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컴퓨터가 기계 장치가 아니라 의식과 감정을 가진 인간의 뇌라면, 우리는 쉽게 전원 코드를 뽑아버릴 수 있을까요? 고장을 일으켜 시스템을 파괴하고자 할 때 제발 자신을 끝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인류는 기술의 혁신에 뒤처질까 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기술윤리가 함께 혁신하지 못하는 상황은 쉬이 간과하죠.
organoid
다만, 아직 시간이 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시빌라 만큼 발달한 형태의 바이오 컴퓨터가 상용화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인간의 뇌세포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사람의 뇌 크기로 키우는 것은 현재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우리가 지금 만들 수 있는 것은 ‘오가노이드(organoid)’ 수준입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인간 신체 장기의 미니어처인데요, ‘장기(organ)와 유사한(oid) 것’이란 뜻입니다.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대표적으로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심장, 간, 소장은 물론이고 뇌까지 어느 정도 기능을 하는 수준으로 키울 수 있죠.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크게 만들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 몸의 장기는 혈관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구석구석 공급받습니다. 오가노이드는 불가능하죠. 배양 접시 위의 세포 덩어리다 보니,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조직의 중심부까지 산소와 영양분이 닿기 어려워집니다. 인간의 뇌 오가노이드를 생쥐의 뇌에 이식한 실험이 있는데, 그 경우 인간 뇌 조직 부분 쪽으로 생쥐의 뇌혈관이 파고드는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산소가 부족한 곳으로 혈관이 뻗어나가는 것이죠. 물론, 이런 실험에 있어서는 당장 더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까닭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폐암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죠. 제대로 기능하는지 알기 위해 가장 정확한 방법은 인간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임상 실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제한적인 횟수로만 가능하겠죠. 그러나 폐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수백 번, 수천 번을 실험할 수 있습니다. 뇌 오가노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무지한 부분이 바로 뇌입니다. 뇌는 먼저 죽는 장기 중 하나입니다. 연구가 어렵죠. 동물의 뇌를 연구하여 짐작하고, 사망한 뇌를 연구하여 짐작하는 식입니다. 뇌 오가노이드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AI
인간의 뇌를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의학자나 생명공학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AI를 연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지금 가장 몸이 달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AI의 아버지’, 제프리 힌턴 교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학습 가능한’ 인공 신경망 개발을 목표로 연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뇌의 신경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고자 했죠. 애당초 AI(인공지능)라는 개념의 기원을 쫓아 올라가 보면 1940년, 뇌세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뉴런 신경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기초적인 발견이 이루어진 것을 기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컴퓨터 공학자들은 이 방식을 모방한 기계를 만들 수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했죠. 힌턴 교수는 반대로 AI 개발을 통해 인간의 뇌를, 지능을 이해하고자 했던 겁니다. 구글 검색을 대체할 만한 AI 챗봇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죠.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바이오 컴퓨터 출시를 앞둔 코티컬 랩스는 어떨까요. 이 회사의 CEO는 한
인터뷰에서 엔비디아를 언급합니다. 오픈AI도 언급하죠. 코티컬 랩스는 ‘인간의 뇌세포를 이용해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뇌 관련 신약 개발 등에 활용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상용화의 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더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합니다. 2021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오픈AI의 GPT-3를 훈련시키는 데 미국 내 약 120개 가정에서 소비하는 전기의 양과 맞먹는 수준의 전력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반면, 인간의 뇌는 LED 전구 하나를 켜는 데에 필요한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죠. 미국의 슈퍼컴퓨터 ‘프런티어’와 인간의 뇌를 비교했더니 뇌가 에너지도 덜 쓸뿐더러 훨씬 빨리 배운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즉, 코티컬 랩스는 인간의 뇌를 가장 효율적인 CPU로 보는 겁니다. 뇌세포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당분인 포도당을 화합물로 공급하기 때문에 훨씬 ‘지속 가능한’ 컴퓨터라는 주장도 덧붙이고 있고요.
CL1
올여름 시장에 출시될 최초의 상용 바이오 컴퓨터, CL1은 기존의 컴퓨터보다 더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에너지 사용량도 적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성능이나 벤치마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코드를 짜는 등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이 컴퓨터의 디자인도 눈길을 끕니다. 살아있는 세포로 동작하기 때문에 펌프와 온도 조절 장치 등이 달려 있습니다. 뇌세포가 최대 6개월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낯설지만,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큰 거부감 없이 사용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은 세포에 감정 이입하지 않으니까요. 인간의 모습이 어렴풋이라도 보일 때에야 세포 덩어리를 생명으로 인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회사가 2022년 선보였던 개발 단계 모델의 경우, ‘퐁(pong)’ 게임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지각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접시 위에 담긴 얇은 뉴런 망도 지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계를 바꿀 기술이 코 앞으로 닥치고 있습니다. AGI, 양자 컴퓨터, 핵융합 발전, 그리고 바이오 컴퓨터도요. 이 기술들이 인류를 위기에서 구할 수도, 혹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기술을 알면 기회를 잡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인류의 탐구가 위대한 까닭입니다.
한편, 동시에 기술을 알면 위험을 예방할 확률도 높아지죠. 오가노이드 연구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학계 내에 엄격한 연구 윤리도 작동하고 있고요. 하지만 논의가 더 필요해 보입니다. 예를 들면 뇌 오가노이드를 동물에 이식해 연구하는 경우입니다. 기존 동물의 뇌와 오가노이드 사이에 연결이 생기면서 ‘키메라’가 됩니다. 피실험 동물의 입장에서는 세계가 뒤집힐만한 혼란, 혹은 고통일 수 있습니다. 이런 연구에 관한 윤리 규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인간의 뇌 오가노이드가 동물 뇌의 주도권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것과 원숭이에게는 실험할 수 없는 겁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입니다. 그래서 몹시 파괴적인 관점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