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새로운 결혼을 그리다

그와 함께 살기로 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무작정 파리로 건너갔다. 파리에 가본 경험이라곤 학부 시절 어학연수로 한 학기를 보냈던 것이 전부였다. 부모님은 술이라도 먹어야 몇 마디 해볼 수 있는 불어 실력으로 파리에서 살겠다는 딸을 걱정했지만 갓 대학을 졸업한 나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파리에서의 초기 생활은 순조로웠다. 가톨릭 대학의 어학당에서 공부한 지 1년 만에 한 패션 회사의 시간제 인턴으로 일하게 됐고, 운 좋게도 이 회사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취직할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파리의 중심지 마레 지구로 출퇴근하며 ‘인생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는가’라는, 어린 시절에나 가능한 환상에 푹 빠져 있었다.

내가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도 제일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 사람을 사귀는 일이다. 파리 생활 초기에는 일부러 여러 사람을 만나러 다니고, 이들이 초대한 파티와 저녁 식사에 흔쾌히 함께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파리에 완벽히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의 장벽은 높았다. 현대의 파리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그들만의 연회를 즐기던 귀족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 겉으로는 친한 척하지만 중요한 정보는 같은 프랑스인끼리만 공유하는 고고함을 알아차린 것은 오랜 시간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한 뒤였다.

그리고 지금의 파트너, 줄리앙(Julien)을 만났다. 퐁피두 센터의 옥상 파티에서 만난 그는 세상 모든 고뇌를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의 훤칠한 사내였다. 투덜거리는 모습까지 영화 〈아멜리에〉에 나올 법한 전형적인 프랑스 남자였다. 파티에서 짧은 인사를 나눴던 우리는 같은 해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 소나르(Sonar) 뮤직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재회하고 본격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데이트는 소박했다.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밖으로 에너지를 쏟는 일에 지쳐 있던 나는, 마음이 잘 맞는 누군가와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좋았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줄곧 가족의 품을 떠나 있었기에 집에서 추억을 쌓아 가는 일이 더 즐거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줄리앙과 나, 고양이가 함께 있는 모습.
뛰어난 요리 실력의 소유자이자, 당황스러울 정도로 주관이 강할 때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진작가는 이렇게 나의 삶에 들어왔다. 줄리앙은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두는 다정한 남자였다. 교제를 시작한 뒤로 우리는 거의 매일 서로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던 나보다는 혼자 사는 그의 아파트를 찾는 날이 많았다. 함께 방을 쓰던 영국 친구가 런던으로 떠나고, 어색한 사이의 이탈리아인과 룸메이트가 되면서 그의 집에 머무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결국 우리는 같이 살기로 했다. 동거는 당시 우리 상황에서 퍽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탈리아 사람이었던 내 룸메이트가 피렌체로 돌아가면서, 매달 1000유로가 넘는 집세와 공과금을 혼자 감당하게 된 것이다. 월급의 절반이 넘는 거액이었다. 필요하다면 룸메이트를 다시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또 다시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편안해야 할 집에서도 잘 모르는 사람과 쭈뼛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주 현실적이고도 논리적인 결정은, 줄리앙과 살림을 합치는 것이었다.

이 결정을 알리자 엄마는 땅을 치고 반대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애가 감히 남자와 동거를 하느냐’는 잔소리가 쏟아졌다. 한국 사회의 문화에 익숙한 엄마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많은 시간을 해외에서 보낸 나 역시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집세는 엄마가 내는 게 아니라 나의 몫이며, 줄리앙과 함께 사는 것이 좋으니 이렇게 하겠다고 설명은 했지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주변의 프랑스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는 파트너와 사귄 기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하고, 그러다 아이를 가지면 결혼을 하거나 팍스(PACS·Pacte civil de solidarité)를 맺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국어로는 ‘시민 연대 계약’으로 번역할 수 있는 팍스는 두 성인이 서로의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다.

프랑스인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도, 팍스 계약도 하지 않고 동거 상태로 지내는 경우도 많다. 파리의 특성일 수도 있고 세대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내 주변의 프랑스 커플 중에서 결혼을 한 부류는 성 한 채를 가지고 있는 부르주아 집안이거나 독실한 신자, 나이가 있는 커플이나 파트너 중 한 사람이 외국인이어서 비자가 필요한 경우 등이었다.

워킹 비자가 있었던 나 역시 결혼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나는 곧  아파트 계약을 해지한 뒤 줄리앙의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함께 살며 싸우는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거의 30년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사는데 싸우지 않으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오히려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야 함께 사는 커플들이 무척이나 용감하게 보였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은 무지의 세계로 발을 딛는 것이다. 우리는 불같이 싸우며 서로의 경계선을 알아 가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서로를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건 그와의 동거가 결혼을 했다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나의 의지에 따라 선택한 결과라는 생각이 컸던 덕이다.

