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MO 감자는 죄가 없다

bkjn review

먹을거리를 수출하고 수입하는 문제는 살아 있는 것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문제입니다.

LMO 감자는 죄가 없다

2025년 4월 7일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전 세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미국 경제가 가장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것이 참 공교롭긴 하지만 말이죠. 단, 25퍼센트라는 숫자가 끝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미국의 통상 압박은 계속될 겁니다. 무엇 하나 논리에 맞는 것 없는 ‘상호 관세’는 미국이 앞으로 계속해 나갈 괴롭힘(bullying)의 시작일 뿐입니다.

실제로 모두가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미국이 결국 수입 소고기 연령 제한을 걸고넘어졌고, 미국산 유전자 변형(LMO) 감자도 우리 시장에 곧 풀릴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비관세 장벽’까지 무너뜨리겠다는 얘깁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매년 발간하는 국별무역장벽보고서(NTE 보고서, 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 on Foreign Trade Barriers) 2024년판에 해당 내용이 꽤 앞부분에 자리 잡고 있거든요.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통상 전쟁하기 시작하려 할 때부터 대책을 마련했어야 하는 일이었단 얘깁니다. 다만, 정치권의 상황이 어지러웠던 터라 단단히 준비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결국, 제대로 대응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문제가 가시화했습니다. 지난 3월 31일, NTE 보고서 2025년판이 발간되었습니다. 우려대로 수입 소고기 30개월 미만 월령 제한 내용이 실렸죠. 또, 9년간 안전성 심사를 이어 오던 미국산 LMO 감자도 갑자기 농촌진흥청을 마지막으로 환경 위해성 협의 심사를 마쳤다는 소식이 전해졌고요. 이제 식약처가 인체 유해 여부만 판정하고 나면 미국산 LMO 감자가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우리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부터 나옵니다. ‘광우병 파동’의 악몽을 떠올리는 관계자도 있을 것이고요. LMO 감자가 미국산 소고기 문제와 묶여서 소개되는 통에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우리 몸에 얼마나 나쁜지에 관한 이야기도 새삼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건강권 문제로 보면 본격적인 논의에 이르기도 전에 대화가 중단됩니다.

건강 문제라는 프레임

먼저 광우병 소고기 문제를 살펴보죠. 광우병에 노출되면 10년 이상의 잠복기를 거치며 치사율은 100퍼센트에 달하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은 맞습니다. 장벽을 세워 외국으로부터 해당 병에 걸린 소나 사람 등을 아예 차단해 버리면 가장 안전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그 어떤 유기물도 교역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미국의 검역 시스템을 믿을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미국의 땅과 공기가 특이해서 그곳에서만 광우병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한국에 병에 걸린 소를 수출하겠다고 마음먹을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시스템이 미비하거나 사람의 실수가 겹쳐 불운이 되면 사고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스템을 믿는 사람에게 광우병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반면, 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LMO 감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우리 몸에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 관해 적어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연구는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십 년에 걸쳐 두 세대 이상의 다수를 상대로 비교 연구를 해야 딱 부러지는 결론을 낼 수 있을 텐데, 아직 우리는 그만한 시간 동안 LMO 농산물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다만, 많은 전문가가 음식물의 형태로 씹어 소화하는 과정에서 유전자가 변형되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려운 과학이 아니라 상식의 영역입니다. 소화 과정은 DNA가 아니라 영양소를 흡수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두부나 카놀라유를 먹고 있다면 유전자 조작 콩과 유채씨를 피해 가기 힘듭니다.

살아 있는 것을 수입한다는 것

그렇다고 이것이 단순히 걱정이나 믿음 같은 감정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소는 물론이고 감자도 살아 있습니다. LMO(Living Modified Organisms)라는 용어 자체가 ‘살아 있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대신 쓰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아있다는 것은 번식과 생식을 할 수 있다는 뜻이고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먹거리를 생명으로 생각해 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자는 살아 있습니다. 땅에 묻으면 뿌리를 내리죠. 카놀라유의 원료가 되는 유전자 조작 유채 씨앗의 사례를 보면 생명의 힘이 얼마나 센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유전자 조작 유채 씨앗을 들여와 카놀라유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씨앗을 땅에 심을 수는 없습니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남, 충남, 대전 등 전국 곳곳에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LMO 유채가 대량으로 서식한 일이 있습니다. 2017년과 2018년, 당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 ‘괴물 유채’를 처리하기 위해 제초제를 엄청나게 뿌렸지만, 주변 모든 식물의 씨만 말랐을 뿐 유채만은 멀쩡했다고 하니까요. 결국, 유채를 하나하나 뿌리째 뽑아 소각해야만 했습니다.
유채꽃은 아름다웠지만, 제거 작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출처: 안동MBC NEWS
유채 씨앗을 퍼뜨린 범인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범인이 없을지도 모르고요. 아름답게 피어나는 유채꽃을 보면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그냥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2010년 일본 미에현 국도변에 유채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카놀라유 공장으로 유전자 조작 유채 씨앗을 나르는 길이었죠. 원래 번식은 할 수 없도록 전처리 과정을 거친 씨앗만을 수입하게 되어 있었지만, 처리가 미흡했던 씨앗이 트럭에서 흘러 싹을 틔웠습니다. 그리고 그 유채꽃의 꽃가루는 주변을 날다 개갓겨자와 교잡했죠. 그러니까, 조작된 유전자가 다른 식물로 옮겨간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교잡종도 LMO 유채 씨앗처럼 제초제에 몹시 강한 성질을 갖고 있고요.

