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있는 노동
4화

고도성장을 지나며(2)

경영권이라는 허구


“(…전략…)오늘의 우리나라가 처하고 있는 경제 현실과 오늘의 우리나라 노동 쟁의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 등을 참작하면, 구조조정이나 합병 등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 주체의 경영상 조치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해석하여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옳다. 물론 이렇게 해석할 경우 우선은 그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들의 노동3권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과도기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투자가 일어나면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근로자의 지위가 향상될 수 있으므로 거시적으로 보면 이러한 해석이 오히려 전체 근로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 된다.”[1]

기업이 잘되면, 근로자도 저절로 잘될까? 위 인용문은 2003년 한국가스공사 대법원 판결문 내용의 일부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구조조정에 반대하던 근로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헌법을 비롯한 법률 어디에도 없는 ‘경영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기업의 경영권은 근로자의 노동3권에 우선한다고 보았다.

이 판결은 선 성장 후 분배, 즉 경제가 먼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분배의 문제도 해결된다는 경제학 이론인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를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경제학자가 아닌 법관이 경제학 이론을 법 해석의 근거로 제시해도 되는 것일까? “유의하여야 한다”, “과도기적 현상” 등의 표현은 정확성이 요구되는 판결문이라기보다는, 덮어놓고 기업 경쟁력만을 두둔하는 신문 사설에 더 가까워 보인다.[2]

2003년의 이 판결을 계기로 헌법상의 지위를 획득한 경영권은 이후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판결에서 맹위를 떨친다. 대표적인 예가 2013년 철도 노조 파업이다. 당시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당일, 사측에서 파업에 참가한 근로자들에게 징계 조치를 내렸다. 곧이어 정부는 파업을 불법으로 단정하고 공권력을 투입했고, 대다수 언론들은 연일 노조의 무책임과 집단 이기주의를 성토했다. 그러나 이후 법원은 결국 이러한 징계가 부당하고,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한 편의 서부 활극을 보는 느낌이지만 근로자들의 고통은 너무 컸고, 국론은 분열되었다. 그사이 코레일 민영화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사용자의 경영권은 관철되었다. 경영권은 도대체 어떻게 주술에 가까운 ‘존엄’[3]한 지존의 반열에 올랐을까?

우선 경영권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판례의 흐름을 통해 살펴보자. 1998년 이전까지의 대법원 판례는 경영사항에 대한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일률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4] 그러나 1998년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며 경영권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고 이를 헌법에 근거해서 보호하려는 판례들이 등장한다.[5] 당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쟁의행위가 크게 증가했고, 검찰이 이를 업무방해죄로 기소하기 시작하면서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문제 삼은 형사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결은 경영권의 불가침성을 확인하면서 유죄를 선고했다. 파업권의 행사를 억제해 오던 단결 금지의 법리가 강화된 것이다.[6]

1999년의 대우자동차판매 사건[7]에서는 지점 폐쇄 조치 자체의 철회를 목적으로 한 점거 농성은 ‘경영 주체의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2001년의 현대자동차 사건[8]에서는 노조의 정리해고 반대는 사용자의 정리해고에 대한 권한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사용자의 경영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내용이어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쟁의행위는 목적 에 있어 정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2002년 조폐공사 사건[9]에서는 경영권의 불가침성이 선언된다. 경영 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비록 그 실시로 인해 근로자의 지위나 근로조건의 변경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더라도 이를 반대하는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경영권의 배타적 성격을 인정한 것인데, 이 판결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경영권의 본질에 속하여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에 관하여 사용자가 노동조합과 ‘합의’하여 결정 혹은 시행하기로 하는 단체협약 조항이 있는 경우, 그 ‘합의’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협약 체결 경위와 당시의 상황,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노동조합이 경영에 대한 책임까지도 분담하고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면서 정리해고에 대한 노조와의 사전 합의 조항을 ‘협의’의 취지로 해석하였다.

