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식탁
3화

우유를 대체하는 식물

유제품과 식물성 우유 사이의 기이한 전쟁


2018년 봄, 뉴욕은 갑작스럽고 이례적인, 일부 시민들에게는 재앙에 가까웠던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식품 진열 선반에는 빈자리가 생겼고, 커피숍들은 고객의 발길을 돌리기 위한 안내판을 세웠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는 불만이 폭주했다. 뉴욕에 귀리 우유가 동나서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부터 할렘(Harlem)까지 다 뒤져 보았지만 살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런 품절 사태가 발생한 지역은 뉴욕만이 아니었다. 미국 전역에서 스웨덴의 식물성 우유 제품인 오틀리(Oatly)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소화기 전문 건강식품 브랜드에서 유제품을 대체하는 선택지로 급부상한 오틀리는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오틀리는 2016년 미국 출시 이래, 뉴욕의 극소수 고급 커피숍에서 시작해 전국 3000개 이상의 카페와 식료품점에 납품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틀리는 생산량을 1250퍼센트까지 늘렸지만, 지난여름 오틀리의 CEO 토니 페테르손(Toni Petersson)은 여전히 공급량을 맞추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주문이 이렇게 폭주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공급량을 따라가겠어요?”

2019년에는 다행히도 다른 대안이 부족하지는 않다. 동네 슈퍼마켓에 가보면 냉장 코너에 우유의 대체품이 넘쳐나고 있다. 아몬드, 헤이즐넛, 땅콩, 호랑이콩, 호두, 캐슈너트 등 견과류뿐만이 아니다. 코코넛, 헴프씨드, 밀, 퀴노아, 완두콩 등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로 어딘가의 신생 건강식품 업체는 우유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런던 지하철역은 새로운 식물성 우유, 또는 ‘뮐크mylk’[유럽 연합은 포유동물이 생산하지 않은 제품에 우유(milk)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광고들로 넘쳐난다. 거의 모든 요리책이 혼합하고 짜내서 자신만의 맞춤 우유를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 세인즈버리(Sainsbury’s) 마트는 약 70여 가지 식물성 우유를 판매하고 있다. 식품 업계의 펑크족이라고 할 수 있는 레벨 키친(Rebel Kitchen)과 루드 헬스(Rude Health) 같은 신생 기업들이 등장했고, 말크(Malk), 밀카다미아(Milkadamia), 무알라(Mooala) 같은 유제품 명칭을 활용한 말장난이 생겼다. 러브로(LoveRaw), 굿 카르마(Good Karma), 플레니시(Plenish) 같은 영양 제품들도 있다. “사람들이 존재하는 모든 견과류를 으깨서 우유로 만들 수 있는지 살펴보려는 것 같아요.” 헴프씨드를 으깨 오일과 우유로 만드는 기업, 굿(Good)의 공동 소유주 글리니스 머리(Glynis Murray)가 말했다.

지금은 믿기 힘들겠지만 2008년까지만 해도 우유를 대체하는 음료는 주로 두유였다. 영국의 알프로(Alpro), 미국의 실크(Silk)라는 두유가 대표적이다. 그 외의 다른 것을 원한다면, 식료품점을 뒤져서 소화제와 함께 뒤편에 방치돼 있는, 칙칙한 의약품처럼 디자인된 유효 기간이 긴 쌀 우유팩을 찾아내야 했다. “(당시 회사는) 죽음의 통로를 지나고 있었어요.” 오틀리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스쿨크래프트(John Schoolcraft)가 말했다. “우리 제품은 유당 불내증이나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나 찾던 제품이었죠. 당시만 해도 채식주의자들은 사회의 변방에 있었으니까요.”

식물성 우유는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영국 샌드위치 전문 체인점 프레타망제(Pret a Manger)에서 팔리는 따뜻한 음료 열 잔 중 한 잔 이상이 유기농 두유나 유기농 쌀-코코넛 우유 같은 대체 우유다. 리서치 업체 민텔(Mintel)에 따르면, 2015년 이후의 영국 식물성 우유 매출은 비거니즘과 같은 채식주의 열풍으로 30퍼센트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쇼핑객 절반 이상이 식물성 우유를 장바구니에 넣고 있다. 세계적으로 식물성 우유 산업은 160억 달러(19조 4448억 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우유의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2013년부터 2016년 사이 영국 내 1000개의 낙농장이 문을 닫았다. 건강식품으로서 우유의 평판은 유당 불내증 진단율 증가는 물론 항생제 사용, 동물 학대와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등에 대한 우려로 위협받고 있다. 현재 10대들은 우유를 식물성 우유 대체품보다 덜 건강한 음료라고 생각한다. 영국 유제품 협회의 데이비드 도빈(David Dobbin) 전 회장은 이를 “인구학적 시한폭탄”이라 불렀다.

