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의 힘
완결

우리는 결국 다시 모일 것이다

코로나19는 군중이란 단어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만들었다. 모임은 갑자기 반사회적이 됐다. 


코로나19 봉쇄령이 다가오던 지난 3월, 나는 400마일(643킬로미터)이나 떨어진 지역의 축구팀 응원가에 사로잡혀 있었다. 에든버러(Edinburgh) 주민들이 집 발코니에서 프로클레이머스(The Proclaimers·스코틀랜드 락 듀오 밴드)의 노래 〈선샤인 온 리스(Sunshine on Leith)〉를 불렀다는 뉴스가 계기였다. 나는 그 노래를 찾아봤다. 스코틀랜드 축구팀 히버니안(Hibernian FC)의 팬 2만 6000여 명이 2016년 스코틀랜드컵 대회 우승 직후 햇볕이 내리쬐는 햄든 파크(Hampden Park) 구장에 모여 노래를 열창하는 아름다운 영상을 발견했다. 두 팀 선수들은 모두 경기장을 떠난 뒤였고, 상대였던 레인저스(Rangers FC) 응원석은 절반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마치 축구 팬들이 공연자이자 관객이 된 하나의 콘서트 같았다.

나는 넋을 잃고 그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집단이 만든 환희의 광경과 소리는 현실을 초월한 듯 했다. 수만 명의 팬들은 모두 녹색과 흰색의 스카프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채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관중의 노래가 후렴구에 이르렀다. 스마트폰 영상이 뿜어낼 수 있는 음량의 한계에 도달했다. 찢어지는 굉음이 나올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나는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들의 모임인 ‘튠리스 합창단(Tuneless Choirs)’의 리더 중 한 사람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충분한 숫자의 사람들이 충분한 음량으로 부르는 노랫소리는 언제나 좋습니다.” 개개인의 부족함은 감춰지고, 합창단은 부분의 합보다 위대해진다. 팝스타 한 명이 슈퍼볼(Super Bowl)에서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을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제아무리 훌륭한 노래라도 혼자 부르면 빈약하고 터무니없게 들릴 수 있다. 좋은 노랫소리에는 화음이 주는 흥분과 불협화음이 내는 거슬림까지도 들어가 있어야 한다. 자부심과 기쁨, 고결함이 서로 부대끼는 충만한 소리가 필요하다.

〈선샤인 온 리스〉는 사랑 노래다. 하지만 축구장에서 불린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승리한 축구팀 선수들, 혹은 스코틀랜드의 동남부 지방 ‘리스’를 노래하지 않는다. 관중 2만 6000명은 서로를 향해 노래하고 있어 보였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목소리는 〈선샤인 온 리스〉를 군중을 위한 사랑 노래로 바꿨다. “지구에 머무를 가치가 있는 동안,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거예요. 신이 리스에 햇빛을 내리는 동안, 나는 신이 하는 일과 당신, 나의 존재를 감사하겠어요.” 유튜브 댓글을 보니, 밀월(Millwall FC)에서 리옹(Lyon FC)에 이르는 다른 축구팀들, 심지어 히버니안의 최대 라이벌인 하츠(Hearts FC)의 팬들까지도 히버니안의 팬들을 축하했다. 우승이나 팀의 활약이 아닌 팬들에게 보내는 축하였다. 댓글 중에는 “경찰 기동대의 말들조차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도 있었다.

