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
7화

김용수 “꾸준함으로 자신의 자리를 빛내라”

김용수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일반적인 선수들이 초등학교 3,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늦은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재미 삼아 동네에서 야구를 한 게 전부였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반 대항으로 야구를 했는데 잘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봄 방학 때, 공을 던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선배의 추천으로 야구부에 들어갔다.

김용수가 투수로 본격적인 활약을 하기 시작한 것은 프로 데뷔 2년째인 1986년부터였다. 데뷔 첫해에 겪은 무릎 부상에서 회복한 그는 팀이 치른 108경기 중 60경기에 출전해 178이닝, 9승 26세이브, 평균자책점 1.67을 기록하며 구원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그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선발도 마무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보직이 없는 상태에서 등판 기회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코치에게 보직을 분명하게 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마무리 보직이 그에게 떨어졌다. 그가 원한 보직은 마무리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구원 투수라는 보직은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불만이 있어도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선수의 입장이었다. 1987년 시즌, 김용수는 심리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불안했던 악조건 속에서 9승 24세이브를 따내는 활약을 펼치며 2년 연속 구원 부문 1위를 달성했다. 프로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곧바로 최고의 소방수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그러나 보직과는 상관없는 혹사가 이어졌다. 김용수는 감독이 원하는 대로 선발이면 선발, 마무리면 마무리, 닥치는 대로 소화해 내야 했다. 심지어 2주 동안 팀이 가진 9경기 중 8경기를 나간 적이 있을 정도이니, 정말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김용수에게는 이것이 곧 슬럼프였다. 명확한 보직이 없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투수에게 보직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선발이냐 마무리냐에 따라 만들어야 하는 몸의 상태, 경기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등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해진 보직이 없는 투수는 심신을 경기에 최적화시킬 수 없다.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다양한 보직을 맡아 혹사를 당하면 부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국 보직이 없다는 것은 투수에게는 위협적인 환경일 수밖에 없다. 김용수가 제대로 된 보직을 정해 주지 않는 감독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폄하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이유다.
 
또 개막전 선발로 나가서 8회까지 3점 주고 내려왔어요. 그다음 토, 일 경기니까 월요일 쉬고 화요일부터 또 대구로 내려가서 게임을 해야 돼요. 그런데 또 그때서부터는 마무리로 보직이 변경된 거예요. 그런데 둘째 날인가에 3일을 쉬고 나가서 던지는데, 6회인가 7회에 어깨에서 ‘뚝!’ 소리가 나는 거예요. ‘어, 이상하다?’라고 생각을 했지만, 던진 게 있으니까… 그 열기 때문에, 또 긴장감이 좀 있기 때문에 그냥 던졌어요. 그냥 마무리를 했죠. 제가요. 선발이 5이닝 던지고 내려오면 제가 올라가서 4이닝 던져요. 어떨 때는 선발이 5이닝 던지면, 제가 연장전까지 7이닝 던진 적도 있어요. 마무리가 아닌 거죠. 제가 86년도에 60경기를 나갔는데, 전체 경기가 108경기인데… 그다음에 마무리 투수가 174이닝을 던졌어요. 88년도에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깨가 안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코치한테 어깨가 안 좋다, 아프다고 하니까, 며칠 쉬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공을 던지려고 하는데, 도저히 팔을 못 들겠더라구요. 그때만 해도 2군이라는 개념이 없었거든요. 대신 엔트리 빠진 선수들이 연습하는 데가 있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그리로 갔으면 좋겠는데 보내 주지는 않고. 계속 시합 따라다니는데, 아우 죽겠는 거예요.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어깨가 나을 기미를 안 보인다”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다음 날 올라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올라가자마자 트레이너한테 마사지를 받았는데 트레이너 말이, 근육 자체가 완전히 꼬였대요. 근육 자체가 뒤엉켜 가지고 부상이 왔대요. 그래서 치료받으면서 몇 달을 쉬었죠.
 
