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사회

bkjn review

미드 센추리 모던은 몇 년째 전 세계의 열병 같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니멀리즘 사회

2025년 3월 24일

미드 센추리 모던. 지금 가장 잘 팔리는 키워드입니다. 디자인이나 집 꾸미기에 관심을 두고 계신다면, 좀 지루하게 느끼실 수도 있겠네요. ‘오늘의 집’을 비롯한 집 꾸미기 플랫폼에는 붙일 수 있는 모든 곳에 이 키워드가 붙어있으니까요. 우리나라만의 유행은 아닙니다. 이케아에서도 1960년대와 70년대에 선보였던 뉘틸베르카드(Nytillverkad) 컬렉션을 재출시했습니다. 미드 센추리 모던은 몇 년 째 전 세계의 열병 같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스타일은 정치와 경제, 예술과 철학이 뒤섞여 탄생한, 다분히 ‘20세기 중기’, 그 시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움직였던 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했죠. 21세기의 중반을 향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다시 미드 센추리 모던에 빠져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유행이 돌고 도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엔 뒷맛이 조금 씁쓸한 구석도 있습니다.

바우하우스

산업 혁명이 혁명이었던 까닭은 대량 생산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당시까지 인류의 역사에는 없던 개념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실을 자아내고 옷감을 짜내어야 했던 시대에는 면포 한 필이 귀했죠. 하지만 기계는 백 필, 천 필도 군말 없이 찍어냅니다. 물론 그 기계 앞의 노동자들은 새로운 기술에 일자리를 빼앗겼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대량 생산의 시대 앞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일상으로 끌어들일 것인지를 논의하고 주장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생성형 AI라는 기술의 폭발 앞에서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그중에는 건축과 예술에 몸담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업 혁명으로 탄생한 못생긴 공산품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이 그러했지요. 이에 영향을 받아 뮌헨을 중심으로 시작된 ‘독일공작연맹’은 영국에 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쓸모 있는 공예품을 대량 생산하겠다는, 다분히 국가주의적인 의도를 가진 움직임이었습니다. 이를 이어받은 것이 바로 바우하우스입니다. 20세기의 ‘디자인’ 개념을 발명해 낸 교육 기관입니다. 이들은 예술가 및 공예가의 작업이 대량 생산에 잠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아름다운 공예품이 대량 생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들은 대량 생산이 예술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요.

아름다운 의자의 가격

이들의 새로운 공예품은 과거와의 결별 같은 것이었습니다. 과거는 아름다움의 가격이 몹시 비쌌습니다. 돈이 있어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많았죠. 예를 들어 의자를 살펴보죠.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의자는 주로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귀족이나 부유한 신흥 계급이 사용했던 의자는 좋은 나무에 섬세한 조각을 입히고 고운 비단 천을 덧댄 쿠션을 얹어 완성했습니다. 부품 하나하나를 손으로 깎고 기우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의자는 비쌌습니다. 귀했습니다. 장인이 혼을 실어 만들어 낸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1925년 디자인된 바실리 체어는 다릅니다. 바우하우스 1기 입학생 마르셀 브로이어는 자전거 제작 과정에 착안하여 바실리 체어를 설계했습니다. 강철 파이프를 구부리고 잘라 가죽을 얹은 것이 전부입니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착석감과 기계 시대의 서막을 선언하는 듯한 외형. 그리고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기이한 의자가 대량 생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강철 파이프를 구부려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은 20세기의 발명품이었습니다. 첨단 기술이었죠. 출처: Bauhaus-Archiv
다음으로는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의 몰디드 플라스틱 체어입니다. 바실리 체어보다 훨씬 자유로운 곡선으로 구성되어 있죠. 임스 부부는 사실 합판을 열과 압력으로 가공하여 곡선 형태로 만드는 성형 합판(Molded Plywood) 기술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해군을 위해 만든 부목을 계기로 주목받게 됩니다. 나무를 깎아 만들어서는 몇 달이 걸릴지 모를 물건을 성형 합판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보다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기술을 응용한 가구들, 특히 의자가 이후 명성을 얻습니다. 그리고 임스 부부는 1950년대 궁극의 소재를 만나게 되죠. 바로 플라스틱입니다.
전쟁은 기술을 전진시켰습니다. 임스 부부의 성형 합판 부목은 시대가 필요로 한 신소재의 출현을 예고했죠. 출처: Eames Office
플라스틱

