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완결

대기업, 주주 그리고 사회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만찬 자리에서 항공업계의 한 최고경영자는 전기 비행기 출시를 공언했다. 은행 관계자는 개발 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를 늘리겠다고 열변을 토했다. 고급 자동차 브랜드 최고경영자는 승용차의 호화로운 가죽 인테리어를 파인애플로 만든 식물성 매트와 버섯으로 짠 인조 가죽으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이런 제안이 기업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여기는 듯하다. 아마도 스스로가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업인들은 인간으로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세계 금융 위기까지 한 세대 동안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돈을 잘 버는 것이 곧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경제학자들, 경영계 거물들, 그리고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1]을 설립한 미국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들도 이런 시각을 갖고 있었다. 자유 시장에서 주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중에게 최상의 상품과 서비스를 전달하는 것이고, 고용을 최적화하며, 좋은 일에 쓰일 최대치의 부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하고 완고한 시각이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 부담을 줄이고도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이런 세계관은 지난 10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환경, 사회, 지배 구조(ESG) 규준은 투자 결정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지속 가능 투자 연합(GSIA·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Alliance)에 따르면 유럽,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ESG 규준에 따라 운용되는 자산 규모는 2016년 22조 9000억 달러(2경 7780조 원)에서 2018년 30조 7000억 달러(3경 7242조 원)로 증가했다. 주주 지상주의를 꼬집은 책 《번영(Prosperity)》을 발간한 콜린 메이어(Colin Mayer) 옥스퍼드대 교수는 ESG 규준이 투자자의 의제를 이전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주장했다. 물가 연동 채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세계적인 자산 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동의하고 있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회장은 기업이 단순한 이익을 넘어 그 이상의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지지해 왔다.
돈 있는 사람들/ 미국, 글로벌 기업 이익(세후)/ GDP 대비 비중, %/ 출처: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
과거의 세계관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투자자들만이 아니다. 투자 업계의 똑똑하고 젊은 직원들은 부모 세대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하게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세계가 정부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문제가 기후 변화와 경제 불평등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막대한 이익(표1)을 거둬들이고도 모두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 투자하기보다 주주들에게 배당하기 바쁜 기업들 역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 그동안 태만했던 기업들은 이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기업들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강요당할 수도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유력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은 대기업이 누리고 있는 것들은 권리가 아니라 특혜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기업들에게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특히 기업이 속한 지역 사회를 살피는 의무를 규정한 기업 헌장을 제안하고 있다. 이해관계자들과 지역 사회를 실망시키려는 기업이라면 이 헌장을 거부할 것이다. 워런은 자본주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계획이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젊은 미국인들에게는 더 이상 비아냥의 대상이 아니다(표2).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최고경영자들은 밀려오는 변화의 흐름을 마주하면서 깨달음을 얻거나, 굴복하고 있다. 8월 19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훌륭한 최고경영자들은 공기업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이제 기업들이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를 위해서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소비자에게는 좋은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근로자 훈련을 지원하고, 근로자의 성별과 인종을 다양화하며,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공급업자들과 거래해야 한다. 지역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게 나쁜 말은 아니야/ 미국, 해당 단어에 대해 아주 혹은 어느 정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의 연령별 비율, %/ 사회주의/ 자본주의/ 출처: 퓨 리서치 센터/ 조사 기간: 2019년 4월 29일~5월 13일
발표 이후, 즉각적인 반발이 일었다. 자산 운용사들로 구성된 비영리 법인인 기관 투자가 협회(The Council of Institutional Investors)는 신속하게 발표 내용을 비난했다. 일부는 이 발표가 워런 같은 정치인들을 달래려는 “회유책”이라고 지적하면서 자본주의의 죽음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움직임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반응은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얼핏 듣기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권고는 온건하다. 그러나 실제로 기업의 목적이 주주 가치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면,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업은 대체 누구의 것일까


