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할 수 있는 것

bkjn review

이용자의 관심을 팔던 네이버가 사용자의 의도를 파는 회사로 거듭나야 할 이유입니다.

네이버가 할 수 있는 것

2025년 3월 31일

지난 3월 26일, 네이버와 카카오의 주주 총회가 나란히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2대 IT 공룡이죠. 2025년 현재, 주력 분야가 그렇게 겹치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 경쟁 구도로 두 기업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같은 날 열린 주총도 비교해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올해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카카오 쪽은 꽤 어수선했고, 상대적으로 주목도도 떨어졌습니다. 김범수 창업자가 사법 리스크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카카오는 지금 시든 가지를 잘라내는 중입니다. 예를 들면 점유율이 3퍼센트대로 추락한 포털 사이트, ‘다음’ 같은 것 말입니다. 구조 조정에는 당연히 직원의 희생이 따릅니다.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반면, 네이버는 적어도 주총장에서 일종의 화두를 던지긴 했습니다. ‘AI 다양성’이라는 화두입니다. 전 세계의 검색 서비스를 한 기업이 독점하고, 전 세계의 AI 서비스도 한 기업이 독점하는 것이 맞느냐는 얘깁니다. 그 얘기를 이해진 창업자가 했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이해진 창업자는 이번 주총 자리에서 이사회 의장으로의 복귀를 알렸습니다. 네이버가 AI 관련해서 뭐든 제대로 해 보겠다는 일종의 선언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이버는 지금 어떤 기업일까요. 돈 잘 버는 회사입니다. 2024년 연간 매출 1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어디서 돈을 벌까요. 검색 광고와 이커머스입니다. 매출의 64퍼센트가 두 부문에서 발생했습니다. 광고로 4조 원 가까이, 이커머스로는 3조 원 가까이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검색 광고와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가 미래 먹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해진 의장이 돌아온 앞으로의 네이버는 과연 어떤 기업이 될 수 있을까요?

네이버는 오픈AI가 될 수 없다.

2025년 1월, 딥시크가 R1 모델을 발표한 직후 네이버 주가가 치솟았습니다. 가능성을 봤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생성형 AI 모델 개발에 있어 돈과 칩, 사람까지 다 가진 실리콘밸리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 체념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이름도 생소한 스타트업이 오픈AI를 따라잡았다고 합니다. 네이버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투자 심리를 자극했습니다.

불행히도 딥시크가 할 수 있다고 네이버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중국의 낯선 스타트업보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 AI 모델의 수준이 떨어집니다. 딥시크가 오픈AI가 막 발표한 최신 추론 모델을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여 따라잡았다면, 2022년 설립된 신생 기업 마누스(Manus)는 AI 에이전트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 중에 이 정도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낸 곳은 없습니다. AI가 자본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생성형 AI 분야에서 치고 나갈 수 있는 까닭 중 하나는 미국의 스텐퍼드대학교를 벤치마킹한 저장대학교(浙江大学)의 존재입니다. 졸업생 5명 중 1명이 창업에 성공합니다. 졸업 5년 안에 말이죠. 게다가 저장대학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과학 논문을 발표하는 대학 중 하나이고요. 핀둬둬의 창업자가 이 학교 출신이고, 텐센트 등 중국 IT 기업들은 저장대학교의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합니다. 학교는 알리바바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죠. 우리에게는 스탠퍼드대학도, 저장대학교도 없습니다. 뛰어난 인재가 스타트업 창업을 통해 신화를 쓸 만한 루트가 없다는 얘깁니다. 사실, 엄청나게 뛰어난 AI 인재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미국 기업으로 가고 싶어 할 겁니다. 동료와 교류할 수 있는 기술의 수준이 다르고, 무엇보다 연봉 수준이 다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죠. 네이버가 오픈AI를 따라잡을 만한 파운데이션 AI 모델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전망이 아니라 흐릿한 희망입니다.

