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으로 가는 길
2화

중국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자율주행의 세계로 가는 길은 길고 구불구불하다

중국 베이징의 룽화난루(荣华南路)를 천천히 움직이는 자율주행 자동차들은 미국의 경쟁사가 만든 자동차와 똑같이 생겼다. 차제 지붕에 고정된 센서 받침대와 트렁크의 슈퍼컴퓨터로 무장한 두툼한 세단 말이다. 중국 정부는 룽화난루를 포함한 베이징의 남동 지역을 ‘베이징 e타운’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곳은 중국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AVS) 시운전 지역 중 하나다. 디지털 차선이 설치되어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도로의 일부를 자율주행 전용으로 바꿀 수 있다. “국가 시범 도로”라고 쓰인 표지판들도 세워져 있다. 자동차들은 중국의 대표 자율주행 기술 기업인 바이두(Baidu), 포니.AI(Pony.ai), 위라이드(WeRide) 로고를 달고 있다.

수년 동안 서구 자동차 제조사들은 지금쯤이면 도로를 더욱 안전하게, 덜 복잡하게 만들어 줄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세상에 넘쳐날 것이라고 약속해 왔다.(표1 참조) 그렇지 않은 현실은 전산화를 바탕으로 통제되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 주는 것만은 아니다. 이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확산된다면, 그런 미래가 처음 실현되는 곳은 서구가 아니라 중국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 기업들은 그 과정에서 큰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직관에 어긋나는 전망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기술적으로, 서구 국가들은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모두가 ‘웨이모’와 ‘크루즈’에 뒤지고 있습니다.” 중국 자율주행 기업의 최고경영자도 알파벳의 자회사 웨이모와 거대 자동차 제조사 제너럴모터스(GM)의 크루즈를 각각 언급하며 현실을 인정했다. 웨이모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운행한 거리만 따로 계산해도, 중국 자율주행 자동차의 주행 거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크루즈는 2016년 GM이 10억 달러(약 1조 1864억 원)에 인수한 이후, 62억 달러(7조 3557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리서치 회사인 CB인사이트는 2014년 이후 미국의 자율주행 자동차 기업들이 총 119억 달러(14조 1182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고 추산한다. 같은 기간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액은 44억 달러(5조 2202억 원)에 그쳤다.
느린 길로 가는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사/ 자율주행의 중요한 사건들/ 1939 월드 페어 퓨처라마 전시회에서 자동화된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 소개/ 1940 노먼 게데스, 저서 《매직 모터웨이스》에서 1960년대에 자율주행차가 등장할 것이라 예측/ 1957 RCA 연구소, 네브라스카에 순환로를 설치해 자율주행/ 1960 도로에 내장된 자석으로 움직이는 영국의 자율주행차가 시속 130킬로미터로 시험 주행용 도로 주행/ 1987 유럽 국가들이 자율주행 연구 프로젝트 유레카(EUREKA)에 7억 4900만 유로(9785억 8348만 원) 지원/ 1987 HRL 연구소의 오프로드 자율주행 시스템이 시속 3킬로미터의 평균 속도로 험난한 지형을 주행/ 1995 카네기멜론대 연구팀이 주도한 “노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 5000킬로미터 거리의 98.2%를 자율주행/ 2004 미국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이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240킬로미터의 오프로드 자율주행 대회를 개최. 성공한 참가자 없음/ 2005 두 번째 대회 개최. 다소 쉬운 경로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5개 팀이 자율주행 성공/ 2008 광산 기업인 리오 틴토가 자율주행 채굴 트럭 시험 운행 시작/ 2009 구글의 자율주행 프로젝트 시작. 후에 웨이모로 발전/ 2010 아우디의 자율주행차가 카 레이싱 경로인 파이크스 피크 고속 주행/ 2012 네바다 주가 미국 최초의 자율 주행 면허를 구글에 발급/ 2016 테슬라의 모델S가 플로리다에서 트럭과 충돌하면서 첫 번째 자율주행차 사망 사고 발생/ 2018 웨이모가 제한적인 수준의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피닉스에서 개시/ 출처: 이코노미스트.
 

중국식 자율주행


혼잡한 도시의 거리에 대처할 수 있는 운전 소프트웨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몇몇 중국 기업들은 대안이 될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그들은 도시의 도로 자체를 소프트웨어가 관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자동차들을 안내할 수 있도록 도로에 센서를 설치하고, 안전한 보행 방식에 대한 규칙을 만들어 시행하며, 도시를 자율주행 친화적으로 설계(또는 재설계)하는 것이다. 불가피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율주행 기업의 법적 책임을 제한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통제가 어렵고 소송이 난무하는 서구의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 중국에서 훨씬 쉬운 일이다.