주주 가치 우선주의와 관련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는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1962년에 쓴 글이다. “기업이 지닌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게임의 규칙을 지키는 선에서 기업의 이익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활동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속임수를 쓰거나 사기를 치지 않고 자유 개방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애국심을 기대하고 지역 사회가 기업을 중요한 재원이라고 여겼던 시기에 프리드먼의 직설적인 주장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에 극단적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프리드먼의 입장에는 충분한 신중함이 있었다. 그는 기업들에게 법 테두리 안에만 머무르지 말고 사회의 일반적인 윤리적 규범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주의 이익을 단기 수익과 동일하게 인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해석은 달랐다. 1980~1990년대, 주주 가치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한 미국과 영국, 유럽 대륙의 경영대학 학자들과 경영 컨설턴트들은 (이익 추구 이외에는) 약간의 뉘앙스 차이밖에 제시하지 못했다. 지배 구조와 관련한 가장 큰 우려는 경영자들이 어떻게 하면 가치를 추구하는 주주들의 관심을 대리해서 충족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마스터카드 회장 릭 헤이손스웨이트(Rick Haythornthwaite)는 이렇게 회상한다. “(주주 이익 추구라는) 통념에 반하는 최고경영자는 그 누구라도 연약한 것으로 간주됐고, 야망을 가지라는 조언을 들어야 했죠.”

이런 이단자들은 이제 당당해졌다. 단지 정치적인 여건이나 대중의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프리드먼이 단순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버드대학의 올리버 하트(Oliver Hart)와 시카고대학의 루이지 징갈레스(Luigi Zingales)는 프리드먼의 견해가 기본적으로 대리인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한다. 프리드먼은 표면적으로 기업에 득이 되는 일이라 해도, 경영자들이 주주의 돈으로 자선 사업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주주들이 이윤을 얻으면 스스로 좋은 일에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러한 견해가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하트와 징갈레스는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들이 사회에 미치는 외부 효과를 주주 개인이 통제하기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특히 정치와 법률 시스템이 변화를 가로막고 있을 때 더 그렇다. 예를 들어 미국의 현행 법 체계하에서 개인 주주들이 총기 사용을 금지하는 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주들은 기업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해 기업이 총기를 판매하도록 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기업들은 관리자가 아닌, 소유자(주주)들이 제시하는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주주 가치를 중심에 두고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은 근로자와 공급 업체 등 회사를 이루는 비재무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기업 가치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주주뿐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집단에 주목하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더 강력해지고 있는 기업의 힘을 새로운 요구에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경영자인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이런 목적의식과 “세계가 원하는 것에 맞춘다”는 기업의 미션이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신뢰는 중요한 문제이고, 마이크로소프트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목표이기도 하다. 나델라는 이렇게 말한다. “기술은 우리의 삶과 사회에 구석구석 스며들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 기업으로서의 우리는 인공지능(AI)이나 사이버 보안, 개인 정보 보호 등에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엔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다른 산업계 기업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마스터카드의 헤이손스웨이트 회장은 다양한 업계에서 일고 있는 디지털 물결이 특정 회사를 경쟁사들보다 압도적으로 앞서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권력 집중 때문에 앞서가는 플랫폼은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와 긴밀한 연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는 기업들이 선의를 갖고 추진하는 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사례일 것이다. 네 개의 대형 기술 업체(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를 포함한 25개 미국 대기업들은 미국의 2017년 파리협정 탈퇴 결정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총자산 가치 6조 달러(7278조 원)가 넘는 글로벌 기업 232곳은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낮춘다는 파리협정의 합의를 반영해 공장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로 약속했다.

전 세계 약 1400개 기업들은 탄소 배출권을 이미 활용하고 있거나,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제 많은 대기업들은 ‘탄소 배출 제로’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일부는 목표 달성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애플은 회사에서 사용하는 총 에너지량과 맞먹는 신재생 에너지를 확보했다.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후 변화의 위기 수준에 상응하는 대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탄소 배출 제로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 대부분은 탄소를 엄청나게 뿜어내는 기업들이 아니라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유형의 기업들이다. 적어도 부유한 세계에서 석탄에 투자하는 자금은 거의 없지만, 대형 기관 투자자들은 세계 주요 석유 기업의 주식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투자 분석을 위해 이론적으로는 탄소 배출권 가격을 활용하겠지만, 실제로는 화석 연료를 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의 탄소 배출 제로 약속은 기후 변화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 전면적인 경제 체제 전환이 아니라, 개별 기업이나 소비자들의 선택이라는 오해를 키울 수 있다.

