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의 지정학
2화

5G의 지정학

막바지로 치닫는 전쟁

지난 5월 미국 정부는 세계 최대의 통신 장비 공급업체인 중국 기업 화웨이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놀라울 정도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화웨이에 의존하는 이동 통신 네트워크가 중국이 정보를 빼내거나 방해 공작을 펴는 통로로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2019년 5월, 미국은 화웨이가 대(對)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는 혐의를 제기하면서 군수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을 적용해 화웨이 제품에 대한 미국산 부품 공급을 금지했다(화웨이는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를 부인했다).

이러한 조치에는 허점이 있었다. 미국 밖에 있는 시설에서 만들기만 한다면 계속해서 화웨이에 부품을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올해 공급망 전체를 목표로 삼았다. 오는 9월부터는 전 세계의 기업들을 상대로 화웨이 설계 기반의 부품에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가 사용되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화웨이에게는 심각한 타격이었다. 영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수도 있다. 지난 1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용도를 확실하게 정한다는 조건으로 영국 내 5G 통신 인프라의 화웨이 제품 사용을 승인했다. 화웨이는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자율주행차에 쓰일 것으로 보이는 더 빠르고 더 폭넓은 광대역 이동 통신망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차세대 혁신을 내다보는 선지자들과 미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은 5G를 미래로 가는 시금석으로 여겼다. 미래의 보증 수표가 된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존슨 총리의 특기다. 당시 정부는 영국이 기존 절차를 활용해 화웨이의 역할을 감시하면 화웨이의 장비는 통신망의 “비핵심” 부문에 사용될 수 있고, 영국은 5G 시스템을 상당히 빠르고 저렴한 비용으로 구축해서 가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정은 백악관은 물론 존슨 총리가 속한 집권 보수당의 주류 파벌 내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야당은 보수당 내부의 반대 의견을 기꺼이 지지했다. 중국에 대한 실망은 중국이 홍콩 반환 협정을 위반하는 새로운 보안법을 통과시킨 충격으로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잇따르는 미국의 새로운 제재 조치들은 영국이 기존의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그럴듯한 명분이 됐다. 영국 정부는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의 공급망이 불가피하게 차질을 빚게 된다면, 화웨이에 대한 의존이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고 봤다. 이러한 새로운 조치는 영국의 정보기관들이 자랑해 온, 화웨이 장비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의미다. 그 시스템 자체가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4일, 영국 정부는 영국 이동 통신망 사업자들의 5G 네트워크용 화웨이 장비 구입을 금지하고, 기존에 설치된 장비들은 2027년까지 제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리버 다우든(Oliver Dowden) 문화부 장관은 차기 총선이 치러지는 2024년 전에 영국이 자국 내 통신망에서 화웨이를 퇴출하는 “비가역적인 경로”에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결정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 사용 금지 조치에 대해 “(미국이) 많은 나라들을 설득했다”며 생색을 냈다. 호주가 2018년에 화웨이의 5G를 금지하는 등 (미국의 노선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고, 최근에 관련된 행보를 취하는 곳들도 있다. 지난 6월 캐나다와 싱가포르의 통신 기업들은 화웨이의 주요 라이벌인 스웨덴의 에릭슨과 핀란드의 노키아가 공급하는 장비들로 5G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표1 참조). 이전까지는 화웨이가 공급업체로 참여할 수 있었던 나라들이다. 7월 4일에는 프랑스의 사이버 안보를 담당하는 기관 국장이 현재 화웨이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네트워크 사업자들에게 앞으로도 화웨이를 배제하라고 권고했다.
큰 물고기/ 전 세계 통신 장비 매출/ 화웨이(붉은색)/ 노키아(푸른색)/ 에릭슨(하늘색)/ ZTE(청록색)/ 시스코(민트색)/ 출처: 델오로 그룹
이제 시선은 독일에 쏠리고 있다. 독일은 올가을 이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만약 독일이 미국의 강권과 영국의 사례를 따른다면 유럽 연합(EU)의 다른 국가들도 같은 노선을 걷게 될 것이다. 이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서방의 통신 시스템은 조금은 덜 불안정해질 것이다. 미국은 중국 최고의 기업에게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서 계속해서 패권을 휘두를 것이고, 중국도 분명히 대응을 할 것이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은 나라들과 점점 거슬리는 중국을 자극하려는 나라들이 뒤섞이면서, 5G를 네트워크로 완전히 연결되는 미래의 상징으로 여기게 만든 기술 지상주의는 이제 점검의 시기를 맞았다.