“소비자들은 실제로 낙농업을 신뢰하지 않아요.” 민텔의 유제품 분석 전문가 캐럴라인 루(Caroline Roux)의 말이다. “유제품이 건강에 좋은 것인지 더 이상 확신을 못하는 거죠.”

그러나 한 사업가의 말에 따르면 식물성 우유 붐은 “단순히 우유를 대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 우유를 아몬드 우유나 귀리 우유로 바꾼다는 것은 보다 신중하고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다. 업계 비평가들에게 식물성 우유는 현대의 음식 문화를 망치는 모든 징조인 첨가물을 교묘하게 섞어 파는 견과류 음료일 뿐이다. 우유가 차지하고 있는 선두 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산업계와 한 세기 동안 건강식의 근간으로 자리 잡아 온 유제품 업계 사이에서 다소 기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대부분은 우유나 대체 음료 없이도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말이다.

 

슈퍼 푸드의 원조, 우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젖을 먹는다. 아기들은 위에서 유당(락타아제)이라는 소화 효소를 만들어 내는데, 이 효소는 젖당을 분해하고 모유나 우유에 들어 있는 당분을 포도당과 갈락토스라는 단당류로 분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젖을 떼고 나면 분비되는 유당이 급격히 줄어든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아니 더 나아가 포유류의 관점에서 보면, 아기 때 엄마의 모유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정상이에요. 유아기가 지나면, 유당 분비가 멈추고 유당 소화 능력이 사라지는 유당 불내증 상태가 되는 겁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식품 알레르기 전문가 중 한 사람이자 가이즈 앤 세인트 토마스 병원(Guy’s and St Thomas’s hospitals)의 소아과 알레르기 전문 컨설턴트 애덤 폭스(Adam Fox)가 말했다. “그런데 소수의 성인에게서는 젖당 소화 효소 분비를 지속하는 변이가 나타나요. 북유럽과 동아프리카의 마사이족, 아랍 계통 일부에서 이런 특성이 발견되는데, 이 경우는 예외이지 규칙이 아닙니다.”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나뉜 것은 사실 독립적인 유전 변이 과정이었다. 이런 현상은 약 1만 년 전에 일어난 것으로, 이 시기는 인류가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하던 때로 추측된다. 이는 영국, 스웨덴, 아일랜드 같은 나라에서 성인 90퍼센트 이상이 아무런 부작용 없이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동시에 전 세계 성인 3분의 2 이상은 유당 불내증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당 불내증인 사람들은 우유 한 잔만 마셔도 배가 부풀고, 복통과 설사가 유발될 수 있다(유당 불내증은 우유 알레르기와는 다르다. 우유 알레르기는 소 우유에 있는 단백질에 대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영국 성인의 약 1퍼센트가 이에 해당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유는 북유럽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보급된 것이다. 갓 짜낸 우유는 냉장 처리를 하지 않으면 쉽게 상해서, 대장균이나 결핵균 같은 치명적인 각종 병원균에 오염된다. 과거 인류 역사에서 우유는 갓 짜낸 순간에 마시거나, 치즈나 요거트로 가공해서 먹는 것을 의미했으며, 액상 상태로 마시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우유! 1만 년 동안의 식품 논쟁(Milk! A 10000-Year Food Fracas)》의 저자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는 말한다. “로마인들은 액상 우유를 마시는 것을 야만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농장에 있는 사람들만 신선한 우유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이때는 소 우유를 염소나 당나귀 우유 같은 대체품보다 열등하게 여겼다).” 19세기에는 우유가 ‘음식 찌꺼기 우유’라 불렸다. 도심 양조장에서 나오는 더러운 부산물을 먹고 자란 소의 젖이 푸른색을 띠었기 때문이다. 이 찌꺼기 우유는 수천 명의 유아 사망과도 관련이 있었다.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유를 병에 넣기 전 가열하여 세균을 죽이는 저온 살균이 의무화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유를 규칙적으로 마실 수 있을 만큼 안전해졌다.
2017년 프랑스의 한 낙농장에서 기계로 소의 젖을 짜고 있다. ⒸPhilippe Huguen, AFP, Getty Images
낙농업의 배후에 고도로 조직화된 정치력이 작용하기 시작한 것은 1차 세계 대전 때였다. 영국에서 배급되는 식량이 부족해졌고, 어린이 영양실조가 만연했다. 당시 부상하던 영양 과학 분야는 높은 단백질 함량에다, 이후 비타민으로 불린 ‘필수 아민(vital amines)’이라는 새로운 영양소도 풍부한 우유를 잠재적 해결책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가격 통제 정책 덕분에 우유는 공급 부족 사태를 겪지 않았다. 데보라 발렌즈(Deborah Valenze)는 《우유: 지역적이고 세계적인 역사(Milk: A Local and Global History)》에서 “소비자들은 우유의 기적을 기록한 엄청난 프로파간다의 홍수를 목격했다”고 밝혔다. 우유는 무한한 칼슘, 단백질, 비타민의 공급원인 슈퍼 푸드의 원조가 되었다. 1946년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 정부와 미국의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정부 모두 우유를 학교에 무상 제공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의 우유 마케팅 위원회 같은 업계 제휴사들은 우유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홍보 활동에 착수했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에서 “우유 마셨어요(Got Milk)?” 캠페인에 비욘세 같은 유명인부터 개구리 캐릭터 커밋(Kermit)까지 우유 콧수염(우유를 마신 후 윗입술 위에 묻은 우유 자국이 콧수염과 비슷하다고 해서 생긴 표현)을 묻히고 등장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아이들을 튼튼하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면, 우유를 마시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유제품 산업 시장의 규모는 4000억 달러(484조 2000억 원) 이상이며, 우유 산업은 전 지구에서 2억 7400만 마리의 젖소 군단이 동원되는 고도로 조직화된 거대 산업이 되었다. 정치인들이 우유와 얽히기도 한다(마가렛 대처가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1971년, 7세 이상의 아이들에게 우유 무상 급식을 중단하는 가혹한 조치를 취했을 때 그녀는 ‘우유 날치기꾼’으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이제 다수 소비자들에게 우유의 매력은 줄어들고 있다. 1975년 미국인들은 1인당 연간 247파운드(130리터)의 우유를 소비했지만 2017년에는 겨우 149파운드(66리터)로 감소했다. 미국에서 우유 매출은 2012년 이후 15퍼센트 하락했다.