마침내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나는 군중을 떠올리게 하는 다른 노래들을 듣기 시작했다. 한 구절만으로 옛 연인이나 친구를 떠오르게 하는 노래들, 낯선 사람 수천 명과 함께 했던 경험이 어떤 기분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노래들을 듣고 싶었다. 가수 드레이크(Drake)의 〈나이스 포 왓(Nice for What)〉과 레게 가수 코피(Koffee)의 〈토스트(Toast)〉는 노팅힐 축제(Notting Hill Carnival)의 군중들 속을 취한 채 걸었던 그때로 나를 데려다줬다. 당시에 나는 가슴을 울리는 베이스 소리에 휩싸이곤 했다.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노팅힐 카니발 ©Miles Davies/Alamy Stock Photo
나는 천장이 낮은 어두운 클럽에서 춤추며 만끽했던 해방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축구팀 AFC 윔블던(AFC Wimbledon)의 경기장에서 터무니없는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추운 겨울 공기 속으로 소리를 내지르던 때가 그리웠다. 내 작은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합쳐지면서 강해지던 느낌, 그 속에서 응원하던 기쁨이 간절했다. 축제와 축구 경기, 카니발, 시위 군중 속으로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의 불안과 현기증이 뒤섞인 짜릿함,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극적인 느낌, 주의를 잡아끄는 소음과 색채의 물결, 군중의 일부가 되어 힘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 내 일부와 독립성을 군중 속에서 기분 좋게 잃는 기쁨. 모든 게 그리웠다. 나와 같은 길을 택한 수많은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뇌리에 휘몰아치는 집회의 기이한 힘이 그리웠다. ‘어떻게 내가 틀렸을 수 있겠어. 이 많은 사람이 모두 여기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군중을 그리워하고 있는 동안, 코로나는 군중이란 단어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만들었다. 모임은 갑자기 반사회적이 됐다. 사람들과 모이는 행위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부주의하게 확산시키고, 타인의 생명보다 당장의 사회적 욕구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리지은 사람들은 ‘경고 신호’처럼 보였다. 파티가 열린다는 소문에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첼트넘 페스티벌(Cheltenham Festival)이나 락 밴드 스테레오포닉스(Stereophonics)의 카디프(Cardiff) 공연 사진을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공유했다. 축제, 모임, 집회, 파티, 행진, 합창, 시위, 경기장의 관중, 공연장, 클럽, 극장, 영화관. 모든 모임은 치명적이고 위험한 존재가 됐다. 봉쇄령이 완화되면서 사람들은 다시 공원과 해변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인종차별의 부당함에 맞서는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와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기후 변화 방지 운동 단체)’ 시위에도 모였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의미의 군중은 앞으로 긴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판데믹 확산에 따른 필요성과 별개로, 코로나 봉쇄령 이전부터 군중은 위협받아 왔다. 우리는 점점 더 작은 단위로 쪼개져 집 안으로 밀려들었다. 군중은 길들여졌고, 갇혔고, 감시당했다. 군중의 일부가 되기란 계속 힘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일 기회는 90년대 이후 크게 줄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통틀어 군중에게는 언제나 회복력이 있었다. 군중을 와해하려는 많은 방법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더라도, 군중은 항상 다시 모일 방법을 찾게 돼 있다.
 

군중은 선과 악을 모두 자극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군중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면 열광적인 분위기만큼 상상할 수 없는 폭력에 이끌릴 수도 있다. 


군중은 언제나 나쁜 평을 받아 왔다. 온화하거나 친밀한 폭도 집단은 없다는 식이었다. 흥분과 해방감은 기괴한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집단 폭행 사건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인도에서 힌두교 민족주의 집단이 이슬람교도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려고 모여든 군중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었다. 일종의 공범이었다. 사람들의 존재와 묵인은 폭력을 도왔다. 군중의 앞쪽과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힘을 실어 준다. 유럽 축구 원정 경기가 끝나고 야밤의 광장에서 처음으로 카페 의자를 집어 던진 훌리건 리더는 다른 소심한 군중들이 부담 없이 ‘협조의 문턱’을 넘어 동참하게 만든다.

축하나 응원을 하는 군중들도 잘못된 행동을 하며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공황에 빠진 대규모 군중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내달리는 군중 속에 휘말린다’거나 ‘죽을 만큼 짓밟힌다’만큼 오싹한 장면도 찾기 힘들다. 사망자 96명이 나온 1989년 영국 힐스브로(Hillsborough) 참사, 21명이 질식사한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 러브 퍼레이드(Duisburg Love Parade), 압사 사고로 2400명이 희생된 2015년 성지 순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공포심을 갖게 한다. 평화롭고 질서 정연한 군중들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불안감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하는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간 일어났던 비극적 사건들로 인해 폭동이든, 시위든 상관없이 군중은 위험하고 비정상적인 형태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 몇 십 년 동안 사회 심리학자, 행동 과학자,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힘입어 군중 행동의 복잡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점차 영향력을 얻고 있다.
조지 크룩생크(George Cruikshank)가 그린 1819년 영국 피터루 학살 ©Alamy Stock Photo