제대로 된 보직 없이 닥치는 대로 나가는 선수 생활이 계속됐다. 마무리 상황이 아닌데도 나가라는 감독의 말에 못 나가겠다고 맞서 보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이 끝나자마자 죄송하다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과 선수의 관계는 위계가 분명한 수직적 관계다. 무엇보다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 출전 여부를 결정하는 전권을 갖고 있다. 그는 당시 팀에서 감독에게 그렇게 맞선 것은 자신이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과는 했지만 한동안 김용수는 경기에 등판하지 못했고, 시즌 전반기에 1승 2패 3세이브라는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김용수는 저조한 성적보다도 감독과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가 더 힘들었다고 했다. 감독과의 관계가 어색해지면서 감독도 자신을 편하게 대하지 않는 것 같았고, 스스로도 경기에 집중을 못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불분명한 보직, 무차별적 혹사의 문제는 감독과의 갈등으로 귀결됐다. 이러한 문제는 선수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감독과 선수 사이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감독이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레전드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높고 슬럼프에 대한 문제 해결 의지가 높은 편[1]이지만, 자신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무기력함을 느끼고 비관적 귀인을 할 수밖에 없다. 김용수도 감독과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반복은 결국 경기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감독의 말 한마디, 이게 뭐랄까, 홀렸다고 할까? 내 뜻대로 잘 안 되더라구요. 희한하게 나가면 불안하고, 괜히 쥐구멍 들어가고 싶고… ‘잘 안 풀리네’ 그런 생각만 들고. 그리고 다른 선수들의 경우에는 감독이랑 내기를 잘해요. 골프채 내기 그런 거… 그런데 이상하게 감독님이 저한테는 그런 얘기를 안 하시더라고요. 아, 나도 했으면 좋겠는데. 저한테는 그런 제안도 없었으니까.

감독의 일관성 없는 투수 운용은 이어졌다. 4월 달에 선발, 5월 달에 마무리, 6월 달에 선발, 7월 달에는 또 마무리. 한 달 간격으로 보직이 계속 바뀌었다. 김용수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서 ‘노예가 될 것만 같은’ 불안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고는 결단을 내렸다. 일단 최선을 다해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무엇을 말하든 내 주장을 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노력만으로는 감독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보직과 혹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직면하고 받아들였다. 동시에 그는 감독이 어떠한 보직을 주든 좋은 성적을 내서 상황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 전체 경기의 절반 이상을 소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러한 결정은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고, 실패의 가능성 또한 높았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기로 했다.

김용수는 성적 향상을 위해 새로운 기술에 도전했다. 어렵다고 포기하면 결코 발전도 없다. 포기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발전도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세상에 편한 것도 없고 어려운 것도 없어요. 왜냐. 어렵다는 자체는 시도를 안 해봤기 때문에 어렵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시도를 해봐야지! 저는 반드시 해봐요. 다른 그립을, 매듭을 다른 걸 잡고 한번 던져 봤어요. 그런데 해보고 던지니. 타자들이 당황하며 말하더라구요. “이거 무슨 볼이야?” 그래서 대답했죠. “마구인데요?” (웃음)
 
일본인 코치가 그에게 스플리터를 던져 보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왜 그걸 시도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의 공도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그러나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는 선발로서 타자 공략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고, 연습을 시작했다. 새롭게 시도한 스플리터는 타자들에게 먹혀 들어갔다. 던지기 쉬운 공은 아니었지만 빠른 스피드와 좋은 무빙은 시도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부상의 위험도 높아요. 그리고 하게 되면 손가락 사이의 근력이 많이 떨어져요. 힘을 많이 주게 되니깐. 요즘에도 애들한테 이거 잡고 던지게 해주면 몇 개 던지고 못하겠다고 해요. 아프거든요. 그럼 선수들한테 제가 보여 줘요. 물론 저도 힘들고 아팠죠. 그래도 그거를 내 걸로 만들려고 생각을 하니까… 아파서 그만두느니. 되는데! 먹히는데! 안 써먹을 이유가 없잖아요. 아픈 건 순간이지 이게 계속 지속되는 게 아니잖아요. 계속 지속되면 포기한다지만. 지나면 안 아픈데, 계속 던지는 게 당연하죠.
 
