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왕좌의 게임
1화

달러의 대안을 찾아서

달러를 왕좌에서 끌어내려라

1월 15일, 미국과 중국은 그동안 지속돼 온 긴장을 해소하는 첫 번째 단계의 무역 협정에 서명했다. 중국이 향후 2년간 2000억 달러(233조 2600억 원)어치의 미국 제품 추가 수입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경제에 평화가 찾아드는 계기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무역의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2화 참조) 제재, 관세와 블랙리스트 기업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재정 전략은 달러 기반의 금융 시스템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국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국제 통화 시스템의 균형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세계 경제의 리스크가 되기도 한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뿐 아니라 이란, 러시아는 물론 유럽 연합과 터키 같은 동맹국에도 금융 패권을 휘두르고 있다. 지난 10일 승인된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안은 은행, 정유, 운송 기업을 겨냥하는 경제적 미사일과도 같았다. 추가 제재 조치는 가뜩이나 침체된 이란 경제에 더 큰 고통을 주게 될 것이다. 결국 달러 중심의 무역 시스템은 미국의 통화, 은행, 결제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어떤 나라도 거래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전 세계 무역 송장의 최소 절반 정도가 달러 단위를 쓴다. 국경을 넘는 거래의 다수는 최종적으로 뉴욕을 거치게 된다.

미국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달러 시스템을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정책을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패권을 정권의 핵심 외교 정책으로 활용하면서, ‘세컨더리 보이콧’을 통해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나라와 거래하는 누구라도 처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권력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활용하는 기업들의 활동을 금지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타깃 기업을 고립시키고 대다수의 상대와 거래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 효과는 대체로 치명적이다.

미국의 호전성에 맞서 달러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들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는 무역의 흐름, 외채, 은행 자산의 상당 부분을 ‘탈달러화(de-dollarised)’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대기업들은 달러로 이뤄졌던 계약을 루블로 바꿔 나가고 있다. 러시아, 중국, 인도와 이외의 국가들은 상호 간 또는 다자간 협약을 논의하거나 서명하면서 자국 통화로 무역을 하려고 한다. 이 국가들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 지배적 지불 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국제 은행 간 결제 시스템)의 대안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 한편, 유럽은 기업들이 미국의 금융 제재를 피해 이란과 거래할 수 있는 청산 결제소인 인스텍스(Instex·Instrument on Support of Trade Exchanges)를 설립했다.

금융권을 휩쓸고 있는 기술 혁명은 달러의 대안 모색을 촉진하고 있다. 유럽에서 중국에 이르는 각국 중앙은행들은 공공 디지털 통화를 만드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관련 콘텐츠 읽기)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 국외 전자 지불의 비용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다. 일부는 암호 화폐 배스킷(기준 환율을 선정할 때, 적정한 가중치로 선정되는 다수의 통화의 꾸러미)을 만들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런 대안적인 움직임이 당장 달러에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스텍스는 아직 활용되지 않고 있다. 스위프트의 대안 역시 활발하게 결제를 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다. 거의 모든 기준에서 달러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다만 외환 보유고 가운데 달러의 비중은 2000년 이후 70퍼센트에서 60퍼센트로 떨어졌다.) 달러는 여전히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고 있다. 거대한 파생 상품 시장을 비롯한 세계 금융 시장의 가장 복잡한 부분들은 보통 달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달러의 잠재적 경쟁자들에게는 결점이 있다. 유로는 구조적인 지배 구조의 문제가 있다. 유로는 유로존 내에 적합한 은행, 시장 연합체뿐 아니라, 독일의 국채인 분트(bunds) 같은 무위험 자산도 미국에 비해 부족하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만으로는 이런 결함을 극복할 수 없다. 위안 역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2015년 금융 붕괴 이후의 자본 통제 강화로 2020년대 초에는 위안이 달러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은 어두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곡점은 이미 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융이라는 대포를 발사하기 시작한 이후, 그의 목표 대상 국가들은 달러에서 벗어나 무언가 해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비록 잠정적인 계획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미국이 압박을 완화한다 하더라도, (달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사그라들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달러가 여러 측면에서 도전받는 세계는 예측하기 어려운 세계가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세계 준비 통화의 균형을 갖추는 것이 통화 체계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달러의 압도적인 영향력이 미국에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통화의 가치(상승)와 시장 금리(하락)를 왜곡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화폐 실험의 새 시대는 세 가지 거대한 리스크를 동반하고 있다. 첫째, 제재가 더 강화될 경우 금융 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면 1조 달러 이상의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거대 은행들이 타깃이 되는 상황 말이다. 두 번째 우려는 미국의 금융 헤게모니가 더 정치화된다면, 역외 달러 기반 금융 시장과 은행의 최종 대출자라는 미국의 오랜 역할이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세계 통화 질서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대공황이 부분적으로는 세계 경제를 안정시킬 권력자의 부재로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금융 압박 정책은 테헤란이나 모스크바를 넘어서는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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