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디즈니 그리고 시청자
1화

750조 원어치 몰아 보기

미디어 전쟁

미국에서는 몇 차례의 엄청난 투자 열풍이 있었다. 1860년대 철도 붐, 1940년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 붐, 이번 세기에 일었던 셰일 가스 시추 광풍을 떠올려 보라. 오늘날에도 최신 버전의 노다지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철이나 모래가 아니라, 대본, 음악, 스크린, 유명 연예인이 투자의 핵심이다. 디즈니는 이번 주 〈스타워즈〉를 비롯해 방대한 콘텐츠 히트작을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인다. 가격은 DVD 한 장보다 싼 월 6.99달러다. 넷플릭스가 선도한 이 사업 모델에 경쟁사 수십 곳이 뛰어든 이후, 이제 전 세계에서 7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상을 스트리밍하고 있다. 콘텐츠 시장에는 올해만 1000억 달러(117조 600억 원)가 넘는 현금이 투자됐다. 미국 석유 산업에 투입된 자금과 맞먹는 규모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계가 지난 5년간 인수 합병과 프로그램 제작에 쓴 비용의 총액은 최소 6500억 달러(759조 4600억 원)다.

이러한 열풍은 지난 20여 년간 이어진 ‘창조적 파괴’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2화 참조)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는 음악과 게임, 그리고 TV 시장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 구조의 변화를 생활 수준의 악화와 연관 짓는다. 일자리 감소, 높은 비용, 검색과 소셜 네트워크의 독점 체제 아래에서 생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대박 사업은 역동적인 시장이 소비자에게 더 저렴한 가격과 더 높은 품질로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지금까지 이런 열풍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이 정점에 오른 상황에서는 정부가 시장의 개방성과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본질적으로 빠르게 변한다. 유형 자산이 거의 없고, 상품을 퍼뜨려 줄 기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비자는 참신함을 갈구한다. 1920년대 음향의 부상 덕분에 할리우드는 세계적인 영화 사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 산업은 시트콤〈프렌즈(Friends)〉의 에피소드에서 반복된 유행어처럼 안일해졌다. 콘텐츠 산업은 과거의 기술에 의존해 왔다. 아날로그 방송, 느린 인터넷 연결, 그리고 성가신 CD, DVD와 하드드라이브 같은 기술 말이다. 오래된 콘텐츠를 패키지 상품으로 묶어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상업적인 접근 방식도 있었다.

음악 시장을 처음으로 뒤흔든 사건은 1999년에 벌어졌다. 인터넷 서비스는 EMI나 워너뮤직 같은 저명한 음악 회사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2007년에는 넷플릭스가 고속 데이터 통신망을 통해 영상 구독 서비스를 판매하며 TV 시장의 틀을 깼다. 이로써 케이블 회사들의 힘은 약해졌다. 스마트폰이 부상하자 넷플릭스는 손에 들 수 있는 기기에 맞춰 서비스를 새로 디자인했다. 넷플릭스는 기존 시장 참여자들이 소비자 가격을 낮추고, 더 혁신적인 시도를 하도록 압박하면서 경쟁의 촉매 역할을 해왔고, 새로운 도전자들을 시장에 끌어들였다. 스트리밍 열풍으로 인기 작가들은 월스트리트의 거물과 비슷한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 촬영장의 임차료는 치솟았다. 지난 3월 사업체의 상당 부분을 디즈니에 넘긴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같은 20세기의 미디어 거물들은 밀려났다.

시장이 뜨고 지는 가운데 새 사업 모델의 윤곽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새로운 사업은 케이블 패키지 상품이 아니라 고속 데이터 통신망과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광고가 아니라 구독료에 압도적으로 의존한다. 검색 엔진이나 소셜 미디어와 달리 TV나 영상 스트리밍 회사 가운데에는 매출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 20퍼센트를 넘는 곳이 없다. 시장 참여자는 넷플릭스, 디즈니, AT&T-타임워너, 컴캐스트, 그리고 규모가 더 작은 신생 업체들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소유한 유튜브, 아마존과 애플 등 세 곳의 기술 기업들 역시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의 시장 점유율을 모두 합해도 미미한 수준이다. 음악 산업에서도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가장 큰 회사인 스포티파이는 미국 시장의 3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분열은 뜻밖의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한다. 소비자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더 낮은 가격의 상품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과거 케이블 패키지는 80달러 이상이었지만, 최근의 서비스들은 15달러 이하다. 지난해에만 496편의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2010년의 두 배다. 콘텐츠의 질도 높아졌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개된 작품들은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을 수상하고 있다. 서사의 다양성 역시 향상됐다. 콘텐츠 업계의 노동자들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예술 그리고 스포츠 분야의 일자리는 2008년 이후 8퍼센트 늘었고, 임금은 20퍼센트 올랐다. 한편 투자자들은 더 이상 이례적으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회사들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괜찮은 성과를 거뒀다. 10년 전 비아콤(Viacom)에 1달러를 투자했을 때 거둬들인 수익은 현재 가치로 95센트 수준이다. 반면 넷플릭스에 1달러를 투자했다면 수익의 가치는 37달러다.

많은 열풍은 곧 사그라든다. 위워크와는 달리 대부분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합리적인 전략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투자금이 시청자들의 눈을 쫓고 있다. 넷플릭스는 1년에 30억 달러(3조 5055억 원)를 투입하는데, 손익 분기점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격을 15퍼센트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시장에 서른 개가 넘는 경쟁 서비스가 있다면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 시장이 규모의 경제를 창출해 주길 바라고 있다. 시장의 포화 상태만큼 큰 위험 요소는 부채다. 인수 합병과 과도한 지출로 인해 미국 미디어 회사들의 부채 규모는 5000억 달러(584조 2500억 원)에 달하고 있다.

혁신이 일어나면서 이어진 투자 열풍이 사기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우울한 역사적 사례가 두 가지 있다. 1990년대 미국의 이동 통신사들과 항공사들은 엄청난 경쟁에 내몰렸고,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소수 독점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 형편없는 서비스와 높은 가격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공정한 경쟁 구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다. 우선 정부는 거대 기술 기업을 포함해 그 어떤 회사도 콘텐츠 산업에서 지배적인 점유율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이동 통신사나 애플처럼 첫 화면에 노출되는 콘텐츠를 통제할 수 있는 스마트폰 제조사 등이 개방형 정책을 채택해 특정 콘텐츠 회사를 차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구독자들이 시청 데이터를 한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게 해야 한다. 특정 회사의 서비스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스토리를 놓치지 마세요


할리우드에서 경제 수업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대작 영화의 핵심은 활기찬 자본 시장이다. 기업 인수, 주식 시장 그리고 정크 본드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재창조를 지원하고 있다. 주연 배우는 넷플릭스의 대표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같은 억만장자 기업인이다. 그리고 영화의 무대는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할리우드로 몰려드는 재능 있는 사람들, 구독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미국 밖의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전반에 걸쳐 이러한 요소들은 위험에 처해 있다.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이 개방 무역과 자유 시장을 선택하지 않고 있어서다. 개방과 자유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화면을 켜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영화의 재생 버튼을 눌러야 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