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
6화

블루보틀의 법칙

철학이 먼저다

 
커피 시장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브랜드 가치를 유지해 온 블루보틀은 식음료 브랜드의 대표적인 성공 신화로 꼽힌다. 블루보틀의 여정은 브랜드 전략을 어떻게 수립해야 할 것인지를 보여 주는 모범 사례와도 같다.

블루보틀은 ‘품질 우선주의’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철학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로스팅 48시간 이내의 원두만 사용한다’는 원칙을 내놨다. 그리고 빨리 만들어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았다. 느리지만 스페셜티 원두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핸드 드립 커피만을 제공했다. 커피 이외의 음료 메뉴는 취급하지 않았다. 오직 최고의 커피를 제공한다는 철학을 제품에 고스란히 적용한 것이다.

창업자 프리먼은 연주 투어를 다닐 때 핸드 드립 도구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커피 애호가였다. 최적의 로스팅 포인트를 찾기 위해 20초 단위로 테스트를 할 만큼 디테일에 집착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블루보틀의 많은 투자자들이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창업자의 고집스런 완벽주의를 투자 이유로 꼽을 정도로, 프리먼의 철학은 확고하다.

작은 창고 구석에서 창업한 초보 자영업자 프리먼이 남들과 달랐던 한 가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그대로 반영한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내 커피는 매일 더 좋아져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의 생각이 블루보틀이라는 브랜드의 핵심 철학이 되었다. 그리고 이 철학은 제품, 디자인, 매장 인테리어 등 브랜드 곳곳에 녹아들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첫걸음은 자신이 만드는 브랜드의 철학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창업자의 자산과 역량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흔들리지 않는 콘셉트가 만들어지고, 오랜 시간 살아남아 고객에게 인정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블루보틀은 프리먼이라는 창업자가 ‘자기다움’을 바탕으로 만든 브랜드다. 그리고 꾸준하게 자신의 철학을 관철했고 비즈니스를 성공시켰다. 로스팅 48시간 이내의 원두, 핸드 드립과 라테 아트 같은 원칙들이 15년간 한결같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고객이 프리먼의 철학을 알아보고 진정성을 인정한 것이다.

분명한 철학은 사업 확장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간소한 디자인, 좋은 품질을 브랜드에 녹인 일본의 브랜드 무인양품(MUJI)은 슈퍼마켓 체인의 자체 브랜드(PB)로 시작해 가구, 의류, 가전, 식품 등 7500개의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싼 가격이 아닌 적당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한다는 철학은 특정 제품이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무한히 확장이 가능하다. 실제로 무인양품은 최근 호텔과 슈퍼마켓 시장에도 진출했다.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자기다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창업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명확한 철학을 세워야 한다. 그 이후에 보유 자금, 인적 네트워크 등의 자산을 바탕으로 콘셉트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오래가는, 성공하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공간을 파는 스타벅스, 커피를 파는 블루보틀

 
‘단 8가지의 메뉴만 팝니다.’ 블루보틀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문구이다. 실제로 블루보틀은 커피 이외의 메뉴를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스페셜티 커피의 3대 브랜드로 불릴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된 원두를 사용한다. 스타벅스가 프라푸치노, 티바나, 심지어 와인까지 취급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브랜드의 철학을 결정했다면 그 브랜드가 무엇을 파는 곳인지 결정해야 한다. 고객에게 제3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 콘셉트인 스타벅스는 공간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에 집중한다. 좋은 품질의 커피는 물론 넓은 공간, 좋은 음악,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커피 이외에도 다양한 음료와 식품을 제공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 반면 블루보틀은 오직 커피 한 가지만을 판다. 매장에서 유일한 주인공은 커피뿐이다. 커피와 어울리는 간단한 디저트, 커피의 전문가인 바리스타,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는 MD 제품 등은 커피 이외에는 그 무엇도 주목되지 않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2017년 일본 도쿄에 출장을 갔을 때 아침 일찍 신주쿠 블루보틀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길을 나섰지만, 불과 한 시간 뒤에 스타벅스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제야 두 브랜드가 판매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명확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블루보틀은 최고의 커피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커피를 받아 든 이후에는 블루보틀에서의 시간이 종료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성껏 내려 준 커피를 제공하면서 바리스타는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알리고 작은 매장 내에 어렵사리 앉게 되더라도 주변에 앉지 못하고 서 있는 다른 고객이 보여서 빨리 일어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스타벅스의 경험은 커피를 받아 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내가 몇 시간을 앉아 있든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을 보장하는 곳에서 여유 있게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이처럼 공간을 파는 스타벅스와 커피를 파는 블루보틀은 같은 커피 브랜드이지만 다른 가치를 판매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을 한다면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 가치를 파는 곳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고객이 그 가치를 인지해야만 당신의 브랜드를 찾게 될 것이다.