기업들은 진보적인 대의명분을 지지하기도 한다. 2015년 소프트웨어 기업인 세일즈포스(Salesforce) 최고경영자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는 애플의 팀 쿡(Tim Cook)을 포함한 다른 경영자들을 이끌고 동성애자 차별을 허용하는 인디애나주 법안을 막는 데 앞장섰다.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이 경영자들은 무슬림 국가 국민의 미국 여행을 막겠다는 트럼프의 정책을 반대했다. 2018년 나이키는 미식 축구 경기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무릎을 꿇는 행동으로 경찰의 인종 차별에 항의한 이후 소속 팀을 찾지 못해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기도 했다. 페이팔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포함한 일부 단체들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있다.

댄 슐먼(Dan Schulman) 회장은 페이팔의 목표가 이 기업의 더 원대한 목적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이를 “미덕을 과시하는 것(virtue signalling)”이라고 조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이 문구로는 지금 재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과시라는 개념의 뿌리인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유의미한 신호를 보내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쉽게 날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미덕을 담은) 입장을 밝히는 일에는 돈이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런 캠페인을 통해 충분히 수익을 낼 수도 있다. 나이키가 콜린 캐퍼닉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것은 목표 달성이 중요한 개인들을 북돋는 역할을 하는 데다 열광적인 흑인 팬들을 거느린 나이키라는 브랜드와 잘 맞아떨어지는 전략이었다. 논쟁이 벌어졌을 당시 나이키는 조금 타격을 입었지만, 매출은 즉시 증가했고 주가도 곧 회복했다.

이런 전략에는 위험이 따른다. 나이키는 불매 운동을 요구하는 적색 주(red-staters·공화당을 지지하는 주)에 거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기업들은 좀 더 예민할 수 있다. 반발은 다른 방향에서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런던과 뉴욕에서 열리는 프라이드(Pride) 행진에 기업들이 후원을 하자, 일부 LGBTQ 활동가들은 기업의 후원을 전면 배제한 별도의 행사를 조직했다.

 

결국은 기업의 능력에 달려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좋은 일을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 자체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해 세일즈포스는 운영 중인 소프트웨어가 미국 국경 순찰대의 불법 이민자 문제 해결에 활용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휘청거렸다. 옳은 일을 하는 반자본주의자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스크림 기업 벤 앤 제리스(Ben & Jerry’s)는 올여름 런던의 학교 인근 지역에 지방을 다량 함유한 아이스크림 광고를 무더기로 게재했다가 광고 규제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소비자에 대한 정치적 전략은 기업이 고려해야 할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특히 기술 기업에선 노동자에 대한 정치도 중요하다. 세일즈포스와 미국 국경 순찰대의 관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것은 내부의 직원이었다. 지난해 구글 직원들은 무인 정찰기 공습에 활용되는 인공지능 기술의 국방부 제공을 중단하고, 미군의 클라우드 컴퓨팅 시설인 합동 방어 인프라 사업(JEDI·Joint Enterprise Defense Infrastructure) 조달 과정에서 중도 하차할 것을 회사에 요구하기도 했다. 구글은 경쟁사들보다 적은 수의 최첨단 데이터 과학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은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원들이 비슷한 우려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JEDI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아마존은 석유, 가스 기업과의 계약을 중단하라는 직원들의 압박에 직면해 있다.

