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미르 폭격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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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총리와 군부는 관리되는 위기를 원합니다.

카슈미르 폭격 이후

2025년 5월 8일

5월 7일 인도가 파키스탄에 미사일을 날렸습니다. 어린이를 포함해 민간인 8명이 사망했습니다. 군사 충돌의 발단은 지난달 22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테러였습니다. 무장 괴한들이 관광객에게 총기를 난사해 26명이 죽었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이 비(非)무슬림 인도 남성이었습니다. 인도는 힌두교 국가이고,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죠.

총격 테러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은 인도 언론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총격범이) 아버지에게 이슬람 구절을 낭송하라고 했고, 그러지 못하자 머리와 귀, 등에 총을 쐈다.” 누가 봐도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자행한 테러였습니다. 실제로 사건 직후 파키스탄 무장 단체 ‘저항 전선’이 테러 배후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가 이런 테러 조직을 은밀하게 지원하고 있다고 보고 있죠.

자기 나라 땅에 적국 미사일이 떨어졌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도 즉각 보복에 나섰습니다. 인도 정부는 테러리스트 관련 시설만 타격했다고 주장하지만,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으니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겁니다. 파키스탄은 인도를 향해 박격포를 날렸고, 인도인 10명이 사망했습니다. 파키스탄군 대변인은 인도 전투기 5기를 격추했다고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무기 보유국입니다. 게다가 국제 사회의 핵무기 통제 체제인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도 않았습니다. 철천지원수인 두 나라가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총격 테러 이후 인도가 물 부족 국가인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인더스강 지류 강물을 차단하자 파키스탄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죠.

또 카슈미르

총격 테러, 인도의 미사일 공격, 파키스탄의 박격포 반격이 일어난 곳은 모두 카슈미르입니다. 크기가 한반도만 한 지역인데, 이 땅을 세 나라가 분할 점령하고 있습니다. 인도, 파키스탄, 중국입니다. 영토 분쟁 지역이라 국경선이 없고 통제선(Line of Control, LoC)만 있습니다. 사실상 국경선 역할을 하지만 공식 국경은 아니다 보니, 일부 지도에선 실선 대신 점선으로 표시됩니다. 이 통제선 인근에서 크고 작은 교전이 자주 일어나죠.

카슈미르가 쪼개진 건 영국 탓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은 영국령 인도 제국에 속했던 인도와 파키스탄을 분리 독립시킵니다.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종교 갈등이 심하고 단일 국가 협상도 계속 결렬되니까, 붙여 놓고 혼란만 일으키느니 차라리 떨어트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러고 나서 영국은 두 지역 사이에 끼어 있던 소규모 군주국 카슈미르에는 독립을 하든, 인도나 파키스탄에 편입되든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당시 카슈미르 주민의 80퍼센트가 무슬림이었는데, 통치자는 힌두교도였습니다. 통치자는 초기엔 독립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파키스탄 편입을 촉구하는 주민 봉기가 일어나고 파키스탄의 침공 가능성이 커지자 인도에 붙기로 합니다. 그 결과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벌어지고 양국이 카슈미르를 분할 점령하게 됩니다. 상대가 차지한 땅은 수복해야 할 영토가 됐고요. 이 분쟁이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현재 인도령 카슈미르 주민의 70퍼센트가 무슬림입니다. 인도 주(州) 중에서 힌두교도가 다수가 아닌 유일한 지역입니다. 힌두 민족주의 국가에서 이교도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차별과 박해가 일상이 됐죠. 인도령 카슈미르의 무슬림들은 이 땅이 이슬람 독립 국가가 되거나, 파키스탄에 합쳐지길 원합니다. 인도는 이런 분리주의자들을 호되게 단속해 왔고요.

파키스탄 정부의 대응

파키스탄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까요. 일단 파키스탄군 대변인은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시점에 우리가 선택한 장소에서 우리가 선택한 방식으로 인도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선택한 방식”입니다. 이 방식이 무엇일지는 파키스탄의 정치·경제 상황과 국제 역학을 살펴보면 얼추 윤곽이 드러납니다.

현재 파키스탄 총리는 셰바즈 샤리프입니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데요, 그의 형 나와즈 샤리프도 총리를 지냈습니다. 셰바즈 샤리프는 포퓰리스트였던 형과 달리 행정가 유형입니다. 셰바즈 샤리프는 펀자브주 총리를 세 차례 지냈습니다. 파키스탄 인구가 2억 5000만 명인데, 그 절반이 펀자브주에 삽니다. 우리로 치면 서울과 경기도를 합한 슈퍼 광역단체의 장을 지낸 셈이죠.

샤리프는 펀자브주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싱가포르식 행정을 채택했습니다. 정치적 이념보다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 성장과 인프라 개발을 중시했죠. 산업, 교통, 병원, 교육 부문 등에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했고, 중국 등과 지방 정부 외교를 펼쳐 각종 개발 프로젝트를 유치했습니다. 실용주의자답게 인도와의 관계도 원만했고요.

샤리프는 2022년 파키스탄 총리에 취임합니다. 전임 총리 임란 칸이 불신임 투표로 쫓겨나면서 정권을 넘겨받습니다. 당시만 해도 샤리프는 정치적 카리스마가 부족해 정국 위기를 관리할 과도기형 총리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우리로 치면 대통령 탄핵 국면의 한덕수 총리 같은 인물이었죠. 그런데 2024년 치러진 총선에서 군부의 도움을 받아 연립 정부를 꾸리며 다시 총리에 오릅니다.