대부분의 사람에게 군중은 매혹적일 수 있다. 무리에 포함되고자 하는 욕망은 본능이다. 춤추고, 구호를 외치고, 축제를 열고, 코스튬을 입고, 노래하고, 행진하며 의례적인 축하를 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역사는 인류 행동에 대한 최초의 기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노팅엄셔(Nottinghamshire)에서 1만 3000년 된 ‘콩가 춤(conga lines)’을 추는 여성들을 그린 동굴 벽화가 발견됐다. 고고학자 폴 페티트(Paul Pettitt)는 벽화가 다른 유럽 전역의 그림들과 궤를 같이한다고 봤다. 유럽 대륙을 아우르는 구석기 시대 집단적 노래와 춤 문화의 일부를 표현했다는 뜻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는 2007년 저서 《거리에서 춤을(Dancing in the Streets)》에서 로빈 던바(Robin Dunbar)를 포함한 인류학자들의 연구를 조명했는데, 춤과 음악을 창작하는 행위가 석기 시대의 가족들에게는 더 큰 집단에 합류해 함께 사냥하고, 포식자에게서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연결의 매개체였다고 결론지었다. 에런라이크는 집단적 기쁨의 의식이 인류 발전사에서 언어만큼이나 고유하다고 봤다. 최근 던바와 다른 인류학자들은 “낯선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 함께 노래하고 결속하는 능력은 현대 인류의 성공적인 진화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실험으로 보여 줬다.

사회와 종교계의 리더들은 오랫동안 군중의 힘에 집착해 왔다. 스스로를 미화하기 위해 군중의 에너지를 이용하려 하거나, 아니면 아예 조직을 이끄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군중을 길들이려고 했다. 에런라이크는 저서에서 무절제하게 춤을 추며 쾌락만을 추구하는 일부 신자를 근절하려는 중세 교회의 투쟁부터 보여 준다. 이후 몇 세기가 지나고 종교 개혁과 산업 혁명이 진행되면서 축제와 기념일, 스포츠 등 수많은 의식과 모임이 법으로 금지됐다. 사람들이 술에 취하는 등 이교도적이며 경건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피터 스털리브래스(Peter Stallybrass)와 앨런 화이트(Allon White)는 저서 《그로테스크와 시민의 형성(The Politics and Poetics of Transgression)》에서 “17세기에서 20세기 사이 유럽에서 대중적인 축제를 금지하려는 수천 건의 법률이 제정됐다”고 했다.

군중 심리와 집단행동에 대한 공식적인 연구는 산업화된 도시들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시작됐다.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과 같은 사상가들은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두고 ‘군중은 항상 폭도가 되기 직전의 존재’라는 생각을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 선동된 군중들이 집단 광기 속에서 순식간에 폭력적으로 바뀌어 선량한 시민들까지 휩쓸 수 있다는 것이다. 르 봉은 “인간은 조직화된 군중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문명의 사다리에서 몇 단계 내려가게 된다”고 했다.

영국 킬대학(Keele University)의 사회 심리학 교수 클리포드 스토트(Clifford Stott)는 “르 봉 시대 이후 군중 심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중은 폭도가 되기 직전의 존재’라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영국 전역에서 일어난 폭동에 대한 언론 보도는 르 봉과 같은 19세기 초기 군중 심리학자들의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 보도를 보면, 폭동은 문명사회를 향한 병적인 침입이었다. 일부 선동가가 안정되고 만족스럽게 살던 대다수에게 퍼뜨린 전염병과도 같았다. 특히 언론은 블랙베리(BlackBerry) 메신저를 통해 시위를 조율한다고 알려진 정체불명의 ‘범죄 조직’에 초점을 맞췄다. 3만 명으로 추산된 참가자들은 ‘흉악한 폭력배’로 묘사했다. ‘폭도’, ‘동물’. 신문 1면의 헤드라인은 거침없었다. “폭도들의 지배(Rule of the mob)”, “욥이 지배한다(Yob은 Boy의 철자를 뒤집은 것으로, 비뚤어진 영국 청소년 문화를 일컫는다)”, “타오르는 얼간이들(Flaming morons)”. 일부 진보 세력은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영국 총리에게 “약탈자(looters)들을 사격해라. 물대포를 쏴라”는 등 군대 파견까지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2011년 8월 영국 런던 해크니에서 청년들을 주축으로 한 폭동이 일어났다. ©Luke Macgregor/Reuters
스토트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고전적인 군중 이론은 타당성이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전적인 군중 이론은 현상을 설명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어디에서든 이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죠.”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입장에서 매우 편리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이론은 의미 없는 군중의 폭력을 앞뒤 다 자르고 병리학적으로만 가공하며 억압을 정당화합니다.” 그의 지적처럼 고전 이론은 군중의 광기에 폭력의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대신 권력자들은 폭력이 발생한 원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면밀히 검토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얻는다. 미국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두고 법무부 장관은 폭력을 부추겼다는 ‘외부 선동가(outside agitators)’들을 비난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적으로 조직된 폭력배들(thugs)’이라고 언급했다. 르 봉이 19세기에 주장했던 군중의 개념을 정확히 이용했다.

