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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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대학을 향해 ‘개혁’을 요구합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경고

2025년 4월 21일

1961년 1월 17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퇴임사가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1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연설이었지만, 전쟁 영웅의 고별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육군 참모총장으로 활약했고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컬럼비아대학교 총장을 지냈습니다. 한국 전쟁 기간에는 초대 유럽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부임했고요. 그리고 1953년, 미국 제34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전장과 대학, 행정부에서 두루 활약하며 냉전 시대의 시작을 맞이한 아이젠하워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새로운 권력 구조의 출현을 넓은 시야로 확인한 인물입니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만든 인물이죠. 그런데 21세기, 2025년에 새삼 그의 퇴임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20세기의 경고가 다시 현실이 되어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권력을 가질 때

아이젠하워는 기술이 정치가 되고 과학이 전쟁이 되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2차 대전이야말로 기술이 승패를 가른 전쟁이었으니까요.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기술이 곧 힘인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퇴임 연설에서 아이젠하워는 ‘군산복합체’에 관한 경고를 남깁니다. 의외였죠. 냉전 시대, 평화를 담보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막대한 국방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파괴적인 무기를 더 많이 보유해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죠.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그 모순의 시대에 군수 산업이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까지 꿰뚫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군산복합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부당한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잘못 배치된 권력의 재앙적인 부상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냉전은 끝났지만, 모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젠하워의 경고는 여전히 현실입니다. 특히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도지)는 테크 엘리트가 행정부의 권력을 잠식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여 줬죠. 법원의 제동에 잠시 가로막혔지만, 여전히 정부효율부의 행보는 거침이 없습니다. 현재는 71억 원에 미국 영주권을 판매하는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고 하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미국의 새로운 미사일 방어망인 ‘골든돔’ 사업을 수주하게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요.

학문과 전쟁, 정부

퇴임사에 담긴 경고 중에는 대학을 향한 것도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자유로운 아이디어와 과학적 발견의 원천이었던 자유 대학도 연구 수행에 있어 혁명을 경험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정부 계약이 지적 호기심을 사실상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대학과 정부를 돈으로 묶었습니다. 군대와 대학, 행정부를 두루 거친 아이젠하워는 연방 정부의 오용, 프로젝트 발주, 돈의 힘으로 학자들이 ‘지배당할’ 가능성을 이야기했죠. 하지만 이 경고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돈의 힘’을 휘두르겠다고 마음먹은 정부가 지금까지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타났습니다.

그들만의 교정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0퍼센트를 넘는 수준입니다. 반면, 미국은 60퍼센트대이며 2020년대 들어서는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대학을 향한 시선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명문 대학을 보는 시선이 그렇습니다.

미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인종 차별적이라는 생각, 성별과 ‘성 정체성’은 구분된다는 생각 등은 논쟁적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매우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전혀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각자의 삶과 입장에 따라 문제를 보는 시각도, 지지하는 해결책도 다를 겁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명문 대학들이 이런 문제에 관해 아주 ‘편협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대학이 진보적인 주장을 마치 정답인 것처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겁니다. 서민 가정에서는 감당할 수도 없을 비싼 등록금을 받는 대학에서 환경 문제가 어떻고, 이민 문제가 어떻고 이야기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특히 비판적입니다. 대학을 신뢰한다는 비율이 20퍼센트에 그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이 사회 전체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비난도 나옵니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비현실적인 이상론만 이야기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강남 좌파’를 향한 비판과 맥락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 있게 대학을 향해 칼을 빼 들 수 있었습니다.

차별하지 말라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주요 대학을 향해 ‘개혁’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표면상의 이유는 ‘반유대주의’입니다. 학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 종식 요구 시위에 강경 대응하라는 겁니다. 대학이 이 ‘반유대주의 세력’을 방관해 유대계 학생들의 안전이 침해받고 있다고요.

하지만 이건 편지를 쓰기 위한 일종의 ‘구실’ 같은 것이었습니다. 대학은 편향된 이념에 따라 교수진을 채용하지는 않았는지, 어떤 학생을 입학시켰는지를 정부로부터 조사받게 됩니다.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프로그램을 즉시 중단하고 반유대주의 관련 외부 감사도 받아야 하죠.