우리가 하루에 소비하는 음료의 종류별 비율을 나타내는 산업 용어인 ‘목구멍 점유율(share of throat)’은 청량음료, 주스 및 스무디, 심지어 생수에 점령당했다. 우유의 입지는 서서히 약화되어 왔다. 하지만 이 음료들 중 어떤 것도 우유를 실존적으로 위협하지는 못했다.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우유가 건강에 유익하고 좋은 영양식이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더 명확한 표적을 공략하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등장하면서, 유제품이 가진 그 건강한 광채는 점점 퇴색되어 갔다.

인터넷은 동물 권리 운동가들에게 새로운 활동 영역을 제공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유제품(dairy)’을 검색하면 젖소의 고통을 그래픽으로 상세히 설명하는 ‘유제품은 무섭다(조회 수 500만)’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무차별 공격을 가할 것이다. 넷플릭스 역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카우스피라시(Cowspiracy)〉나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 같은 다큐멘터리를 시청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동물 학대 외에도 낙농업이 환경에 치명적이라는 증거는 많다. 낙농업은 항공과 선박, 도로 위의 자동차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옥스퍼드대학교가 주도한 최근 연구는 채식주의 식단을 준수하는 것이 우리의 환경 발자국(의식주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데 드는 비용을 토지 면적으로 환산하여 나타낸 지수)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주장했다.

식물성 우유는 깨끗한 식습관과 연관되어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식물성 우유 열풍은 유제품을 부정적인 건강 문제에 연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깨끗한 식습관은 산뜻한 피부와 화려한 이미지의 웰빙 블로거들과 인스타그램 유명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들은 지나치게 가공된 식품이나 알레르기 유발 식품, 글루텐과 카페인, 육류와 유제품 같은 “자연스럽지 않은” 먹거리들을 배제하자고 주장했다. 이 운동의 지지자들은 여드름, 습진, 무기력, 관절통, 그리고 소화기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유당 불내증이라고 비난했다. 깨끗한 식습관을 추구하는 이들은 우유를 끊으라고 경고하며, 팔로워들을 식물성 우유 스타트업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매력적인 밀레니얼 세대 인플루언서들은 땅콩 우유가 들어간 태국식 카레와 글루텐 프리 비트 빵과 같은 먹음직스러운 사진들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가득 채우고 있다(업계 분석가들에 따르면, 이런 식물성 식품이 유행하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스타그램 사진이 맛있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채식주의 캠페인이 지난 수년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갑자기, 우유를 끊는 것은 단순한 건강상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다. 이제 우유를 끊는 것은 가장 좋은 방식의 삶,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의 일부다.