‘점핑 DNA’ 현상입니다. 바이러스처럼 DNA가 공기 중에 퍼져 전염될 수는 없지만, 바람을 타고 DNA는 어딘가로 옮겨갑니다. 바이러스를 통해 DNA가 옮겨갈 수도 있고요. 인간은 생명력이 강한 유자 씨앗을 원하지만, 제초제로도 없앨 수 없는 엉겅퀴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LMO 농산물은 인류의 계산 밖의 사건을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다는 얘깁니다.

여기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전적 특질을 가진 생물이 지역 생태계에 편입되면서 생태계가 유지하고 있던 균형이 빠르게 깨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 식물이 토착종을 밀어내고 숲을 장악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런 일은 생태계에서 자연적으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구의 환경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으며 멸종도, 새로운 종의 탄생도 늘 있죠. LMO 식품에 관한 논의가 지구 걱정이 아니라 인간 걱정인 이유입니다. 지구는 행성이 소멸할 때까지 지구일 것이며 새로운 환경 속에서 어떤 종을 멸종하고 어떤 종은 득세할 겁니다. 다만, 너무 빠르게 생태계가 변화하면 인간은 그에 대처할 능력이 없습니다.

인류의 무능력

그래서 인류는 대비책을 마련해 뒀습니다. ‘카르타헤나 의정서(Cartagena Protocol on Biosafety)’ 같은 것 말입니다. LMO 생명체가 국경을 넘을 때, LMO 생명체를 인간이 이용할 때 환경이나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위해성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생각보다 무능합니다. 우리나라가 곡물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 등입니다. 그런데 이 국가들은 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LMO 작물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나라들이 정작 빠져 있는, 허울뿐인 의정서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LMO 수출국 입장에서는 의정서에 가입해 봤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일만 늘어납니다. 강제 사항도 아닌데 괜히 일을 만들 필요가 없지요.

규제하고 조심해도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23년 시중에 풀린 주키니 호박이 갑자기 회수된 일이 있었습니다. 일반 애호박에 비해 단단하고 값이 싸 찌개나 짜장면 등에 자주 쓰이는 품종입니다. 그런데 전국 농가에서 재배해 왔던 이 호박이 허가되지 않은 LMO 종자로 재배되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밝혀졌습니다. 종자 공급 회사의 잘못이었습니다. 무허가 수입 LMO 종자를 판매해 왔던 겁니다. 농약을 열 번 치던 것을 두 번으로 줄인 종자라 인기를 얻었습니다.

한 해 농사를 계획하고 밭을 갈아 모종을 키우던 농부들은 기약 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몇 푼 되지 않는 보상금을 손에 쥐었습니다. LMO 작물을 제대로 검역하지 못한 정부와 잇속을 챙긴 업체에 책임이 있지만 피해를 당한 것은 농가와 소비자입니다.

미국산 LMO 감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아마 감자튀김의 가격이 저렴해질 겁니다. 수입 감자는 대부분 감자튀김 등의 가공식품 제조 원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여파로 우리 농가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감자 가격이 전체적으로 하락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 농민들이 LMO 감자를, 소고기 주입 제한 완화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까요. 소비자로서 바라보면 나쁠 것은 없습니다. 물가를 내리는 조치가 될 테니까요. 더 맛있는 음식을 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으면 소비자에게는 이득입니다. 우리가 바나나를 양껏 즐길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인류의 관점에서 보면 생각해 볼 지점이 달라집니다. 우리에게 과연 LMO 감자가 필요한지의 문제를 따져 보게 됩니다. 감자가 부족해서 기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출이 부족해서 LMO 감자를 만들 뿐이죠. 언젠가부터 인간의 신품종 개발은 농업을 산업으로 경영하기에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지역의 수요나 생태계는 고려 대상에서 뒷순위로 밀립니다. 농업은 생태계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생산 활동인데 말이죠.

먹을거리를 수출하고 수입하는 문제는 살아 있는 것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문제입니다. 관점부터 바뀌어야 문제를 인식하고 논의다운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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