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 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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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기 대출을 상환해야 할 시점이 도래하면서 자영업자들이 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급 불능

2025년 3월 10일

20만 명이 사라졌습니다. 작년 11월부터 올 1월 사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자영업자가 20만 명입니다. 남은 자영업자는 550만 명. IMF 외환위기 때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줄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추상의 언어가 구체적인 숫자로도 떠오른 겁니다.

힘들었던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경제가 반짝였던 적은 없습니다. 이번에 나온 수치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시그널이 아닙니다. 그동안 감추고 미뤄왔던 폭탄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죠. 그 폭탄의 이름은 ‘빚’입니다.

저리 대출의 함정

빚 폭탄은 감염병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정부는 강력한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들의 영업도 제한되었고요. 당연히 손실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지원 대책이 바로 ‘대출’입니다. 자영업자들은 일단 정부가 지원하는 대출을 받아서 손해를 메꿨습니다. 정부가 보증을 서 줬고, 이자 비용도 일부 지원해 줬습니다. 원금 상환도 유예해 줬기 때문에 당장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겁니다.

정부의 지원 대책에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팬데믹이 끝나면 예전처럼 장사가 잘될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그래서 빚도 갚고 형편도 나아질 것이라고요. 그런데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죠. 마스크를 벗는다고 사람들이 돈을 펑펑 쓸 것이라는 건 예측도 아니고 전망도 아닙니다. 그저 희망일 뿐입니다. 정부는 자영업자들의 목숨줄을 들고 도박을 했습니다. 결과는 실패입니다.
팬데믹 이전의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출처: KBS 교양
잘못된 희망

2023년 5월, 정부는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무려 3년 4개월 만에 일상이 다시 돌아온 겁니다. 하지만 전쟁이 나고 기후 재난이 격화하면서 물가가 올랐습니다. 자영업자 입장에서 매출은 늘지 않고 비용만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2021년 이후 한국 경제는 고물가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2년 물가상승률은 2.2퍼센트, 2023년 3.6퍼센트, 2024년 2.3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그 이전에 2퍼센트를 넘겼던 것이 2012년입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도 따라 올랐습니다. 갚아야 할 이자가 두 배로 뛰었습니다. 마스크를 벗으면, 중국 내수가 살아나면, 전쟁으로 인한 수급 불안이 안정되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대가 현실이 되지는 못했죠. 손님들이 돈을 쓰지 않습니다. 2024년 국내 소매 판매는 전년 대비 2.2퍼센트 감소했습니다. 2003년 이후 최대치입니다.

이러니 빚을 갚을 수가 없습니다. 2년 거치 5년 만기 대출을 상환해야 할 시점이 도래하면서 자영업자들이 넘어지기 시작합니다. 자영업자 위기론이 2023년부터 본격화한 까닭입니다. 결국 보증을 섰던 신용보증기금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1조 2486억 원 규모의 빚을 대신 갚았죠. 부랴부랴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정책자금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의 상환 기간을 최대 10년까지 연장해 주고, 저금리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해 주는 겁니다.

대출 중계 사이트에 다다르면

빚을 더 오래 질 수 있도록 하거나 빚을 더 낼 수 있도록 하는 대책입니다. 쉽게 말해 망하는 시기를 늦추는 대신 이자 부담을 더 지우는 셈인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2024년 4분기, 우리나라 개인사업자의 대출 연체 금액은 11조 3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전년 대비 50퍼센트 이상 증가했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임시’로 불려놨던 빚더미가 손쓸 수 없는 짐이 되었습니다. 빚을 빚으로 돌려막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자영업자가 어려워질수록 은행은 대출을 쉽사리 내어주지 않습니다. 돈을 못 벌고 있으니 대출을 받아 길을 찾아보려 하는데, 돈을 못 벌고 있으니 신용이 낮아 은행은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겁니다. 그나마 대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자율은 6퍼센트 이상의 고금리인 경우가 많고요.

결국 정책자금 대출로 모자라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며 버티다가 정부의 이자 지원이 끝나고 금리가 오르면서 자영업자들은 막다른 길에 다다릅니다. 그런 자영업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대출 알선 브로커와 온라인 대부 중개 플랫폼, ‘대출나라’입니다. 몇천 퍼센트의 불법 고금리의 늪에 한 번 빠지면, 그때엔 헤어 나오기 힘들어집니다.

그들의 사정

자영업이 무너지고 있다면 우리 경제의 4분의 1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2024년 8월 기준으로 자영업 종사자는 전체 취업자의 약 25퍼센트에 달했으니까요.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임금 근로자까지 더하면 전체 취업자의 3분의 1이 자영업에 생계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영업자 가구의 소득은 임금 근로자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빈곤층의 비율도 높습니다. 그런데도 마땅한 지원 및 진흥 정책은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자영업자들이 단체를 결성하고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만 해도 어떠한 이익단체로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이나 경영자 단체, 변협과 의협 등 특정 직역 단체 등이 줄기차게 정치권에 목소리를 내오는 동안 자영업자들은 소시민으로서, 유권자로서 존재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팬데믹 기간 자영업자의 희생에 대해 면밀하게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미국처럼 지원금을 넘치게 풀어야 했다는 주장도 크게 설득력이 있지는 않습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달리, 우리는 윤전기를 무한정 돌려 돈을 찍어낼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분명 엇나갔습니다. 팬데믹의 종료와 함께 호황기가 찾아와야 맞아떨어지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팬데믹과 함께 정부는 금리를 낮춰 경기 부양을 꾀했습니다. 하지만 돈은 백반집이 아니라 주식시장과 부동산으로 몰렸지요.

그래서 정부는 빚 이외의 다른 대책을 고심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금융기관의 신용평가 체계를 손봐 자영업자도 합리적인 심사를 통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겠죠. 정부 정책에 따라 영업에 제한을 받았다면, 그에 합당한 매출 보상을 일부 해 줄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고통은 커지고 빚은 불어날 겁니다. 그에 따른 세수 투입도 늘어나겠지요.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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