 

식물성 우유를 팔아라


식물로 우유를 만든다는 개념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적어도 14세기부터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두유를 생산해 왔다. 아몬드 우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226년 바그다드 요리책인 《키탑 알타비크(Kitab al-Tabikh)》에 등장한다. “중세 요리법을 찾아보면, 우유와 아몬드 우유 중 선택하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식품 미시사 분야를 개척한 베스트셀러 《대구: 세계를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Cod: A Biography of the Fish that Changed the World)》의 저자 마크 쿨란스키의 말이다.

서구에서는 최근까지도 아몬드 우유나 두유는 채식주의자들이나 괴짜(포드 자동차의 창설자 헨리 포드는 일찍이 두유 전도사였다)들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다. 1956년 초기 동물 권리 운동가 모임인 영국 채식 협회에서 부회장을 맡았던 레슬리 크로스(Leslie Cross)가 식물성 우유 협회(Plantmilk Society)를 설립했다. 낙농업의 잔인성에 반대했던 크로스는 영국에서 재배할 수 있는 농작물로 유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유제품인 우유를 모방해서 만든 액상 음료로 어떻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이 단체의 회장이었던 아서 링(Arthur Ling)의 아들, 애드리언 링(Adrian Ling)은 말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하얀 실험실 가운을 입은 채 미소 짓고 있는 선구자들이 알 수 없는 불투명 액체가 담긴 수많은 유리잔을 검사하고 있다. “그분들은 양배추 연구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두유에 정착하게 된다. “소비자가 수백 명밖에 안 될 정도로 시장 규모가 작았습니다. 금전적 손실이 아주 컸죠.”

1981년 벨기에의 젊은 식품 기술 전문가 필리페 반데무르텔레(Philippe Vandemoortele)는 살균한 테트라 브릭(Tetra Brik)이라는 새로운 포장 기술을 활용해 두유를 팔기 시작했다. “항아리와 냄비, 그라인더를 가지고 차고에서 시작했어요. 저는 어렸고 순진했죠.” 현재 73세인 반데무르텔레가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두유에 알프로(Alpro)라는 이름을 붙였다. 평가는 엇갈렸다. 동네 슈퍼마켓은 입고를 거절했다. “구매 담당자가 제가 만든 제품을 맛보더니, ‘와, 끔찍해!’라고 말하더군요.” 그는 참고 버텼다. 현재 알프로는 세계 최대 낙농 제품 생산업체 다농(Danone)이 소유하고 있으며, 2017년 총매출액이 1억 8300만 파운드(2825억 원)를 넘었다.

두유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콜로라도의 두유 업체 화이트웨이브(WhiteWave)가 놀라울 만큼 명백한 현상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바로 두유를 유제품이 있는 냉장 칸으로 옮기자 더 많은 사람들이 두유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화이트웨이브의 ‘실크Silk’라는 냉장 두유 신제품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동시에 실크와 알프로를 비롯한 두유 업체들은 자사 제품을 건강 대안 식품으로 마케팅하기 위해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병의 관련성을 나타나는 증거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두유는 모두를 위한 음료가 되었다.

두유의 빠른 성장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맛이 없다는 것이다. 농장 우유를 모방하기 위해 설탕과 걸쭉한 재료를 비롯한 첨가물을 추가했음에도 현재 유통되고 있는 두유 제품에서는 특유의 콩 냄새와 맛이 느껴진다. 2000년대 초반에는 두유와 관련한 건강 문제가 대두되었다. 두유는 인간의 호르몬 효과를 모방할 수 있는 화합물인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함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호르몬을 교란시키고 남성들을 ‘여성화’시킨다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연구가 발표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계속된 임상 연구들은 이런 우려가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신나치주의자들은 두유가 남성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자유 진영의 음모라는 이론을 계속 밀어붙이며 “소화력의 우월성”을 보여 주기 위해 우유를 마시자는 집회를 이어 오고 있다.

2008년 캘리포니아에서 아몬드 농사를 짓던 농부들의 대규모 협동조합인 블루 다이아몬드 재배업자들(Blue Diamond Growers)은 기회를 감지했다. 이들이 만든 아몬드 브리즈(Almond Breeze)라는 아몬드 우유는 당시 미국의 인기 두유 제품인 실크에 오랫동안 뒤처져 있었다. 블루 다이아몬드의 마케팅 이사 알 그린리(Al Greenlee)는 이렇게 말했다. “실크와 경쟁하려면 우리 제품도 냉동 칸에 진열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죠.” 슈퍼마켓 진열 공간은 꽉 차 있었고, 신제품을 진열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수료를 내야 했다. 냉장 진열대의 화려하고 비좁은 칸은 특히 경쟁이 치열했다. 그 당시 실크의 소유주는 거대 유제품 기업 딘 푸드(Dean Foods)였는데 실크를 우유와 나란히 진열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비슷한 전략으로, 미국 내에서 두 번째로 큰 유제품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었죠.” 블루 다이아몬드는 유당 불내증의 유전적 발생 빈도가 더 높은 히스패닉들이 많이 사는 플로리다 지역을 겨냥해 아몬드 우유 판매를 시작했다.

