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지각 변동 헬페미니스트 세대의 논쟁하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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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김지영
발행일 2020.02.04
리딩타임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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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3,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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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
다중이 주도하는 페미니즘의 세기가 시작됐다.
페미니스트 다중은 치열하게 대립한다. 이는 분열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다.


페미니즘은 더 이상 소수가 주도하는 이론이 아니다. 해시태그 선언, 미투 운동 등을 거치며 대다수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주장을 지지하고 여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제 페미니즘은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틀이 되었다. 탈코르셋 운동, 디지털 성폭력 반대 시위, 리얼돌 전면 금지 청원 등은 모두 페미니스트 다중(multitude)이 온라인을 통해 제시하고 발전시킨 여성 의제다. 이들은 일상 영역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편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페미니즘 내에서도 다양한 입장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성 소수자, 장애인 등을 위한 포괄적 인권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여성 의제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저자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지향할 때의 오류를 지적한다. 페미니즘은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불평등한 체제에서 각자가 얻고 있던 이득마저 파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 17분이면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A4 9장 분량).
저자 소개
윤김지영은 페미니스트 철학자다. 현재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지워지지 않는 페미니즘》이 있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 페미니스트 다중의 탄생
새로운 페미니즘 지형
제4 물결과 온라인 정치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2. 지금, 페미니즘의 대립각
페미니즘의 두 갈래
정의, 운동 주체, 연대의 조건
갈등이 던지는 질문

3.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오류들
나의 페미니즘, 너의 페미니즘
백래시와 진짜 페미니즘
맨박스의 이면
여성 운동 아닌 여성 운동
페미니즘이라는 보너스

4. 호명되지 않고 호출하는 여자들
낙인과 승인의 불러세움
아카이빙에서 행동까지
질서를 멈춰세우다

5. 페미니즘은 사이다 서사가 아니다
나 자신을 부수는 일
정치적인 것을 재정의하다

먼저 읽어 보세요

맨박스(manbox)는 남성이 가부장제에서 억압당하고 있다는 근거로 주로 제시되는 개념이다. 토니 포터(Tony Porter)가 저서 《맨박스》를 통해 설명했다. 맨박스는 남성성에 대한 사회 문화적 규정의 틀이다. 규범적인 남성성을 강요하고, 남성들을 강자와 승자로서의 남성 문화에 편입시킨다. 남성이 가부장제 안에서 받게 되는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는 성공해야지’, ‘남자라면 강해야 해’, ‘남자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해’ 등의 강요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남성들이 장착하게 되는 맨박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으로서의 힘과 권위를 강화하고, 여성들을 착취하는 것을 당연한 절차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남성들의 특권 구조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에디터의 밑줄

“기존의 페미니즘이 극소수의 활동가들과 연구자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현재 한국 페미니즘은 활동가와 연구가, 그리고 페미니스트 다중으로 개편되고 있다. 다중(multitude)은 대중(mass)과 다르다. 대중이 집단성을 가진 획일적 무리라면, 다중은 체제에 수렴되지 않으며 통치 단위로 쉽게 환원할 수 없는, 정치적 행위 구성력을 가진 이들이다.”

“헬페미니스트 세대는 낙태죄 폐지를 이루어 내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을 이끌어 냈다. 헬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을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학문이나 전문화된 운동의 영역이 아닌, 일상을 바꾸는 저항 실천으로 이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확산시키고 있다.”

“현재 한국 페미니즘 진영은 크게 래디컬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으로 나누어져 있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 의제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론이자 여성 해방 운동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즉 모든 차별들에 대항하는 총체적 해방론이자 포괄적 인권 운동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한다.”

“페미니즘을 모두를 위한 것, 즉 누구에게나 혜택을 주는 것으로 정의하게 되면 누구도 자신의 몫을 내려놓을 필요조차 없어진다. 기존에 얻어 왔던 부당한 취득을 문제 삼지 않고 누구에게나 추가적인 이득을 주는 보너스 취득 행위로 페미니즘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나를 속박하는 외부의 사슬을 부수는 것일 뿐 아니라, 나의 일부를 부수는 일이다. 어느새 받아들여 버린 일상의 관성, 가부장제에 편입되어 있으면서 얻은 안전과 쾌락, 타협의 만족감을 파괴해야 한다.”
코멘트
저자는 페미니즘은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딛고 선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정곡을 찌르는 관점에서 용기를 얻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요구는 누군가의 부당한 몫을 빼앗는 일이다. 여성들에게는 용기를, 페미니즘이 낯선 독자들에게는 이해의 단초를 주는 콘텐츠다.
북저널리즘 에디터 소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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