 

최후의 도미노


이런 변화는 각국 정부가 전략 산업 부문의 조달에 있어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국가의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서방이 지금껏 마주하지 않았던 딜레마가 있습니다. 즉, 근본적으로 우리와 반대되는 가치관을 가진 테크놀로지 초강대국에 어떻게 맞서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영국의 신호 정보(signal intelligence) 담당 기관 정보 통신 본부(GCHQ)의 전직 본부장인 로버트 해니건(Robert Hannigan)의 말이다.

독일의 결정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국가가 32퍼센트의 지분을 가진 독일 내 최대의 이동 통신 사업자 도이치텔레콤(DT)은 이미 화웨이의 장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DT는 5G 사업을 어렵게 만드는 어떤 움직임에도 강하게 맞서며 로비를 벌이고 있다. 독일 산업계의 이익을 열성적으로 옹호하는 경제부도 DT를 지원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의 보수당과 마찬가지로 메르켈 총리의 소속 정당 기독교민주연합(CDU) 내부에서는 엇갈린 입장이 나오고 있다. 보수파 의원이자 반(反)화웨이 진영을 이끌고 있는 노르베르트 뢰트겐(Norbert Röttgen)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5G 네트워크에 중국이라는 국가와 중국 공산당이 연관되어 있는 것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민주연합과 함께 대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민주당(SPD)과 야당인 녹색당도 화웨이 사업 허가를 반대하고 있다. “지금 당장 의회에서 표결을 한다면, 화웨이는 패할 겁니다.” 베를린의 싱크탱크 글로벌 공공 정책 연구소(Global Public Policy Institute)의 토르스텐 베너(Thorsten Benner)의 말이다.

최종 결정을 해야 할 메르켈 총리는 지금까지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그는 국적을 기반으로 기업을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며, 특정한 보안 기준을 준수하는 기업이라면 모두 독일에서 장비를 팔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2019년 말 베를린 주재 중국 대사는 독일 정부가 5G 사업 계획에서 화웨이를 배제할 경우 독일 기업들을 상대로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한편 DT는 이미 결정이 난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비록 사용자들은 혜택을 거의 체감하지는 못하겠지만, DT는 화웨이와 에릭슨의 장비를 사용해서 이달 말까지 4000만 명의 독일인들에게 기본적인 5G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DT는 또 클라우드 컴퓨팅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도 화웨이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유럽의 국가들이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을 편치 않게 생각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컨슈머 테크놀로지(consumer technology)의 성장이라는 기회를 붙잡지 못한 상황에서(유럽인들은 미국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기업이 유럽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한탄하고 있다), 유럽의 정치인들은 5G 네트워크나 ‘사물 인터넷(IoT)’처럼 유럽이 품을 수도 있는 다양한 기적들을 지연시킬 경우, 미국과의 격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지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모바일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이러한 두려움을 잘 이용한다. 목적은 화웨이와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화웨이 사용 금지에 따른 보상금을 받아 내려는 것이다. 사업자들은 직접적인 비용과 GDP 손실 추정액을 합하면, 화웨이를 배제하는 데 따른 비용이 유럽 대륙 전체에서 수백억 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규제 당국과 외부의 관찰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이해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영국의 다우든 문화부 장관은 영국의 180도 달라진 입장으로 인한 영향이 2~3년의 사업 지연, 20억 파운드(3조 378억 원)가량의 비용이라고 말한다. 리서치 기업인 스트랜드 컨설트(Strand Consult)는 유럽 전체에서 기존의 낡은 4G 장비들을 조만간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화웨이를 배제하는 비용은 그리 대단치 않은 수준이라고 본다. 총비용은 대략 35억 달러(4조 1960억 원)로 추산되는데, 이는 이동 통신 고객 1명당 7달러를 넘지 않는 규모다.
작은 물고기/ 모바일 서비스 매출, 2019/ 시장 점유율, %/ 유럽/ 보다폰(17), 텔레포니카(14), 오렌지(11), 도이치텔레콤(11), 브리티시텔레콤(6), 기타(41)/ 중국/ 차이나모바일(68), 차이나유니콤(17), 차이나텔레콤(15)/ 미국/ 버라이즌(36), AT&T(31), 티모바일*(19), 스프린트*(12), 기타(2)/ 출처: 애널리시스 메이슨/*2020년 4월 합병
그렇다고 해도 유럽 내 모든 휴대 전화 사용자들이 동일한 요금을 부담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 연합(EU)은 단일 디지털 시장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뉴욕에 본사를 둔 버라이즌(Verizon)이 캘리포니아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지만, 유럽에선 폴란드의 사업자가 동일한 방식으로 스웨덴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판매할 수 없다. 중국과 미국에는 각각 3개의 네트워크 사업자가 있는 반면, 유럽에는 100군데가 넘는다(표2 참조). 벨기에, 독일, 폴란드와 같은 일부 시장의 기업들은 화웨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장비를 강제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하더라도 핀란드, 아일랜드, 스페인에 있는 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적을 것이다.