한편, 캘리포니아 아몬드 업계도 대대적인 마케팅과 자금 지원, 그리고 아몬드의 건강 관련 효능을 보여 주기 위한 새로운 연구, 광고 및 출판 사업에 착수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고 세련된 잡지들이 아몬드를 ‘슈퍼 푸드’라고 선언했다. 아몬드 브리즈의 큰 성공 이후 2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실크는 이런 추세를 따라잡기 위해 자체 아몬드 우유를 출시했다. 2013년까지 아몬드 우유는 두유를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식물성 우유로 자리 잡았다.

 

아몬드 우유에서 귀리 우유로


지금과 같은 포화 상태의 시장 환경에서 신상품이 눈에 띄기 위해서는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호주에서 만든 너티 브루스(Nutty Bruce)라는 우유는 ‘활성 아몬드’를 자랑하는데, 이는 현재 유행하는 숯 열풍(강하게 가열한 후 산화시킨 ‘활성’ 숯은 디톡스 식품으로 시판되고 있다)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몬드를 평소보다 약간 더 오래 물에 담근 것일 뿐이다. 리플(Ripple)이라는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은 향이나 색의 변화 없이 노란 완두콩에서 단백질만 분리해 내는 첨단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뉴욕에 본사를 둔 생산업체 엘름허스트 밀크트(Elmhurst Milked)의 수석 과학자 셰릴 미첼(Cheryl Mitchell)은 그녀의 특허 추출 공법을 신나게 이야기했는데, 고압수를 이용하여 껍질을 벗기는 방법으로 견과류와 콩류의 단백질을 유지하면서 분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첼은 존경받는 식품 기술 전문가 집안 출신이다. 그녀의 아버지 빌은 쿨 휩(Cool Whip)이라는 휘핑크림 유사 제품과 팝 락스(Pop Rocks)라는 입안에서 튀는 캔디, 그리고 탱(Tang)이라는 과일 향 음료를 개발했다. 1980년대 그녀는 라이스 드림(Rice Dream) 개발을 도왔다. 엘름허스트 생산 업체는 90년 동안 유제품을 만들었다. 전성기에는 맨해튼 전역의 공립 학교와 스타벅스 매장에 납품했다. 그러나 2016년 소들을 모두 처분하고 식물성 우유 사업으로 전환하여, 현재 11종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미첼은 말했다. “조만간 옥수수 우유가 나올 거예요. 노란색이지만 항산화 물질이 블루베리보다도 많답니다.”

모든 식품 영양소에는 추종자가 존재하는 듯하다.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코코넛 음료 제조업체인 레벨 키친의 설립자 타마라 아비브(Tamara Arbib)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존재 방식에 대한 철학을 전파하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자연과 더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방법 말이죠.” 레벨 키친은 2014년에 뮐크라는 제품을 출시했는데, 코코넛과 쌀, 그리고 캐슈너트를 혼합한 것이다. “저는 사람들이 각자 혈액형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을 신봉합니다. 대부분의 혈액형에 유제품은 맞지 않아요.”

지난 7월, 나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식물성 우유 스타트업 중 하나인 런던의 루드 헬스를 방문했다. 카밀라 바너드(Camilla Barnard)와 닉 바너드(Nick Barnard)가 2005년에 설립한 루드 헬스는 뮤즐리 판매로 시작했지만, 순식간에 작은 건강식품 제국으로 성장했다. 북적이는 브런치 시간이 끝나 갈 무렵, 루드 헬스 카페는 캐슈너트 라떼를 홀짝거리고 있는 건강해 보이는 전문직 종사자들로 가득했다. 날렵한 용모와 은발에 흰색 캐주얼 셔츠 차림을 한 닉은 콤부차(kombucha)를 주문했다. 카밀라는 “나는 유제품을 먹는다”고 은밀하게 말했다.

루드 헬스는 2017년 언론의 부정적인 조명을 받았다. 회사 블로그에 지속 가능한 유제품을 홍보하는 글을 올렸다가 일부 채식주의자들이 격분한 것이다. 카밀라는 말했다. “우리는 유제품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우리가 유제품에 반대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린 그저 하던 대로 계속 했어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요.” 이 에피소드는 루드 헬스의 마케팅 전략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채식주의자만을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왜 모든 것이 마법의 약 아니면 나쁜 것으로 취급받아야 하나요? 왜 항상 어떤 것에 동조하거나 반대해야만 하는 거죠?”

