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인 저널리즘
1화

옮긴이의 말; 유료 뉴스의 조건


2017년 1월 뉴욕타임스는 미래 보고서인 <2020그룹 보고서>를 공개했다. 2020그룹은 뉴욕타임스의 기자들로 구성된 일종의 미래 전략 태스크포스(TF)다. 2014년 내부 혁신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중심의 저널리즘으로의 변화를 미래 전략으로 제시한 뉴욕타임스는 <2020그룹 보고서>를 통해 ‘끊임없는 변화’의 방향성을 다시 강조했다.

“우리는 구독자 중심의 비즈니스를 추구한다. 우리는 사이트 접속 클릭 수를 높이거나 소액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은 강력한 저널리즘 콘텐츠를 공급하여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독자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우리 기사를 읽게 하는 것이다.”

이번 미래 보고서의 내용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공짜 뉴스가 판치는 현실에서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가치를 가진 디지털 기사들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직 기자로 일하는 입장에서 ‘구독자 중심의 비즈니스’라는 문장에서 눈이 떠나질 않았다. 동시에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충격, 경악’ 등의 단어로 점철된, 네티즌들을 ‘낚기’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기사들의 제목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뉴욕타임스는 이 목표가 회사를 창립한 1851년부터 지금까지 지켜 왔던 저널리즘의 가치와 부합한다고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결국 저널리즘이라는 것이 추구하는 목표, 가치라는 것은 특별히 새로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의 언론사들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뉴욕타임스만 유독 성공한 사업 모델을 제시할 수 있게 됐을까?

스마트폰이 탄생하자 사람들은 생활 터전의 일부를 그 안으로 옮겼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지하철에는 무가지 열풍이 불었는데, 요즘 지하철에서 손가락에 침 발라 가며 종이 신문을 넘기는 사람들은 거의 볼 수 없다. 기자가 아닌 지인들은 “요즘 누가 종이 신문을 돈 주고 사 읽느냐”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최소한 한국에서 뉴스라는 것은 부가 가치를 지닌 상품 취급을 못 받은 지 오래다.

불과 몇 년 전에 미국의 언론사들도 비슷한 위기를 겪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가 2011년 전면적인 온라인 유료 구독 모델을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우려했고, 비웃었다. 6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서 150만 명이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기사를 유료로 구독한다. 150만 명이라는 숫자는 뉴욕타임스의 종이 신문 구독자 100만 명을 훌쩍 넘긴 수치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1분기에 디지털 뉴스 구독료로 7300만 달러(약 820억 원)를 벌어들였다. 2016년 1분기 대비 40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뉴욕타임스는 안주하지 않고 더 강력한 내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150년간 지켜 온 자사의 저널리즘 가치와 강점을 디지털에서 더 강력하게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프와 동영상 등 다양하고 입체적인 시각적 효과를 기사에 포함할 것을 기자들에게 주문한다. 아예 기사 작성 초기 단계부터 그래픽 디자이너, 비주얼 디자이너와 에디터 간의 적극적 협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2016년 10월, 미국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일 때 뉴욕타임스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 기사는 해당 여성의 인터뷰가 고스란히 담긴 영상으로 공개됐다. 취재원의 증언이 활자에만 갇히지 않고 생생하게 다가오자 기사의 파급력은 높아졌다.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6월 12일 온라인에 출고된 ‘첼시 매닝의 길고 고독한 길(The Long, Lonely Road of Chelsea Manning)’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뉴욕타임스의 진화된 디지털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이 기사는 2010년 위키리크스(Wikileaks)에 미국 정부의 기밀 파일을 대량으로 넘긴 혐의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첼시 매닝의 인터뷰 기사다. 군인 신분으로 기밀 유출을 감행한 매닝은 이로 인해 3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올해 초 특별 사면으로 조기 석방됐다.

이 기사의 핵심은 독자들에게 매닝의 모습을 보여 주는 방식에 있다. 매닝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있었는데 — 성전환 전 이름은 브래들리 매닝(Bradley Manning)이다 — 9000자에 이르는 장문의 기사에서 매닝의 모습은 여러 장의 감각적인 고화질 사진으로 다뤄졌다. 포토저널리즘과의 조화가 이뤄진 것이다. 책상에 앉아 허공에 손짓을 하고 있는 뻔한 인터뷰 사진이나, 매닝의 성전환 사실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긴 자극적 사진은 없었다.

국내 언론의 디지털 저널리즘 전략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디지털, 온라인을 부르짖으면서도 여전히 ‘충격, 경악’으로 점철된 제목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선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클릭만을 유도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 지면 기사와 비교했을 때 내용이나 구성의 차별성도 찾기 어렵다. 온라인상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되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지면, 혹은 ‘9시 뉴스’ 중심의 사고방식에 머무르는 언론사들은 아직도 디지털을 뉴스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사회, 정치, 문화 등 분야별로 현상의 맥락을 살펴야 하는 기자들이 정작 필요한 만큼의 취재 시간과 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대다수 기자들이 속보 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으로 하루살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기사 하나에 많은 공을 들이기 어렵다.

뉴욕타임스는 매닝의 기사를 위해 관련 취재를 몇 달에 걸쳐 진행했다. 기사의 톤은 담담하면서도 단단했다. 양질의 취재 없이 양질의 기사가 나올 수는 없다는 단순한 공식을 이 기사는 여실히 보여 줬다.

한국의 언론 환경은 암담하다. 종이 신문의 매출 하락으로 광고비가 빠지면서 전체 수익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그 영향으로 신규 인력 채용은 제한될 수밖에 없고 기존의 구성원들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며 저질의 기사를 ‘뽑아내기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홈페이지의 페이지뷰 숫자를 높이기 위한 자극적 제목의 기사가 늘어날수록 독자들의 신뢰는 떨어진다. 언론사들이 이를 모르는지, 모르는 척하는지는 알 수 없다.

중앙일보는 2015년부터 나름의 디지털 혁신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아직은 정착 단계라고 볼 수 있지만 지면과 별도로 운영하는 디지털 콘텐츠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업 경기 여파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거제시를 취재한 ‘거제, 이대로 추락할까’와 법조 사회 특유의 조직 문화가 사법 체계에 끼치는 영향을 취재한 ‘검사의 초상’ 시리즈는 나름의 반향이 있었다.

하지만 중앙일보도 아직 디지털 콘텐츠의 유료화 단계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다. 뉴스는 공짜로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대한민국의 언론 생태계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유료화를 시행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독자들이 기꺼이 돈을 낼 수 있는 기사들을 쓰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번역이 끝나 갈 무렵 어렴풋하게나마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독자들에게는 나의 짧은 몇 마디 말보다 지금부터 만나게 될 뉴욕타임스의 비전이 더 좋은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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