물론 정부가 대학에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대학의 돈줄을 끊을 수 있습니다. 막대한 ‘연구 보조금’ 말입니다. 콜롬비아, 하버드, 프린스턴, 펜실베이니아, 존스 홉킨스, 브라운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대학들이 연방 정부로부터의 지원금이 일시 중단된 상황입니다. 정부의 말을 들으면 돈이 풀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돈줄이 끊기겠죠.

높은 성의 사람들

열성적인 공화당원의 입장에서 상황을 좀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대학은, 특히나 아이비리그의 소위 ‘명문 대학’은 진보적 이념이 마치 정의인 것처럼 떠들었습니다. 보수적 가치는 폄하하고 일반 서민들은 이해하기 힘든 변화를 강요했죠.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는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 수영팀 출전을 허용했습니다. 존스홉킨스대학교는 USAID와 함께 미국 문제보다 국경 밖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빴고요. 콜롬비아와 하버드는 학생들이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종교를 욕보이는데 그저 방관했습니다.

그렇게 괘씸한 대학들이 매년 몇억 달러, 많게는 몇십억 달러를 정부로부터 받아 갑니다. 한때는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국익에 보탬이라도 되었는데, 요즘엔 외국 학생들을 받아 실리콘밸리로 취업시키는 장사에만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국내 학생을 받을 때도 소수자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라는 명분으로 ‘평균적인 미국인’ 학생들을 역차별합니다. 대체 미국 대학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죠.

일종의 정치권력으로 작동해 온 대학을 향해 개혁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끊어버리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은 그래서 ‘정상화’입니다. 대학은 지금까지 멋대로 정치적 권력을 휘둘러 왔습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품격의 가격

대학은 교육 기관인 동시에 연구 기관입니다. 학문한다는 것은 현재를 의심해 미래를 제시하는 과정이죠. 그러니 진보적 가치가 학내에서 힘을 얻기 쉽습니다. 또, 문화적 배경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주거지가 분리된 사회와는 달리 캠퍼스 안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섞여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습니다.

문제는 대학이 현실과의 소통에 게을렀다는 점입니다. 대학의 문은 넓게 열렸지만, 엘리트 집단이라는 얕은 계급 의식은 그대로였습니다. 게다가 대학의 품격과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적으로 정부에 깊이 의존했죠. 연구 지원금뿐만이 아닙니다. 각종 장학금, 학자금 대출 등까지 감안하면 대학 운영 예산의 4분의 1 이상을 연방 정부에서 책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변의 진리가 있습니다. 돈으로 묶인 사이에 품격을 유지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아이젠하워는 이 사실을 미리 꿰뚫어 봤습니다.

다수의 대학이 일단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그래도 곳간이 넉넉한 편인 하버드는 정면 대응에 나섰습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예정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물론, 60명의 전현직 총장이 나서 하버드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기부금이 들어오고 있죠. 여기에 하버드는 채권도 발행했습니다. 7억 5000만 달러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연방 정부가 동결한 자금은 90억 달러 수준입니다. 게다가 기부금은 대학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돈이고요. 기부자가 특정 연구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처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이 투자에 묶여 있어 바로 현금화하기 어렵습니다. 트럼프는 카드가 많습니다. 대학의 면세 지위를 박탈할 수도 있고 외국인 유학생을 받지 못하도록 비자 발급을 중단할 수도 있죠. 하버드는 힘든 싸움을 시작한 겁니다.

분명 트럼프는 선을 넘었습니다. 종교에 자유가 있는 것처럼, 학문에도 자유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싸우고 투쟁해 쟁취한 귀중한 자유입니다. 자신의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캠퍼스의 입을 틀어막는 행위는 무력을 사용해 시위를 진압하는 것만큼이나 노골적인 사상 통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학도 이번 전쟁을 통해 약점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현실과 유리된 높은 성에 갇혀 있었던 엘리트주의 탓에 민심을 잃은 지 오래고,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며 안일한 운영을 해왔죠. 트럼프의 임기는 끝이 정해져 있지만, 행정부가 체면을 차리며 캠퍼스를 존중하는 시대는 먼저 끝났습니다. 성역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경고처럼, 대학이 ‘지배당할’ 위기입니다. 대학은 이제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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