네이버는 아마존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네이버에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네이버는 이번 주총에서 ‘온 서비스 AI’ 사업을 이야기했습니다. 네이버의 각종 서비스에 AI를 접목하겠다는 겁니다. 무엇이 달라질까요. 네이버가 최근 가장 힘을 많이 주고 있는 커머스 쪽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네이버 쇼핑은 과거와는 다릅니다. 가격 비교 위주의 서비스에서 ‘네이버 플러스 스토어’ 서비스로의 전환이 완전히 끝났습니다. ‘오늘 드림’ 서비스 등에 대한 소비자 경험도 꽤 쌓였죠.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의 업체는 물론이고 파스토, 품고 등의 풀필먼트 스타트업까지 대거 포섭해 ‘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NFA)’를 구성한 덕분입니다. 전통적인 오픈마켓 형태보다는 ‘공식 몰’ 형태로 각 스토어의 형태를 강조한 것도 쿠팡과는 차별화하는 부분입니다.

네이버는 여기에 AI 추천을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사용자에게 꼭 맞는 제품을 AI 기술을 이용하여 추천해 주겠다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광고비를 많이 태운 순서대로 검색 결과가 노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의도에 맞춘 결과를 보여 주겠다는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네이버 플러스 쇼핑 앱 하단에는 ‘발견’ 코너가 있는데요,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할 만한 제품을 개개인의 쇼핑 이력에 맞추어 추천하는 겁니다.

사실, 이걸 얼마나 빠르게 잘 도입하느냐에 따라 이커머스 업계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관심을 끌면 클릭이 되고, 클릭이 되면 매출이 되는 구조였죠. 그러나 이제는 소비자의 의도를 가장 잘 읽는 AI 모델을 보유한 곳에 매출이 몰리게 됩니다.

네이버가 ‘슈퍼 앱’의 가능성을 제쳐두고 쇼핑 앱을 따로 론칭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사실, 검색 엔진으로서의 네이버에 이러한 변화는 악재입니다. 생성형 AI 검색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검색 광고 시장이라는 전망도 나오니까요. AI 시대의 소비자는 검색 결과로 제시된 링크를 찾아 들어가 이것저것 뒤져볼 필요가 없습니다. 내 취향에 꼭 맞는 물건, 내가 알고 싶었던 정보를 ‘결과’로 보여 주니 검색 광고의 의미가 없어지겠지요.

그래서 이런저런 과도기적 ‘꼼수’도 나옵니다. AI 검색 결과에 광고를 섞는 겁니다. 다만, 어차피 다른 검색 엔진이 사용자의 의도에 더 완벽히 맞추는 쪽으로 변화한다면 네이버가 버틸 재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락할 수밖에 없는 검색 광고에 미련을 거두고 네이버가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를 더 매력적으로 단장하는 쪽이 이득입니다.

그럼, 네이버의 미래가 커머스에 달려 있을까요? 그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네이버는 온 서비스 AI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분주한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자동차용 AI 비서를 공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AI 도입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셋, 쏘카 등과도 협업하고 있죠. 뿐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지도 앱에 새로운 AI 기반의 광고 상품을 론칭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지식인 서비스와 AI가 만나면 재미있는 실험도 가능할 수 있겠죠. 오픈AI가 당장 할 수 없는 서비스들이 많습니다.

누가 뭐래도 한국 사람은 네이버의 UI, UX에 익숙합니다. 우리가 이용할 서비스에 AI가 도입된다면, 처음에는 낯설 수도 있습니다. 네이버가 담당한다면 좀 더 쉽고 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오픈AI는 AGI에 가장 먼저 도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챗GPT 잘 활용하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광고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이런 흐름은 21세기 초, 인터넷 검색 경진 대회와 닮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챗GPT 수준의 서비스는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별도의 교육 없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정도로 발전할 겁니다.

관건은 검색 서비스를 통해 광고 산업의 패러다임을 뒤집었던 구글처럼, 기술을 생활에 어떻게 끌어들이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용자의 관심을 팔던 네이버가 사용자의 의도를 파는 회사로 거듭나야 할 이유입니다. 이게 네이버의 기회입니다. 이해진 의장이 경쟁자보다 이걸 먼저 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죠.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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