인도가 파키스탄을 공습하기 전까지 파키스탄은 심각한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외환 위기로 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시국에, 물가는 50년 만에 최대치로 치솟고, 전임 총리 임란 칸을 지지하는 세력은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연일 반정부 시위를 벌였습니다. 정권의 정당성에 금이 간 상황이었죠.

샤리프 총리로서는 국내 위기를 덮기 위해 적대국 인도를 상대로 강하게 나갈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카슈미르 문제는 파키스탄에서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소재입니다. 한일 관계에 빗대자면 독도와 동해 문제죠. 샤리프는 통제선 인근에 병력 배치를 늘리고, 군사 훈련도 공개할 겁니다. 국지적 군사 도발도 이어 가겠죠.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샤리프는 안정적 통치를 지향하는 실용주의자입니다. 정치적 수사는 강하게 하더라도 행동은 신중하게 할 겁니다. IMF와 구제 금융 협상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외교적 불안정성은 투자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국제 사회의 지원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전면 충돌은 피할 수밖에 없죠.

파키스탄 군부의 대응

총리의 대응은 살펴봤고 다음은 군부입니다. 파키스탄 정권에서 군부는 사실상 모든 정책의 실질적 결정자입니다. 파키스탄은 1947년 독립했으니 나라의 역사가 78년쯤 되는데요, 독립 기간의 거의 절반을 장군들이 통치했습니다. 군사 쿠데타만 다섯 번을 경험했죠. 파키스탄에서 군부는 단순한 국방 조직이 아닙니다. 사실상 국가 내 국가입니다.

파키스탄은 형식상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정치, 경제, 외교 전반에 군부가 깊숙이 관여합니다. 정책 결정을 뒤에서 조종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업까지 거느리고 있습니다. 방위 산업은 물론이고 금융, 보험, 건설, 에너지, 교육, 의료, 비료, 식품, 농업 등 돈이 될 만한 분야에는 모조리 진출해 있습니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도로와 송유관을 구축하는 사업도 군부 계열 건설사가 맡고 있죠.

군부는 GDP의 20퍼센트에 달하는 국방 예산과 군부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인도와의 지속적인 긴장이 필요합니다. 특히 카슈미르 문제는 정부가 인도와 협상하려고 해도 군부가 막아서는 사안입니다. 총리라도 군부와 척지면 실각합니다. 현 총리의 형인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실각한 것도 인도와 화해 무드를 조성하려다가 군부와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직전 총리였던 임란 칸도 군부의 후원을 받아 집권에 성공했지만, 정보기관 수장 교체 문제를 두고 군부와 대립하다가 결국 총리직에서 쫓겨났죠. 그리고 그 자리를 지금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현 총리 셰바즈 샤리프입니다. 군부의 도움으로 연립 정부를 꾸리고 총리가 된 셰바즈 샤리프는 군부의 요구에 순응하고 있고요.

인도와 충돌할 때마다 파키스탄 군부가 원하는 것은 군부 존재감의 재확인입니다. 인도와 자꾸 투닥거려야 이미 과다한 국방 예산을 더 늘리고 외교 레버리지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 군부가 원하지 않는 것은 전면전입니다. 인도보다 군사력, 경제력이 열세여서 제대로 붙으면 질 테니니까요. 군부가 갖고 있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모두 잃게 되죠.

게다가 전면전을 벌였다가는 IMF 구제 금융이 끊길 수도 있습니다. 받아야 할 돈이 남았는데, 굳이 판을 엎을 필요가 없죠. 군부는 오히려 이번 충돌을 국제 원조 협상에서 지렛대로 사용할지도 모릅니다. 정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고, 군부가 통제하지 않으면 더 위험해진다는 논리를 들이댈 수 있겠죠. 그 대가로 IMF에 더 많은 구제 금융을 요구할 테고요. 결국 군부가 원하는 건 ‘관리되는 위기’입니다.

미국, 중국, 인도의 대응

파키스탄이 전면전을 택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국제적 압박도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이번 충돌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인도와 가깝고, 중국은 파키스탄과 가깝습니다. 얼핏 보면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득은 없고 피해만 볼 수 있는 상황이라 확전을 바라지 않습니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와 밀착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이 인도보다 약하다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인구가 5번째로 많은 나라인데다 핵무기까지 있습니다. 인도가 파키스탄과 소모전을 벌이느라 힘이 빠지는 상황은 달갑지 않습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전쟁’이 세 개로 늘어나는 것도 부담스럽고요.

중국 역시 파키스탄 정세가 위태로워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송유관 등을 구축하는 사업,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CPEC)’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중국은 중동산 원유를 믈라카 해협을 지나지 않고 파키스탄 과다르항에서 육로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운송 거리가 1만 2000킬로미터에서 2395킬로미터로 단축됩니다.

마지막 변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입니다. 힌두 민족주의 노선을 내건 모디는 2019년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박탈해 무슬림의 저항을 받기도 했죠. 모디 정부가 파키스탄을 자극해 힌두 민족주의 정서를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치 일정이 다행스럽습니다. 모디는 지난해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했습니다. 당장 큰 선거가 없어서 지금 파키스탄과의 분쟁을 키울 이유가 딱히 없습니다. 오히려 이 혼란을 빨리 수습하고 미국발 관세 폭탄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결국 파키스탄, 인도, 미국, 중국까지 이해관계자 모두가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한동안 카슈미르 내에 그어진 통제선 근처에서 포탄을 주고받으며 보복에 보복을 거듭할 겁니다. 전면전이 터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서 자국민에게 생색을 낼 수 있을 정도로만 상대에게 타격을 줄 겁니다. 그 생색에 죽어 나가는 건, 늘 그랬듯 카슈미르의 주민뿐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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