 

우리가 정한 방식으로 살기


줄리앙과 팍스를 맺게 된 것은 회사에 다닌 지 5년 정도 됐을 무렵이다. 나는 패션업계가 의외로 창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회사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지금의 상사가 10년 뒤에도 똑같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나도 이 회사에서 더 이상은 발전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사무실에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보다, 나의 삶을 더 재미있고 가치 있게 바꿀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회사를 나가더라도 정부로부터 2년 동안 월급의 70퍼센트에 해당하는 실업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4개월 이상 같은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면 실업 수당을 받을 자격이 되고, 2년 이상 근무하면 최대 2년까지 실업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도 이런 제도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이 수당이 있다면 천천히 앞으로의 방향을 준비할 수 있었다. 줄리앙은 나의 선택을 지지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내 결정을 존중했다. 부모님은 절대로 회사를 관두면 안 된다고 했지만, 앞으로 나와 함께 살며 미래를 준비할 사람은 부모님이 아니라 그였다.

대신 프랑스에서 더 안정적으로 머물기 위해 줄리앙과의 관계를 공식화하기로 했다. 사귄 지는 5년, 동거한 지는 3년이 되던 해다.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팍스였다.

원래 팍스는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현재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됐지만 팍스 제도가 만들어진 1999년만 해도 그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했다. 그래서 중간 단계로서 결혼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2013년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후에도 팍스는 계속 남아 있다. 동성 커플은 물론, 결혼에 담긴 종교적, 전통적 사고방식에 동의하지 않거나 간소한 결합 방식을 원하는 이성 커플에게도 인기가 높다.

팍스를 맺으면 국가에서 발급하는 증명서에 팍스 여부가 기록되고, 파트너는 배우자로서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양도세, 소득세를 비롯한 세금이나 건강 보험료도 결혼한 부부와 같은 수준으로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증여나 상속, 연금은 그에 비해 제한적이지만 재산에 관해 미리 공증을 받는 것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오히려 결혼한 부부가 이혼 소송을 밟기 위해 법정에 가고,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 것에 비해 팍스를 맺은 커플은 간단한 서류를 보내는 것으로 서로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만약 한 사람이 파기를 원할 경우에는 집행 영장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면 된다. 커플 중 누군가가 결혼을 하면 팍스 효력은 사라진다.

팍스는 1998년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Lionel Jospin) 총리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기독민주당과 보수 우파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기독민주당 의원이었던 크리스티나 부탕(Christine Boutin)은 입법 표결 전 다섯 시간 동안 성경을 들고 필리버스터를 하며 “동성애를 인정하는 모든 문명은 쇠퇴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부탕을 비롯한 정치인 대다수가 팍스 제도에 찬성한다. 2017년 11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실린 경제통계연구원(INSEE·L’Institut national de la statistique et des études publiques)의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55만 쌍의 커플이 동거하며, 24만 쌍이 결혼을, 16만 쌍이 팍스를 맺는다고 한다. 팍스에 대한 선호도는 젊을수록 더 높다. 신기한 것은 결혼한 부부의 3분의 1이 이혼을 결정하는 데 반해, 팍스를 해지하는 비율은 10분의 1 정도로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다.

만약 한국 관습에 맞추어 결혼을 하려면 줄리앙과 한국까지 날아가서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상대를 원했을 부모님에게 줄리앙은 부족한 사윗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는 전형적인 프랑스인 줄리앙은 종교와 정부는 오래전에 분리됐으니 종교적 전통에서 비롯된 결혼식은 올리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나와 함께 평생 살고 싶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지만, 이 마음을 남들 앞에서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교감이다. 서로에 대한 진심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결혼 사실을 꼭 알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했다고 둘 사이가 원만하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두 성인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꾸준한 노력과 실천이 중요하다.

