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칩을 걸어라
2화

새로운 구조

반도체 제조업은 재편되고 있다. 그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 혼다는 1월 13일 영국 남부 도시 스윈던(Swindon)의 공장을 일시 폐쇄해야 한다고 밝혔다. 브렉시트(Brexit) 혹은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노동자 때문이 아니었다. 마이크로칩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자동차 제조사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어떤 회사보다 많은 차량을 생산하는 폭스바겐(Volkswagen)은 반도체 수급 문제로 이번 분기에 자동차 생산량을 10만 대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부터 콤바인 수확에 이르는 우리 사회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역시 컴퓨터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반도체 제조 산업은 급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에 상장돼 있는 반도체 회사의 총 시가 총액은 4조 달러(4419조 원)가 넘는다. 이는 5년 전보다 4배로 늘어난 규모다(표1 참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업무가 온라인으로 옮겨 가고 소비자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와 비디오 게임에 의존하면서 반도체 제조업체 주가는 급등했다.

이는 기업 간 거래를 촉발했다. 지난해 9월 게임과 AI에 활용되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엔비디아는 영국의 암(Arm)을 400억 달러(44조 1800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거의 모든 스마트폰에 탑재되어 있는 반도체의 설계도를 만든다. 지난해 10월 그래픽과 상용 목적의 반도체를 설계하는 AMD는 재프로그램이 가능한 반도체 제조사 자일링스(Xilinx)를 350억 달러(38조 6505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실리콘 투자


자본 지출 역시 늘고 있다. 한국 대기업 삼성은 10년 넘는 기간 동안 반도체 사업에 1000억 달러(110조 원) 이상을 투자하려 한다(투자액의 일부는 플래시 드라이브 등에 사용되는 메모리 칩에 활용된다). 14일 AMD와 엔비디아 같은 회사들을 대신해 설계도를 실리콘으로 전환하는 대만 반도체 제조업체 TSMC는 강력한 수요를 예측하며 2021년 자본 지출을 172억 달러에서 280억 달러(31조 원) 수준으로 늘린다고 밝혀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는 민간 기업이 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 가운데 하나였다.

나노벅스/ 상단, 반도체 기업 시가 총액/ 하단, 최첨단 반도체 칩 제조 기업의 수/ 출처: 블룸버그, 맥킨지, 이코노미스트.
이 모든 것은 반도체 제조업이 재편하는 큰 흐름의 한 가운데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산업의 한쪽 끝에선 치열한 경쟁과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AMD, 엔비디아, 그리고 인텔 등을 포함해 매출 기준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가 만든 반도체 설계도는 새로운 창작품의 도전을 받고 있다. 아마존, 구글처럼 기존 기업의 주요 고객인 온라인 거물들은 자체 설계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은 AI, 네트워킹, 또 다른 전문적 애플리케이션에 적합한 하드웨어 수요를 활용하려는 스타트업들과 힘을 합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분명 희소식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설계도가 실리콘 조각에 새겨져 전자 회로로 변환되는, 업계의 또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작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첨단 기술을 좇느라 급증하는 비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반도체 설계를 실제 반도체로 만들어 내는 기업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표2 참조). 전 세계에서 3개의 기업만 이런 첨단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다. 먼저 인텔이 있다. 그리고 지진에 취약하며 중국이 자신의 영토라 주장하는 대만의 TSMC, 그리고 북쪽에 핵무기 장착 독재 체제 이웃을 가진 한국의 삼성이다. 미국 무역 기구인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는 현재 글로벌 반도체 제조 능력의 80퍼센트가 아시아에 있다고 추정했다.

