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름답게 설계된 대량 생산 제품을 소비할 소비자들이 나타난 것은 전쟁이 끝난 후였습니다. 1945년 종전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들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들은 직업 교육, 일자리 주선 등 국가의 지원을 받아 시장 경제 시스템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가정을 이루어 새로운 집을 꾸미게 되었고요. 호황기였습니다. 그 풍요는 세탁기와 냉장고라는 형태로, 그리고 아름다운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의 실내 장식, 가구 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인이 조각한 장식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웠죠.
이 스타일이 이름 그대로 20세기 한중간인 1945년도에 시작되었던 이유입니다. 미드 센추리 모던은 1970년경 수명을 다했다고 봅니다. 중동발 1차 오일 쇼크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낙관이 흔들린 것이 1973년이니까요. 미드 센추리 모던은 산업 혁명과 전쟁으로 촉발된 기술의 발전, 전쟁을 기점으로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와 예술 철학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까지 물성에 담아 형태로 빚어낸 상징이었습니다.
21세기의 미드 센추리 모던
아름다움을 대량 생산해 누렸던 20세기의 미드 센추리 모던은 왜 21세기에 다시 유행하고 있을까요. 이런저런 분석이 많지만,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1인 가구나 세입자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으로 최적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 정도라면, 그것도 중국산 카피 제품이라면 원룸에서도 충분히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드 센추리 모던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 시절의 것이죠.
예를 들어 소재에 관해 생각해 보죠. 롤랑 바르트가 《현대의 신화》를 발표했던 1957년의 플라스틱과 2025년의 플라스틱은 다릅니다. 우리의 뇌 속에는
한 스푼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이 흘러들어 있다고 하죠. 제조 업체들이 플라스틱을 얼마든지 재활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소비자를 속여 왔다는
폭로도 나왔고요. 더 이상 플라스틱은 첨단 과학의 산물도 아니고 찬사의 대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를 분해하거나 대체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죠. 우리 시대의 스타일을 위한 소재는 무엇일까요? 적어도 플라스틱은 아닐 겁니다.
디자인의 기본 철학은 어떤가요.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의 건축은 유리와 강철을 기본으로 한 개방감 있는 구조가 특징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건축 양식을 20세기의 기술을 앞세워 전면 부정하는 셈이죠. 우리의 모습과는 매우 다릅니다. 50년 된 다가구 주택 원룸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서울에 지어진 도시형 생활 주택의 판에 박힌 구조와 창문 크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21세기의 미드 센추리 모던은, 점점 작아지는 삶을 위한 장식품으로 모양만 남았습니다.
20세기의 한중간에는 전쟁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 필요했습니다. 장식 없이 지어진 간소한 작은 집에도, 유리와 금속을 양껏 사용하여 극한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던 대부호의 최첨단 가옥에도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은 잘 어울렸지요.
모듈식 가구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도 시장에서는 기꺼이 받아들여 실험해 내는 시절이었습니다.
21세기의 우리도 어쩌면 한 시대의 시작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오늘보다 내일 더 가난한 상황에 적응해야 합니다. 평화로운 세계가 끝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실은 평화란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커다란 전쟁이 두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며 그동안의 착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낙관과 희망보다는 비관과 인내의 계절입니다.
2025년에는 2025년의 스타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타일을 창조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혁신이 없고 낙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스타일을 갈구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정체된 시절에는 스타일도 지루해집니다. 옛것을 곁눈질해 일종의 ‘장식’으로 빌려올 뿐이죠. 인상주의가 탄생하기 직전 아카데미의 고전파가 그러했듯이 말이죠. 다만, 정체된 시절은 곧 새로운 물결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가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다음의 물결이 조금 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