군중 행동과 관련해 최근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구체적인 분석과 연구들은 더욱 정교해진 시각을 제공하며 오래된 가정들을 반박한다. 군중 심리를 연구하는 에든버러대 앤 템플턴(Anne Templeton) 교수는 “군중이 가진 능력은 놀랍다. 군중은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사회 친화적인 행동을 자주 실천하면서 집단 내부의 다른 구성원을 지지하기도 한다”고 평가한다. 템플턴 교수는 2017년 맨체스터 아레나(Manchester Arena)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공격을 예로 들었다. 당시 CCTV에는 응급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부상자들을 응급 처치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시민들은 피해자들에게 음식과 피난처, 교통수단은 물론 정서적인 지원도 주기 위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비상 상황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특히 피해자들이 자기 그룹의 일원일 때, 놀랄 만큼 많은 도움을 줍니다.”

템플턴 교수에 따르면, 소속된 군중 속에 있을 때 뇌에서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난다. 더 큰 행복감과 자신감을 느낄 뿐 아니라, 혐오감에 대한 역치(閾値)도 낮아진다. 축제 참가자들은 땀 냄새를 느낄 정도로 낯선 사람들과 가깝게 모여 즐겁게 술을 나눠 마신다. 하지(Hajii) 성지 순례자들은 때때로 피가 묻은 면도기를 나눠쓰며 머리를 민다. 군중 속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느낀다.

군중 안에서 힘의 작용이 얼마나 복잡하게 이뤄지는지 이해하면, 오히려 핵심은 간단하다. 군중은 선과 악을 모두 자극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군중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면 열광적인 분위기만큼 상상할 수 없는 폭력에 이끌릴 수도 있다. 군중의 열정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영국 기득권 세력에게 입힌 타격은 폭력만큼 강력했다.

불가리아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는 1960년도 저서 《군중과 권력(Crowds and Power)》에서 “열린 군중이야말로 진정한 군중이다”라고 썼다. 열린 군중은 권력자들에게 형태와 규모를 제한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군중’이다. 카네티는 “예수의 산상 설교(The Sermon on the Mount)와도 같은 근본 원리도 열린 군중에게 전해졌다”고 썼다. 아부하는 무리, 세뇌된 광신교, 발을 맞춰 행군하는 군대는 유연하고 민주적이며 권력에 반하는 집회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하지만 ‘열린 군중’을 찾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열린 군중’이 개방성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진 세상이다.

20세기 말, 대중문화 측면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무질서했던 폭발은 현대 영국 군중에 대한 고정 관념을 만들었다. 첫 번째는 1970~80년대 축구 팬덤과 과격한 팬들이 저지른 여러 가지 범죄들과 피할 수 있었던 힐스브로의 비극이 꼽힌다. 96명이 숨진 힐스브로의 비극은 군중을 짐승과도 같은 폭력 단체로 보는 당국의 시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시각은 언론과 경찰, 정치인, 축구 기관에 스며들어 공포와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는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와 레이브(rave) 파티, 즉 영국 전역의 들판과 버려진 창고에서 밤새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하위문화의 폭발이었다. 미디어는 불법적이거나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는 ‘악마의 문화’처럼 묘사했지만, 영국의 하위문화는 번성했고 규제에 대항했다. 하지만 법을 이기진 못했다. 이후 하위문화 모임을 조직하려는 사람들에게 상황은 예전 같지 않았다.