기업의 정치적 입장이 노동자와 소비자를 만족시킨다는 측면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면, 기업들은 과하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진실성을 의심받지는 않을 것이다. 권리와 관련된 일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갖는 것은 성가신 문제일 수 있다. 기업들은 태아의 권리나 국경 안전에 대해서는 거의 입장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시장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기업들은 젊은 고학력·고소득 소비자와 직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사회적으로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세계는 아직 ESG 규준을 지키는 일과 이익 추구라는 가치가 실질적인 의미에서, 체계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다.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법대 교수인 스티븐 베인브리지(Stephen Bainbridge)는 “기업의 목적은 최신 유행을 좇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기업들이 정말로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주주들을 상대로 주가 10퍼센트 헤어컷(haircut·주가 평가 절하)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는 취약 노동자에 대한 지출이 늘어나는 시점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속적인 구조 조정은 효과가 없다. 헤지펀드 밸류액트(ValueAct) 캐피털의 제프 우벤(Jeff Ubben)은 “반복적으로 직원들을 해고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줄어들고 있다”며 “구조 조정은 미래를 위한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말했다. 일부 회사는 최저임금을 올렸고, 미래 자동화에 대비하기 위한 직원 재교육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익 창출은 인건비 지출과 직결되어 있다. 미국 최대 자선 기부 단체 중 하나인 포드 재단의 대런 워커(Darren Walker) 회장에 따르면 상당수의 최고경영자들은 급여와 복지 혜택을 어떻게 더 늘릴 수 있을지 논의하고 있지만, 기업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워커는 “경영자들에게는 보호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목적이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면 경영자들의 보호막이 되어 줄 수 있다.
영향력 있는 많은 투자자들과 기업 대표들은 “경영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2] 초기와 비슷한 시기로 되돌아가는 상황을 그려 보고 있다. 몇몇 경영자들은 주주의 이익이 기업의 이익과 완전히 합치하지 않을 때만 이해관계자나 지역 커뮤니티에 관심을 쏟는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모두가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 자산 운용의 창립자 폴 싱어(Paul Singer)는 “기업의 목표를 둘러싼 지금의 논쟁은 연기금, 퇴직 기금, 대학, 병원, 자선 기부 단체 등 사회적 선의를 행하는 기관 투자가의 수익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감추게 만든다”면서 “이런 사회적 선의는 기업 이외의 어느 기관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책임의 문제도 있다. 싱어는 “기업들이 더 이상 이윤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면서 “(그렇게 되면)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목소리 큰 정치 활동가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들이 신념을 갖고 사회적 활동을 시작해 활동가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은 기업과 경영자들이 이익 창출 이외의 목적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특정한 체계를 고안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3000여 개 기업들이 ‘B 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는 해당 기업의 윤리, 사회, 환경 부문 관행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비영리 단체 B랩(B Lab)이 정한 기준에 부합한다는 독립된 모니터링 기관의 확인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인증을 신청하는 대기업은 많지 않다. 인증 신청 기업 대부분은 소비재 브랜드들이다.

대안은 기업들이 주주 가치 이외의 목적을 밝히고, 그 목적을 지속적으로 지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옥스퍼드대학의 메이어 교수가 영국 기업들에게 권고하는 접근법이다. 기업들이 정관에 목적을 명기하고,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 검증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도록 법적 요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검증을 위해 공개적으로 기업의 목적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자본주의가 사방에서 격렬하게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가나 투자자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수정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기업에 반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위기를 맞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코로나 경찰 소속 제이슨 페레즈(Jason Perez) 경사는 분노했다. 캘리포니아주는 경찰과 다른 공공 부문 직원들의 임금을 인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세계 최대 연기금 가운데 하나인 캘퍼스(Calpers)가 재원 부족에 시달렸다는 것도 부분적인 원인이었다. 캘퍼스 역시 ESG 투자 부문의 초기 선도자다. 2001년 이 기금은 보유하고 있었던 담배 기업 주식을 매각했고, 좋은 성과를 냈었다.

2017년, 캘퍼스는 총 1390억 달러(168조 7000억 원) 적자를 냈다. 이 기금의 ESG 전략 부문 손실은 약 20억 달러(2조 4270억 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페레즈는 손해를 본 그 수십 억 달러가 진짜 돈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우리 가족 가운데 열한 명이 법 집행 기관에서 일하고 있고, 나는 이 기금이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캘퍼스 이사회가 법률을 준수하는 선에서 순수하게 잠재적 수익에만 기반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SG 거물인 캘퍼스 이사회 회장 프리야 마더(Priya Mathur)와 논쟁했다면, 페레즈가 이겼을 것이다. 앞으로 기업들은 목적을 재설정하고 개선해 나가겠지만, 여전히 페레즈 같은 사람들을 위해 성과를 내야 한다.
 
[1]
미국의 경제인 단체.
[2]
최고경영자 등 기업 관리자가 권력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본 축적, 조직 통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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