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의 구조
2화

트럼프 행정부와 공세적 대외 전략

힘을 통한 평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걸고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행정부의 대외 전략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세계 전략 구상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균형 전략으로 대표되는 오바마 행정부의 과도한 대외 개입을 비판했고, ‘아메리카 퍼스트’와 ‘세계주의를 대체하는 미국주의’를 주장하며 세계 전략의 근본적인 전환을 예고했다. 또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립주의를 옹호해 논란을 낳았다. 이로 인해 일관성 있는 대외 전략의 부재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그러나 현실에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고립주의와는 구별되는 일방주의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도적, 외교적 수단보다 강력한 군사력에 기반한 대외 전략을 지향했다. 취임사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 전략이 유약하다고 비판했고,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내세우며 미국의 세계적 역할과 강력한 대외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7년 발간된 보고서 《국가 안보 전략》[1]에서는 “미국의 가치와 이익을 위협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억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군사력을 다시 강력하게(Making Our Military Strong Again)”라는 전략적 기조에 따라 군사력을 강화했다. 금융 위기 직후인 2011년 제정된 예산 통제법이 규정한 국방 예산 감축 계획은 폐지됐다. 2018 회계 연도 예산에서는 대다수 연방 정부 부서의 예산이 삭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비는 10퍼센트 수준으로 대폭 증액됐다. 2018년 국방 수권법은 미사일 방어의 강화, 해공군 첨단 무기 및 장비의 증강, 육군과 해병대 병력의 증강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다자 제도를 상대화하는 동시에 양자 동맹에서 상호주의에 기반한 요구를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기간에도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경제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동맹 관계라고 주장했다. 동맹국들이 더 큰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압박하면서, 일본과 한국이 주일,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을 전액 지불해야 한다고도 했다. NATO 회원국들에게도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다. 나아가 핵심 동맹국들의 역할이 단순히 비용 분담(cost sharing)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실질적인 부담 분담(burden sharing)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맹국이 스스로의 능력을 증대해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공약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런 요구를 거부할 경우 동맹국들에 대한 안보 공약을 철회해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세계 전략의 기조가 변화하면서 금융 위기 이후 세계 전략의 핵심인 재균형 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로 변화할 것인지에 상당한 관심이 집중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첫 국무장관인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은 트럼프 행정부가 재균형 전략과 단절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이 재균형 전략과 완전히 단절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력의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서태평양 지역의 미국 전력 증강이다.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 시기부터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이 야기하는 위험을 강조했고, 서태평양의 해군력 증강과 태평양 사령부의 전력 강화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전투함 추가 건조, 전투기의 추가 배치가 결정되는 등 재균형 전략의 요소들이 강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이 미국의 국익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고려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이라는 기존의 지역 규정을 더 확대한 것이다. 미국이 인도-태평양에 대한 강력한 개입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일대일로 전략으로 군사적, 경제적 팽창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을 더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국가 안보 전략》을 통해 일대일로 전략을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인도-태평양이라는 명명에는 중국이 인도양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2]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 호주, 한국 등 기존의 동맹 관계뿐만 아니라 인도와의 전략적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향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 안보 전략은 재균형 전략의 연장선에서 인도-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해공군력 투사 능력의 강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태평양 사령부(PACOM)의 이름을 인도-태평양 사령부(INDOPACOM)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

실제로 남중국해 일대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017년 5월 중국이 시사(西沙) 군도(Paracel Islands) 일대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하자 미국은 즉각 이에 맞서 시사 군도와 난사(南沙) 군도(Spratly Islands) 일대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시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난사 군도 영유권이 자국의 ‘핵심 이익’이라는 중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오바마 행정부 시기 항행의 자유 작전이 무해 통항(innocent passage) 방식을 취한 것과는 달리, 2017년에는 정상적 작전을 실시하며 난사 군도 지역을 통과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17년 6월, 미국은 타이완에 대한 14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인도양 일대에서 미국, 일본, 인도 해군이 합동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말라바르(Malabar)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2018년 4월과 8월에는 미국의 전략 폭격기 B-52H가 둥사(東沙) 군도(Pratas Islands) 일대의 중국 방공 식별 구역에 진입해 작전을 수행했다. 2019년의 국방 수권법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배타적인 영유권 주장과 군사 기지화를 중단할 때까지 림팩(RIMPAC) 훈련에 참여할 수 없다고 명시하는 등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2019년 7월 트럼프 행정부는 타이완에 20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추가로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3]

