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
7화

에필로그; 변혁의 시대, 기회를 발견하다

나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매우 존경한다. 지금 우리가 어디서나 즐기는 카페 문화와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하고 여전히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공대생이었던 내가 외식업에 종사하게 된 이유가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에 반해서였다.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가 쓴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 신화》를 읽으면서 이런 브랜드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심장이 뛰었던 자신을 발견한 그날, 외식업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15년째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외식 산업에 뛰어든 2000년대 초반은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격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TGIF, 베니건스, 아웃백이 선두를 다투고 있었고 빕스, 토니로마스, 마르쉐, 씨즐러 등이 뒤를 쫓고 있었다. 당시에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모임 장소는 자연스럽게 패밀리 레스토랑이 1순위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통신사 제휴 서비스를 포함한 각종 할인 이벤트가 시작되더니 모든 브랜드들이 고유의 가치 제안 없이 비슷한 메뉴를 갖고 가격 경쟁만을 하게 되었다.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던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비정상적인 가격 경쟁을 하면서 고객들이 피로를 느끼고 있을 즈음, ‘제3의 공간에서의 경험을 판다’는 가치를 제시한 브랜드 스타벅스를 만나게 된 것이다. 가격, 홍보 등을 통해 매출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매장에서 고객이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을 섬세하게 관리해 고객 만족을 통한 마케팅을 하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그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꿈이 생겼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나는 곧 한 기업에 입사하여 신규 레스토랑 브랜드의 초대 기획자가 되었다.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한곳에서 바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콘셉트로, 신생 브랜드를 5년 만에 1000억 원 매출의 흑자 브랜드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퇴사 후 자영업 카페 시장에 뛰어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프랜차이즈 본사를 설립하고 매장 30여 개를 개설하기도 했다.

지금은 창업-운영-폐업으로 이어지는 자영업의 생애 주기 중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폐업 시장에 관심을 갖고 손해를 줄이는 폐업 방법을 통해 사업을 잘 정리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IT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식음료 창업 시장에 종사한 15년간 수많은 브랜드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 브랜드는 스타벅스가 유일하다. 스타벅스에서는 마시던 커피를 실수로 쏟아도 거리낌 없이 다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노트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다. 항상 좋은 음악이 나온다. 바리스타들은 적어도 체인형 카페 중에서는 최고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다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맛이다. 기호 식품인 커피의 맛을 절대 평가 할 수는 없지만 미국이나 국내 커피 전문점 간의 비교 통계를 봐도 다른 브랜드와 맛에서 큰 차별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점수가 맥도날드의 맥카페나 던킨도너츠보다 낮게 나온 적도 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스타벅스가 강조하는 것은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은 맛,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공간은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의 맛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맛을 표준화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하향 평준화가 되어 버리는 모순이 생긴다.

예를 들어 가장 정직한 음식이라는 빵은 밀가루의 종류, 재료의 비율은 물론 당일의 습도, 온도 등에 따라 세밀한 조절이 필요하다. 이런 요소들은 매뉴얼로 표준화할 수 없다. 커피 역시 그렇다. 스타벅스는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강배전(다크 로스팅)을 통해 스타벅스만의 맛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강배전은 로스팅 후 보관 기간이 길고 동일한 맛을 내는 데에 유리하다. 그러나 원두가 가진 고유한 개성을 살리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스타벅스의 생두 소싱 능력과 로스팅 기술이 워낙 뛰어나기에 지난 몇십 년간 최고의 커피라 자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이 나타나면서 아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은 스페셜티 등급의 원두를 중배전(미디엄 로스팅) 해 원두 각각이 가진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러 원두를 섞는 블렌딩을 하지 않고 단일 품종인 싱글 오리진 커피로 추출하는 것 역시 각각의 원두가 가진 향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선두에 서 있는 블루보틀은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고객에게 ‘최고의 커피를 제공한다’는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프라푸치노나 티바나 같은 다양한 음료를 취급하지 않고 오직 커피 하나만 다룬다. 스페셜티 커피는 스타벅스가 제공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고 있다.

커피 산업 제2의 물결을 대표하는 스타벅스와 제3의 물결을 대표하는 블루보틀, 두 브랜드 모두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제공하고자 하는 가치는 다르다. 스타벅스는 고객에게 ‘제3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생겨났다. 커피는 그 공간을 채워 주는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블루보틀은 고객에게 ‘최고의 커피’라는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브랜드이다.

