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불신의 시대

bkjn review

법관의 생각이 곧 법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 과거와는 달리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사법 불신의 시대

2025년 3월 27일

“판사들이 법조인의 양심을 가지고 재판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 정치 성향에 맞춰 재판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어제 백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결과가 나온 날이었죠. 서울고법은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한 1심 판단을 뒤집고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쉽게 말해 재판부가 좌파라 이 대표가 무죄를 받았다고 한 겁니다.

정치권만 사법부를 불신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돌도 판사를 믿지 않습니다. 최근 뉴진스는 법원이 어도어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자 법원 판단이 실망스럽다며 “한국이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했죠. 법원 결정에도 멤버들은 23일 밤 홍콩에서 뉴진스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공연을 강행했습니다. 팬들은 이들이 새로 정한 팀명 NJZ를 외쳤죠.

사법 불신의 결정판이 곧 다가옵니다. 대통령 탄핵 심판입니다. 광화문에서 소리치는 사람과 경복궁에서 치를 떠는 사람은 각자 답을 미리 정해 놨습니다. 안국에서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는 쪽은 ‘사법 테러’를 운운하며 불복할 겁니다. 이번엔 법원 기물 파손보다 더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내란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갈등을 종식해야 할 사법부는 어쩌다 갈등을 키우는 조직이 됐을까요. 사법 불신이 하루아침에 생긴 일은 아니지만, 최근 10년 사이 크게 심화했습니다.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민원 건수가 10년 전만 해도 1000건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은 2만 건이 넘습니다. 저 숫자로만 보자면 10년 사이에 사법 불신이 20배 심해진 거죠.

국민 10명 중 7명이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사법 불신의 가장 큰 이유는 판결의 일관성 결여입니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판사를 잘 만나면 형을 적게 받거나 심지어 무죄가 나오고, 잘못 걸리면 중형을 받습니다.

소시지 몇 개를 훔쳐 징역 1년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회삿돈 수백억 원을 빼돌리고도 집행 유예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니 법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재판에서 져도 운 나쁘게 판사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판사 쇼핑’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공정하다는 착각

법관은 법에 따라 판단하는데, 왜 판결의 일관성이 떨어질까요? 많은 사람이 의아해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전제부터 잘못됐습니다. 법관은 법에 따라 판단하지 않습니다. 법률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율입니다. 제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어깨를 툭 밀친 것이 위법인지 아닌지는 법전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판사가 폭행죄라고 하면 폭행죄가 됩니다.

재판을 좌우하는 건 사실 관계의 확정입니다. 어떤 증거를 사실로 인정할 것인지가 관건인데, 좀 거칠게 말하자면 판사 마음입니다. 예컨대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이 대표가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 과정에서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한 것을 1심은 허위 사실 공표로 봤지만, 2심은 ‘의견 표명’에 해당해 처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정리하면, 법관의 생각이 곧 법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 과거와는 달리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1980년 판사 정원은 624명이었습니다. 경기고 나와서 서울 법대 들어가고, 소년 급제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집안 형편과 성장 환경, 사회 경력이 거의 같으니, 생각하는 것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TV 채널도 KBS와 MBC, 두 곳만 있던 시절입니다. 보는 것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판결 스펙트럼이 좁을 수밖에 없었죠.

지금 판사 정원은 3214명입니다. 인구가 1.3배 증가하는 동안, 판사 수는 5배 증가했습니다. 그사이 사법시험은 사라졌고 로스쿨이 생겼습니다. 판사가 되는 경로도 다양해졌고요. 미디어 환경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졌죠. 대통령도 유튜브에 빠져 사는 시대인데, 판사라고 다를까요. 법관들 사이의 생각 차이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 결과, 오락가락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사법 불신을 키우고 있고요.