이처럼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은 재균형 전략의 기본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일본, 호주, 한국, 동남아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한다는 기조도 유지됐다. 그러나 지역 다자 제도에 대한 개입은 약화됐고, 양자 동맹에서도 상호주의적 요구가 강화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의 비용과 의무를 더 부담할 것을 요구하면서 주요 동맹국들을 압박하고 있다. 다자 제도가 약화되고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강화되면서 지역 체계에서 갈등과 긴장이 고조될 위험은 더 커졌다. 특히 타이완, 인도와의 군사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는 미·중 양국 간의 갈등과 긴장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무역의 재균형과 경제 안보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에서도 공세적이고 일방주의적인 기조를 유지하며 다자주의적 틀보다 양자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에서의 엄격한 상호주의와 국내 경제 보호를 내세우면서 무역 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발행한 《2017년 무역 정책 의제(Trade Policy Agenda)》에도 이런 기조가 잘 나타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무역 정책의 핵심 목표는 관세, 보조금, 환율 조작(currency manipulation)[4] 같은 불공정한 무역 장벽의 철폐를 통한 미국의 경제력 회복이다. 또 필요에 따라 일방주의적인 조치를 포함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이런 목표를 추구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으로 꼽은 것은 무역 적자의 감축과 글로벌 불균형 조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국가무역위원회(National Trade Council) 위원장인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는 이를 무역의 재균형(rebalancing trade)으로 지칭하고, 중국, 일본, 한국, 타이완 등 주요 흑자국들에 대한 강력한 통상 압박을 예고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중상주의를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면서 불법 보조금, 환율 조작, 지적 재산권 위반 등 불공정 무역 관행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 명령을 통해서 중국산 철강 제품에 상계 관세(countervailing duty)를 부과했다.[5]

스티븐 므누신(Steve Mnushin) 재무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USTR 대표는 북미 자유 무역 협정과 한미 자유 무역 협정의 재협상을 주장했다. 또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협정을 파기할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2017년 4월 미·중 정상 회담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무역 불균형 축소를 위한 100일 행동 계획에 합의했다. 미국은 미국산 소고기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수입, 미국 금융·서비스업의 중국 진출 등을 중국에 요구했고, 이에 관한 합의가 도출됐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는 지속적으로 중국을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해 중국의 환율 정책을 감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환율 조작과 불공정 관행에 대한 공세적인 비판을 지속했다.

경제 전략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탈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첫 번째 행정 명령을 통해 TPP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TPP 탈퇴는 금융 위기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강조해 오던 대외 전략의 기조가 완전히 역전됐다는 평가가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TPP 탈퇴가 매우 중대한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TPP는 재균형 전략의 핵심 요소였고, 미국이 TPP를 통해서 추구하고자 했던 전략적 목표도 금융 위기 이후 세계 전략의 핵심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TPP 탈퇴를 미국 경제 전략의 근본적 전환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의 목적은 단순히 상품 수출의 확대를 통해서 무역 적자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의 우위하에서 금융 세계화를 지속해 미국의 통화·금융 권력을 유지·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TPP 탈퇴를 통해서 도모하려던 것은 이런 목표의 역전이 아니며, 더 공세적인 전략을 통해서 이를 달성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제기하고 있는 이슈들은 TPP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것들이다. 군사 전략과 마찬가지로 경제 전략 또한 금융 위기 이후 경제 전략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TPP 탈퇴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지역 개념을 확대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여전히 TPP를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전략적 목표들을 추구하고 있다.

