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식의 시대

bkjn review

제로 슈거 콜라와 위고비 사이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미식의 시대

2025년 5월 14일

페브리즈, 질레트, 다우니, 오랄비, SK-II, 팬틴. 우리 생활에 가장 가까운 브랜드군입니다. 이 모든 브랜드는 P&G(The Procter & Gamble Company)가 소유하고 있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소비재 회사로 꼽힙니다. 하지만 P&G에도 흑역사가 있습니다. 바로 올레스트라(Olestra)라는 합성 지방입니다.

1968년 P&G는 아기들이 소화하기 쉬운 지방을 개발하다 칼로리가 0인 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지방과 비슷한데 열량이 없다니, 상업성을 감지한 P&G는 이를 식품 첨가물로 승인받고자 부단히 애를 썼죠. 하지만 FDA(미국 식품의약청)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올레스트라가 상업화에 이른 것은 1996년의 일입니다. 올린(olean)이라는 제품명이었죠.

P&G는 식품 쪽 라인업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켈로그에 넘겼지만, 원래 프링글스도 P&G의 제품이거든요. 1990년대면 아직 비만의 주원인으로 지방이 꼽히던 시절입니다. 마음껏 먹어도 0칼로리인 지방이라니, 시장을 뒤엎을 혁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올레스트라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펩시코가 이 대체 지방을 사용해 튀겨 낸 감자칩을 출시했는데, 소비자들이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설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P&G도 잘 알고 있던 부작용이었습니다. 올레스트라를 섭취하면 속이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소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장을 통과해 배출됩니다. 당국에 소비자 신고 전화가 빗발쳤죠.

P&G가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뒀던 까닭은 회사 내에 똑똑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무리수를 둬서라도 판을 뒤집고 새로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죠. 비만이라는 새로운 전염병에 관한 소비자의 경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칼로리가 없는 지방에 집착했죠.

당시의 연구진, 임원진이 2025년의 슈퍼마켓 진열대를 봤다면 기분이 어땠을까요? 고작 30년이 흘렀습니다. 지방이 아니라 설탕이 기피 음식으로 전락했고, 그 설탕을 대체할 0칼로리 인공 감미료가 마케팅의 핵심이 되었죠. 가히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의료계의 지칠 줄 모르는 경고에도 지방과 설탕의 유혹을 끊어내지 못했던 소비자들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스테비아와 알룰로스라는 기술이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당을 줄이고 단백질을 더하는 식단은 이제 상식입니다.
이제는 어디서도 올레스트라를 함유한 제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윤활유나 페인트 등에 사용되고 있죠. 출처: Bloomberg Television
그런데 이런 움직임 바깥에 전혀 다른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GLP-1이 만드는 변화입니다. 위고비, 오젬픽, 마운자로 등의 제품명으로 알려진 주사형 비만 치료제 및 당뇨병 치료제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사람들의 허리둘레뿐만 아니라 문화와 산업,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까지 새로운 물결이 감지됩니다. 

2025년의 식사 예절

지난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재미있는 기획이 실렸습니다. 미식 평론가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식사 규칙 가이드입니다. 7코스 이상의 시식 메뉴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피하라는 조언부터 길고 지루한 레스토랑 콘셉트 설명을 건너뛰기 위해서라면 ‘와본 적 있다’라는 거짓말을 해도 무방하다는 팁까지 다양한 내용이 소개되었죠.

그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식사 중 대화에 관한 규칙이었습니다. 식탁 앞에서는 성적인 주제나 종교,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죠. 그런데 요즘에 금기시해야 할 주제는 따로 있다고 합니다. 바로 GLP-1 약물, 그러니까 위고비 같은 비만 치료제에 관한 의견을 말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런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논하다 보면, 둘러앉은 여섯 명 중 한 명은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가게 될 것이라고요.

한 전문가는 이 의견에 ‘최근 GLP-1 사용은 정치적 신념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코멘트를 달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위고비는 도덕적 해이입니다. 스스로 절제해야 할 식욕을 약물에 의존해 누른다니 말도 안되지요.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꿔 줄 구원자입니다. 우리의 뇌를 해킹하는 초가공식품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조작된 식욕과 설탕에 중독된 뇌를 정상으로 돌려 줄 유일한 존재죠. 어느 쪽이든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설득될 수 있는 영역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이성적인 사회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어도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겠죠. 하지만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누군가의 접시는 깨끗이 비워져 있을테지만, 다른 누군가의 접시에는 음식이 잔뜩 남겨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위고비를 투약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친구들과 식사한다면, 계산서에 청구된 금액 중에 N분의 1을 내야만 할까요? 반대로 구성원의 대부분이 위고비를 사용하는 모임에서 식사를 한 뒤 나 혼자만 잔뜩 먹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찾아오는 묘한 좌절감은 괜찮을까요?

새로운 문화적 마찰이 GLP-1 약물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같은 종이기 때문에 식습관도 비슷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식사’라는 사회적 활동이, 오히려 당신과 나의 차이를 확인하는 자리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정중하게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예의를 고안해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은 물론 식당의 서버, 셰프에게도 자신이 위고비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겁니다. 음식을 많이 남긴다고 하더라도 식사 자리가 즐겁지 않았거나 음식의 맛이 형편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뇌를 속이는 물질

우리가 식사를 하면 장에서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이 호르몬은 뇌에 ‘영양분이 들어왔다’는 신호를 보내죠. 식욕도 가라앉고 인슐린도 분비됩니다. GLP-1은 이 호르몬을 흉내 내서 만든 물질입니다. 주사를 맞으면 우리 몸은 먹지 않아도 먹었다고 인지합니다.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드는 까닭입니다. 미국 성인 3000만 명이 이런 약물에 대한 사용 경험이 있습니다. 여덟 명 중 한 명에 해당하는 비율입니다.