우리는 마침내 팍스를 맺었다. 팍스 신청에 필요한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각자의 신분증과 출생증명서, 두 사람이 친인척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와 동거 증명서, 결혼 경험이 있다면 이혼 서류 또는 배우자와 사별했다는 증명 서류 등이 필요하다. 외국인의 경우 영사관에서 관습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관습 증명서는 출생지의 결혼 제도가 프랑스의 결혼 제도에 반하지 않으며,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서류다. 마지막으로는 서로가 원하는 결합 방식을 적은 두 사람만의 팍스 계약서를 내면 된다. 이 계약서에는 동거를 하며 자신의 능력에 따라 커플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치르겠다는 것부터, 부동산이나 재산을 소유할 때 관리를 알아서 한다는 조항을 만들 수도 있다. 팍스를 맺고 생활하다가 처음 쓴 계약서를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서류를 제출한 뒤, 시청의 한 사무실에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서명을 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 증인도, 친구도, 가족도 없이 진행된 계약이 너무 간단해서 웃음이 났다. 그날 오후 우리는 근사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했고, 저녁에는 줄리앙의 동생 집에서 파티를 열어 친구들과 축배를 들었다. 두 개인이 합의를 통해 서로의 삶에 서로를 들이기로 결정했다는 점, 우리의 결정에 가족이나 친척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파티에 참석한 가족들, 친구들은 그와 나의 결정을 진심으로 축하했고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결혼식을 올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많은 사람이 준비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혼 장소나 절차, 예복 등을 맞추다 의견 차로 다투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척들이 두 사람의 결혼에 개입하는 일도 많다. 이 모든 것을 수개월에 걸쳐 준비했더니, 결혼식 당일은 즐길 새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고 하는 커플도 있었다. 또, 스스로는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지만, 가족들의 체면치레를 위해 행사를 치른 것 같다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이란 아름다운 일이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관습이라는 이유로, 전통이라는 이유로 해야 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줄리앙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요리다. 한번 하면 서너 시간을 들여야 완성할 수 있는 비프 부르기뇽(bœuf bourginons, 레드 와인을 넣고 오래 끓인 소고기 스튜)이나, 블랑켓 드 보(blanquette de veau, 송아지 고기와 야채를 넣고 오래 끓인 부드러운 스튜) 등의 전통 프랑스 요리를 즐겨 한다. 모든 프랑스 남자가 그렇지는 않지만 프랑스인 커플들과 어울려 여행을 가면 여자들이 테라스에 앉아 와인과 함께 수다를 떠는 동안, 남자들이 부엌에서 저마다 자신 있는 레시피를 자랑하며 요리를 만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능숙한 솜씨로 고기와 야채를 다듬고, 요리사 부럽지 않은 동작으로 팬을 다루는 건 기본이다. 최고급 육류를 취급하는 정육점이 있다든지, ‘이 가게의 염소 치즈를 못  먹어 봤으면 말을 말라’든지, ‘야채는 여기가 최고’라는 둥 한국에서 주부들이 나눌 법한 대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요리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 퇴근 시간이나 주말에 장을 보러 가면 남성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주 35시간의 평균 근로 시간 덕에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물론 평균적으로 가사와 육아를 더 많이 부담하는 쪽은 여성이다. 남녀 임금 격차도 선진국에 비해 작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프랑스 커플들에게는 어느 한쪽이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없다는 긍정적인 개인주의가 있다. 가사 노동은 남녀 모두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일반적이다.

가사 노동을 얼마나,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는 파트너와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만들어 나간다. 줄리앙과 함께 살며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집안 물건이 어질러져 있어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지만, 내게는 물건이 제자리에 없다는 사실이 공간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 화장실 청소를 싫어하는 나와 달리 그의 취미는 세면대와 변기를 윤이 나게 닦는 일이었다. 물건 정리는 하지만 구석구석 닦을 줄은 몰랐던 내게 ‘집안일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온 집안의 가구를 들추고 청소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나도 그를 따라 정리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났고, 그는 규칙 없이 놓아두던 물건을 잘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리는 번갈아 가며 했지만, 식재료에 대한 이해는 그가 더 높았다. 내가 요리하는 날에는 그가 대신 부엌을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줄리앙이 가사 노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신기했다. 그가 이런 면모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크리스마스에 니스의 줄리앙 부모님 댁을 방문하면서 밝혀졌다. 집은 줄리앙의 삼 남매와 친척들로 북적였다. 어머니가 열 명이 넘는 이들의 식사를 위해 부엌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집에 있는 남자들에게도 각자 역할이 하나씩 있었다. 아버지는 “크림이 더 필요해”라거나 “화이트 와인이 없네” 같은 말이 나올 때마다 연신 장을 보러 갔고, 크리스마스에 빠질 수 없는 굴을 200개나 넘게 깠다.