루드 헬스는 2013년 귀리, 현미, 아몬드 세 가지 맛을 출시하면서 식물성 우유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호랑이콩, 캐슈너트, 헤이즐넛과 카카오 등을 포함해 열 가지 상품을 판매 중이다. 우리는 시음을 위해 매장 근처의 회사로 걸어갔다. 경쟁사 제품과 식물성 재료 전문 요리책들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었다. 닉은 다양한 베이지색 음료들을 작은 유리잔에 조금씩 따랐다. 많은 식물성 우유는 액상을 더 하얗고 불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초크라는 탄산 칼슘을 첨가한다(칼슘이 추가된다는 사실은 좋은 점이다). 카밀라는 이 식물성 우유들의 색깔은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몇 가지를 시음했다. 코코넛 우유는 바운티 초콜릿이 물에 녹은 것처럼 달콤했다. 헤이즐넛 우유는 다소 과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 좋게 진했다. “톤도 젠틸레(Tondo Gentile)입니다. 미식가용 헤이즐넛이죠.” 닉이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그에 비해 아몬드는 옅은 맛이 났다. 이들이 만드는 레귤러 아몬드 음료에는 현미와 ‘착즙’ 해바라기 오일과 천일염이 들어 있지만, 루드 헬스는 얼티밋 아몬드((Ultimate Almond)라는 제품도 판매하고 있다. 아몬드와 물만 섞은 이 제품은 순수한 식물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다. 카밀라는 “극단적인 영역의 시장도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판매되는 식물성 우유 중 아몬드 우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3분의 2에 달한다. 그러나 아몬드 우유는 평판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한 가지 문제는 환경이다. 아몬드 한 알(기술적으로 한 알이 아닌, 하나의 씨앗)을 키워 내는 데 4.5리터의 물이 사용된다. 세계 아몬드의 10분의 8을 재배하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전체 물 공급량의 약 10퍼센트가 아몬드 재배에 투입된다. 가뭄에 자주 시달리는 이곳에서는 논쟁을 일으키는 문제다.

소비자들은 대부분의 아몬드 우유에 들어 있는 실제 아몬드 함량이 아주 적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실크와 알프로 모두 아몬드 함량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물에다 오일과 다량의 설탕과 점액질을 넣은 다음, 마지막으로 견과류를 조금 얹은 수성 액상이에요.” 엘름허스트의 셰릴 미첼은 말했다. “비즈니스 모델로서 굉장히 매력적이죠. 언제든 물을 팔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업체들이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눈 업계 관계자들도 아몬드 우유는 이제 그 수명이 끝난 것 같다는 데 동의했다. 현재 뜨는 제품은 코코넛과 귀리다.

2012년 페테르손이 오틀리 CEO에 취임할 당시만 해도, 스웨덴 밖에서 귀리 우유를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틀리는 룬드대학교 연구원이었던 리카르드 외스테(Rickard Öste)가 1994년에 설립했다. “귀리는 정말 좋은 작물이에요. 어디에서나 재배할 수 있으니까요.” 페테르손이 말했다. “귀리는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그리고 섬유질도 포함하고 있어요.” 그는 귀리 우유와 비교하면, 아몬드 우유는 그냥 “맛있는 식물 주스”라고 덧붙였다.
오틀리의 마케팅 캠페인. Ⓒ오틀리(Oatly)
올해 50세이며 머리가 검고 날씬한 체형의 페테르손은 귀리 우유의 이미지를 재창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마케팅 광고 전문가 존 스쿨크래프트(John Schoolcraft)를 영입했다. 콘셉트는 간단했다. 스쿨크래프트는 “유당 불내증이 아니라면, 왜 굳이 우리 제품을 찾겠느냐”고 말했다. 두 사람은 새로운 포장 디자인을 선보였다. 1990년대풍의 요란스런 스타일에서, 밀레니얼 세대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오틀리는 자사 제품명을 ‘귀리-스럽게!(Oat-ly!)’로 새롭게 스타일링 했으며, 포장 상자 측면에는 오틀리 직원들이 쓴 80개가 넘는 메시지들 중 하나를 인쇄했다. 그 메시지들은 독자들에게 “탈우유(post-milk) 세대”의 일원이 된 걸 축하한다거나, 약간 반어적으로 “추종자 집단(the cult)”에 동참한 것을 환영했다.