정치인 재판은 여기에 정치적 이념까지 더해집니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임명 과정이 정치화되면서, 판결이 특정 정당이나 이념적 이해관계에 따라 내려진다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공방하는 것도 결국 여야 모두 ‘마은혁은 민주당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두 번의 대통령 탄핵 심판을 겪으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은 이제 한 테이블에 앉기도 힘든 사이가 됐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문제가 생기면 법정으로 가져가는 정치의 사법화가 가속했고, 결국 사법의 정치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이제 판사를 독립된 법률가보다는 정치적 행위자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져도 승복할 수가 없습니다.

탄핵 심판이 길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저는 탄핵 심판 이후가 더 걱정입니다. 한쪽은 반드시 집니다. 그리고 그 한쪽은 헌법재판관의 정치 편향을 문제 삼아 결과에 불복할 겁니다. 뉴진스가 혁명가가 되면 하이브가 고생이지만, 이들이 혁명가가 되면 대한민국이 고생입니다. 사실상 내전 수준까지 나라가 쪼개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거의 모든 언론이 탄핵 심판 결정 후 불복 사태를 예견하면서도, 해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전자 또는 정치 평론가 역할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러다 정말 나라가 두 쪽이라도 나면 ‘그거 봐라. 우리가 뭐라고 했나’라고 할 판입니다.

회복적 정의

지금부터라도 해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누가 이기든, 국론을 통합하고 치유하는 회복적 정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요즘 튀니지 사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2011년 튀니지에선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 독재자를 끌어내렸습니다. 이후 역사상 첫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민주주의 제도 운영이 처음이다 보니 정치 불안이 극에 달했습니다. 2013년에는 야당 정치인이 암살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죠. 이슬람주의 정당과 세속주의 정당 사이의 갈등이 깊어져 내전 위기에 직면합니다.

행정부와 사법부는 국민 신뢰를 잃어 사태를 수습할 동력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쪼개질 참이었습니다. 이때 시민 사회와 원로 그룹이 나섭니다. 노동연맹, 산업연맹, 인권연맹, 변호사연맹이 연합해 국민 4자 대화 기구를 결성한 겁니다. 이들은 공식 정부 기구가 아닌 민간 기구였습니다. 별도 사무실도 없었죠. 법적 강제력 역시 당연히 없었고요.

이들은 이슬람주의 정당, 세속주의 정당 등 모든 정치 세력이 참여할 수 있는 대화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정치권의 중립적 조정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때까지 주요 정당들은 — 지금 국민의힘과 민주당처럼 — 서로를 테러 단체라 부를 정도로 증오했는데, 4자 대화 기구가 주관하는 자리라면 일단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튀니지 국민 대다수가 혼란 극복을 위해선 이들의 중재가 필요하다는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4자 대화 기구와 각 정파는 양보와 협상을 거듭하며 정부 운영 방식과 권력 구조를 개편하고, 헌법까지 개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2014년에는 총선과 대선을 치러 정권의 정당성과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듭니다. 4자 대화 기구는 튀니지를 평화적 대화로 구해낸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노벨 평화상을 받습니다.

아랍의 봄 이후 튀니지가 겪은 혼란은 오는 4월 한국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큽니다. 법적 절차가 끝나도 사법을 믿지 못하니 사건은 종결되지 않습니다. 양극화된 정치는 혼란을 수습할 힘도 자격도 없고요.

그래서 저는 공론화 기구를 제안합니다. 과거에도 공론화위원회를 일부 시도한 적이 있지만, 탈원전 같은 특정 사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국론 통합을 위한 기구가 필요합니다. 시민 사회, 종교계, 학계 원로 등 국민의 폭넓은 신뢰를 받는 사람들이 모여 공론화 기구를 꾸려야 합니다. 이들이 사회적 권위와 공정성을 바탕으로 갈등 당사자들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야 합니다.

갈등 당사자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대화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합의와 화해를 모색해야 합니다. 결국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구의 활동이 단순 권고 수준에서 끝나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가 일정 부분 수용할 의무를 부여하거나, 향후 개헌이나 법 개정 논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이 합의가 있어야 내란 수괴와 계몽령 사이의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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