경찰은 ‘자유로운’ 레이브 파티를 감시하고 단속했다. 다른 사람들의 접근도 막았다. 이는 정부가 쇠스랑을 든 군중만큼 행복한 군중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몇 년 전, 소설가 하리 쿤즈루(Hari Kunzru)는 90년대에 만끽했던 젊음을 돌아보며 레이브 파티를 회상했다. “고동치는 베이스 음을 느낄 때,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흥분을 느꼈습니다. 한 몸처럼 몸을 일으키는 댄서들, 우리가 서로 함께 연결된 공간은 황홀한 환상과도 같았습니다.”
1989년 영국 버크셔에서 열린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 파티 ©Rex/Shutterstock
절정을 맞이했던 ‘레이브 시대’는 우스터셔(Worcestershire) 지역의 야외에 2만 명이 넘게 모여 일주일 간 자유롭게 벌였던 1992년 캐슬모턴 커먼 페스티벌(Castlemorton Common Festival)에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캐슬모턴 커먼 페스티벌을 두고 소설가 앤서니 버제스(Anthony Burgess)는 “개인의 지능을 아메바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거대 군중”이라고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Evening Standard)》에 밝혔다. 소설가 한 명의 현실 도피주의적 환상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문명의 붕괴로 작용했다.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에서 존 메이저(John Major) 총리로 정권 교체가 일어나던 시기를 맞아 타블로이드 신문과 경찰, 지주, 보수당은 레이브 파티에 모인 군중을 해산시키는 일에 집중했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불법 점거자와 학교 중퇴자부터 마약 복용자, 히피, 사냥 반대론자, 도로 건설 반대 시위자, 그리고 여행자들까지 다양했다.

1994년 영국 의회는 시끄러운 음악을 트는 모든 종류의 야외, 야간 공개 모임을 금지하는 소위 ‘공공질서유지에 관한 법안(the Criminal Justice and Public Order Act)’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금지 대상 음악을 두고 ‘일련의 비트를 반복하는 모든 소리 또는 대부분을 포함한다’고 명시했다. 적용 대상이 모호하다는 문제는 상원 토론 과정에서 사라졌다. 보수당 원내 부대표이자 세습 귀족인 얼 페러스(Earl Ferrers)는 “레이브 파티는 제한하되 파바로티(Pavarotti)의 공연이나 바베큐 파티, 이른 저녁 시간의 댄스 파티는 제한하지 않는다”는 수정안을 제안했다. 나는 당시 이 모습을 보고 “정부가 세계적인 성악가인 파바로티를 감옥에 가두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길 바란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레이브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평소처럼 축하하고 놀면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은 집회의 권리를 따져 물었다. 수만 명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인 1994년 10월에 3개의 법안 부결 시위(Kill the Bill)에 모인 것이다. 상의를 벗고 드레드락(길게 땋은 형태) 머리를 한 시위 참가자들이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지르며 음악 박자에 맞춰 다우닝가(Downing Street)의 정문을 흔들 때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당시 촬영한 영상을 보면 반소매 셔츠를 입은 경찰이 공포에 질려 있는 동안 한 시위자가 정문 꼭대기에 올라앉아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타임캡슐 같은 장면이다. 시위하는 군중들이 총리 관저에 그렇게 가깝게 다가가는 일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이 창고에서 열린 파티를 불시에 단속했다. ©PYMCA/Universal Images Group/Getty
결국 법은 자유로운 파티 문화를 없애 버렸다. 힐스브로 참사와 마찬가지로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사실 이 법은 집회의 자유를 막는 제한 조치의 시작이다. 지난 25년 동안 감시 기술의 발달과 많은 공공 공간의 민영화로 군중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90년대에는 내무부 범죄 예방 예산의 78퍼센트가 CCTV를 설치하는 데 쓰였고, 2000년에서 2006년 사이에는 공적 자금 5억 파운드(7430억 원)가 추가로 투입됐다. 런던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감시 체계가 잘 갖춰진 도시였다. 아직도 중국을 제외하고 1인당 CCTV의 수가 런던보다 많은 도시는 없다.

