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의 죽음
1화

유사 죽음의 시대

유사 죽음의 시대 

 
“죽음은 우리에게 등을 돌린 또 다른 삶이다(Death is the side of life which is turned away from us).”
 
죽음을 깊이 사유했던 독일 시인 릴케의 언급처럼, 죽음은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다. 가장 꺼려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죽음은 인간 삶 최후에 발생하는 단발성의 사건으로만 그치지 않고 항상 삶 그 자체와 긴장을 유지한다. 흑사병이 창궐한 중세 유럽처럼 삶과 죽음이 매우 가까웠던 시기는 물론이요, 산업화 이전 대부분의 전통 사회에서도 삶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익명의 타인에서부터 가까운 친지의 죽음, 그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에 관한 경험까지,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죽음의 기억은 자신의 죽음까지도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시간을 건너뛰어 21세기로 오면, 서울을 포함한 세계 여러 도시들은 죽음과 단절되어 있다. 의학 발달과 농업 혁명으로 어느 때보다 많은 인구가 긴 수명을 누리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언젠가 죽고 마는 존재들(mortals)이다. 이상한 일이다. 산술적으로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가장 많은 사자(死者)들의 자리를 마련해야 할 상황이건만 도시 속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공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진짜 죽음과 대면할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종합병원 장례식장 정도다. 죽음의 흔적은 좀체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에는 수많은 형태의 유사 죽음이 존재한다. 죽음에 대해 사색한 인문학자 김열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을 두고는 악착같이 기피되는 ‘죽음’이란 낱말이 사물이나 사람 목숨과 직접 관계없는 현상에 붙을 때는 오히려 심하게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나무가 시드는 것을 ‘나무가 죽는다’고 하고, 소리가 낮아지는 것을 ‘소리가 죽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기가 꺾이는 것도 거침없이 ‘기가 죽는다’고들 한다. (…중략…) 이것은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죽음이란 낱말이 극단적으로 기피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역설적인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1]

이러한 일상적인 언어 습관은 대중문화 속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나타난다. 막장 드라마에서 시나리오 전개에 필요가 없어진 인물은 불치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쉽게 처리된다. 반신반인(半神半人)적인 주인공은 꼭 한 번 죽었다가 부활해 전생의 업을 짊어지고서 영원히 사는 판타지를 반복한다. 아무리 칼에 찔리고 총상을 입어도 죽지 않는 좀비가 영화나 게임 속을 휘젓고 다니고, 하트의 개수나 빨간색 게이지로 표시되는 가상 현실 속 아바타는 생명이 소진되는 즉시 ‘리셋’된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진이 게임에서 탈락해도 죽었다고 표현하며, 소위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에도 ‘맛이 죽인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표현이나 현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죽음 소재가 드라마 전개에서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고, 우리말 어법상 실제 죽음이 아닌 기운의 쇠퇴를 뜻하는 ‘죽는다’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게임 캐릭터의 죽음도 실제와는 다른 가상의 죽음임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가벼운 죽음, 쉽게 소비되는 가짜 죽음들이 범람하면서 가려지게 되는 진짜 죽음의 의미이다. 다양한 유사 죽음이 넘쳐나는 현상은 정작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실제 죽음을 몹시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죽음의 본래적 의미에 대해서는 몹시 터부시하면서도 편리하게 소비 가능한 죽음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감각하다.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연상 작용은 완벽하게 차단하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안전한, 반복 가능한 가짜 죽음에는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유사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무의식 한편에 자리한 두려움을 떨치지는 못한다. 현대인들은 죽음이 두렵고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그 두려움을 반복함으로써 스스로의 안전을 확인하려는 듯하다.

이로 인해 삶에서 진짜 죽음의 의미를 고찰할 기회는 자꾸만 뒤로 연기된다. 현대인들은 덮어놓고 꺼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본다. 마치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 전날 밤 찾아온 유령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갖는 것처럼.

 

