉을 최대 5억 원 수준까지 지급합니다. 보통 몇 년간 계약직으로 일하며 경험을 쌓은 뒤 정규직 사원으로 꾸준히 일하다 점장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캐셔로 입사해 5억 연봉 점장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매장을 운영하는 것은 본사의 사무실이 아니라 고객을 직접 만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CEO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결과를 냅니다. 월마트의 주가는 위기를
극복하고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물론이고 한국의 대형 마트는 고객에게 무엇을 팔고 있는지를 잊은 것은 아닐까요. 숫자를 보는 리더십과 고객을 보는 리더십은 이렇게 다릅니다. 시대가 변화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