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전 세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미국 경제가 가장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것이 참 공교롭긴 하지만 말이죠. 단, 25퍼센트라는 숫자가 끝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미국의 통상 압박은 계속될 겁니다. 무엇 하나 논리에 맞는 것 없는 ‘상호 관세’는 미국이 앞으로 계속해 나갈 괴롭힘(bullying)의 시작일 뿐입니다.
실제로 모두가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미국이 결국 수입 소고기 연령 제한을 걸고넘어졌고, 미국산 유전자 변형(LMO) 감자도 우리 시장에 곧 풀릴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비관세 장벽’까지 무너뜨리겠다는 얘깁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매년 발간하는 국별무역장벽보고서(NTE 보고서, 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 on Foreign Trade Barriers) 2024년판에 해당 내용이 꽤 앞부분에 자리 잡고 있거든요.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통상 전쟁하기 시작하려 할 때부터 대책을 마련했어야 하는 일이었단 얘깁니다. 다만, 정치권의 상황이 어지러웠던 터라 단단히 준비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결국, 제대로 대응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문제가
가시화했습니다. 지난 3월 31일, NTE 보고서 2025년판이
발간되었습니다. 우려대로 수입 소고기 30개월 미만 월령 제한 내용이 실렸죠. 또, 9년간 안전성 심사를 이어 오던 미국산 LMO 감자도 갑자기 농촌진흥청을 마지막으로 환경 위해성 협의 심사를 마쳤다는
소식이 전해졌고요. 이제 식약처가 인체 유해 여부만 판정하고 나면 미국산 LMO 감자가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우리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부터 나옵니다. ‘광우병 파동’의 악몽을 떠올리는 관계자도 있을 것이고요. LMO 감자가 미국산 소고기 문제와 묶여서 소개되는 통에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우리 몸에 얼마나 나쁜지에 관한 이야기도 새삼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건강권 문제로 보면 본격적인 논의에 이르기도 전에 대화가 중단됩니다.
건강 문제라는 프레임
먼저 광우병 소고기 문제를 살펴보죠. 광우병에 노출되면 10년 이상의 잠복기를 거치며 치사율은 100퍼센트에 달하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은 맞습니다. 장벽을 세워 외국으로부터 해당 병에 걸린 소나 사람 등을 아예 차단해 버리면 가장 안전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그 어떤 유기물도 교역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미국의 검역 시스템을 믿을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미국의 땅과 공기가 특이해서 그곳에서만 광우병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한국에 병에 걸린 소를 수출하겠다고 마음먹을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시스템이 미비하거나 사람의 실수가 겹쳐 불운이 되면 사고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스템을 믿는 사람에게 광우병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반면, 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LMO 감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우리 몸에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 관해 적어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연구는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십 년에 걸쳐 두 세대 이상의 다수를 상대로 비교 연구를 해야 딱 부러지는 결론을 낼 수 있을 텐데, 아직 우리는 그만한 시간 동안 LMO 농산물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다만, 많은 전문가가 음식물의 형태로 씹어 소화하는 과정에서 유전자가 변형되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려운 과학이 아니라 상식의 영역입니다. 소화 과정은 DNA가 아니라 영양소를 흡수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두부나 카놀라유를 먹고 있다면 유전자 조작 콩과 유채씨를 피해 가기 힘듭니다.
살아 있는 것을 수입한다는 것
그렇다고 이것이 단순히 걱정이나 믿음 같은 감정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소는 물론이고 감자도 살아 있습니다. LMO(Living Modified Organisms)라는 용어 자체가 ‘살아 있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대신 쓰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아있다는 것은 번식과 생식을 할 수 있다는 뜻이고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먹거리를 생명으로 생각해 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자는 살아 있습니다. 땅에 묻으면 뿌리를 내리죠. 카놀라유의 원료가 되는 유전자 조작 유채 씨앗의 사례를 보면 생명의 힘이 얼마나 센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유전자 조작 유채 씨앗을 들여와 카놀라유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씨앗을 땅에 심을 수는 없습니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남, 충남, 대전 등 전국 곳곳에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LMO 유채가 대량으로 서식한 일이 있습니다. 2017년과 2018년, 당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 ‘괴물 유채’를 처리하기 위해 제초제를 엄청나게 뿌렸지만, 주변 모든 식물의 씨만 말랐을 뿐 유채만은 멀쩡했다고 하니까요. 결국, 유채를 하나하나 뿌리째 뽑아 소각해야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