이런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헌신적인 자율주행 자동차 기업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차이나모바일 같은 모바일 통신 사업자, 그리고 화웨이 같은 통신 장비 제조사들은 스스로 운전하는 차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화웨이는 자율주행에 필요한 작업 과정에서 속도가 빠른 5세대 네트워크(5G) 모바일 안테나가 큰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상당한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자율주행 기업 입장에서는 가져갈 파이의 크기가 작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파이 자체의 크기는 더 빨리 커질 것이다. 독일 기계 제조 대기업이자 중국 자동차 제조사에 고성능 부품을 공급하는 보쉬(Bosch)의 프로젝트 엔지니어 펭하오(Feng Hao)는 자율주행 자동차 한 대당 투입되는 기반 설비의 비용이 낮아지면 자율주행 자동차는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공업 신식화 부장(장관)인 먀오웨이(苗圩)는 최근 연설에서 2020년에는 커넥티드 자동차(정보 통신 기술과 자동차를 연결시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차량) 시장이 1000억 위안(16조 7450억 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자율주행 자동차 역시 14억 명에 달하는 중국인들의 엄청난 잠재 수요를 갖고 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중국의 자율주행 자동차 수요가 2040년에는 2조 달러(2372조 8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중국 기업들은 궁극적으로 완전한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래하기 전에 번영을 누릴지도 모른다. 벤처 캐피털 펀드인 중국 창업 벤처(China Creation Ventures·CCV)의 저우웨이(周炜) 대표는 중국 기업이 이미 도약 효과(leapfrog effect·급성장하는 개발 도상국의 경제에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빠른 속도로 기반 시설이 구축되는 현상)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창업 벤처가 투자하는 기업 중 하나인 코와 로봇(Cowa Robot)은 거리를 미화하는 로봇을 중국 후난(湖南)성의 성도인 창사(長沙) 지방 정부에 팔았다. 기업 가치가 30억 달러(3조 5592억 원)에 이르는 호라이즌 로보틱스(Horizon Robotics)는 코와 같은 회사들을 위한 자율주행 특화 컴퓨터를 공급한다.

단순한 작업을 먼저 자동화해 돈을 벌어들인 회사들은 더 완전한 형태의 자동화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완전한 자율화는 미국의 몇몇 풍족한 경쟁사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 중국의 기업들도 강력한 기성 사업자들과 맞붙을 정도로 성장했다. 동시에 중국 기업들은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받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조인트 벤처의 경우, 해외 기업은 소수 지분만 취득할 수 있다는 제한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자율주행 기업들은 서구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노골적 지원이다. “중국 정부의 계획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상당합니다.” 한 중국 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말했다. 정부는 그의 회사와 같은 기업들이 성공하길 원한다. 그리고 정부의 독재적인 권력을 공공 기반 시설을 구축하거나 새로운 기술의 보급을 촉진하고, 정책을 재설계하는 데 투입할 의지가 충분히 있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5G 기술에 2200억 달러(261조 8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2020년대에는 자율주행 기반 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자율주행차와 이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발생하는 데이터를 점유하기 위한 통신 네트워크, 이 데이터들을 처리하기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 용량, 그리고 차량을 안내하기 위한 지도 서비스가 포함된다.
여행의 미래/ 출처: 이코노미스트.
게다가 당국자들은 자율주행 친화적인 기준과 규제를 장려한다. 중국은 “국가 시범 도로”를 도시 구조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을 수 있다. 서방 국가라면 정부 관계자들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제기되는 불만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필요한 지도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캘리포니아 회사 딥맵(DeepMap)의 아메르 악타르(Amer Akhtar)는 중국과 같은 일당 독재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한 가지 문제에만 집중하면서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정부를 갖게 되는 겁니다.”

물론 중국의 자율주행 업계가 처한 상황도 순탄하지만은 않다. 나머지 중국의 기술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미중 무역전쟁에 얽혀 있다. 지난 5월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과 중국 화웨이의 공급 계약을 금지했다. 화웨이의 통신 장비가 중국 당국의 도청에 쓰이고 있다는 이유였다. 10월 7일에는 또 다른 8개 중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추가됐다. 여기에는 컴퓨터 비전(비디오 카메라로 포착한 정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일)과 같이 자율주행 자동차에 필용한 작업을 하는 기업들도 포함됐다.

미국 기술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은 특히 자율주행 기업들에게는 걱정스러운 일이다. 중국 자동차 업계는 이 현대적 운송 수단을 작동시킬 수 있는 전기 장치의 대부분을 해외의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총 3120억 달러(370조 1568억 원) 규모의 집적 회로를 수입했는데, 이는 중국이 수입한 자동차 부품 가치의 10배 규모다. 자율주행 시장을 주시하고 있는 중국 기업가들은 다수의 전도유망한 스타트업들을 인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미국법을 따르는 실리콘밸리에 있다. 중국 내에서 더 많은 최첨단 기계들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점차 활력을 잃고 있다.

중국의 자율주행 개발사들이 서구의 경쟁사들이 맞닥뜨렸던 가장 큰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구의 기업들처럼 포니.AI, 위라이드, 그리고 또 다른 중국의 기업들 역시 계속 돈을 잃고 있다. 이런 경향은 빠른 시일 내에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소유의 자율주행 자동차를 원하는 운전자들의 희망은 아직 첫발도 떼지 못했다. 궁극적으로 인건비가 들어가는 인간 운전자를 제거한다는 전제로 미래 수익성을 담보해 왔던 공유 자동차 사업 모델은 불안해 보인다. 투자자들은 우버(Uber)와 같이 손실을 발생시키는 기업에 대한 인내심을 점점 잃어 가고 있다. 우버의 시가 총액은 지난 5월 상장 이후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여전히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국에서 사람보다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최고경영자가 “만약 운전자는 넘쳐나는데 도로 위 공간은 좁다면, 당신이 첫 번째로 풀어야 할 문제는 자동차 안에서 운전자를 빼내는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자율주행에 대한 중국의 접근 방식은 더 넓은 범위의 개발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공공 기반 시설과 정부의 감독에 무게를 두고, 최첨단 기술과 시민의 자유는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언젠가 중국은 자율주행으로 가는 서구의 통로를 잠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자율주행 기업들이 스스로의 기술만으로 자동차의 네 바퀴를 굴릴 수 있게 되거나, 그것으로 돈을 벌게 되는 미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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