2003년 가스공사 사건은 대법원의 경영권 개념이 실체를 드러낸 계기였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경영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표현하면서, 그 근거로 헌법 제23조 제1항의 재산권 보장, 제119조 제1항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 헌법 제15조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시한다. 그러나 기업의 이러한 권리도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권리일 수는 없어 노동3권과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를 조화시키는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 의욕을 훼손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유의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은 근로기준법에서 충분한 다른 조치를 마련하였으니 단체교섭으로 이를 다루는 것이 적합하지 않고,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상의 노사협의회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시는 2000년대 후반까지 견고하게 유지된다.[10]

경영권을 옹호하는 판결문은 대체로 매우 공격적이다. 예컨대 판결문에서 사실 관계를 서술한 부분을 읽어 보면, 근로자들이 정리해고를 반대한다는 서술보다는 ‘저지’, ‘백지화’, ‘전면적’ 등 판사의 편견이 개입된 단어가 난무한다. 대부분의 판결들은 판에 박은 듯 “정리해고 자체를 전혀 수용할 수 없다는 노동조합 측의 요구는 사용자의 정리해고에 관한 권한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경영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노동조합의 무리한 요구-무조건적 반대-정리해고 권한 자체의 전면적 부정-경영권의 본질적 침해’로 이어지는 도식을 전개한다. 그러나 설령 노동조합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단체교섭에서 협상을 통해 조정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파업의 정당성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이다.[11] 실제로 파업의 전개 양상을 관찰해 보면,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자체를 반대할 때에는 근로조건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한으로 막아 보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근로자들의 이러한 절박함을 ‘무조건적 반대’로 단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12]

노동조합의 주장이 ‘경영권을 본질적으로 침해’ 또는 ‘경영권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기 때문에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식의 표현은 동어 반복 또는 순환 논법이다. 왜 경영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3년 판결문의 “고도의 경영상 결단”이라는 표현에서는 황산벌 전투에 임하는 계백 장군에 비견될 만한 비장함마저 엿보인다. 조폐공사 사건과 가스공사 사건의 주심이었던 이용우 대법관은 퇴임 후 회고록에서 ‘대한민국 경제의 침몰을 막겠다’는 본인의 애국적 결단에 따라 이러한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했다.[13] 하지만 계백 장군은 역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언정 오늘날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법률가상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경영권이란 단어가 법률 용어로 사용되는 국가는 없다. 영미권의 경우, 과거 한때 우리말로 옮기면 경영 특권 또는 경영 권한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managerial prerogative라는 표현이 간혹 사용되었으나 실정법상의 법률 용어는 아니다.

미국 법원은 우리와 유사한 사안에서 근로자들의 파업은 재산권과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니 막아 달라는 사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용자가 경영권 개념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사업을 경영할 권리를 ‘재산권’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개념은 마치 한 조각의 땅처럼 형체를 지닌 것으로 취급되는 오해를 빚어낸다. 사업은 물론 경제적, 금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부당한 손해로부터는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경영권(business)이 마치 동산이나 부동산처럼 명확한 형체가 있는 하나의 물건은 아니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히 제정된 노동법을 단순히 재산권 원칙에 의거하여 비판해서는 안 된다.”[14]

미국에서는 학술적으로도 경영권은 법적 권리가 아니라고 본다. 경영자의 법적 권리(legal right)와 경제적 힘(economic power)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용자와 근로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관계일 뿐이므로, 만일 근로자가 사용자의 권한에 따르지 않으면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여 그 계약을 종료할 수 있을 뿐, 사용자가 근로자의 다른 모든 측면에 대해 포괄적인 경영권이라는 권리를 갖지는 않는다고 한다.[15] 경영자의 자본으로부터 비롯되는 권한을 법적인 의미의 권리로까지 승격시키지 않는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일본의 경영자들이 같은 시기 미국의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주장되었던 경영권 관념을 원용하며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려 했으나, 이러한 주장은 법적인 근거가 빈약해 점차 설득력을 잃어 갔다. 학설이나 판례를 논할 때 경영권이라는 단어가 간혹 사용되더라도 실정법상으로, 학술적으로 명확한 정의나 근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판례는 경영, 생산, 기업조직 재편과 통합, 회사 분할, 사업 양도, 사업 전환, 임원이나 관리직의 인사 등의 사항이라 할지라도, 조합원의 근로조건과 관련이 있고 영향을 주는 사항일 경우에는 의무적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16]

지금까지 경영권을 둘러싼 논의는 그 실체적 내용을 정하지도 않은 채 권리의 인정 여부를 논의하는 주객전도의 상태에 있었다. 법학자 신인령의 지적대로, 경영권의 기본적인 내용에 관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경영권을 ‘사용자가 기업 경영에 필요한 기업 시설의 관리·운영 및 인사 등에 관하여 가지는 일체의 권한이라는 광범위하고도 막연한 의미’로 이해한 채 논의가 전개되어 버린 것이다.[17]