CCTV의 폭발적인 증가는 21세기 도시가 군중의 자유를 방해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도시 재생 프로그램은 주민들이 직장과 상가를 효율적으로 오가도록 고안됐다. 사회적 시민이 아닌, 업무와 거래 과정에서만 상호 작용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셈이다. 맨체스터(Manchester)의 스피닝필드(Spinningfields), 리버풀 원(Liverpool One), 모어 런던(More London)과 같은 현대 영국의 도시 재생 구역이 군중들의 잠재적 모임 장소라는 주장은 신기루처럼 들린다. 진정한 공공 공간이 개인 소유의 공공 공간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경호원들이 순찰하는 공간들은 사적 규칙과 규정으로 보호된다. 공간의 소유주들은 정치적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다. 또 원할 때마다 누구든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완벽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2011년 ‘런던을 점령하라(Occupy London)’ 시위대가 런던 증권 거래소 근처 파터노스터 광장(Paternoster Square)에 캠프를 만들려고 했다. 이때 경찰은 광장을 사유지로 인정하는 법원 명령을 집행했고, 바리케이드를 치며 캠프 설치를 막았다. 《옵저버(Observer)》의 건축 평론가 로완 무어(Rowan Moore)는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며 “파터노스터 광장 재개발과 관련된 모든 건축 관련 성명서, 개발 계획 신청서, 보도 자료에서 ‘사유지’를 ‘공공장소’로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다.
 

광장에 모인 군중의 슬로건은 ‘온라인에서 영감을 받고, 오프라인에서 땀을 흘리자’였다.


공공질서 관련 법 제정으로 영국의 도시는 군중을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변했다. 그러자 이제는 시민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1세기 군중들은 손끝에 새로운 기기와 기술을 지니고, 새로운 법과 도시에 적응해 나갔다. 비평가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는 선견지명이 담긴 2002년의 저서 《현명한 군중(Smart Mobs)》에서 만나기도 전에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군중에 주목했다. 그는 2001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어난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시위에서 대규모 문자 메시지가 활용된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이동 통신의 변혁과 함께 ‘소셜 쓰나미(social tsunami)’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외와 고립으로 특징지어진 현대 사회 군중도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는 생명력을 갖는다. 2009년 ‘이란 녹색 혁명(Iran green revolution)’, 2011년 ‘아랍의 봄(Arab Spring)’, 금융 부패에 저항하는 ‘점령하라’ 시위,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 시위, 2013년 터키의 ‘게지 공원(Gezi Park)’ 시위. 이 모든 대중의 저항 운동은 과거와 달랐다. 눈에 보이는 모습만 고려하면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새로운 군중의 분노가 나타났다. 대부분은 온라인에서 이미 초기 관계를 형성하고 정치적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광장에 모인 군중의 슬로건은 ‘온라인에서 영감을 받고, 오프라인에서 땀을 흘리자’였다.

2010년 겨울, 디지털로 무장한 시위대는 영국 거리도 점령했다.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이 공동으로 내놓은 긴축 정책과 등록금 3배 인상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이었다. 경찰은 이른바 ‘주전자(kettle) 전술’로 시위대를 고립시켰다. 음식과 물, 화장실, 따뜻한 옷과 의료 지원 없이 몇 시간 동안 시위대를 포위하고 좁은 지역으로 몰고 갔다. 시위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의욕을 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데이비드 라미(David Lammy) 하원의원이 테레사 메이 내무부 장관에게 “끓어오르게 하는 것이 주전자의 역할 아닌가요?”라고 물었던 것처럼, 주전자 전술은 시위대를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경찰의 주전자 전술은 시위대가 “자중하자”는 전국 학생 연합(National Union of Students) 지도부의 제안을 무시하고 직접적이고 급진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12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대학생 시위에 기마 경찰이 투입됐다. ©Leon Neal/AFP/Getty Images
한나 아우콕(Hannah Awcock)은 학생이던 2010년에 시위에 참여했고, 지금은 에든버러대에서 시위의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아우콕은 “시위대는 주최자나 정부가 허용한 범위보다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저지선을 밀어붙이기 마련이다”라고 설명했다. 1866년 하이드 파크(Hyde Park) 참정권 운동에서부터 학생 집회까지 대부분 시위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10년 학생 시위와 런던 폭동 이후 9년 동안 브렉시트(Brexit)와 긴축 정책을 둘러싼 분위기가 격앙되면서 대규모 시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잠잠해졌다. 아우콕은 “미국 9.11 테러 이후 등장했던 영국 경찰의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경비 방식은 이제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위 자체가 예전보다 덜 급진적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강화된 감시 체계와 정보 수집 기술들로 경비 방식이 조금 더 교묘해졌기 때문입니다.”

