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빅 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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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업의 기술력에 지구의 일상이 걸려 있는 셈입니다.

구글의 빅 딜

2025년 3월 19일

구글이 300억 달러짜리 인수 계약을 체결합니다. 우리 돈으로는 43조 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구글이 사들인 회사 중 가장 비싼 회사가 될 전망입니다. 어마어마한 몸값이 매겨진 이 회사는 위즈(Wiz)라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입니다. 보안업체로, 주력 분야는 클라우드 보안입니다. 구글을 비롯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24년 7월에도 구글은 위즈를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당시에는 230억 달러 규모였죠. 그 직전의 펀딩 라운드에서 위즈는 12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구글은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을 제시했던 셈입니다.

2024년에는 ‘빅 딜’이 무산되었습니다. 구글의 반독점 소송과 그에 따른 위즈 투자자들의 우려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위즈는 자체적으로 기업공개(IPO)에 나서겠다고 밝혔죠. 하지만 구글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IT 업계에 길이 남게 될 300억 달러짜리 딜을 다시 시도하고 있으니까요. 계약서에 서명은 했고, 이제 경쟁 당국의 반독점 심사 통과만 남았습니다. 구글이 이렇게 절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곧 닥칠 수 있는 디스토피아의 위협이 아주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의 회사

위즈는 2020년에 설립된 회사입니다. 이제 고작 6년 차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실력은 확실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창업자들의 출신부터 남다릅니다. 네 명의 공동 창업자들은 군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이스라엘의 8200부대입니다. 우리로 치면 정보사령부 산하의 특임대에 해당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정보기관으로, 정보 수집, 암호 해독, 방첩, 사이버전 등을 수행합니다. 강도 높은 훈련과 고도의 보안 지식으로 무장한 8200부대 출신들은 짧은 복무 기간을 마친 후 글로벌 IT 기업이나 실리콘 밸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창업자 4인방의 첫 번째 회사는 아달롬(Adallom)입니다. 사이버 보안업체로, 2012년에 설립해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습니다. 3억 2000만 달러였죠. 이 자금을 기반으로 설립한 두 번째 회사가 위즈입니다. 비범한 창업자에 성공 사례까지 있으니, 투자자들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세쿼이아 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 인덱스 벤쳐스 등 이름만 들어도 유니콘이 보이는 VC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창업자들은 위즈가 탄탄대로를 달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돛을 올린 배를 향해 순풍이 불어왔습니다. AI 열풍입니다.

블루 스크린 악몽

2024년 7월,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은행 거래가 중지되었습니다. 병원 시스템도 먹통이 되었죠. IT 대란이었습니다. 12시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시스템을 사용하는 전산 시스템이 멈춰 선 겁니다. 오류가 있는 업데이트를 확인도 없이 모든 사용자에게 배포했고, 그 결과 공항과 은행, 병원과 기업을 블루 스크린이 뒤덮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850만 대의 컴퓨터가 영향을 받았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델타 항공은 이 사태로 6000대의 비행기가 운항하지 못했고, 5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면서 손해 배상을 청구했죠.
당시 IT 대란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출처: CBS News
그런데 델타항공이 소송을 제기한 상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닙니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CrowdStrike)라는 보안업체입니다. 이름도 낯선 이 업체의 작은 실수 때문에 전 세계가 12시간 동안 암흑에 휩싸였던 겁니다. 우리는 사실 사이버 보안업체들에 관해 잘 모릅니다. 이들의 기술력에 지구의 일상이 걸려 있는 셈인데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안전할까요. 2023년 기업이 랜섬웨어 범죄자들에게 ‘몸값’으로 지급한 돈은 1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 돈으로 범죄 조직은 기술력을 한껏 업그레이드했겠죠. 게다가 사이버 범죄는 이제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겁니다. AI 때문입니다. 2024년 7월의 IT 대란은 악의 없는 실수로 벌어진 일이지만, 2026년 7월에는 누군가 악의를 품고 대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스트리밍 시대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딘가를 끊어내면 됩니다. 어디인지도 명확합니다. 전 세계 클라우드 시장의 거의 7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노리면 됩니다. 우리가 스트리밍에 아주 깊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가 막히면 물건 값이 오릅니다. 기다릴 새도 없이 가격 상승이 빠르게 찾아올 겁니다. 요즘에는 창고에 부품 재고를 쌓아 두고 제품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수요를 판단하고, 그때그때 조달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배가 끊기면 미국에서 자동차를 만들 수가 없죠. 바로 ‘적시 생산(just in time manufacturing)’ 모델입니다. 애플의 팀 쿡 CEO가 이 적시 생산 모델을 성공적으로 도입하면서 재무 상태를 급속히 호전시킨 일화가 유명합니다.

우리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승용차를 사용한다면, 굳이 비싼 차를 구입해서 주차 비용과 유지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버나 쏘카 같은 공유 경제를 이용하면 됩니다. 책도 미리 사서 가득 찬 책장에 이중, 삼중으로 쌓아 올릴 이유가 없죠. 읽고 싶을 때 밀리의 서재나 아마존 킨들을 이용하면 됩니다. 소유가 아니라 구독, 저장이 아니라 스트리밍입니다.

전산 시스템도 비슷합니다. 저희 북저널리즘만해도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멈추면 독자 여러분을 온라인에서 만날 방법이 없습니다. 많은 기업이 자사 내에 서버를 두지 않습니다. 서버도, 막대한 컴퓨팅 파워도 클라우드 서비스에 크게 의존합니다. 오픈AI 같은 생성형 AI 기업들도 마찬가지죠.

단일 지점 리스크

만약 우리가 생성형 AI에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죠. 공항에서 비행 스케쥴을 조정하고 터미널을 배정하며 이착륙 허가를 내리는 과정 등이 사람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될 겁니다. 더 합리적이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AI에게 맡기면 되니까요. 공항뿐만이 아닙니다. 금융, 인프라, 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점차 AI 의존도를 높여가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관건은 보안입니다. 오픈AI의 GPT 모델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기업이라면, 단 두 가지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을 겁니다. 오픈AI 서버로 보내는 우리 회사의 데이터가 새어나가는 일과 오픈AI 서버가 멈춰 서는 일 말입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방어막이 뚫리면 GPT 시스템을 도입한 기업도 같이 뚫리게 됩니다.

구글은 클라우드 업계 빅3로 꼽히지만, 후발 주자입니다. 점유율은 11퍼센트 정도이고요. 구글은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검색 엔진과 광고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클라우드와 AI가 다음 먹거리라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구글에는 위즈가 꼭 필요합니다. 강력한 보안 없이는 AI가 약속할 유토피아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보안 없이는 구글의 클라우드 사업도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고요. 우리의 미래는 오픈AI나 구글보다는, 위즈 같은 기업들에 달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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