법원은 경영권의 근거로 헌법 제119조 제1항의 자유 경제 질서 조항, 헌법 제23조 제1항의 사유 재산 보장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헌법 제119조는 우리나라가 경제의 기본 질서로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택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일 뿐, 이것이 경영권의 직접 근거가 된다고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제23조의 사유 재산 보장에서 경영권을 직접 도출하는 것도 논리적 비약이다. 기업이 재산권에 근거하여 자기 재산을 처분할 수는 있겠지만, 재산이 아닌 사람인 근로자에까지 처분권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18] 그렇다면 경영권은 상법상 영업권 개념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상법은 주로 기업 간 거래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므로 사용자와 근로자 관계를 규율하는 노동법과는 대상과 원리가 다르다. 따라서 경영권의 근거를 상법에서 찾기도 어렵다. 만에 하나 경영권이 법적으로 인정된 어떤 힘이라 가정하더라도, 그것을 관철시킬 법적 방식이나 절차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법원이 여전히 경영권을 근거로 단체교섭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사항은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지다. 그러나 미국이나 독일의 법리를 참고해 보면, 단체교섭에 있어 경영 또는 인사 관련 사항이라고 해서 근로자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또한 무엇이 근로조건이며, 무엇이 경영사항인지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예컨대 과거 자본주의 초창기의 사용자들은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조차 ‘경영사항’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해 근로자와 협상하는 것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오늘날 임금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노동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확립되어 있다. 경영사항의 범위 또는 내용은 결코 고정적이거나 절대적이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계속 변화해 왔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경영권을 강고하게 옹호하던 판례 흐름에도 조금씩 변화가 감지된다. 대표적인 예로, 대전지방법원의 2011년 판결에서는 철도 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들이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대법원의 경영권 판결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19] 이 판결은 대법원이 제시했던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은 쟁의행위의 목적이 불법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요건으로 따르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 이유로 경영사항과 그렇지 않은 사항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 헌법 제33조와 노조법 제1조 등을 종합해 보면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서 사용자가 처분권을 갖고 있는 사안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지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점, ‘근로자들의 노동3권을 제약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이 회복되고 투자가 살아나면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된다’는 논리는 공리(axiom)로서 확립된 것이 아니라 논란이 많은 경제 이론이므로, 치밀한 학리적 검증 없이 판결에서 법적 논거로 인용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2012년 MBC 파업에 참여했던 근로자들이 해고를 당한 사안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공정 방송의 의무는 관련법 및 단체협약에 의해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이며 동시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 및 준수하는 것에 대한 교섭은 자율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내용에 대한 근로자들의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20] 2014년 포레시아 사건의 경우, 정리해고나 사업 조직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은 원칙적으로는 사용자의 경영사항이라는 대법원의 기존 입장을 인용하면서도, 비록 사용자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일지라도 노사가 임의로 교섭을 진행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그 내용이 강행 법규나 사회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유효한 단체협약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사용자가 만일 고용 안정을 내용으로 하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정리해고를 실시할 경우, 그러한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보았다.[21]

2018년 아시아나항공 판결에서는 내국인 항공기 기장이 콧수염을 기르는 것을 금지한 회사 취업규칙의 유효성이 문제되었는데, 대법원은 기업의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와 근로자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충돌할 경우 기업의 영업의 자유는 근로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 존엄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화롭게 조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판결에서는 기업의 영업의 자유라는 표현을 했을 뿐, 경영권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22]

그동안 경영권의 개념과 내용은 명확히 검토되지 않았다. 우선 경영권의 권리성을 부정하고 사실상의 힘에 불과하다고 이해하는 쪽에서는 굳이 그 내용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경영권의 구체적 내용이 적용되는 국면에서 관련 법규의 해석을 통해 법적 해결을 시도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반면 권리성을 인정하는 경영자 단체, 노동부 또는 학자들의 경우 경영권의 내용으로 생각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나열, 예시하는 정도로 경영권의 내용을 설명해 왔다. 오류 가능성이 없는 이러한 설명 방식은 아주 편리하게 활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경영권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법학자 신권철의 논의는 의미가 있다. “경영권은 사업에 대한 운영이나 지배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경영권’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하나는 사업의 운영이나 지배를 위한 권능으로서의 사업과는 분리된 주주권(의사결정권)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사업조직 내에서의 기업의 사업수행을 위한 일반적 권한이다. 전자는 사업 외부적인 것으로서 승계되거나 방어되거나 인수되는 일종의 재산권처럼 인식되지만, 후자는 사업 내부적인 것으로서 행사되거나 제한되는 일종의 지배권처럼 인식된다. 전자의 경영권은 후자의 경영권을 정초한다. 상법(회사법)에서 말하는 경영권이 전자를 의미한다면, 노동법에서 언급되는 경영권은 후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양 측면을 모두 고려해서 개념 정의한다면, 경영권이란 의사결정 권한에 기반하여 사업을 운영하는 권리라 할 수 있다.”[23] 요컨대, 경영권의 대상 또는 객체는 사업이고, 내용은 사업을 운영, 지배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영권의 내용과 실체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법 해석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을 유보한 채 포괄적이고 모호한 상태로, 그리고 상법과 노동법 등의 구체적 조항을 매개하지도 않고 그 자체로 구체적 권리로 인정하는 것은 법해석학의 포기나 다름없다.[24]