TPP라는 틀 자체가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TPP 탈퇴는 미국 리더십의 후퇴로 인식될 수 있지만, 미국이 TPP를 통해서 얻고자 했던 핵심 이익은 양자 간 협정을 통해서도 부분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이다. TPP를 통해서 미국이 달성하고자 했던 전략적 과제는 글로벌 불균형 조정 비용을 타국에 전가하고 통화·금융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 헤게모니의 진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TPP의 틀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일방주의를 강화하고 양자적 틀을 활용해서 이런 전략적 과제를 달성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미일 자유 무역 협정 제안이나 한미 자유 무역 협정 및 북미 자유 무역 협정 재협상, 무역 전쟁으로 비화된 중국과의 무역 분쟁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공세적이고 일방주의적인 무역 정책을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 안보 전략》에서는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가 곧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라고 명시했고, 《2018년 무역 정책 의제》는 강력한 무역 정책을 통한 미국의 경제력 회복과 국제 정치경제 질서의 공정한 재편이 미국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임을 강조했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도전국으로 규정하고, 연구·개발과 첨단 기술에서의 우위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미 철강 산업이 국방력의 근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필요에 따라 일방적인 수입 규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 철강 수입품이 미국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도록 상무부에 지시했고, 국제무역위원회(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에는 중국 철강 수입품에 대한 엄격한 반덤핑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때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규정한 무역법(Trade Act of 1974) 301조, 국가 안보 위협이 발생할 때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규정한 무역 확대법(Trade Expansion Act of 1962) 232조가 이런 무역 제재에 근거를 제공했다. 또 2019년 국방 수권법은 외국인 투자 심의 위원회(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를 통해서 미국에 투자된 중국 자본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력을 심사하고,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를 제한하는 등 핵심 기술의 유출을 통제하도록 규정했다.

 

미·중 무역 전쟁


2018년부터 미·중 양국의 무역 분쟁은 무역 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됐다. 미국은 무역 전쟁을 시작하면서 과거부터 지적해 온 중국의 환율 조작, 보조금, 지적 재산권 침해에 더해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중상주의적 산업 정책이 공정한 무역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제조 2025는 기술 혁신을 통해서 첨단 산업에서의 역량을 강화하고, 노동 집약형 산업 구조를 기술 집약형 산업 구조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또 이를 토대로 양적 지표뿐만 아니라 질적인 수준에서도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 대국이 되겠다는 야심 찬 기획이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IT, 로봇, 항공·우주, 신소재, 의료 산업 등의 전략 산업 육성을 추진해 왔다.

중국 제조 2025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비판에서 공세적인 무역 정책이 단지 무역 수지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중 헤게모니 경쟁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근거로 2018년 3월 중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해 무역 확대법 232조를 적용해 각각 25퍼센트와 10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 미국이 4월에 25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한 1300개 품목에는 인공지능, IT, 반도체, 전기차, 의료 장비 등 중국 제조 2025가 강조하고 있는 첨단 상품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 상품들은 미국의 무역 적자 누적과 큰 관계가 없다.

중국이 보복 관세로 대응하면서 무역 전쟁은 급속히 확대됐다. 중국은 미국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동일한 규모와 금액의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대두나 자동차, 항공기 등 보복 관세의 영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품목을 선정해 관세를 부과했고, 미국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1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상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했고, 중국 통신 기업인 ZTE 코퍼레이션에 대한 미국 기업의 부품 납품을 금지했다. 이런 조치에 반발한 중국은 1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사탕수수에 관세를 부과했다.

2018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미·중 고위급 회담이 개최됐다. 미국은 2017년 3800억 달러를 기록한 대중국 무역 적자를 2020년까지 2000억 달러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중국 제조 2025의 핵심 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고, 지적 재산권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은 무역 불균형 축소에 대해서는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중국 제조 2025와 관련된 요구는 자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일축했다. 협상 결과 양국은 중국의 자동차 수입 관세 인하, 무역 불균형 조정을 위한 양국 협력, 지적 재산권의 존중에 관해 합의하고, 보복 관세 부과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 합의안을 거부하며 무역 전쟁은 더욱 격화됐다.

2018년 6월 개최된 미·중 양국의 고위급 회담은 어떠한 합의도 도출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미국은 한 달 뒤인 7월 반도체와 통신 장비 등을 포함한 818개 품목,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5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도 미국의 공세에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대두를 포함한 농산물과 자동차 등 340억 달러 규모의 545개 품목에 25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했고, 추가로 160억 달러 규모의 114개 품목에도 25퍼센트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8월에도 미·중 양국은 16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25퍼센트의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고위급 회담이 8월 말에 개최되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9월 말에 양국이 5000여 개 이상의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협상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6월과 8월의 고위급 회담에서도 중국 제조 2025의 폐기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수용하지 않았다.