도시 묘지의 행방불명

 
왜 우리는 죽음을 눈앞에 두지 않고서는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성찰하지 못하는가. 사실 인생에 대한 반성은 큰 사건을 통해서만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것들, 흔하게 지나치던 것들로부터 문득 작은 계기를 얻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많은 사람이 밀집해 사는 도시,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담고 있는 도시에서는 반성의 기회가 더욱 자주 주어진다. 우리는 수많은 타인과의 마주침을 통해 자연스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 죽음에 관한 성찰 역시 다르지 않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서부터 생면부지인 타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계의 죽음을 겪으며, 우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 도시에서는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현재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죽음을 상기시키는 어떠한 사건, 사물과 마주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은 많은 사람이 부대끼며 연출하는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담고 있지만, 그들이 한평생 삶의 연극을 끝내고 무대 뒤로 퇴장한 순간부터는 단 한 평의 땅도 허락하지 않는다. 죽은 자는 물론이고 죽음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을 깨끗이 지워 버린다. 삶의 영광은 나날이 도시 위에 덧씌워지지만 거기에 그늘을 드리우는 죽음의 흔적들은 모두 어딘가로 치워져 버렸다. 서울이라는 삶의 무대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익숙한 장면들이 있다. 큰 시련에 부딪힌 주인공이 복잡다단한 세속의 일을 뒤로하고 잠시 도시를 떠나는 장면이다. 그들은 잔디가 깔린 부모님의 무덤으로, 햇볕이 따사롭게 드는 교외의 봉안당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후회하거나 지난날 있었던 잘못에 용서를 빌기도 하고 대답 없는 망자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기도 한다. 무덤은 그렇게 거창한 일이 있을 때 방문하는 의례적 장소로만 묘사된다. 실제 우리의 모습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한평생 도시 안에서 살을 맞대고 살던 가까운 사람도 죽는 순간부터는 멀리 유배를 보내듯 도시 바깥 봉안당 한편의 조그만 상자 속에 유폐된다. 그러고는 1년에 두어 번 삶이 힘들어질 때나 찾는 존재가 된다.

죽음을 삶으로부터 떼어 놓고 나니 가까이 존재하는 죽음의 공간은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현대 도시인들은 새롭게 들어서려는 묘지와 봉안당, 화장장에 혐오감을 표출하며 반대 집회를 연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집값 하락을 우려하며,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의 학습권을 내세우면서 봉안당 설립을 극렬히 반대한다. 멀쩡히 있던 묘지 옆에 세워진 신축 아파트의 입주자들은 하루빨리 묘지를 이전하라고 시위한다. 묘지가 그 땅을 지켜 온 시간이 훨씬 긴데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이제는 그 누구도 도시 안에 죽음과 관련한 시설을 조성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해당 시설의 관계자들은 혹여나 안 좋은 이야기가 퍼질까 우려하며 몇 안 되는 방문객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감시한다.

왜 서울과 같은 현대 도시에서 죽음(의 공간)은 삶(의 공간)으로부터 멀어졌는가. 다시금 삶의 곁에 죽음을 위한 자리를 회복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죽음, 특히 묘지가 각국의 도시에서 홀대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대도시에서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대에서 지금처럼 산속 깊은 곳으로 유배되었던 것도 아니다. 근대화를 거치며 묘지는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그리고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은 도시마다 달랐다. 그 대응 방식의 차이가 지금 도시 풍경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프랑스 파리와 서울은 아마도 그 양극단에 위치한 도시일 것이다.

비록 중심부에서 밀려났을망정 파리는 도시 안에 묘지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공원화했다. 현재 파리 안의 묘지는 시민들을 위한 휴식처 역할까지 겸한다. 이와 달리 서울에서는 죽음을 기억하는 공간과 그 공간을 둘러싼 풍경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서울의 죽음은 도시 밖으로 밀려났다. 지금도 누군가는 같은 하늘 아래서 죽음을 맞고 있다. 그러나 서울은 마치 아무도 죽은 적이 없던 것처럼, 불멸의 공간인 것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근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죽은 자를 대하는 방식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죽은 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묘지를 삶터의 근처에 두는 것이었다. 그 사회가 절대 신을 믿든, 토테미즘에 근거한 원시성을 보이든, 조상 숭배 신앙을 갖든 상관이 없었다. 이는 죽은 자를 완전히 잊겠다는 것도 아니며 죽음 자체를 부정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죽은 자는 산 자들의 삶에 계속해서 참여했고 산 자들의 곁에서 두 번째 삶을 살았다. 전통 사회 사람들에게 현세는 내세와 구분되지만 완전히 단절된 세상은 아니었다. 죽은 자는 여전히 후손들과 관계를 이어 나가고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여겨졌다. 대체로 공동체나 도시 주변부에 형성되었던 이들의 공간은 항상 산 자들의 공간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름의 장소성을 가졌다. 그리고 산 자들은 이 곁에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다가 잠깐 들러 묵념하기도 하고, 관습에 따른 행사와 집회를 열기도 했다. 때때로 묘지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산책과 소풍 장소로 활용되었다. 죽음은 두렵고 꺼림칙한 것만이 아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삶의 연장이었다.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은 항상 적절한 거리를 두고 긴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자연 과학과 기술의 발달, 학문의 변화는 도시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공간마저 바꾸어 놓았다.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의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먼저 증기 기관 및 기차의 등장은 도시 공간과 그 안에서의 삶에 유례없는 변화를 일으켰다. 급속히 팽창한 도시는 전통적 도시 공간이 갖고 있던 물리적 한계를 순식간에 넘어섰다. 지금의 도시인들은 지하철과 같은 교통수단을 통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쉽게 건너뛴다. 그 사이의 공간은 생략된 것처럼 느껴진다. 교통수단에 올라탄 이들은 도시를 파편적으로만 경험하게 되고, 생략된 공간은 기껏해야 파노라마적 풍경으로 인식된다. 균질해진 도시 속 공간은 언제나 편집 가능한 대상으로, 하나의 전체라기보다는 노드와 링크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로 여겨진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묘지는 개혁이라는 이름의 통폐합을 거쳐 도시 바깥으로 밀려난다.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고 쉽게 갈 수 있으니, 더 이상 비싸고 이용 가치가 높은 도시의 땅을 점유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이와 함께 등장한 근대적 위생 관념까지 묘지 추방에 한몫을 거들었다. 해부학과 세균학의 등장은 묘지와 그 속에 묻힌 시신, 시신이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오수(汚水), 악취 등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하고 위험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기술과 학문의 발달은 삶에 윤택함을 불러왔지만 몇몇 사물과 현상들에서 그동안 느껴 보지 못한 ‘불쾌감’과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심어 주었다. 이제 사람들은 불쾌감과 불편함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는 것이라면 눈앞에 보여선 안 될 것으로 취급한다. 시신과 묘지는, 나아가 죽음은 삶 가까이에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얼핏 보면 과거에도 죽음을 위한 공간은 주로 도시 주변부에 위치했으니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죽은 자는 산 자들과 다른 장소를 부여받고, 도시 안팎에 걸쳐 있긴 하나 대체로 도시 가장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묘지-도시 간 관계는 과거와는 전적으로 다른 양태를 보인다. 현대인들은 더 이상 일상에서 죽은 자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삶 속에서 실제로 체감하게 되는 죽음(의 공간)이다.