최근 10년간 이뤄진 경찰 경비 방식 변화의 배후에는 군중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있다. 군중 심리학자 클리포드 스토트는 경찰의 강압적인 경비 활동을 막기 위해 수년간 경찰, 축구 연맹 관계자들과 함께 일했다. 스토트는 사우스요크셔(South Yorkshire) 지방 경찰이 2011년 셰필드(Sheffield) 지역 자유민주당 회의에서 스토트가 제안한 방법을 시험한 당시가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브라이튼(Brighton), 리버풀(Liverpool), 버밍엄(Birmingham), 맨체스터 같은 곳과 달리, 셰필드는 정부나 정당 회의를 열었던 경험이 없었다. 게다가 대규모 학생 시위와 긴축 정책 반대 시위까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이에 대비해 연락 담당 부서(PLT·Police Liaison Teams) 내에 파란색 조끼를 입은 ‘대화 팀(dialogue unit)’을 신설했다. 대화 팀은 시위대의 바깥에서 경비 활동을 하기보다는, 군중 사이에 개별적으로 섞여 경찰과 소통했다.

“우리는 대화 팀이 경찰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스토트는 “대화 팀은 경찰의 불필요한 개입을 막아 냈다”며 “경찰의 개입이 필요 없다고 지휘관들까지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그러자 경찰이 폭동을 진압하려고 들이닥치는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시위 규모가 단계적으로 줄어들었고, 군중은 스스로를 통제했다. 스토트는 이후 경찰의 유연한 시위 대응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경찰이 군중과 대화할 수 있을 때 무질서가 줄어듭니다. 간단한 일입니다.”

그레이터 맨체스터(Greater Manchester) 경찰서의 메리타 워스윅(Melita Worswick) 경감에 따르면, 경찰이 시위대에 대응하며 공공의 안전과 공공질서만 강요하던 전략에서 벗어난 큰 변화였다. 워스윅은 “담당자와 군중의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워스윅은 또 “시위 참가자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경찰 경비가 이뤄져야 한다”며 “시위대의 권리를 지켜 주지 않을 때 무질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게 옳은 방법입니다.” 경찰이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뒤로 물러나는 법도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경찰들이 최근 레인저스(Rangers FC)와 셀틱(Celtic FC)의 축구 경기에서 사용한 접근 방식도 비슷하다. 글래스고 경찰은 학자들의 권고에 따라 팬들이 서로를 야유하도록 내버려 둘 계획이다. 야유가 관례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또 폭력으로 번지지 않는 한 개입하지도 않을 방침이다.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군중들이 스스로 통제할 것이라고 믿는다.