초고령층이나 이 약물을 사용할 수 없는 환자 등을 제외한다면 그 비율은 더 올라갑니다.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약속이 잡혀 있다면 참석자 중 적어도 한 명은 GLP-1을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해 봤다는 얘깁니다. 미국의 식생활이 완전히 흔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쉽게 말해 미국이 포만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코넬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GLP-1 약물 사용자는 반년 안에 식료품에 대한 지출이 5.5퍼센트 감소했습니다. 소득이 높은 경우에는 식료품 지출을 8.6퍼센트까지 줄였고요. 2035년까지 미국 내 청량음료나 스낵류의 전체 소비량이 3퍼센트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습니다.

식품 기업들은 GLP-1이 바꿔 놓은 미국인의 입맛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위고비의 제조사인 노보노디스크 측은 식품 회사 임원들로부터 달라진 시장에 적응할 방법에 대한 조언을 요청받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식성이 달라졌다면 당연히 마케팅 전략도 달라져야겠죠.

특히 초가공 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관찰 보고가 눈에 띕니다. 지금까지 식품 회사에서는 최소한의 원료로 최대한의 식욕을 자극할 방법을 연구해 왔습니다. 설탕과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뇌의 보상 시스템을 최대한으로 자극할 수 있는지, 지방이 입안에서 언제 녹아 퍼져야 도파민이 분비되는지를 밝혀내 왔죠.

그런데 GLP-1은 이러한 식품들이 뇌를 간지럽히는 경로 자체를 방해합니다. 그 결과, 우리의 혀를 자극해 뇌를 조종했던 인공 감미료와 식품 첨가물의 맛이 예전처럼 매력적이지 않아졌습니다. 인공의 맛을 더 이상 갈구하지 않게 된 겁니다. 대신 GLP-1 사용자들은 신선한 야채나 과일 등 재료 그 자체의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변심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설탕 업계입니다. 아직은 영향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오젬픽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해도, 세계 시장 전체로 보면 우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부유한 국가부터, 그중에서도 중산층 이상의 계층부터 시그널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각국 정부의 정책도 판을 흔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설탕 소비국인 인도에서는 당뇨병 등 대사 질환과 함께 비만율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설탕의 15퍼센트를 먹어 치우는 인도에 오젬픽이나 유사 제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풀리기 시작한다면 산업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죠.

예상치 못한 효과도 관찰되고 있습니다. GLP-1이 각종 알코올, 담배는 물론 약물 중독으로부터 인류를 해방하고 있는 겁니다. 미국의 시장 조사 업체 번스타인(Bernstein)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2024년 약 8리터였습니다. 전년 대비 3퍼센트가량 감소한 것으로, 금주령 시대 이후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습니다.

주류 업계에서는 GLP-1 약물의 확산을 주요한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실제로 GLP-1이 알코올은 물론 아편계 약물 남용도 최대 절반까지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으니 근거 있는 우려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바로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의 ‘웨이트워처스(WeightWatchers)’는 건강하게 먹고 꾸준히 운동하며 생활 방식을 개선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체중 관리 기업입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이사진으로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60년 넘게 이어온 이 회사의 역사는 GLP-1과 함께 끝났습니다. 2023년 윈프리가 체중 감량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고백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지난 5월, 웨이트워처스는 끝내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불완전한 중독 해방의 시대

인간은 중독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정확히는, GLP-1을 사용할 수 있는 지역과 계층부터 각종 중독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다고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큰 숙제가 풀린 겁니다. 하지만 위고비는 각 국가의 의료 보험 시스템이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 개인이 감당하도록 둔다면 빈부의 격차가 중독의 격차로 전이될 테고요. 당분간 우리는 부의 크기에 따라 중독의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에 차별이 있는 세상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기술은 기술로 따라잡힙니다. 이미 식품 대기업과 연구실에서는 GLP-1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방법에 관해 연구 중입니다. 식품 업계는 이미 60년대에 0칼로리 지방을 개발할 정도였습니다. 2025년의 기술력은 상상을 뛰어넘겠지요. GLP-1 사용자들은 상큼한 맛이나 산뜻한 맛을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달라진 취향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는 겁니다. 입맛이 달라졌을 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공식품의 편의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까요.

더 나아가 GLP-1의 효과 자체를 떨어뜨리는 화합물을 개발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식품 업계는 뇌가 갈망하는 맛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아주 오랫동안 이어 왔습니다. 우리의 감각과 신경을 조정하는 화학 물질에 관한 가장 발전된 연구들입니다. 그러니 GLP-1의 작용 기전을 방해하는 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라는 의견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물론, 제약업계도 가만히 멈춰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값비싼 위고비를 대체할 수 있는 저렴한 버전의 GLP-1 약물 개발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바늘을 찔러야 하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먹는 비만약의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죠.

결국 우리는 엄청나게 중독적인 식품들로 슈퍼마켓이 가득 차 있던 시대를 지나, 제로 슈거 콜라와 위고비 사이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시대에 도착했습니다. 식품 회사와 제약 회사는 각자의 위치에서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첨단 과학 기술을 더 예리하게 벼려낼 겁니다. 어느 쪽이 이기든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계산서를 받아 들게 되겠죠.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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