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조천호 교수는 2019년 기후 위기와 인류세에 관한 대중서, 《파란 하늘 빨간 지구》를 출간했습니다. 조 교수는 당시 기자들이 인터뷰하면서 자꾸 미세 먼지 이야기만 하려 했다고
회상합니다. 그래서 “미세 먼지는 동네 깡패 정도의 위험이지만, 기후 변화는 서울 한복판에 핵폭탄이 터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하죠. 맞는 비유입니다. 미세 먼지는 당면한 현재의 문제이며 우리 지역의 문제입니다. 서울과 강릉의 미세 먼지 농도는 한날한시라도 다르니까요. 기후 변화는 미세 먼지보다 훨씬 광범위한 위협이며, 그 타격도 재앙적입니다.
그렇다고 미세 먼지와 탄소가 개별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미세 먼지를 줄이는 노력은 대개 탄소 저감으로 이어지니까요. 대부분의 미세 먼지는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합니다. 그러니 기후 위기 대책은 미세 먼지 대책과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게 그렇지 않았지요.
미세 먼지를 피하는 상식
미세 먼지에 대한 상식적인 대응은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환기를 하는 것입니다. 미세 먼지가 꽤 심한 날에도 집 안에서 한 끼 식사를 굽고 볶으면 환기를 시키는 것이 대개 유리하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틉니다. 마스크를 씁니다. 나의 숨 바깥으로는 더 많은 미세 먼지를 날려 보내는 것이죠.
미세 먼지를 인류의 환경 의제가 아닌, 개인의 안전 의제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그렇게 마케팅했습니다. 정부 정책도 그러했고요. 미세 먼지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던 2019년에는 교실마다 미세 먼지 측정기와 공기 정화기 설치가 의무화되었거든요. 그러니까, 개인은 잘못된 선택으로 유도되었습니다.
그 정점에 있었던 것이 2017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내놓았던 ‘한국형 스모그 프리타워’ 공약입니다.
베이징에서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높이 7미터 정도에 주변 3만제곱미터범위의 공기를 60퍼센트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 공약은 1년 후 서울 시장 선거판에도 다시 등장했고요. 미세 먼지 대책으로 도심 한복판에 거대 공기 청정기를 설치하자는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당시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명징하게 드러냅니다.
빈자의 먼지
한 지역 안에서 미세 먼지를 많이 발생시키는 것은 빈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 쪽을 볼까요. 지난 2022년 폴란드에서는 여당 대표가 “무엇이든 아궁이에 넣고 태워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내놓은, 대책 없는
발언이었죠. 하지만 폴란드 일부 지역에서는 정말 ‘무엇이든’ 아궁이에 넣고 태워낸 연기가 솟아올랐습니다.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국경 주변은 역사적으로 미세 먼지가 심한 지역이었습니다. 석탄 매장량이 많아 20세기에는 산업 단지가 들어섰고, 가정에서도 땔감을 넉넉히 쓸 수 있었죠. 때문에 집을 지을 때 단열에는 소홀했습니다. 공장 굴뚝의 시대가 끝난 다음에도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가스 덕에 따뜻한 겨울이 계속되었지만, 전쟁으로 비상이 걸린 겁니다. 결국 매캐한 연기가 지역에 깔렸습니다.
심각한 대기 오염으로 유명한 인도는 지역에 따라 빈부 격차가 무척 큰데요, 인도 강 유역의 우타르 프라데시주와 비하르주는 손꼽히는 빈곤 지역입니다. 주민의 대부분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 지역은 오염도
심각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연료일수록 값이 싸기 때문에 집 안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죠. 가난을 태운 연기는 더 어둡고 검습니다.
이런 경향은 데이터로 증명됩니다. 스위스의 대기질 기술 업체인 아이큐에어(IQAIR)가 내놓은 〈
2024 세계 공기질 보고서(2024 Global PM2.5 Map)〉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대기 오염이 심각한 국가는 중앙아프리카의 차드입니다. 이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콩고민주공화국, 인도가 뒤를 이었죠.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국가들입니다. 꽉 막힌 도로, 추수 후 농촌 지역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소각, 오염 산업 등이 자리한 국가죠. 우리나라에서도 사회경제적 지표가 열악한 지역일수록 미세 먼지에 따른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요.
정치의 문제
대기질이 빈부 격차의 문제라면 이걸 우리가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추운 겨울, 한기 가득한 집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에게 ‘갈탄은 미세 먼지를 발생시키니 떼지 말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기질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안전 의제가 아닙니다. 탄소 발자국처럼 사회 전체가 함께 생각해야 할 환경 의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치와 행정이겠죠. 중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막을 수 없어도 도로를 확장해 자동차 운행을 늘릴 것인지, 대중교통 이용을 지원할 것인지는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화력 발전소를 언제까지 돌릴 것인지, 그린 리모델링 사업에 얼마를 어떻게 예산 배정할 것인지 등도 정치의 문제이며 행정의 문제입니다.
때로는 경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기차 시장이 좋은 예입니다. 2025년 1월, 그린피스는 우리나라의 현대차와 기아차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두 회사는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생산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인도 등 신흥 시장에서 내연차 판매가 늘어나면서 탄소 배출이 늘어났다는 겁니다. 물론, 보고서에는 현실을 좀 간과한 부분도 보입니다. 이게 현대차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거든요. 전기차 보급은 충전소 등의 인프라 보급과 함께 가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내연차에 비해 주행 거리도 짧은 편이고요. 인도 시장이 당장 전기차 위주로 전환되기는 어렵다는 얘깁니다. 다만, 기업이 전기차 보급에 힘을 싣게 되면 변화에 속도는 붙을 수 있겠죠.
예전보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WHO 기준치보다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있습니다. 미세 먼지는 꽃샘추위와 함께 잠깐 견디고 말면 될 ‘불청객’이 아닙니다. 격차의 결과이며,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내야 할 팀 프로젝트입니다. 마스크는 우리를 구해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