김용수는 도전을 통한 성공 경험이 축적되면 그 뒤에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가 생긴다고 했다. 용기를 가지고 시도해 보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은 그가 슬럼프 극복을 통해 심리적 성장을 이루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심리적 성장은 경기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이후 닥칠지 모르는 또 다른 슬럼프에 대비하는 자원이 될 수 있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포기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 제가 물어봐요. “왜 안 된다고 생각해? 한번 해보기는 했어?” 그럼 선수들은 말해요. “아니요. 그냥 안 될 것 같아요.”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저는 해보라고 독려해요. 왜냐하면 제가 겪어 봤기 때문에. 겪어 보지 않으면 그런 말을 자신 있게 못하죠. 하지만 저는 해봤으니까요. 요즘 젊은 선수들을 보면, 자기 몸을 쓰고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어디에도 안 된다고는 나와 있지 않아요. 물론 된다는 그런 보장도 없어요. 하지만 가면서 돌파구가 있으니까. 그걸 스스로가 깨나가면… 탁! 그게 자기 거가 되는데. 그걸 해야지, 왜 겁을 먹고 몸을 사리는지 모르겠어요. 그 한 가지, 그 한 번을 해내면 ‘아 되는구나!’ 깨닫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그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발전한 위치에 서게 되는 거죠.
 
김용수는 1991년부터 계속 허리가 아팠다. 그러나 공을 던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참고 경기에 나갔다. 그런데 1992년 미국 전지훈련에 참가하던 중, 한 후배 선수가 그의 허리 모양이 이상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도 전지훈련은 다 소화했다. 그는 나름대로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며 버텼다고 했다. 선수의 신체에 문제가 생기면 코치에게 얘기하거나 바로 치료를 받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감독과의 갈등, 혹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신체적인 문제까지 더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견딜 수 있는 만큼 견뎌 보려고 했다.
 
한쪽 골반 오른쪽이 이렇게 틀어졌어요. 골반 높이가 주먹 하나 차이예요. 꽤 많이 나는 거죠. 엄청나죠. 그래도 참고 운동했어요. 한쪽은 맨발로 다니고, 한쪽은 두꺼운 거 신고 다니고. 그러니까 허리로 따지면 이쪽은 길고 이쪽은 짧잖아요. 그래서 반대로 이렇게 교정을 했는데, 문제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다 보니 그게 더 심해진 거예요. 집에 와서 자려고 하는데 도저히 못 자겠더라고요. 너무 아파서 눕지를 못했어요. ‘사람이 이래서 죽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까지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또 지방까지 시범 경기를 갔네, 아픈 허리를 가지고. 어떻게든 경기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검진 결과, 좌골 신경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은 받지 않았다. 같은 부상이 있었던 박철순 선배와 상의했지만 수술을 해도 통증은 그대로이니 그냥 이겨 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치료만 받았다. 투구 밸런스가 무너졌고, 경기력 면에서도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다. 한 시즌을 날릴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그는 입원 중에도 등판했다.

심각한 부상을 겪은 선수들은 부상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더불어 재부상의 불안, 부상 이전의 경기력을 보여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곤 한다. 그러나 김용수는 그렇지 않았다. 신체적인 고통과 경기력의 하락은 경험했지만 심리적인 고통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경기에 나가지 못할 때도 그는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괴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나가고 싶다. 내보내 달라’는 강력한 의지를 표출했다. 이러한 김용수의 부상 투혼은 그가 야구에 대한 몰입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슬럼프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 자존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저는 선수들한테 항상 그런 얘기를 해요. “유니폼이 마약이다.” 옆에 있으면 입고 싶고, 입으면 경기에 나가고 싶고, 나가면 더 잘하고 싶고. 병원에 있으면서 TV 중계를 보고 있으면, 내 상황이 비참하다고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너무너무 나가고 싶은 거예요.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거 자체가 고역이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한번 나가서 던지는 게 낫겠다 싶어서 감독님한테 얘기를 했죠. 나 정말 하고 싶다고…
 
감독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던지게 해달라고 맞섰다. 결국 선발로 나갔고 5승 4패의 성적을 올렸다. 승수 자체로만 보면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시즌을 접었어야 할 상황에서 팀에 5승을 안겨 준 것만으로도 김용수는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선수 스스로 경기력이 향상되었다고 지각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기록과 별개로 선수의 슬럼프 극복을 평가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부상 투혼의 결과는 연봉 삭감이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은 구단의 결정은 그에게는 부상에 이은 또 다른 슬럼프였다. 김용수는 비참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가 사용하는 단어나 목소리 톤, 표정에서는 비참함보다는 분노와 원망의 정서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는 좌골 신경통과 같은 부상으로 인한 슬럼프에 대해서는 심리적 고통을 크게 느끼지 않는 편이었다. 부상은 운동을 하다 보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며 본인의 노력에 의해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 절하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에게 이러한 종류의 슬럼프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부당한 종류의 것이다. 따라서 부상을 당했을 때는 경험하지 않았던 심리적인 고통을 겪었다.
 