 

쪼그라든 거인들


유럽 시장의 사업자 수가 많아진 것은 EU가 편 정책의 결과다. 멀리 떨어진 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대륙 전체의 프레임워크를 거부당한 통신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의 입지도 확고하게 다지지 못하고 있다. EU 집행 위원회는 시장당 4개의 공급업체를 선호한다. 그 결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들은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다. 유럽에서 휴대 전화 사용자 1명당 월평균 매출은 15유로 이하다. 미국의 일반적인 사용자들은 유럽의 2배가 넘는 비용을 지불한다. 데이터 기업 리휠(Rewheel)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무제한 데이터 요금은 월 74유로(10만 1400원)다. 독일에서는 40유로(5만 4800원), 영국에서는 22유로(3만 130원)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은 불안하고 작은 시장에서 발생하는 높은 비용과 맞물려 사업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 DT와 영국의 보다폰(Vodafone)과 같은 일부 통신업체들은 자본 비용(cost of capital)보다 자본 수익(return on capital)이 작다. 장기 투자를 하려는 주주를 찾기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에밋 켈리(Emmet Kelly)는 유럽 내 주요 통신 사업자들의 시가 총액이 2000년 6월의 1조 유로(1369조 7200억 원)에서 올해 6월 2580억 유로(353조 3878억 원)로 쪼그라들었다고 지적한다. 81퍼센트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한때 거대 기업이었던 스페인의 텔레포니카(Telefónica)와 프랑스의 오렌지(Orange)는 현재 피라미에 불과하다.

이동 통신 사업자들은 오랫동안 EU 집행 위원회에 불만을 토로해 왔다. 이렇게 적은 이윤율로는 투자를 받기 어렵고, 5G 등 신기술 업그레이드에 돈을 쓸 수 없어 결국 유럽이 경쟁자들에 뒤처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은 5G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고, 미국은 계속해서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G를 “미국이 이겨야만 하는 레이스”라고 말한다. 전 세계의 이동 통신 사업자들을 대변하는 기구 GSMA는 2025년에 미국 내 휴대 전화 사용자의 절반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5G를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같은 시기 유럽의 5G 사용자는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거 EU는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EU의 다운로드 속도는 미국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데이터 서비스의 가격은 사용량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게 하락했다. 이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화웨이 금지는 사업자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규제의 “대변혁”을 촉진할 수 있다. 화웨이 금지 조치가 5G 도입을 지연시키고 있으며 비용 또한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럽 각국의 정부들은 합병 규제 완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매 방식으로 판매되는 모바일 서비스 주파수 대역이 중국이나 일본에서처럼 사업자에게 할당될 수도 있을 것이다. 로비스트들의 할 일은 많다. 업계에서는 프랑스텔레콤(현 오렌지)의 대표를 지냈던 티에리 브르통(Thierry Breton)이 EU 집행 위원회의 내수 시장 담당 집행 위원으로 선임된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런 일들이 실현되기 전까지는 진행 속도가 더딜 것이다. 5G 시장에 대한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애널리스트들은 5G 네트워크 사업이 4G보다는 좀 더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는 일치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올해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의 5G 주파수 대역 경매는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연기됐다. 일부 사업자들에게는 좋은 일일 수도 있다. 마이크로칩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제품들이 그렇듯 5G 네트워크에 필요한 장비의 가격은 갈수록 저렴해지고 신뢰도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스가 본격화한다고 해도 먼저 출발한 기업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제공되는 5G 서비스의 대부분은 4G의 빠른 버전에 불과하다. 실제 속도가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소프트웨어로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을 재구성해 특정한 요구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는 5G 테크놀로지의 가장 혁명적인 측면이 제 모습을 갖추려면 수년이 더 소요될 것이다.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지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그들만의 대륙