 

일터의 목소리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2017년 말 기준 10.7퍼센트로, 2004년 이후 최초로 10퍼센트대로 내려온 뒤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25] 이는 OECD 국가 중 미국과 함께 최하위권이다.[26] 물론 서구에서도 산업 구조 변화와 비정규 고용의 증대로 인해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경제 활동 인구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률이 2퍼센트대에 머물고 있어 지극히 낮고, 복수 노조 시행 이후 창구 단일화 제도 운용에 혼란도 존재한다. 한국의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방법, 즉 대안적 종업원 대표제(employee representation)의 모색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종업원 대표에 관한 제도로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대표, 노동조합, 그리고 노사협의회를 상정하고 있다. 이들 제도 간의 규범적 위상과 기능이 불분명하고 뒤섞여 있어서 법 운용상 혼선을 빚고 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노동조합의 대표성에 관해 의문이 제기되는 등 노사관계의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복수 노조가 허용된 이후로는 소수 노조 발언권 보장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대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다. 근로기준법에 이 개념이 도입되었지만 현재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등 여타 법률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대표는 법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과반수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대표성이 취약하다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게다가 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한 해석상 다툼이 많아 법적 안정성이 떨어진다.

노사협의회의 경우, 실효성의 문제가 있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상시 근로자 3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의무적으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노조 설립의 가능성이 낮은 사업장에서는 사용자들이 노사협의회 설치를 꺼리거나,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실정이다. 노사협의회가 종업원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또는 노조 중심으로 운영되어 사업장 내 취약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27]

노사협의회는 노동조합과는 달리 근로자 측을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사용자 측을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양쪽 모두를 포함하여 구성된다.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은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의결 절차상으로도 노동자 측의 의결을 실현시키거나 사용자 측의 일방적 조치를 저지시킬 법적 권한이 없다. 실제 노사협의회는 주체로 상정되기보다는 법으로 요구되는 경영 참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형식적 성격이 크다.

헌법 제33조의 근로3권을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단체를 노동조합으로 전제하는 현재의 노동조합 중심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임의적 단체인 노조와는 조직상 구별되는 종업원 대표 제도를 법정화하고 권한을 강화하고자 하는 방안이 위헌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조의 조직률 하락으로 인한 대표성 약화, 고용 형태의 다양화로 인한 다원적 채널의 필요성, 취약 노동자의 조직화 미비 등의 현실적 요인을 고려하면 노조 외의 대안을 모색하는 일은 필요하다. 노조 중심주의에 따라 노조를 제외한 다른 종업원 대표는 보충적 지위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노조가 없거나 소수 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종업원 전체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상시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에 대해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협의체를 제안하는 견해도 있으나, 필자는 근로자들로만 구성되는 종업원위원회(work council) 방식을 제안한다. 독일의 종업원위원회, 사업장위원회와 같이 종업원들만으로 구성되는 단체가 그 예다. 종업원 대표는 종업원 전체를 대표하는 정통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정통성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 구현될 수밖에 없고 이 점은 입법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노사 동수의 회의체 방식인 노사협의회보다 독일식의 종업원위원회 방식을 제안하는 이유다.