오틀리의 결정적인 한 방은 바리스타 에디션(Oat Drink-Barista Edition)을 출시한 것이었다. 식물성 우유 대부분은 뜨거운 음료에 넣으면 분리되는데, 거의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산도 조절제와 첨가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유 같은 거품이 나지 않는다(이는 식물성 단백질 때문이다). 오틀리는 바로 거기에 강점이 있었다. 거품이 나는 데다, 귀리 맛의 대부분은 커피에 가려지기 때문이다. 페테르손과 스쿨크래프트는 슈퍼마켓들은 무시하고 뉴욕 브루클린과 런던의 쇼디치 같은 힙한 지역의 커피숍들을 공략하기로 했다. “물량은 소매업에서 나오지만, 수요 창출은 커피숍이거든요.” 페테르손이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환경에서 처음으로 귀리를 맛보고 경험해 볼 수 있게 한 거죠.”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전직 바리스타이자 비건 커피 브랜드인 마이너 피겨스(Minor Figures)의 공동 창업자 스튜어트 포사이스(Stuart Forsyth)가 말했다. “오틀리는 귀리를 섹시한 것으로 만들었어요.”

 

식물성 우유의 불확실성


오틀리의 성장에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스웨덴 유제품 업계는 오틀리를 고소했다. “우유와 비슷한, 하지만 사람을 위해 만든 것(Like milk, but made for humans)”이라는 광고 문구가 우유를 부당하게 폄훼했다는 것이다. 오틀리는 패소했지만 페테르손과 스쿨크래프트는 스웨덴 밖에서 이 선전 문구를 계속 사용했다. “이 문장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우유는 소가 송아지를 키우기 위해 만들어지는 겁니다.” 스쿨크래프트가 말했다.

식물성 우유가 정말로 소가 만드는 우유의 건강한 대용품인지는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다. 하찮은 문제가 아니다. 2017년 6월 벨기에의 한 부부는 생후 7개월 된 아기에게 유아용 분유 대신 귀리와 퀴노아 우유를 먹인 뒤, 아기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건강식품 가게를 운영하던 이 부부는 아이가 유당 불내증이라 믿고 의학적 치료 방법을 찾기보다 민간요법의 조언을 따랐던 것이다.

수많은 논쟁은 식물성 우유에 비타민을 추가해 우유 수준으로 영양을 강화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오틀리는 세계보건기구(WHO) 지침에 따라서 비타민을 강화하고 있고, 루드 헬스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루드 헬스의 설립자 카밀라 바너드는 말한다. “뭔가를 강화하기 시작하면, 우유인 척하는 거죠. 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정직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많은 식물성 우유 업체들은 영양소 추가보다 유기체의 ‘순수성’을 (가격이 비싸더라도) 선택한다. 토양 협회(Soil Association)가 인위적으로 영양소를 강화한 제품에는 유기농 인증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칼리피아 농장(Califia Farms)의 무가당 아몬드 우유는 우유병에 “우유보다 50퍼센트 더 많은 칼슘”이라는 문구를 써넣고 있지만 비타민 D, B12, 리보플래빈 등 우유나 강화 식물성 우유에 함유된 영양소들은 빠져 있다.

30년 이상 우유를 연구해 온 퍼듀 대학교의 영양학자 데니스 사바이아노(Dennis Savaiano) 교수는 “제품들 간의 차이가 아주 크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포장의 정보를 읽고 이런 우유들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식물성 우유가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 안에 어떠한 물질도 첨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제품 무첨가, 설탕 무첨가, 대두 무첨가, 글루텐 무첨가, GMO 무첨가, 비스페놀 A 무첨가처럼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무첨가’ 항목이 성분표보다 길다. 칼리피아 농장은 카라기난(carrageenan) 무첨가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데, 카라기난은 유럽 연합과 미국 식품 의약품 안전청, 그리고 세계 보건 기구도 안전성을 인정하여 널리 사용하는 식품 첨가제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의 식문화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식품에 들어 있는 성분에서 들어 있지 않은 성분으로 구매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우리 제품의 종류를 보시면, 좀 정신이 없죠?” 페테르손도 인정했다. “귀리 우유의 정의는 뭘까요? 귀리 우유와 두유, 그리고 아몬드 우유와 쌀 우유 등을 비교해 보세요. 이 제품들이 전부 식물성 우유인가요, 아닌가요?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불확실성에 대항하고, 신생 기업들로부터 기존의 유제품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국 위스콘신주의 한 상원의원은 2017년 유제품 자부심(DAIRY PRIDE)이라는 이름의 법안을 발의했다. ‘요거트와 우유, 치즈의 모방과 대체를 방지하고 매일 규칙적인 유제품 섭취를 권장한다(Defending Against Imitations and Replacements of Yogurt, Milk and Cheese to Promote Regular Intake of Dairy Everyday)’의 이니셜을 딴 법안이다. 이 법안은 유제품을 가장한 식물성 음료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레벨 키친의 타마라 아비브는 “영양 문제로 반드시 우유를 마셔야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성인들은 음료에서 조금 더 부드러운 맛을 느끼기 위해서 우유를 넣죠.” 전후 아동의 영양실조 걱정은 아동 비만 걱정으로 바뀌었다. 우유를 마실 수 없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골다공증이나 구루병으로 고생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런 병이 발생하는 비율은 유럽보다 (우유를 덜 마시는) 중국과 일본에서 더 낮다.