플라스틱을 성형해 만들어 낸 의자들은 단단하고 가벼우며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곡선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췄습니다. 나무, 금속, 돌 중 무엇이라도 곡선으로 자르려면 특별한 기술과 노력이 필요했으니까요. 시간도 적잖이 들었고요. 그런데 플라스틱으로는 그 귀한 곡선을 성형 합판보다도 훨씬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었죠. 이제 인류는 소재에 맞춰 디자인해야 한다는 족쇄를 풀어냈습니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플라스틱을 향해 “한계 없는 변화의 아이디어 그 자체”라며 찬사를 보낸 이유입니다.
플라스틱은 자유로운 곡선을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허락했습니다. 임스 부부는 플라스틱의 가능성을 알아봤죠. 출처: Eames Office
이렇게 아름답게 설계된 대량 생산 제품을 소비할 소비자들이 나타난 것은 전쟁이 끝난 후였습니다. 1945년 종전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들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들은 직업 교육, 일자리 주선 등 국가의 지원을 받아 시장 경제 시스템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가정을 이루어 새로운 집을 꾸미게 되었고요. 호황기였습니다. 그 풍요는 세탁기와 냉장고라는 형태로, 그리고 아름다운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의 실내 장식, 가구 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인이 조각한 장식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웠죠.

이 스타일이 이름 그대로 20세기 한중간인 1945년도에 시작되었던 이유입니다. 미드 센추리 모던은 1970년경 수명을 다했다고 봅니다. 중동발 1차 오일 쇼크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낙관이 흔들린 것이 1973년이니까요. 미드 센추리 모던은 산업 혁명과 전쟁으로 촉발된 기술의 발전, 전쟁을 기점으로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와 예술 철학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까지 물성에 담아 형태로 빚어낸 상징이었습니다.

21세기의 미드 센추리 모던

아름다움을 대량 생산해 누렸던 20세기의 미드 센추리 모던은 왜 21세기에 다시 유행하고 있을까요. 이런저런 분석이 많지만,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1인 가구나 세입자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으로 최적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 정도라면, 그것도 중국산 카피 제품이라면 원룸에서도 충분히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드 센추리 모던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 시절의 것이죠.

예를 들어 소재에 관해 생각해 보죠. 롤랑 바르트가 《현대의 신화》를 발표했던 1957년의 플라스틱과 2025년의 플라스틱은 다릅니다. 우리의 뇌 속에는 한 스푼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이 흘러들어 있다고 하죠. 제조 업체들이 플라스틱을 얼마든지 재활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소비자를 속여 왔다는 폭로도 나왔고요. 더 이상 플라스틱은 첨단 과학의 산물도 아니고 찬사의 대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를 분해하거나 대체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죠. 우리 시대의 스타일을 위한 소재는 무엇일까요? 적어도 플라스틱은 아닐 겁니다.

디자인의 기본 철학은 어떤가요.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의 건축은 유리와 강철을 기본으로 한 개방감 있는 구조가 특징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건축 양식을 20세기의 기술을 앞세워 전면 부정하는 셈이죠. 우리의 모습과는 매우 다릅니다. 50년 된 다가구 주택 원룸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서울에 지어진 도시형 생활 주택의 판에 박힌 구조와 창문 크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21세기의 미드 센추리 모던은, 점점 작아지는 삶을 위한 장식품으로 모양만 남았습니다.

20세기의 한중간에는 전쟁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 필요했습니다. 장식 없이 지어진 간소한 작은 집에도, 유리와 금속을 양껏 사용하여 극한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던 대부호의 최첨단 가옥에도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은 잘 어울렸지요. 모듈식 가구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도 시장에서는 기꺼이 받아들여 실험해 내는 시절이었습니다.

21세기의 우리도 어쩌면 한 시대의 시작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오늘보다 내일 더 가난한 상황에 적응해야 합니다. 평화로운 세계가 끝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실은 평화란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커다란 전쟁이 두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며 그동안의 착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낙관과 희망보다는 비관과 인내의 계절입니다.

2025년에는 2025년의 스타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타일을 창조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혁신이 없고 낙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스타일을 갈구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정체된 시절에는 스타일도 지루해집니다. 옛것을 곁눈질해 일종의 ‘장식’으로 빌려올 뿐이죠. 인상주의가 탄생하기 직전 아카데미의 고전파가 그러했듯이 말이죠. 다만, 정체된 시절은 곧 새로운 물결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가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다음의 물결이 조금 더 기대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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