종업원위원회의 권한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조의 노동3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설계해야 한다. ILO는 다원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권장하고 있으면서도, 종업원 대표제가 기존 노조를 약화 또는 대체하거나 새로운 노조의 결성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급변하는 노동 현실에서 일터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대안적 형태의 종업원위원회가 필요하지만,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기능을 위축시키는 것은 안 된다. 향후 종업원위원회가 집단적이며 자발적인 방식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28]
[1]
대법원 2003.7.22. 선고 2002도7225 판결.
[2]
“대법원이 노동자의 단체행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노동자 보호 기준은 완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변경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혹평한 견해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강진구, <노동자 울리는 ‘노동법 심판들’>, 《경향신문》, 2015. 7. 7.
[3]
전형배, 〈경영권의 본질과 노동3권에 의한 제한〉, 《강원법학》, 제44권, 한국노동법학회, 2015, 661쪽.
[4]
도재형, 〈파업과 업무방해죄〉, 《노동법학》, 제34호, 2010, 93쪽.
노정희, 〈구조조정 반대를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의 정당성〉, 《노동법실무연구》, 김지형 대법관 퇴임기념 제1권, 사법발전재단, 2011, 662쪽.
[5]
신권철, 〈노동법에 있어 경영권의 비판적 고찰〉, 《노동법학》, 제63호, 2017, 48쪽.
[6]
도재형, 〈파업과 업무방해죄〉, 《노동법학》, 제34호, 2010, 93쪽.
[7]
대법원 1999.6.25. 선고 99다8377 판결.
[8]
대법원 2001.4.24. 선고 99도4893 판결.
[9]
대법원 2002.2.26. 선고 99도5380 판결.
[10]
‘한국시그네틱스 사건’, 대법원 2003.11.13. 선고 2003도687 판결; ‘한국과학기술원 사건’, 대법원 2003.12.26. 선고 2001도3380 판결 ; ‘대한항공 조종사 사건’, 대법원 2008.9.11. 선고 2004도746 판결; ‘한국과학기술원 사건’, 대법원 2003.12.26. 선고 2001
도3380 판결; ‘쌍용자동차 사건’, 대법원 2011.1.27. 선고 2010도11030 판결.
[11]
대법원 2000. 5. 26. 선고 98다34331 판결.
[12]
정인섭, 〈정리해고와 파업의 정당성〉, 《노동법률》, 2002년 4월호, 중앙경제사, 2002, 29쪽.
[13]
이용우,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일념으로》, 법률신문사, 2017, 49-68쪽.
[14]
Traux v. Corrigan, 257 U.S. 312 (1921).
이다혜, 〈미국의 노동가처분 (Labor Injunction): 20세기 초 법원의 보수성과 노동탄압의 역사〉, 《노동법연구》, 제32호, 2012 참조.
[15]
Stanley Young, 〈The Question of Managerial Prerogatives〉, 《ILR Review》, Vol. 16. No. 2, 1963, pp. 240-253.
[16]
최석환, 〈소위 경영권 논의의 연원과 성쇠〉, 《노동법연구》, 제45호, 2018, 173-174쪽.
[17]
신인령, 〈경영권·인사권과 노동기본권의 법리〉, 《노동인권과 노동법》, 도서출판 녹두, 1996, 86쪽.
[18]
박제성, 〈관할권 또는 법을 말할 수 있는 권한: 경영권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사회정의의 교의적 가치에 대하여〉, 《시민과 세계》, 제30호, 2017, 177-178쪽.
[19]
대전지방법원 2011. 1. 28. 선고 2010고단1581, 2729(병합) 판결.
[20]
서울고등법원 2015. 4. 29. 선고 2014나11910 판결.
[21]
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두20406 판결.
[22]
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7두38560 판결.
[23]
신권철, 〈노동법에 있어 경영권의 비판적 고찰〉, 《노동법학》, 제63호, 2017, 33-34쪽.
[24]
이에 관한 자세한 법리적 논쟁은 이철수, 〈노동법의 신화 벗기기: 아! 경영권〉, 서울대 노동법연구회 공개 세미나 발표문, 2017 참조.
[25]
고용노동부, 〈2017년 노동조합 조직현황〉, 2018. 12.
[26]
미국의 경우는 최근 공공 부문 노사관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고 요양 보호사, 청소업 종사자 등 서비스직, 그리고 이주노동자 등 전통적인 노동법의 외연에서 밀려나 있던 집단을 중심으로 노동 운동이 조직화 및 활성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상황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이다혜, 〈미국 노동법학의 현실-Karl E. Klare 교수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노동법연구》, 제37호, 2014 참조.
[27]
근로자위원 선출 절차 이행의 주체가 불명확하고 참여를 위한 절차 규정이 미비한 무노조 사업장의 경우, 근로자위원을 간접선거로 선출하거나, 회사가 지명 또는 추천하는 경우 등의 비율이 높고 직접선거 원칙을 구현하는 경우가 절반에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김훈·김정우, 〈노사협의회의 운용 실태: 무노조사업체를 중심으로〉, 《월간 노동리뷰》, 한국노동연구원, 2011년 2월호 참조.
[28]
종업원위원회 구성에 대한 최근의 논의로 김홍영, 〈취업규칙 관련 법리의 문제점과 대안: 근로자위원회의 사업장협정 도입 모색〉, 《노동법연구》, 제42호, 2017; 송강직, 〈노동자 경영참가와 노사관계 차원의 경제민주화〉,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경제민주화 심포지움 자료집, 2016. 등 참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