경찰의 설명은 분명히 진전된 상황처럼 들린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미사여구처럼 되지 않는다. 환경 단체 ‘멸종 저항’은 집회 초기만 해도 경찰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려고 했다. 집단적으로 검거당하는 모습을 시위 전술 중 하나로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수백 건에 달하는 런던 경찰의 시위 대응을 두고 ‘구조적 차별, 무력 사용, 위협과 과잉 대응’이라고 비난했다. 최근 런던 경찰청은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에 나선 참가자들을 체포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에 관한 법률을 이용했다. 경찰이 여전히 많은 측면에서 물러설 뜻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군중의 힘’은 잠깐 운동을 안 한다고 줄어드는 근육과 다르다. 군중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의 일부다. 군중은 그렇게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과거 ‘열린 군중’은 사라졌다. 대신에 오늘날 군중의 집회는 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떠오르는 이벤트 산업의 양상을 보면, 21세기 군중들이 이전보다 약해졌고 돈이 되는 집단이 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벤트 산업 자체는 물론 새로운 발명품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벤트는 보통의 이벤트들과 다르다. 대부분 후원자가 있고, 입장료를 내야 하고, 다양한 미디어 파트너들과 함께하는 이벤트들이다. 이들은 도시를 브랜드로 만들고, 관광객 모집에 도움을 준다. 사전에 합의된 참가자들은 주최 측의 감시 하에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약속 시간에 해산한다. 이렇게 현대 도시와 시민들을 수익 창출의 도구로 바꾼다.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총리가 런던시장 시절인 2011년 런던 홍보를 위해 설립한 민관 협력 업체 런던앤파트너스(London&Partners)에 따르면, 이벤트 레저 관광은 2015년에만 28억 파운드(4조 4200억 원)를 시에 벌어다 줬다. 이 중 644만 파운드(101억 6966만 원)는 해외 이벤트 관광객에게 버는 돈으로 추산됐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영국 자체가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방문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음악이 아닌 스포츠다. 사람들이 런던에서 스포츠에 쓰는 돈은 전체 이벤트 비용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 몇 년간 스포츠 분야에 분 열풍 덕에 미국의 NBA(프로 농구), NFL(프로 풋볼), MLB(프로 야구) 경기들이 점점 많이 런던에서 열리고 있다. 런던앤파트너스에 따르면, 진짜 NFL 경기도 아닌 홍보 이벤트 ‘리젠트 거리의 NFL(NFL on Regent Street)’에만 25만 명이 모였다.
런던 시청 앞 광장. 개인이 소유한 공공 공간이다. ©Steven Watt/Reuters
군중이 있는 곳에는 소비자가 있다. 스스로가 ‘파트너’라고 칭하는 상업적 후원자들은 정부 지원이 없는 이벤트의 모든 움직임을 따라다닌다. 지난해 상업적 자본 세력들은 ‘버진 머니 런던 마라톤(Virgin Money London Marathon)’, ‘프루덴셜 라이드런던(the Prudential RideLondon)’, ‘기네스 식스 네이션스(Guinness Six Nations)’, ‘EFG 런던 재즈 페스티벌(EFG London Jazz Festival)’ 등의 행사를 주관했다. 성 소수자 인권을 위한 행사 ‘프라이드 인 런던(Pride in London)’은 2019년 정치적 의미가 퇴색된다는 ‘핑크워싱(pinkwashing)’ 비판을 받으면서도 메인 스폰서 테스코(Tesco)를 비롯해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스카우트(the Scouts), 런던 증권 거래소, 레브론(Revlon), 폭스턴즈(Foxtons)까지 73개의 ‘파트너’들을 모았다. ‘핑크워싱’은 제품 홍보 등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 성 소수자 인권을 이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큰 행사가 치밀하게 계획되고 관리될수록 참가자들은 더 안전해지고, 군중은 더 많이 즐길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행사가 잘 관리되면, 잘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나 장애인을 위한 이동용 설비뿐 아니라, 적절한 개수의 화장실과 출구가 만들어진다. 교통 접근성과 시야도 확보된다. 음식과 물, 탁아 시설도 충분해진다. 사람들이 다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은 물론이고 노약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노팅힐 축제나 프라이드(Pride), 멜라(Mela)와 같이 이벤트 개최 비용을 스폰서들이 내게 하면서 모든 사람이 쉽게 올 수 있는 무료 행사를 유지하겠다는 주최 측의 주장은 합리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벤처 투자를 받은 뮤직비디오 플랫폼 ‘보일러 룸(Boiler Room)’이 노예제 철폐를 기리는 노팅힐 축제를 생중계한다. 런던 남부의 램버스 컨트리 쇼(Lambeth Country Show) 같이 대중적이고 역사가 긴 무료 커뮤니티 축제의 경비와 보안이 갑자기 철저해진다. 분노와 불매 운동까지 일으키는 움직임들이다.

너무 비판적인 시각일지도 모른다. 21세기의 군중을 길들인다고 군중의 힘 자체가 소멸되지는 않는다. 군중의 일부가 되는 경험은 여전히 모든 예상치 못한 면에서 변화를 불러온다. 군중을 ‘하나의 뇌와 천 개의 팔다리를 가진 짐승’으로 보는 학자들의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집단 속 개개인의 다양성이 군중을 활력 있게 만든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하나로 뭉치고 협력에 참여하는 행동과 전혀 거리가 멀지만, 본능에 따라 늘 무리에서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다. 좋든 나쁘든, 군중은 소극적이거나 보수적인 참가자마저도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게 만든다. 공공장소에서 정치적 신념이나 성적 지향성을 밝히거나, 유명 프로축구 선수인 세르히오 아구에로(Sergio Agüero)에 대해 솔직하게 비평할 수도 있다. 군중과 뒤섞여 은행을 점거하고 벽돌을 던지거나, 낯선 사람들과 싸울 수도 있다. 아니면 커다란 기차역 중앙 홀에서 가수 아바(Abba)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가능하다. 

‘군중의 힘’은 잠깐 운동을 안 한다고 줄어드는 근육과 다르다. 이 세상이 군중을 이루는 방법을 알고, 필요성을 느낀 역사는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켜야 했던 몇 달보다 훨씬 길다. 군중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의 일부다. 군중은 그렇게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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