현대 도시에는 수천 년간 존재해 온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의 상호 관계가 더 이상 없다. 과거에는 도시 안팎이 긴밀히 상호 작용했고 삶의 범위 역시 도시 전체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주변부의 여러 장소들까지 포괄했지만, 근대 이후 나타난 거대 도시는 애당초 그러한 경험을 불가능하게 했다. 도시 내부와 외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현대인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도시의 경계도 성벽이나 행정구역선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도시의 안과 밖이 철저히 나뉜 것처럼, 우리는 삶과 죽음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 한들 서울 전체를 자신의 집으로, 생활 영역으로 여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대 도시 속, 사람들은 설사 죽음을 담는 공간이 도시의 경계부에 위치하더라도 그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도시의 경계가 더 이상 도시에서의 삶의 경계가 되지 못한다. 주변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의미 없는 공간에 불과하다. 묘지나 봉안당 같은 장소들도 교통수단으로 연결된 하나의 노드로 전락하여 도시 바깥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현대는 삶의 외연과 도시의 외연이 겹치지 않는다. 묘지는 일상의 경계가 되지 못하고, 1년에 한두 차례 방문하는 목적 지향적 공간이 되어 버렸다.

 

불가분적 관계에 관하여

구스타프 클림트의 <죽음과 삶>
근대화 과정은 도시인의 삶과 죽음 문제에 두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도시인들이 삶의 의미를 뿌리내릴 수 있는 바탕 자체가 축소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유명한 그림 <죽음과 삶(Death and Life)>이 보여 주는 것처럼 그 둘은 애초부터 불가분리의 관계다. 클림트가 8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이 대작은 그 스스로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작업한 것이다. 삶과 죽음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통찰을 한껏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로 표현했다. 그림 속에 뒤엉킨 사람들은 한 인간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주목할 것은 그중 하나의 단계로, 혹은 모습으로 ‘죽음’이 들어가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 꿈꾸는 표정의 소녀, 부둥켜안은 연인과 그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까지. 인생의 여러 모습이 다채로운 색들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 속에 죽음을 위한 자리는 없다. 죽음을 나타내는 해골 형상은 삶의 모습 전체와 거의 대등하게 그림의 왼편을 차지하고서 오른편에 한 덩어리로 뭉쳐진 사람들을 보고 있다. 그러나 오른편의 인물들은 죽음이 자신을 주시하는지도 모른 채 오히려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림 바깥에서 이들을 함께 보는 우리는 강한 불안감, 긴장감을 느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이 전체를 조망하는 시점이다. 죽음은 삶의 끝에 위치한 단순한 사건 하나가 아니라 삶 전체를 비추는 일종의 지평이다. 죽음이 삶의 연장이고 이면이라면, 삶과 죽음은 상호 간 의미를 규정하는 배경이며, 일상 속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그림 속에 엉켜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왼편의 죽음을 응시했다면 그림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죽음을 꺼리고 시신 역시 어딘가에 기능적으로 처리해 버리면 그만인 일종의 폐기물처럼 다루어지는 상황에서 삶의 의미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은 서로에게 바탕이 되지 못한다. 삶은 삶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일시적인 이벤트로 소진된다. 죽음을 잃은 현재 우리의 도시는 결국 반쪽짜리인 셈이다. 우리는, 우리의 도시는 밝고 화려하고 보기에 좋고 수익을 창출하며 즐거운 것만을 가까이에 두고 그 반대의 것들을 철저히 외면한다. 죽음을 삶에서 떼어 낼 수 있다고 여기며 회피할 수 있는 것인 양 행세한다.