느린 발전 속도는 에릭슨과 노키아에 대한 압박을 줄여 줄 것이다. 북유럽의 두 기업은 중국 매출 감소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화웨이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에서는 분명히 이익을 올릴 것이다. 에릭슨과 노키아는 유럽이 최근 육성하려 하는 산업 부문의 챔피언들이지만,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두 기업은 현재 미국에서 과점 체제를 즐기고 있다(미국 기업에서 한 곳의 지분을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보류된 것으로 보인다). 기회가 왔을 때 두 기업이 화웨이 없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유럽 시장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업자들도 있다. 게다가 유럽의 시스템 통합(SI) 업체들을 활용하는 방법에는 난감한 사실이 하나 있다. 전자 제품 공급망 대부분이 그렇듯 여전히 장비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온다는 것이다.

공급업체들이 몇 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것이다. 5G 사업에 적극적인 한국의 삼성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7월 15일에는 인도의 재벌 기업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Reliance Industries)가 현재 삼성의 4G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는 지오(Jio) 네트워크로 자체적인 5G 인프라를 구축해 판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오는 다른 사업자들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라쿠텐 모바일(Rakuten Mobile)이다. 첨단 소프트웨어와 기성품 하드웨어, 그리고 개방적인 표준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에 투자하는 이들 기업은 에릭슨이나 화웨이, 노키아와 같은 시스템 통합 업체들을 배제해 나가고 있다. 물론 광범위한 서비스 구현까지는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화웨이를 배척하는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곧 상당히 큰 문제로 나타날 것이다. 중국은 유럽에서 많은 것들을 구입하고 있다. 권역 내에서는 독일이 가장 큰 교역 파트너다. 그리고 중국은 대규모 투자로 많은 지도자들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다. 이런 관계의 일부가 이제는 위험에 처해 있다. 영국이 유턴 계획을 발표하던 날, 런던 주재 중국 대사인 류사오밍(刘晓明)은 트위터에 “실망스러우며 잘못된 결정”이라는 글을 남겼다. 중국은 이러한 결정을 미국에서 조장한 반중국 압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항복이라고 치부하면서, 중국이 영국 내의 수많은 영역에 다양한 형태로 투자한 것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 상업적인 관점에서만 중국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EU의 지도자들은 중국을 “체제의 경쟁자(systemic rival)”로 지목했다. EU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의 유럽 내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의 위구르 소수 민족에 대한 처우, 코로나19라는 단어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것에 대해서 보이는 불편한 기색, 그리고 홍콩에서의 움직임 등이 모두 유럽에게는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렇다고 독일이나 유럽 전체가 화웨이를 반드시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럽에게 중국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유럽은 미국에 등 떠밀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유럽 대륙의 정책 입안자들은 미국 행정부가 자금력을 동원해서 유럽 기업들이 거래하는 은행들을 압박하고 기업을 범법자로 간주해서 처벌하는 것에 불쾌해하고 있다. 물론 유럽의 인터넷 인프라를 제3의 권력의 통제하에 두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유럽의 보안 당국 관계자는 근본적인 아이러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미국이 지금 금융 체제를 통제하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하고 있는 일을 중국이 못 하게 막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이 아이러니는 논쟁을 뒤엎을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 유럽은 위성 발사 장치나 내비게이션 시스템 같은 국가 안보의 필요성과 민간 영역의 인프라가 겹치는 분야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기술적인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조치를 취해 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유럽이 미국의 기술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불만을 토로했다. 동시에 그는 5G 기술 개발을 “주권의 문제”라고 표현하며 “일부 구성 요소들은 반드시 유럽산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화웨이의 역할을 모두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으로 인해 유럽 대륙은 화웨이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밀려 가고 있다. 결국 미국의 압력은 유럽이 “디지털 주권”에 대한 보다 명확한 입장을 보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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