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피파이는 AI에 진심입니다. 2024년에는 무려 6개의 스타트업을
인수했죠. 인재 영입이 목적이었습니다. 오픈AI나 구글이 미래를 위한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면, 쇼피파이는 AI 인재들을 영입해 현재의 쇼핑 경험을 바꾸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AI를 사업 모델에 확실하게 통합하고 있는 이 기업은 또다시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기로 합니다. 기술의 미래가 아니라 고용의 미래를 말이죠.
지난주 쇼피파이의 토비 뤼케 CEO의 선언이 소소한 화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추가 인원, 자원을 요청하기 전 AI로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는 이유를 명확히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한 겁니다. 즉, AI가 할 수 없는 직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사람을 뽑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할 수밖에 없죠. AI가 할 수 있는 직무는 무엇인지 말이죠. 최근 발표된 몇 건의 연구와 보고서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HBR
인류가 생성형 AI라는 도구를 손에 넣은 지 2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도구의 쓸모를 어디에서 찾았을까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최근 ‘생성형 AI 사용 현황’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24년에 이어 1년 만의 업데이트입니다. 1년 사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요, 올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용 방법은 ‘치유/동반자’였습니다. 작년도 2위에서 한 단계 순위가 상승한 것입니다. 2위에는 전년도에는 없던 답변으로 ‘내 삶 정리하기’가 올랐네요. 4위에는 ‘학습 보조’가 보이고요.
꽤 많은 사람들이 생성형 AI를 나만의 ‘멘토’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든 조언을 구하고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 학습에 도움을 받고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존재 말입니다. 예전에는 가족이나 선생님이 담당했던 역할입니다. 인간관계가 변화하면서 비어 있던 자리를 AI가 채우고 있습니다.
일의 도구로서는 어떨까요? 2024년 1위를 차지했던 ‘아이디어 생성’은 올해 6위까지 순위가 떨어졌습니다. 대신 ‘(전문가를 위한) 코드 작성’은 급부상해 5위에 올랐네요. ‘코드 개선’도 9위를 차지했습니다. 확실히 프로그래밍, 개발 분야에서 생성형 AI 도입이 빠릅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AI를 업무에 도입하는 것이 ‘부정적이며 사기를 꺾는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회사나 고객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AI 사용을 강요하지만, 정작 작업자는 일의 보람을 빼앗긴 채 AI에 끌려다니기만 한다는 겁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한 개발자는 회사로부터 AI를 사용해 작업할 것을 지시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AI가 생성한 코드는 품질이 낮았고, 협업하기에 불편했습니다. 그럼에도 속도를 올리기 위해 AI를 계속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개발자들은 의욕을 잃었습니다. 회사는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Stanford
도구의 주인은 인간입니다. 목수는 작업을 하면서 끌을 쓸지, 정을 쓸지 스스로 결정합니다. 끌이나 정이 목수를 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AI라는 새로운 도구가 도입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신기술은 종종 기회가 되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한 회사 입장에서는 신기술을 사용하도록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쇼피파이처럼 말이죠.
실제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인간 중심 인공지능연구소(HAI)가 매년 내놓은 〈AI 인덱스 보고서〉
2025년 판에는 장밋빛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내용들이 소개되었습니다. 보고서는 AI의 성능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일부 분야에서는 인간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이기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2024년 미국의 AI 부문에 대한 민간 투자는 1091억 달러였습니다. 참고로 중국은 93억, 영국은 45억 달러 규모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미국과 차이가 엄청나죠.
이미 일부 분야에서는 AI의 실질적 영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 및 과학 연구 분야를 꼽았는데, 노벨상 수상에 빛나는 ‘알파폴드3’ 등이 언급되었죠. 또 이미 GPT-4 모델은 의사보다 질병 진단의 정확도가 높습니다. 최근의 ‘지브리 열풍’으로 대표되는 AI 기반의 콘텐츠 생성 능력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요.
이렇다 보니 AI는 이제 우리 사회 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18개월 전과 비교해서 GPT-3.5 수준의 AI 모델 사용 비용은 280배로 감소했습니다.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민간 기업의 87퍼센트가 이미 AI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들은 그 효과를 체감하고 있고요.
먼저, AI를 높은 수준으로 통합한 조직은 유의미한 생산성 향상 가능성이 72퍼센트에 달한다는 루마니아의 연구 결과가 소개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AI 자동화로 인지 부하(cognitive load)가 45퍼센트 감소했고 비영어권 직원의 언어 격차를 84퍼센트 해소했다는 결과도 나왔죠.
이런 결과가 쌓이면 쌓일수록 기업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생성형 AI를 도입하고자 할 겁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신중하지 못하다면, 표면적인 효율이 올라갈 수 있어도 궁극적인 목표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앞서 살펴봤던 한 스타트업의 개발자의 증언처럼 말이죠. 높은 비용을 들여 신기술을 도입하는 목적은 단기간의 소소한 영업이익 증가가 아닐 겁니다. 압도적인 성장과 비범한 혁신을 가능하게 하려면 기업이 새로운 도구의 상세한 기능과 직원들의 역량, 두 가지 모두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AI 사용의 주도권을 직원이 쥘 수 있습니다.
Microsoft
AI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인류에게 닥칠 또 다른 위협은 ‘퇴화’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기억’이라는 활동을 스마트폰에 크게 의지하고 있죠. 무엇이든 기록하고 불러낼 수 있게 되면서 기억력의 중요성은 예전보다는 낮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생성형 AI는 어떨까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재미있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실제 사례 936건을 수집해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지식 노동자의 비판적 사고와 인지적 노력에 관해 살펴본 겁니다.
생성형 AI를 신뢰할수록 비판적 사고는 감소했습니다. 자기 효능감은 비판적 사고와 비례 관계였고요. 즉, 생성형 AI에 의존할수록 자기 효능감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 업무’를 할 때에는 굳이 의심하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업무는 누가 했는지도 중요치 않죠. 매뉴얼대로 하면 되는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입니다. 반면, 중요한 프로젝트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큰 입찰을 따 내야 할 때 등에는 작업 결과물을 또 살펴보고 살펴보죠. 어디 고칠만한 곳, 바꿀 곳은 없는지를 살피는 겁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려 하고 좋은 결과물에는 ‘내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하죠.
이 논문은 생성형 AI는 지식 노동자의 업무 효율성을 향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비판적인 사고를 저해하기도 한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생성형 AI에 생각하는 과정을 맡겨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AI 도구를 ‘검토 및 조율 파트너’로 인식하게끔 하자는 제언을 하는데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파트너’는 존중하고 신뢰해야 하는 대상이잖아요. 저는 역시, AI를 ‘도구’로 인식해야 비판적 사고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AI는 코딩 등의 일부 작업을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적 지원부터 언어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까지,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죠. 그러니까, AI는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지식 노동자가 하는 일이라면 말이죠. 관건은 ‘결과의 품질’입니다. 그건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의심하고 평가할 수 있는 권리는 아직 인간만이 갖고 있으니까요. 이 권리까지 AI에 넘긴다면, 도구와 사용자의 권력관계가 뒤집힐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