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8일, 미얀마에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이미 2000명이 넘었습니다. 구조되지 못한 매몰자들까지 고려하면 이 숫자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겁니다. 현장에서는 시신 수습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낮 최고 기온 41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곳은 미얀마 제2 도시인 만달레이입니다. 11세기에 왕국이 형성됐던 미얀마 중부 지역으로, 19세기 영국에 침략당할 때까지 여러 왕조의 수도가 자리 잡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4미터 높이의 금빛 불상이 빛났던 마하무니 사원, 만달레이 왕궁 등 아름다운 유적으로 가득했던 곳이죠. 관광 도시입니다. 최소한의 인프라는 갖춰진 곳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지진 이후 도시는 매일 더 처참해지고 있습니다. 나쁜 권력 때문입니다.
1995년, 고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규제가 ‘철의 삼각형’에 의해 견고해진다고 설명합니다. 경제 관료와 정치인, 이익 집단의 단단한 유착 관계를 뜻하는데, 이익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각종 규제를 설계해 청탁하면 관료와 정치권은 이를 들어주는 대신 퇴직 후의 자리나 유권자의 표, 정치 자금 등을 챙기는 식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철의 삼각형은 일본 경제 성장의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지휘 아래 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명문대 학벌로 얽힌 공무원 집단과 정치인, 기업가들은 손발이 잘 맞았죠. 이들은 80년대 말 버블이 깨지기 전까지의 경제 성장을 주도했고, 그 결실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철의 삼각형이 녹슬기 시작합니다.
물론, 버블이 깨지면서 일본 관료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쐐기를 박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1995년 발생한 한신 대지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베 대지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죠. 고베항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세계 5위권의 국제 항구였습니다. 일본 교역량의 11퍼센트를 담당했죠. 그런데 1995년 1월, 한신 대지진이 발생하고 고베시는 완전히 파괴됩니다. 지진 발생 한 달여 만에 고베항이 기능하지 못하게 된 여파로 22곳의 기업이 줄도산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5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당시 일본 정부의 대응이 호된 비판을 받았습니다. 관료들이 문서로 된 ‘피해 보고서’를 기다리다 초기 대응이 늦어진 겁니다. 일본 총리는 지진 발생 소식을 NHK 아침 뉴스로 알게 되었고, 자위대가 현장에 투입되어 구호 활동을 지원하기까지는 사흘이 걸렸습니다. 허가 없이는 예외를 만들 수 없는 경직성 탓에 해외의 지원도 필요한 곳에 제대로 가 닿지 못했죠. 당시 스위스에서 파견한 구조견을 검역 때문에 일주일간 격리소에 가둬 두었던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철의 삼각형은 엘리트 공무원을 일본 사회의 거대 권력의 축으로 키웠습니다. 그래서 ‘윗선’의 결단이 없으면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일본 특유의 관료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수 있었죠. 문제없이 풍요를 누리던 때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철의 삼각형이 깊이 녹슬어 삐걱대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관료주의가 고베의 피해와 비극을 더 키웠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인은 일본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 만달레이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의 전쟁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동안 미얀마에서는 내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2021년 군부가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 약 3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이들 중 3분의 1 이상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죠. 어떤 전쟁은 주목받습니다. 부유한 국가의 경제 상황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혹은 그 전쟁으로 부유한 국가가 위협받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떤 곳의 내전은 잊히거나 무시됩니다. 타인의 고통입니다.
현재 미얀마의 내전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군부는 중앙 평야와 도시 지역을 주로 장악하고 있고, 군부에 저항하는 연합 반군 세력은 비교적 낙후된 국경 지대 위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반군은 작년부터 이번 지진으로 파괴된 만달레이 인근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달레이는 ‘격전지’입니다.
만달레이는 2007년, ‘샤프론 혁명(Saffron Revolution)’을 주도했던 지역 중 한 곳입니다. 2007년,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군부의 폭거에 저항한 승려들이 샤프론색 승복 차림으로 거리로 나서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이들을 따라 수만 명의 시민이 비폭력 저항에 동참했고요. 그 결과 군부는 아웅 산 수치 여사의 가택 연금을 해제하고 2011년에는 문민정부로 정권을 이양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