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전쟁

bkjn review

관세 인상 ‘법’이 통과됐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 겁니다.

관세 전쟁

2025년 4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 시각으로 4월 2일 오후 4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모든 국가에 기본 관세 10퍼센트를 부과하고, 특정 ‘최악의 국가’에는 이보다 높은 관세를 매기는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트럼프는 4월 2일을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선포하며 “미국 산업이 다시 태어난 날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했죠.

트럼프는 외국이 미국 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매겨 미국 산업을 파괴해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납세자들은 50년 넘게 갈취를 당해 왔다”라고도 했죠. 미국이 관세를 낮추면 상대국도 관세를 낮춰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최악의 국가’에 동맹국 한국도 포함됐습니다. 4월 9일부터 한국산 제품에는 기본 관세보다 높은 25퍼센트 관세가 붙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농산물과 축산물 등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품목에서 서로 관세를 매기지 않았는데, FTA 체제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한미 양국이 오랫동안 줄다리기 협상을 하고 의회 비준까지 받아 통과시킨 FTA가 트럼프의 일방적인 행정 명령 하나로 종잇장이 된 거죠.

관세는 수입품에 붙이는 세금입니다. 거의 모든 국가가 관세를 부과하는데, 수입국과 품목에 따라 세율이 다릅니다. 관세는 제품 가격의 일정 비율로 부과됩니다. 관세율이 25퍼센트라면 100만 원짜리 상품을 수입할 때 25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합니다. 이 돈은 외국 제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기업이 내지만, 기업은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합니다. 결국 물건값이 오르죠.

한마디로 이번 관세 조치의 부담은 미국 기업과 미국 소비자가 지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 경제학자들은 관세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이 재점화할 수 있다며 경고해 왔죠. 트럼프 행정부도 그런 우려를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정하기까지 합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관세 장벽이 경기 침체로 이어지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죠.

그럼, 그 가치란 무엇일까요. 미국 제조업 부흥입니다. 당장 물가는 오르겠지만, 미국인이 수입품보다 미국산 제품을 더 사게 해서 자국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겁니다. 그럼, 그렇게까지 해서 제조업을 살리려는 이유는 뭘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의 무역 적자 해소이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제조업 쇠퇴를 국가 안보 위기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이유도 그 바탕에는 제조업 패권 경쟁이 있습니다. 미·중 갈등은 트럼프 1기 때부터 본격화했죠. 당시 트럼프가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 적자를 걸고 넘어진 까닭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중국산 저가 수입품 없이는 미국인이 살 수 없게 됐고, 그 결과 미국 제조업이 쇠퇴한 것을 심각한 경제·사회·안보 위기로 봤습니다. 이어서 들어선 바이든 정부도 이 기조를 이어받아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미국 제조업 부흥과 공급망 안정을 꾀했고요.

세계 제조업 부가 가치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에는 25퍼센트였는데, 2021년에는 16.3퍼센트까지 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은 6퍼센트에서 30.9퍼센트로 껑충 뛰어 세계 최대의 제조업 강국이 됐죠. 조선업에선 차이가 더 극명히 드러납니다. 세계 선박 생산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6퍼센트입니다. 해양 강국이라는 미국은 점유율이 1퍼센트도 되지 않죠.

과거에는 제조업을 단순히 경제 영역 중 하나로 봤지만, 이제는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농업처럼 국가 안보의 기반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모든 무기와 통신, AI 시스템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대표적이죠. 의료품, 배터리, 희귀 금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 제조할 역량이 없는 나라는 코로나19 때처럼 글로벌 공급망이 차단될 경우 국가 시스템이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제조업 부활은 단순한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국제 패권과 자주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자립 프로젝트입니다. 정리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무역 적자 개선, 일자리 창출 같은 경제적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공급망 자립, 핵심 기술 보호 같은 안보적 측면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논리는 있지만, 근거는 없는

트럼프가 워낙 변덕스러워서 그렇지, 관세 조치의 논리 자체는 따지고 보면 틀린 구석이 없습니다. 거의 모든 국가가 자국 제조업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으니까요. 정작 이해되지 않는 건 그 근거입니다. 트럼프는 기자 회견장에 국가별 관세율이 적힌 차트를 들고나왔습니다. 국가별로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얼마나 부과하는지, 이에 따라 미국은 앞으로 해당 국가의 제품에 관세를 얼마나 부과할지를 기재한 표였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별 상호 관세 리스트
위 사진에서 왼쪽 표의 7번째 줄에 한국이 있습니다. 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에 50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정말 무지막지한 관세율이죠. 하지만 트럼프는 ‘관대하게’ 한국이 매기는 관세의 절반만큼만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25퍼센트입니다. 마찬가지로 저 표에 따르면 EU는 미국에 39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합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그 절반인 20퍼센트를 EU에 부과하기로 했고요.