무역 전쟁으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세계 각국의 금융 시장은 물론, 실물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다. 무역 전쟁의 당사자인 중국은 물론, 수출 의존도가 큰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조업 생산이 위축됐다. 미국의 농산물 수출도 급감했지만 수출 의존도가 큰 신흥국들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for-tat)” 식의 보복 조치 속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개되던 미국과 중국의 극한 대치는 11월부터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미·중 양국은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국방장관, 양제츠(杨洁篪) 외교 담당 국무위원, 웨이펑허(魏鳳和) 국방부장이 참석한 외교 안보 고위급 대화에서 무역 전쟁을 끝내기 위한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12월 1일 G20 정상 회의가 개최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정상 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 90일간 무역 전쟁을 휴전하고, 협상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자는 합의가 도출되었다. 미·중 양국은 추가적인 관세를 부과하려던 계획을 즉각 철회했고, 지금까지 부과한 모든 관세를 철폐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무역 전쟁은 양국 모두에 상당한 부담을 주기 때문에 2018년에 전개된 극단적인 무역 전쟁의 양상이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양국의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고려했을 때 무역 전쟁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고, 국내 정치적으로도 정권의 기반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무역 의존도가 미국에 비해서 훨씬 크며,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 동일한 규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무역 전쟁에서 양보할 것이라는 전망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휴전 기한인 90일 이내에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2018년 말의 미·중 정상 회담 직후 시진핑 주석은 경제 개혁과 개방의 확대를 강조하는 등 미국이 요구한 구조 개혁을 부분적으로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중국은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들을 추가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양보의 제스처를 취했고, 미국도 이를 전향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구체적인 이행 조치들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이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타국의 간섭에 맞서서 중국의 정당한 권익을 지켜나갈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미국을 겨냥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또 시진핑 주석은 원론적으로 개방을 강조하면서도, 핵심 기술에서의 자주성을 역설함으로써 중국 제조 2025의 중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지적 재산권과 기술 유출, 핵심 산업에 대한 외국 기업 투자 제한의 문제 등은 중국 입장에서는 사활이 달려 있는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며, 단기간에 급격한 정책 전환을 시도하기도 어려운 문제들이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 전쟁의 휴전 기간을 연장하고, 라이트하이저 무역 대표부 대표와 므누신 재무장관, 류허(劉鶴) 부총리 주도하에 고위급 회담과 실무 협상을 지속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고위급 협상이 진행 중이던 2019년 5월 추가 관세를 검토하겠다고 중국을 압박했고, 중국 또한 보복 관세로 대응하겠다고 응수했다. 이에 미국 상무부는 중국 제조 2025의 핵심 기업인 화웨이와 미국 기업들의 거래를 제한했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중단과 미국 농산물 수입 제한 조치로 대응했다. 결국 양국의 무역 협상은 중단됐다.