“많은 과학자들은 아이들이 우유를 마셔야 한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유가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은 분명히 가짜죠.” 음식 역사학자 마크 쿨란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유는 나쁘니까 아몬드 우유나 두유 같은 걸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짜이기는 마찬가지예요. 왜냐하면 완전히 다른 식품이니까요.”

 

건강에 대한 불안과 대체 식품


내가 대화를 나눈 영양학자들은 우유가 예전처럼 건강한 식품임을 강조했다. 사실 우유가 지금보다 더 안전했던 적은 없다. 사바이아노 교수는 “과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우유를 나쁜 식품으로 볼 만한 데이터는 없다”고 말한다. “우유가 함유하고 있는 영양소는 풍부해요. 칼슘, 단백질, 리보플래빈과 칼륨의 훌륭한 섭취원이죠. 그래서 우유가 영양가 있는 식품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어요.” 건강 전문가들 역시 유당 불내증을 자가 진단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했지만, 실제로 유당 불내증이 늘었다는 확실한 데이터는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식물성 우유 붐은 영양에만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이고 식물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도 처음은 아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긴 했지만, 판매에 있어서는 부차적인 특성입니다.” 식물성 우유 성장세를 관찰해 온 식품 산업 분석 기업 뉴 뉴트리션 비즈니스(New Nutrition Business)의 이사 줄리언 멜렌틴(Julian Mellentin)이 설명했다. 식물성 우유 구매자의 90퍼센트가 여전히 치즈나 아이스크림 같은 다른 유제품을 구매하고, 치즈나 아이스크림 산업 모두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을 식물성 우유 쪽으로 몰고 가는 힘은 더 거대하다. 우리 몸에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집단적 불안감의 표출인 것이다. 우리는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데, 어쩌면 그래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무언가가 비난당해야 마땅하다.

“유제품 불내증이나 글루텐 과민증, 그리고 그런 종류의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많아요. 하지만 이런 현상은 사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대한 거부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아비브는 말했다.

우유에 대한 커지는 의혹은 어쩌면 거대 농업과 영양 과학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식생활 지침이 바뀐 것을 알고 있어요.” 멜렌틴이 말했다. 처음에는 포화 지방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설탕이 최고의 적이다. 달걀과 견과류는 나쁜 콜레스테롤의 근원이었지만, 지금은 슈퍼 푸드가 되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사람들은 회의적이 되어 가는 거죠.” 멜렌틴이 덧붙였다. “계속 바뀌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누가 듣겠어요?” 과학 이론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과학도 변한다. 그러니 누가 혈액형과 유당 불내증 사이에 관계가 없다거나, 카라기난이 불안감의 원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멜렌틴은 새로 생겨난 유당 불안을 반드시 의학적으로 진단할 필요는 없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알레르기와는 상관이 없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또 어떻게 하면 사람들 기분이 더 나아지는지와 관련이 있는 거죠.” 이런 생각에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오틀리는 식물성 우유의 다음 시장으로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 대기업으로부터 비공개 투자를 받아 2016년부터 중국 사업을 시작했는데 매출 전망이 밝다. 중국의 우유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중국 업체들은 식물성 우유와 유당 무첨가 대체 식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오틀리에게 중국 시장을 정복하는 것은 사업 이상의 윤리적 의무이기도 하다. “환경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중국인들이 농장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현재 지구상의 젖소들로는 그만한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죠.” 오틀리 CEO 토니 페테르손이 말했다. 오틀리는 최근 경쟁이라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퀘이커(Quaker)가 귀리 음료 제품군 출시 계획을 발표했고, 2019년 1월에는 실크도 자체 귀리 브랜드인 오트 예(Oat Yeah)를 출시했다. 페테르손은 “귀리 음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 분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식물성 우유 업체들은 더 신중하다. 해독 주스나 코코넛 오일의 사례처럼, 건강식품 과대광고들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현재는 콤부차가 소화가 잘되는 식품 치료제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식물성 우유의 인기도 길어야 3년에서 5년 정도면 사그라질 걸요.” 멜렌틴이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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