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기

bkjn review

미국의 육류 판매량은 2024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다시, 고기

2025년 4월 23일

실험실에서 고기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꽤 익숙하실 겁니다. 배양육 얘깁니다. 다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고, 만드는 과정도 간단치 않습니다. 특히 원하는 크기만큼 배양육을 키우는 과정이 까다롭죠. 크기가 커질수록 영양소를 중심부까지 전달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엔 구석구석 혈관이 뻗어 있지만, 배양육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최근 도쿄에서 들려온 새로운 배양육 소식은 바로 이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 도쿄대 연구팀이 두께 2센티미터, 길이 7센티미터, 너비 4센티미터의 단단한 배양육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 겁니다. 이 정도면 식감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성을 갖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고기의 종류는 닭고기라고 합니다.

이 속도라면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마트에서 배양육으로 만든 냉동 너깃 상품 정도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의 식탁이 곧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상상력이 피어오르죠. 그런데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사실, 배양육 산업은 지금 암초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정치라는, 꽤 커다란 암초입니다.

두툼한 스테이크의 맛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는 육류 판매량이 감소해 왔습니다. 육식이 기후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일반화했기 때문입니다. 2021년에는 2020년 대비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약 5킬로그램이나 줄어들어 119킬로그램까지 떨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그래프가 반등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육류 판매량은 2024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비싼 가격을 내고서라도 대체육 버거를 선택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육식이 건강한 식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에는 이른바 ‘구석기 식단’을 선보이는 인플루언서가 넘쳐나죠. 탄수화물을 줄이고 육류를 중심으로 한 단백질 위주의 메뉴로 건강을 챙기겠다는 겁니다.
카니보어 다이어트(Carnivore Diet)는 식물성 섭취를 금하고 되도록이면 ‘적색육(Red Meat)’ 섭취를 권합니다. 출처: 유튜브
건강과 식단에 관한 조언은 유행처럼 오고 갑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의견이 정반대의 의견에 밀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급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치적인 영향이 있습니다.

한때 미국 정부는 고기를 덜 먹는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는 학교 급식에서 육류의 양을 제한하는 법이 통과되었죠. 육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비욘드 미트’ 등 대체육 스타트업도 속속 등장합니다. ‘비건(Vegan)’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할 신념이 되었고요.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쉽게 동조하지 못하는 미국인도 적지 않았습니다. 고기를 먹는다는 행위는 한때 행복한 가정과 풍요로운 경제의 상징이었으니까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 경제는 호황기로 접어듭니다. 이때 부상한 신흥 중산층이 꿈꿨던 모습 중 하나가 바로 교외에 집을 마련하고 주말에는 뒤뜰에서 바비큐를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수요에 맞춰 재가 덜 날리는 형태의 바비큐 그릴도 등장하고요. 가장 미국적인 상표인 맥도널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맛 좋은 버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승리, 미국의 승리였습니다. 미국 문화는 눅진한 소고기 패티 안에 녹아들어 빠르고 간편한 패스트푸드 체인점들과 함께 전 세계로 뻗어나갔죠. 그래서 갑자기 육식이 환경에 대한 공격이며 건강을 해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꽤 많은 미국인이 당황했습니다.

대안적 건강의 시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러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입니다. 미덥지 않은 백신을 맞지 않는 편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죠. 살균하지 않은 우유가 건강에 좋다는, 홍역에 걸리면 대구의 간유를 먹이자는 주장을 합니다. 살을 빼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설파하고, 로드킬 당한 야생 동물을 집으로 가져가 냉동고에 보관해 입길에 오르기도 했죠. 언뜻 현대 의학 상식과 대치되는 것 같지만, 50년 전에는 이런 주장과 행동이 상식이며 지혜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쌓아온 지혜와 믿음이 ‘비과학’이라며 비난받았던 사람들 처지에서 케네디 주니어 장관은 믿을 만한 인물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있다면, 케네디 주니어 장관에게는 ‘MAHA(Make America Healthy Again)’가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미국에서는 건강이 정치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계기가 된 것은 팬데믹 당시부터입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느냐, 마스크를 쓰느냐의 문제가 정치의 문제가 되었거든요. 시민의 자유가 공공의 보건보다 우선하는지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무엇이 상식이고 상식이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믿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관점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몰상식으로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들이었죠. 반대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로서는 팬데믹이라는 상황 자체가 음모였습니다. 백신에 대한 믿음은 거대 자본이 만들어낸 판타지이며, 바이러스 자체가 인종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소문도 돌았죠. 스티븐 킹의 소설 《홀리》에는 마스크로 내 편과 네 편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사회 분위기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육류에 대한 애정이 부정된 것은 한 보고서가 발표되면서였습니다. 2006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내놓은 〈가축의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에 축산업이 모든 운송업보다 지구 온난화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 실린 겁니다.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전체 배출량의 18퍼센트에 이른다는 것이 FAO의 주장이었습니다. 어제까지 개인의 취향이었던 육식이 마스크처럼 순식간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어버린 겁니다. 문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농장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물론, 이 보고서에 축산업계는 반발합니다. 18퍼센트라는 숫자에는 가축에게 먹일 사료 재배와 가공, 운송, 유통, 판매, 폐기에 이르는 축산업 전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데, 비교 대상이 된 운송업의 경우 운송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태워 생기는 탄소 배출량만 계산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데이터의 힘은 강했습니다. 축산업을 개선해야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겁니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월스트리트도 ‘비욘드 미트’를 비롯한 대체육 스타트업들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양육에 관한 연구에 속도가 붙었고, 국가별로 축산업이 발생시키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나서기도 했죠.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정말 육식의 패러다임이 뒤집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정치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에 서툴렀습니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축산업과 같은 1차 산업이 국가의 근간이라며 찬양했던 과거가 없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농부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축산업의 규모를 줄이고 세금을 매겨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은 대규모 농민 시위로 이어졌고, 그 결과 2023년 11월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극우 정당인 자유당(PVV)이 승리합니다. 프랑스에서도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반발한 농민들이 파리로 트랙터를 몰고 진격하는 시위를 벌여 파리가 봉쇄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죠.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온 미국도 축산업의 탄소 저감 정책은 후진 기어를 넣게 되었고요.

대체육 스타트업들도 기세가 꺾였습니다. 2019년 비욘드 미트가 기업 공개에 나섰을 때 주가는 단 하루 만에 163퍼센트 치솟았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에 달했죠. 하지만 현재 비욘드 미트의 시가 총액은 약 2억 5800만 달러입니다. 네덜란드의 식물성 유제품 회사인 윌리크로프트(Willicroft)는 결국 폐업했고, 네슬레의 지원을 받았던 대체 단백질 스타트업 선다이얼 푸드(Sundial Foods)도 한 유럽 식품 회사에 매각되었습니다.

내가 고른 메뉴

경각심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공포 소구(fear appeal)’라고 하죠. 하지만 메시지가 너무 강하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고기에 관한 담론도 비슷한 오류를 범했을지 모릅니다. 누구든 삶의 방식을 부정당하면 반발심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먹고 사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은 생존과 직결됩니다. 정치는 이런 마음을 이용해 갈등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식사 메뉴를 고르는 일은 즐겁습니다. 내 입에 무엇을 넣을지, 어떤 맛을 즐길지 상상하고 결정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종종 남이 선택한 메뉴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정치적 입장 때문에, 혹은 마케팅 때문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혼동하게 되는 겁니다. 식문화는 선동되기 쉽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담론이 개인 단위에서 숙고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 결과, 정치적인 변화와 함께 다시 고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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