 

진정성을 기술로 연결하라


브랜드 차별화의 시작은 자기다움을 바탕으로 브랜드 콘셉트를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사업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콘셉트를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는 것이다. 초창기 블루보틀은 매장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의 한계를 원두 도매 비즈니스로 극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별 카페 매장에서 제공하는 커피의 품질은 블루보틀 매장에서 제공하는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균일한 맛을 낼 수 있는 스타벅스 등의 다크 로스팅에 비해 블루보틀의 미디엄 로스팅은 보관, 그라인딩, 추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맛을 유지하기 어렵다.

블루보틀 커피를 사용한다는 카페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을 한 고객들의 실망은 블루보틀 커피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진다. 결국 완벽주의자 프리먼은 원두 도매 비즈니스 모델을 과감히 폐기한다. 당장의 커다란 수익을 포기하는 이러한 결정은 최고의 커피를 제공한다는 블루보틀의 철학에 대한 고객의 신뢰를 강화한다.

물론, 블루보틀이 대책 없이 수익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기술 발전을 활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낸 것이다. 구글 벤처스와의 협업으로 온라인 판매망을 구축하고 원두 정기 배송으로 직접 고객에게 신선한 원두를 배송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였다. 도매로 납품하는 소수의 매장이 아닌 미국 전역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 비즈니스 모델로 이전보다 더욱 커다란 수익을 얻게 된 것은 물론이다.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의 발달을 이해하고 사업에 적용해야 한다. 블루보틀 역시 구글 벤처스의 투자를 계기로 온라인 스토어를 구축했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커피 구독 사업을 시작했다. 프리먼이 카페를 대상으로 한 원두 판매 사업을 중단한 이유였던 커피 품질 유지의 문제는 미국 전역의 고객에게 신선한 원두를 제공하는 방식의 구독 사업으로 손쉽게 해결되었다. 이제 블루보틀은 로스팅하는 커피 원두의 품질을 최상으로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벤츠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시대에 온라인을 모르고서는 어떤 사업도 할 수 없다. 새로 오픈하는 가게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가게 이름을 검색하는 것이 요즘 고객이다. 검색 결과에 따라서 다음에 방문할지 아닐지 결정이 된다. 개장하기 전부터 고객이 찾아 와야 하는 이유를 온라인에 설명해 놓아야 하루라도 빨리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기술은 국내외 요식업계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고 있다. 배달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했던 초창기에는 전단지의 정보를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보여 주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외식업 창업을 한다면 배달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반드시 고민해 보아야 할 정도로 시장이 바뀌었다. 전에는 중식, 치킨, 피자 등으로 제한되었던 배달 음식의 범위는 산지에서 당일 잡은 생선회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는 배달 시장의 성장뿐 아니라 물류의 발전과 관련되어 있다. 배민 라이더스, 푸드플라이 등 배달 전문 스타트업들은 배달이 안 되는 음식점을 찾아가 음식만 만들어 준다면 주문, 결제, 배달, CS(customer satisfaction)까지 모두 알아서 하겠다고 설득하고 있다. 우버이츠(Uber Eats)는 심지어 전문 배달원이 아닌 일반인들도 간단한 교육만 받으면 원하는 시간에 배달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장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고객들은 굳이 밖에 나가서 주차를 하고 줄을 서서 음식을 먹는 것보다 원하는 음식을 집에서 간단히 시켜 먹는 것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물론 배달에 적합하지 않은 음식들은 배달로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지만 전혀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찾고 있는 사업가들은 이 문제를 기술 혁신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 있다. 배달 용기의 개발, 레시피의 변화, 보다 빠른 물류 방식의 개발 등으로 말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일 때가 있다

 
SNS의 발달로 고객은 단편적인 브랜드 이미지만으로 브랜드를 평가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블로그에서 음식점 정보를 얻었지만, 요즘 20대들은 인스타그램으로 사진을 보고 찾는다. 굳이 블로그의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이미지 중심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메뉴 사진과 매장 인테리어를 보고 판단을 내린다.

블루보틀의 SNS 전략 중심에는 디자인 전략이 있다. 짧은 시간에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복잡하지 않고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자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디자인과 컬러를 단순화하면서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할 수 있도록 색감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로고부터 모든 상품의 디자인을 리뉴얼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블루보틀의 이미지는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브랜드의 철학과 콘셉트,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이 정해진 다음에는 이를 디자인으로 표현해야 한다. 낯선 브랜드의 철학과 콘셉트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 들어줄 고객은 별로 없다. 창업자 스스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감각이 없다면 이때야말로 투자를 해야 할 때다.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디자인 철학이 명확하고 디테일에 민감한 프리먼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감각을 고집하지 않고 디자이너에게 매장의 공간 디자인을 일임했다. 그것도 버거울 정도로 톱클래스에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말이다.

어떤 사업을 하든지 이미지 전략이 필수인 시대이다. 디자이너 선정과 디자인 방향 설정은 지금 블루보틀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디자인에 투자하라. 보이는 것이 전부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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