식사는 코스 요리로 나왔는데 전채 요리, 푸아그라, 생선 요리, 고기 요리, 디저트로 이어지는 식사 내내 가족들이 돌아가며 접시를 내왔다. 요리에 따라 달라지는 와인을 따르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남자 어른은 모여서 고스톱을 치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여자들만 부엌에서 하루 종일 요리를 하는 한국의 명절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명절에만 이런 것도 아니다. 이후에도 니스의 집을 방문하면 두 분께서 부엌에 둘러앉아 야채를 다듬고 음식을 하며, 함께 식탁을 치우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일을 쉬는 날에 장을 보러 가는 것은 당연하게도 남자들의 몫이었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커플을 보면 아이가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많다. 출근길에 아이를 학교나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아빠들이 많고,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 중에도 아빠가 심심치 않게 있다. 이벤트 회사에 다니는 미카엘(Michael)과 데커레이션 디자이너인 마틸드(Mathilde)는 팍스를 맺고 세 아이를 기른다. 첫째는 이제 여덟 살이고, 막내는 돌을 막 넘겼다. 미카엘은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인다. 그동안 마틸드는 차례대로 아이들을 학교와 보육원에 보낼 채비를 한다. 아이를 데려다주는 것은 주로 마틸드지만, 미카엘도 일주일에 1~2회는 아이들과 함께 등교한다. 마틸드가 오후에 아이들을 데려오면, 미카엘은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세 아이를 키우는 미카엘과 마틸드 커플의 일상. 프랑스에서는 가사와 육아를 남녀가 공평하게 부담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소외되는 것도 아니다. 미카엘과 마틸다는 모임에 나가게 될 경우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돌본다. 미카엘이 나가면 마틸드가, 마틸드에게 약속이 있을 때는 미카엘이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잠자리에 들게 한다. 부부 동반 약속이 있는 때는 시간제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가사나 양육을 비롯한 가정 내의 활동에서 어느 한쪽이 희생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두 사람이 파티에서 늦게까지 즐겁게 놀다 가는 모습을 종종 봤다. 막내의 기저귀는 누가 가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모두 같이 한다”고 답한다.

또 이들이 강조한 것은 영아 단계에서부터 잘 갖춰진 육아 복지 시설과 정책이다. 프랑스에서는 엄마가 직업이 있든 없든 탁아 시설에 아이를 맡기거나 또래 아이 4~5명을 동시에 봐주는 보모를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팍스만 맺은 상태에서도 아이에게 제공되는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탁아소에는 국가 자격증을 보유한 보육사들이 있고, 이들은 아이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아이들과 놀아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일까지 도맡는다. 아이를 시설에 보내지 않고 집으로 보모를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보모에게 지급한 급여의 절반 정도는 소득세에서 공제된다.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은 출산 후 6개월 정도가 되면 탁아소를 찾고, 전업주부도 돌이 되기 전부터 파트타임으로 아이를 맡긴다. 덕분에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은 여성도 걱정 없이 일터로 복귀할 수 있다. 여기에 해마다 사용할 수 있는 5주의 유급 휴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파격적인 제도다. 유급 휴가는 원할 때마다 1~2주씩 사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 8월에 3주 이상 몰아 쓰는 편이다. 이때가 되면 프랑스 지역 대부분이 유령 도시처럼 변하는데, 이 기간 동안 가족끼리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유대감을 기를 수 있다. 프랑스 커플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자세는 결혼 여부나 아이의 존재와 무관하게 혼자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도 아이를 맡기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

니스에 사는 치과 의사 알렉스(Alex)와 정신과 의사 줄리아(Julia)는 네 살배기 안나(Anna)의 부모다. 두 사람은 개인 병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계획을 세워 안나를 돌보는 날을 정한다. 안나를 보기로 한 사람은 일찍 퇴근해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오고, 장을 봐서 저녁을 먹이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놀아 준 뒤 재우는 것까지 모두 맡아 한다. 이때 다른 한 사람은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서 미처 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한다. 주말에는 모두 같이 시간을 보낸다. 특이한 것은 줄리아가 일주일에 하루 정도 저녁에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점이다. 중심가를 산책하며 쇼핑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줄리아는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은 아주 중요하며, 창의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파리에 사는 건축가 줄리앙(Julien)과 럭셔리 패션 회사에서 일하는 마르첼라(Marcela)의 경우를 보자. 마르첼라는 럭셔리 패션 회사의 유럽 매장에서 디스플레이를 책임지고 있다. 일주일에 2~3일은 출장이 있는 그는 2년 전에 아만다(Amanda)를 낳았다. 4개월의 유급 육아 휴직이 끝난 후, 남편인 줄리앙은 한 달간의 육아 휴직을 썼다. 그는 마르첼라가 매주 2박 3일씩 출장을 가는 동안 딸을 돌봤다. 브라질 출신인 마르첼라는 “프랑스 남성은 대부분 가사와 육아를 5 대 5로 분담한다”며 “브라질에서는 아이 젖병을 물릴 줄도 모르는 아빠가 많다”고 했다.

가사 노동을 대체로 여성이 하고, 출산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 생활을 중단하는 여성이 많은 한국의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남성이 가사 노동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거나, 그런 생활을 접해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친목을 다지기 위해 회식을 만드는 조직 문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성별이나 위계와 같은 구분 탓에 모든 개인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풍토는 다시 관련 정책의 부재로 이어진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국가의 적절한 지원을 받으며 일과 가정을 모두 지킬 수 있다. 팍스를 맺은 커플뿐만 아니라 결혼을 한 경우에도 남녀가 가사나 육아에 참여하는 정도는 비슷하다. 프랑스 가정에는 대체로 평등한 분위기가 있기에, 시민 대 시민의 결합이라는 팍스의 존재 의의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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