2019년 6월 오사카 G20 정상 회의에서 미·중 양국 정상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추가 관세 잠정 중단,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 재개, 무역 협상 재개에 합의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무역 전쟁의 핵심 쟁점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의 무역 적자 감축과 중국 시장 개방, 중국 제조 2025 등을 둘러싼 갈등은 미·중 헤게모니 경쟁의 차원에서 중·장기전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의 재균형을 강화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다수의 미국 대외 전략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외 전략이 고립주의를 지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과 동아시아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적 레토릭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이 직면한 전략적 과제, 그리고 중국의 부상이라는 국제 관계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의 급진적 레토릭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사이의 단절을 강조하는 논의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대외 전략을 재조정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전통적인 헤게모니 노선과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국제적인 리더십과 강력한 대외 개입을 추구하는 재균형 전략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차이는 전략적 목표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책 수단에 있어서 더 공세적인 노선을 채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군사·안보 전략의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상징과 같았던 재균형 전략의 요소들을 더 강화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군의 전력은 더 강화됐고, 군사 개입도 확대됐다. 핵심 동맹국들과의 관계도 유지, 강화됐다. 트럼프의 과격한 레토릭과 달리 현실에서는 급진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동아시아 지역에서 동맹 관계의 청산이나 미군 철수 같은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경제 전략에서는 TPP 탈퇴라는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1980년대에 금융 세계화를 확대하려 했던 미국의 경제 전략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국 본위의 정책이 반드시 보호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레이건 행정부도 트럼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상호주의에 기반한 공정 무역을 내세우면서 주요 흑자국들에게 공세적으로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또 불공정 무역 관행을 강력히 비판했고, 필요에 따라 상계 관세 부과, 수입 금지 및 제한 조치 발동 등 일방주의적인 조치들을 취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전략도 보호주의의 전면화가 아니라 통화·금융 권력의 우위를 활용한 일방주의, 그리고 미국에게 유리한 선별적인 무역 자유화의 일환으로 분석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은 세계화를 공세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토대로 미국 헤게모니를 쇄신한 1980년대 미국의 무역 정책과 유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경제적 민족주의로 포장된 트럼프의 경제 전략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역전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를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는 전략이다. 미·중 무역 전쟁에서 확인한 것처럼 중국에 대한 비판과 글로벌 불균형 조정의 비용을 전가하려는 미국의 압박은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지역 국가들, 특히 미·중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수도 있다. 현재 USTR 대표인 라이트하이저가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USTR 부대표를 역임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전략 기조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 전략과 일정하게 단절했지만, 미국의 세계 전략과 그 핵심인 동아시아 전략의 근본적인 추세가 역전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의 힘, 핵심 국가들과의 관계 같은 전략적 환경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전략은 2007~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 변화의 연장선에서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이 갖는 중요성은 더욱 커졌고,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서 지정학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됐다. 이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대외 전략의 부분적인 축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에 대해서만큼은 강력한 개입을 유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와 차별성을 확보하려 하더라도 금융 위기 이후 지속되어 온 세계 전략의 핵심 기조는 더 강화될 것이다. 이런 목적을 공세적이고 일방주의적인 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미·중 양국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거나, 지역 체계 전반의 긴장이 고조될 수도 있다. 이는 지역 국가들이 쉽게 풀어 나갈 수 없는 커다란 전략적 도전이 될 것이다.
[1]
대통령 명의로 발간되는 《국가 안보 전략》은 미국의 대외 전략을 규정하는 최상위 보고서로 군사·안보, 경제, 외교 등 대외 전략의 모든 영역을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핵심 문서이다. 이를 토대로 《국방 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 《4개년 국방 계획 검토(Quadrennial Defense Review)》, 《핵 태세 검토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4개년 외교 개발 검토 보고서(Quadrennial Diplomacy and Development Review)》 같은 세부 전략 문건들이 작성된다.
[2]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 전략에서도 인도양과 남아시아 지역은 미국의 핵심적인 전략적 고려, 즉 아시아-태평양의 내부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패네타 전 국방장관은 인도가 재균형 전략의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한 바 있으며, 클린턴 전 국무장관 또한 신실크로드 구상(New Silk Road Initiative)을 통해서 아시아-태평양의 범위를 더 확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계시킬 수 있는 전략이 정교한 형태로 발전되지는 못했다. 또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 규정도 여전히 모호하다. 해상 안보의 관점에서는 인도-태평양이 연속적인 하나의 지역으로 파악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하지만, 경제적 연계라는 측면에서는 유의미한 지역으로 파악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가 어느 정도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전략을 제시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3]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에서 타이완에 이르는 남중국해는 전 세계 물동량의 30~40퍼센트가 경유하는 해상 수송의 핵심 루트이며, 말라카 해협과 인도양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또 남중국해에는 상당한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이 때문에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인근 국가들 사이의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중국의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구단선(九段線, Nine Dash Line)’을 설정해 남중국해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공해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남중국해의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4]
환율 조작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환율과 무역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외환을 판매 혹은 구매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미국은 인위적인 평가 절하를 통해서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국의 적자를 유발하는 국가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재무부는 1988년의 종합 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과 2015년의 무역 촉진법(Trade Facilitation and Trade Enforcement Act of 2015)을 근거로 2016년부터 매년 4월과 10월에 환율 정책 보고서를 발간하고 심층 분석(enhanced analysis) 대상국, 즉 환율 조작국을 발표한다. 무역 촉진법에 따르면 대미 무역 수지 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이고, 경상 수지 흑자가 GDP의 3퍼센트 이상이며, 외환 시장 개입 규모가 GDP의 2퍼센트 이상이면 환율 조작국 지정 대상이 된다. 이 중 두 가지 사항에 해당될 경우 관찰 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분류된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면 해당 국가에 대한 미국 기업 투자 제한, 해당국 기업의 미국 조달 시장에서의 배제, IMF 등을 통한 환율 압박, 해당 국가와 무역 협정 체결 시 환율 정책 평가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미국이 환율 조작국과 관찰 대상국 지정을 통해서 압박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대상은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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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 관세는 수출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아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상품이 수입될 경우 이를 불공정 무역 행위로 간주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과하는 관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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