트럼프가 제시한 수치가 사실이라면 관세 폭탄도 수긍이 됩니다. 트럼프 말대로 미국 납세자들은 “갈취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수치가 이상합니다. 한국은 한미 FTA 이후 미국산 공산품에 대해서는 관세가 대부분 0퍼센트에 가깝습니다. 쌀, 과일 등 특정 품목에는 30~50퍼센트의 관세가 있지만, 말 그대로 특정 품목에만 부과하는 관세입니다. 무역액 기준으로 계산하면 관세는 대략 1~3퍼센트 정도입니다.

관세율의 출처와 계산법을 두고 소셜 미디어에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계산법은 이렇습니다. 2024년 기준 미국이 해당 국가와의 무역에서 본 적자액을 수입액으로 나눈 값이라는 겁니다. 지난해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 적자액은 655억 달러이고, 한국 제품 수입액은 1315억 달러였습니다. 저 산식대로 계산하면 49.8퍼센트가 나옵니다. 반올림하면 50퍼센트죠. 다른 나라들의 통계를 대입해도 거의 똑같이 나옵니다.

설마 미국 정부가 이런 단순한 산수에 기초해 전 세계를 상대로 전격적으로 관세를 매겼을까 싶은데, 사실이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논란이 확산하자 백악관 대변인은 X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상호 관세 산출 공식을 공유했습니다. USTR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복잡한 계산식이 나오는데, 긴 해설처럼 달려 있습니다. 해설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각국의 수만 가지 관세, 규제, 세금, 기타 정책의 무역 적자 효과를 개별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복잡하지만, 상호 관세를 개념화하기 위해 양자 무역 적자를 0으로 만드는 관세율을 계산했다.”

그러니까 상대국의 관세와 규제, 기타 정책을 일일이 따져서 논리적인 상호 관세를 계산한 것이 아니라, 상대국과 미국의 무역 적자가 0이 되도록 하는 관세율이라는 얘기입니다.

차라리 법이었다면

엄청난 관세 폭격의 효과는 현재로서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전례가 없거든요. 비슷한 사례를 찾으려면 100년 전 대공황 때 미국이 시행했던 고관세 정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사실상 비교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먼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한국에 부과된 25퍼센트 관세도 버거운데, 우리 수출 기지가 많이 진출한 베트남에도 46퍼센트 관세가 부과됐거든요. 삼성, LG 등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자 중국에 있던 공장을 베트남으로 많이 옮겼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량의 절반을 베트남에서 만듭니다.

한국을 포함해 대미 수출 비중이 큰 나라는 경제가 휘청일 수 있는데요,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대응책은 갈릴 겁니다. 국내 여론에 밀려 보복 관세를 매기는 것은 결과적으로 더 안 좋은 선택이 되겠지만,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 사례를 봤을 때 정치적으로는 유리합니다. 선거를 앞둔 나라는 보복 관세로 맞서게 될 겁니다. 결국 전 세계 무역 전쟁이 격화하겠죠.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관세 폭격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의 측근조차 알 수 없죠. 시장과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합니다. 관세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디로 불똥이 튈지, 국가마다 어떤 합의안이 나올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를 꺼릴 겁니다. 트럼프가 바라는 리쇼어링도 당분간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자유무역주의 체제에서 관세는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관세 인상이 차라리 법으로 시행됐다면 당분간 시장이 출렁이겠지만, 결국 시장은 리스크를 받아들이고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의회 승인 없이 행정 명령만으로 관세를 수시로 바꿀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번 관세 조치 이후, 각국과 협상을 하게 될 겁니다. 거래에 나서는 국가도 있고, 국제기구에 제소하는 국가도 있고, 보복 관세로 맞서는 국가도 있겠죠. 결국 트럼프가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에 발표한 관세가 최종 세율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란이 몇 달은 지속될 거라는 얘기입니다. 이번 무역 위기가 차라리 법에서 촉발된 것이었으면 나았겠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