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에서 왼쪽 표의 7번째 줄에 한국이 있습니다. 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에 50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정말 무지막지한 관세율이죠. 하지만 트럼프는 ‘관대하게’ 한국이 매기는 관세의 절반만큼만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25퍼센트입니다. 마찬가지로 저 표에 따르면 EU는 미국에 39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합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그 절반인 20퍼센트를 EU에 부과하기로 했고요.
트럼프가 제시한 수치가 사실이라면 관세 폭탄도 수긍이 됩니다. 트럼프 말대로 미국 납세자들은 “갈취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수치가 이상합니다. 한국은 한미 FTA 이후 미국산 공산품에 대해서는 관세가 대부분 0퍼센트에 가깝습니다. 쌀, 과일 등 특정 품목에는 30~50퍼센트의 관세가 있지만, 말 그대로 특정 품목에만 부과하는 관세입니다. 무역액 기준으로 계산하면 관세는 대략 1~3퍼센트 정도입니다.
관세율의 출처와 계산법을 두고 소셜 미디어에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계산법은 이렇습니다. 2024년 기준 미국이 해당 국가와의 무역에서 본 적자액을 수입액으로 나눈 값이라는 겁니다. 지난해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 적자액은 655억 달러이고, 한국 제품 수입액은 1315억 달러였습니다. 저 산식대로 계산하면 49.8퍼센트가 나옵니다. 반올림하면 50퍼센트죠. 다른 나라들의 통계를 대입해도 거의 똑같이 나옵니다.
설마 미국 정부가 이런 단순한 산수에 기초해 전 세계를 상대로 전격적으로 관세를 매겼을까 싶은데, 사실이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논란이 확산하자 백악관 대변인은 X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상호 관세 산출 공식을 공유했습니다.
USTR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복잡한 계산식이 나오는데, 긴 해설처럼 달려 있습니다. 해설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각국의 수만 가지 관세, 규제, 세금, 기타 정책의 무역 적자 효과를 개별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복잡하지만, 상호 관세를 개념화하기 위해 양자 무역 적자를 0으로 만드는 관세율을 계산했다.”
그러니까 상대국의 관세와 규제, 기타 정책을 일일이 따져서 논리적인 상호 관세를 계산한 것이 아니라, 상대국과 미국의 무역 적자가 0이 되도록 하는 관세율이라는 얘기입니다.
차라리 법이었다면
엄청난 관세 폭격의 효과는 현재로서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전례가 없거든요. 비슷한 사례를 찾으려면 100년 전 대공황 때 미국이 시행했던 고관세 정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사실상 비교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먼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한국에 부과된 25퍼센트 관세도 버거운데, 우리 수출 기지가 많이 진출한 베트남에도 46퍼센트 관세가 부과됐거든요. 삼성, LG 등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자 중국에 있던 공장을 베트남으로 많이 옮겼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량의 절반을 베트남에서 만듭니다.
한국을 포함해 대미 수출 비중이 큰 나라는 경제가 휘청일 수 있는데요,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대응책은 갈릴 겁니다. 국내 여론에 밀려 보복 관세를 매기는 것은 결과적으로 더 안 좋은 선택이 되겠지만,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 사례를 봤을 때 정치적으로는 유리합니다. 선거를 앞둔 나라는 보복 관세로 맞서게 될 겁니다. 결국 전 세계 무역 전쟁이 격화하겠죠.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관세 폭격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의 측근조차 알 수 없죠. 시장과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합니다. 관세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디로 불똥이 튈지, 국가마다 어떤 합의안이 나올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를 꺼릴 겁니다. 트럼프가 바라는 리쇼어링도 당분간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자유무역주의 체제에서 관세는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관세 인상이 차라리 법으로 시행됐다면 당분간 시장이 출렁이겠지만, 결국 시장은 리스크를 받아들이고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의회 승인 없이 행정 명령만으로 관세를 수시로 바꿀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번 관세 조치 이후, 각국과 협상을 하게 될 겁니다. 거래에 나서는 국가도 있고, 국제기구에 제소하는 국가도 있고, 보복 관세로 맞서는 국가도 있겠죠. 결국 트럼프가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에 발표한 관세가 최종 세율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란이 몇 달은 지속될 거라는 얘기입니다. 이번 무역 위기가 차라리 법에서 촉발된 것이었으면 나았겠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