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도 만들어 보셨나요? ‘지브리 스타일’ 프로필 이미지 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도 지브리 풍으로 그려내니 참 따뜻해 보입니다. 오픈AI가 얼마 전 GPT-4o 모델에 새로운 이미지 생성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네 컷 만화도 척척 그려내고 모든 이미지를 심슨 스타일, 픽사 스타일 등 다양한 화풍으로 변환해 냅니다.
일각에서는 창작자가 설 자리를 잃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지브리 등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저작권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죠. 그럼에도 지금 샘 올트먼 CEO는 꽤 신이 난 것처럼 보입니다. “GPU가 녹고 있다”, “우리 엔지니어 팀도 잠을 자야 한다”며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한 시간 만에 사용자가 100만 명 늘어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리스크를 감수한 이유
생성형 AI에는 무언가를 ‘생성’할 능력은 없습니다. 학습한 것을 조합하고 적용하여 최대한 그럴듯한, 정답일 확률이 높은 결과물을 내놓을 뿐입니다. 즉, 지금 챗GPT가 만들어내고 있는 어떤 ‘스타일’의 이미지는 오픈AI가 각 애니메이션을 AI 모델 학습에 사용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아직 오픈AI가 지브리는 물론이고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저작권 계약을 맺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계약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언급 자체를 피하고 있는 겁니다. 다만, 스튜디오 지브리가 오픈AI와 사전 협의와 저작권 계약까지 했을 가능성은 꽤 낮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과거 AI를 이용해 제작한 애니메이션에 관해 “역겹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비판한 일이 있거든요.
사실, 화풍에 관한 저작권 적용 여부는 고민할 지점이 많습니다.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는 부분이죠. 스튜디오 지브리 등으로부터 AI 학습에 관해 라이선스나 승인을 받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측이 있는가 하면, 현행 저작권법상 화풍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작권법은 구체적인 표현 결과물을 보호할 뿐, 아이디어나 방법론을 보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논란이 있다’라는 모호한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오픈AI가 만약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번 서비스를 내놨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저지른 일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세 가지 있습니다. 먼저, 샘 올트먼에게는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최근 오픈AI는 GPT-4.5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평가가 별로 좋지 않았죠. 일론 머스크의 ‘그록’ 최신 모델에 밀리는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왔죠. 하지만 오픈AI는 절대 밀릴 수 없습니다. 생성형 AI 업계에서 최고를 사수해야만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돈 문제 입니다. 오픈AI는 생성형 AI를 대중의 손에 들려준 최초의 기업입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값진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오픈AI가 개척자의 처지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는 고스란히 비용으로 남았습니다. 오픈AI의 올해 매출은 127억 달러로 예상됩니다. 작년과 비교하면 3배가 넘습니다. 폭발적인 성장세입니다. 그러나 쓰는 돈이 더 많습니다. 2024년, 오픈AI는 5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29년까지 오픈AI가 흑자전환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즉, 오픈AI는 지속적으로 추가 투자를 유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입니다. 투자자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줘야 하죠. 그런데 후발 주자인 그록에 GPT 모델이 밀린다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턱밑까지 추격해 오고 있는 중국산 모델들까지 생각하면 골치가 아팠을 겁니다. 이런 최근의 부진을 단번에 만회시켜 준 것이 이번 지브리 스타일 열풍입니다. 모두 챗GPT에 열광하고, AI 서비스에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까지 유료 구독을 시작하고 있죠.
여기에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 생성형 AI의 학습을 둘러싼 저작권 이슈는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고, 사용한 적 없는 기술에 관해 법이 명확한 잣대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죠. 즉, 지금이 그 기준을 만들어가는 때입니다. 오픈AI는 지금까지도 일단 학습에 데이터를 사용한 뒤
문제가 되면 저작권자와 사후 합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습니다. ‘공정 이용’이니 괜찮다는 주장입니다. 오픈AI는 지브리와 저작권 분쟁이 발생할 때도 ‘공정 이용’을 주장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로 이끌고자 시도할 겁니다. 이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도구를 사용하고, 즐거워하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지브리 트럼프의 파장
즐거운 놀이에 빠진 사람들 곁에는 근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약점이 꽤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만 할 수 있는 영역이 줄었다는 뜻입니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공포가 훨씬 가까워진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텍스트 표현입니다. 네 컷 만화를 그린다고 가정하면 말풍선 안에 대사를 적어야겠죠. 지금까지 이미지 생성 AI는 제대로 된 글자를 잘 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업데이트로 영어는 거의 완벽하게, 한글은 꽤 개선된 수준으로 이미지 안에서 구현합니다. 당장 인스타툰 작가들부터 큰일 났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연히 누군가에게는 타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지난주까지만 해도 저는 이런 콘텐츠를 절대 만들 수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