[2] 1년에 단 하루 이틀 죽은 자를 위한 시간을 할당해 놓고 나머지 360여 일을 철저히 삶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도시에서 쫓겨난 묘지는 더 이상 일상생활의 바탕이 되지 못하고, 죽음은 삶의 결정들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림을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핵심이 되는 사물이나 인물의 배경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 것처럼 삶의 의미는 삶 그 자체만으로 온전할 수 없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오른편을 보면 평온함과 기쁨밖에 보지 못하지만, 전체를 함께 보면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죽음이 삶과 엉켜 있고, 묘지가 도시를 감싸고 있던 과거의 사람들은 다양한 거리(distance)에서, 그리고 거리(street)에서 죽음을 대면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죽음, 그냥 안면만 있는 이의 죽음, 자주 인사를 나누던 마을 사람의 죽음, 친했던 이웃의 죽음, 가까운 친지의 죽음, 가족의 죽음……. 인간관계가 연장된 죽음의 스펙트럼은 마을 인근의 묘지에 표시되었다. 친지와 가족묘를 넘어 묘지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타인까지 모두를 위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한 발짝 떨어져 관조적 시선으로 익명의 죽음을 바라보며 삶을 성찰할 기회를 얻었다. 묘지는 가까이에서 죽음이 발생했을 때 그 강렬한 경험을 담아낼 그릇이자,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을 준비할 자양분이었다. 타인의 죽음에 대한 얕지만 넓은 시각으로부터 강하고 좁은 자신의 생사관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상호 보완적으로 형성되었다.

현재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는 정확히 양극단으로 나뉜다. 안타깝지만 혹여 내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꺼림칙한 타인의 죽음과,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릴까 겁이 나는 내 가까이의 (혹은 나의) 죽음이다. 내 삶의 영역 안에 들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더욱 엄격해졌다. 가족의 묘지는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묘지는 불길하고 무섭다. 현대 도시인은 죽음의 다양한 층위를 가늠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그러데이션을 포착하지 못한다. 그리고 묘지는 도시 곁에서 삶을 지켜보지 못하며, 도시를 되비추던 거울의 역할을 박탈당했다.

삶이 빛에 비유된다면 죽음은 어둠, 혹은 그림자로 비유된다. 그러나 빛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듯 어둠의 농담(濃淡) 역시 다양하다. 마치 클림트의 그림 속 죽음(의 신)이 입고 있는 칙칙하고 어두운 옷에도 오른편의 사람들 못지않은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 여러 인생을 마주하며 삶의 지표를 설정하듯, 죽음에 대한 직간접적 경험이 수반되어야 자신의 죽음에 대한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은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로서만 받아들여질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일 깊이감 혹은 두께를 형성할 기회를 갖지 못한 우리는 어느 날, 가까운 이의 부고에 충격을 받고 망연자실할 것이다.

죽은 자가 누울 자리는 산 자들이 결정하지만, 산 자들의 삶의 방향은 죽은 자가 제시할 수 있다. 빛으로만 가득한 공간에선 오히려 빛의 존재를, 그 소중함을 알 수 없다. 다채로운 삶의 빛을 성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둠이, 그것도 다양한 깊이의 어둠이 필요하다.

지금도 서울은 반성과 성찰의 공간을 거의 잃어버리고 삶의 화려함만으로 채워져 있다. 이를 위한 장소가 반드시 묘지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묘지를 배제하고 들어서는 도시 속 공간들 중 이를 대체할 만한 것이 드문 것도 현실이다. 우리는 묘지가 갖는 가치와 그 역할을 되돌아봐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성찰, 근대화 이후 그 기회를 거의 가져 보지 못한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반성을 다시금 시작해야 한다.
[1]
김열규,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궁리, 70-71쪽, 2001. 
[2]
이는 죽음의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종 생산 공간, 쓰레기장, 하수처리시설, 산업 시설, 그리고 일부 복지 시설까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다양한 공간이 주변부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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