선발로 나가서 5승 4패 했는데, 결국은… 제 의지와 관계없이 연봉이 깎이더라고. 거기서 또 그냥 빠아악 올라오는 거죠. 그런 부상에도 등판해서… 그 정도로 승을 올려 줬는데 연봉을 깎겠다니. 내 아픈 몸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결과를 냈는데…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1000만 원을 깎자는 거예요. 와! 앞이 안 보이더라구요. 차라리 안 나가고 깎이는 게 낫지. 결국… 700만 원을 깎였어요. 그러면서 내년에 잘하면 그 이상의 복구를 시켜주겠다고 하더라구요. 여기서 그냥 딱! 필을 받은 거죠!
 
다음 시즌에는 연봉을 올려 주겠다는 구단의 제안을 듣고 김용수는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여기서 끝낸다는 건 너무나 아깝다! 가보자! 그다음부터 저는 다른 선수들보다… 배까지는 아니었지만 더 많이 연습했어요. 만약 1시에 훈련을 시작한다고 하면 저는 11시 반에 와요. 미리 옷 갈아입고 드는 거부터 시작하는 거죠. 남들보다 1시간 먼저 하고, 1시간 늦게 가고.
 
여전히 허리가 아팠다. 사실 그는 지금도 뛰다가 걸으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어떨 때는 20분 거리를 1시간 걸려서 갈 정도라고 했다. 아파서 빨리 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는 몸 상태가 더 나빴다. 그에게 몸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텐데 연습이 가능했는지, 심적으로 힘들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는 어차피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라면 차라리 만성으로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더 혹독하게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김용수가 연습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심리적 강인성과 관련이 있다. 심리적 강인성이 높은 사람들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해 무기력감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자원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특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극한의 상태로까지 몰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통증이 심해지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긍정적 자기 대화와 같은 심리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역경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병원에서 MRI를 찍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딱 보시더니 “그냥 사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수술해도 소용없다고. 아마 보통 사람… 일반 사람이나 다른 선수였더라면 포기해도 벌써 포기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표출을 안 하니까 남한테 얘기 해 봐야 이건 하소연밖에 안돼요. 약해지니까… 저는 ‘하, 죽을 거 같다, 야 그런데 아파 봤자 이것보다 더 아프겠냐?’ 이런 식으로 스스로한테 얘기했어요. 그리고 더 연습하고 더 강하게 저를 혹사시켰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뭐가 잘 안되더라도, 잠시만 휴식을 취하고서 길을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김용수는 슬럼프를 극복해 온 그동안의 시간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최대한 고민하는 시간을 짧게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연습이 답이었다. 아무런 잡념 없이 오로지 연습에만 몰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슬럼프 극복의 열쇠이다. 그렇게 묵묵히 한길만을 걸었기에 그는 어떤 자리에서든 빛날 수 있었다.
 
오래 끌면 끌수록 내 마음속의 힘든 감정들, 마음의 병은 더 커지거든요. ‘아, 내가 이런 마음을 계속 담아 두면 안 되겠다’ 그렇다면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예요. 가서 운동하는 것. 연습과 훈련이 답이라는 거. 선수들을 가르칠 때도 보면 알아요. ‘몸은 여기 있는데 생각은 딴 데 가 있네’ 벌써 마음이 그러면 행동하는 게 보여요. 저는 운동장에서 잡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오로지 연습에만 몰입했죠. 지금도 깜짝 놀래요. 제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아니, 잡생각이 왜 안 날까?’ 운동하는데… 그 잠깐 쉬는 그 공간에서, 그동안에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질 것 같은데 그때는 정말 전혀 없었어요. 마치 경주마가 앞만 보고 가는 것처럼 남보다 죽어라 더 열심히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다시 그런 일들이 생기고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똑같을 거예요.
[1]
Fletcher, D., & Sarkar, M., 〈A grounded theory of psychological resilience in Olympic champions〉, 《Psychology of Sport and Exercise》, 13, 669-678. 2012.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