공간을 파는 스타벅스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편안한 좌석, 무료 와이파이, 콘센트 등 고객이 집과 회사가 아닌 제3의 공간에서 일하고 쉬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요소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고의 커피를 파는 블루보틀에서 공간의 크기나 편의성은 큰 의미가 없다. 블루보틀 매장이 대부분 좁고 좌석이 불편한 이유다.

이러한 차이는 창업가들에게 중요한 인사이트를 준다. 창업을 할 때 자신이 무엇을 파는지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벅스와 같이 공간을 파는 카페라면 40평 정도는 되는 넓은 공간, 다양한 식음료, 편안한 좌석 등 고객들이 공간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한다. 최악의 맛이라는 혹평이 따라다녔던 카페베네가 단기간에 스타벅스보다 많은 매장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간을 파는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커피가 맛이 없더라도 친구와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반면 이디야는 평균 15평 정도로 작은 매장을 중심으로 전개했지만 제품에 초점을 맞춘 비즈니스 전략을 내세웠다. 일명 가성비가 높은 커피를 선보였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이 담보되는 커피를 찾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사업을 펼쳤다.

현재 국내에서 이 두 가지 사업 모델 중 어느 방향이 더 좋은지를 묻는다면 후자를 추천하고 싶다. 공간을 파는 비즈니스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주 많은 투자금을 쏟아붓지 않는 한 스타벅스를 이기기 힘들다. 반면 국내에서 정말 맛있는 커피를 파는 곳은 여전히 많지 않다. 다수의 카페 창업자들이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우선 문을 열고 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유지만, 제대로 된 커피를 취급하는 곳이 얼마 없다는 것도 이유다.

블루보틀의 국내 진출은 우리나라 고객들의 커피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블루보틀 커피를 통해 스페셜티 커피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도 있고, 이미 한국에서 유명한 로스터들의 커피보다 못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 스페셜티 커피의 수준은 앞서 말한 글로벌 스페셜티 브랜드들에 밀리지 않는다. 아직 블루보틀처럼 유명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고객들이 커피를 주제로 대화하면서 커피 경험에 대한 수준을 높이면 장인 정신으로 좋은 커피를 취급하던 작은 카페들이 주목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 커피 브랜드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블루보틀의 투자자들은 블루보틀이 스타벅스를 이길 수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블루보틀 매출이 스타벅스의 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시장의 변화를 타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고객들의 시장을 점유한다면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 환경은 이미 주식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스타벅스의 주가는 최근 하락하는 추세다. 스타벅스의 부활을 이끈 창업자 슐츠가 회장직을 내려놓고 스페셜티 커피 콘셉트인 리저브 로스터리&테이스팅 룸 매장에 주력하기로 한 것 역시 스타벅스가 위기감을 느끼고 새로운 시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바야흐로 커피 사업의 제3의 전쟁이 시작됐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골리앗 스타벅스에 도전하는 다윗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언제나 기회는 변혁의 시대에 나타난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바로 그 기회를 잡는 한 명이 되기를 기원한다.

 

블루보틀 연혁

 
2002. 8. 제임스 프리먼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블루보틀 설립

2003. 12. 샌프란시스코의 페리 플라자(Ferry Plaza)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 나가 커피 판매 시작. 이후 54주 연속 참가

2005. 1.샌프란시스코의 헤이스 밸리(Hayes Valley)에 첫 매장인 키오스크 개설

2008. 1. 샌프란시스코의 민트 플라자(Mint Plaza)에 첫 카페 오픈

2010. 3. 최초의 뉴욕 지점을 브루클린에 개설. 이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서 크게 확장함

2012. 10. 제임스 프리먼이 지배적 지분을 매각함. 구글 벤처스, 인덱스 벤처스, 트루 벤처스, 인스타그램 공동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트위터 공동 창업자인 에반 윌리엄스 등으로부터 2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 현 CEO인 브라이언 미한 합류

2014. 2. 모건 스탠리 외 세 곳의 투자자로부터 2575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

2014. 4. 통스커피와 핸섬커피 인수. 인수 금액은 공개하지 않음

2015. 2. 퍼펙트 커피(Perfect Coffee) 인수. 인수 금액은 공개하지 않음. 도쿄에 해외 첫 매장 개설

2015. 6. 피델리티(Fidelity) 외 다섯 곳의 투자자로부터 72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

2017. 9. 네슬레가 블루보틀 지분의 68퍼센트를 4억 2500만 달러에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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