선두는 곧 둘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30년 동안 업계 최첨단을 선도해 온 인텔은 휘청대고 있다. 1월 18일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자체 생산량 일부를 이미 인텔을 앞지른 TSMC에 아웃소싱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의 기초인 반도체 산업은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 설계는 활기를 띠고 생산 집중 현상은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새로운 양상은 반도체 제조사,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실상 모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고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먼저 다각화 문제가 있다. 수년 동안 기술 기업들은 반도체를 기성품으로 구입했다. 44년의 역사에서 애플은 모스 테크놀로지(MOS Technology), IBM, 인텔에서 데스크톱 및 노트북용 마이크로프로세서(중앙 처리 장치)를 조달했다. 그러나 2007년 최초의 아이폰이 출시된 후 애플은 설계를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새로 출시된 아이폰에는 처음엔 삼성, 그 후엔 TSMC가 제조하고, 애플이 자체 설계한 반도체가 들어간다. 이 접근 방식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2020년 애플은 맥 컴퓨터에 들어가는 인텔 제품을 맞춤형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2년 전 전자 상거래 거물의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인 아마존 웹서비스는 데이터 센터에 탑재한 일부 인텔 칩을 자체 제작한 ‘그래비션(Gravition)’ 설계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이것이 비용 면에서 인텔 제품을 사는 것보다 40퍼센트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구글은 AI의 계산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체 고안한 ‘텐서 프로세싱 유닛(Tensor Processing Unit)’을 클라우드 고객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중국 검색 엔진인 바이두(Baidu)는 자사의 ‘쿤룬(Kunlun)’ AI 칩이 엔비디아의 제품을 능가한다고 주장한다. 서방의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 세 번째 주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적으로 반도체 칩을 설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계의 영리한 스타트업들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 AI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미국 세레브라스(Cerebras)는 12억 달러(1조 3254억 원)를 벌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하는 영국 경쟁사 그래프코어(Graphcore)는 12월 그 가치를 28억 달러(3조 926억 원)로 평가 받았다. 1월 13일 스마트폰 반도체 칩으로 가장 유명한 퀄컴(Qualcomm)은 애플의 반도체 설계팀 베테랑으로 구성된 스타트업 누비아(Nuvia)를 14억 달러(1조 5463억 원)에 사들였다.

맞춤형 실리콘 제작은 10년 전만 해도 신뢰하기 어려운 방안이었다. 범용 반도체는 실리콘 칩에 채워 넣을 수 있는 구성 요소의 숫자가 2년 정도마다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 덕에 빠르게 향상됐다. 오늘날 기초 물리학의 쿼크(물질 기본 입자)가 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로 측정되는 미세한 구성 요소들을 방해하면서 무어의 메트로놈은 무너지고 있다. 리서치사 린리(Linley) 그룹의 린리 그웬냅(Linley Gwennap)은 이제는 메트로놈의 진동 주기가 2년보다는 3년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무어의 법칙에 따르는 이점은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경향은 특히 대규모 수직 통합형 기업들이 성능을 보강하기 위해 설계에 나서는 이유가 된다. 애플의 반도체가 아이폰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에 대해 애플보다 더 정확하게 아는 기업은 없다. 이 클라우드 컴퓨팅 거물은 그들의 하드웨어가 정확히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리고 설계가 사용 방식에 부합하려면 어떤 부분을 수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자체 반도체의 설계는 한 때 제조를 의미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요즘 대부분의 설계자들은 제조 공정을 TSMC나 미국 회사인 글로벌파운드리(GlobalFoundries) 같은 전문가에게 아웃소싱한다. 스스로 공장을 세울 필요가 사라지면서 비용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수많은 자동화 도구들은 공정을 원활하게 한다. 반도체 산업 분석 업체인 퓨처 호라이즌스(Future Horizons)의 말콤 펜(Macolm Penn)은 “온라인 쇼핑몰 엣시(Etsy)에서 티셔츠를 맞춤 제작하는 것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니다.
엄청난 투자/ 반도체 기업, 자본 지출 규모/ 연 평균 매출 대비 비중/ 출처: 퓨처 호라이즌스/ 2020년은 1~11월
반도체를 설계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그러나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이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무어의 법칙을 따라가려면 플라스마 에칭(plasma-etching) 키트, 진공 증착 장치, 2층 버스 크기의 180톤짜리 석판 인쇄 기계 등 최첨단 기기로 가득 찬 공장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입해야 한다. 전반적인 매출의 일부가 감소한 이후 반도체 산업의 자본 지출은 다시 증가하고 있다(표3 참조). 절대적으로 말하면 반도체 공장이라고 알려진 하이테크 ‘팹(fabs)’의 건설 비용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끊임없이 증가했다.

오늘날 최신 기술은 5나노미터 반도체다(다만 5나노미터는 과거 다른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실질적인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삼성과 TSMC 모두 2020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후속 세대인 3나노미터는 2022년 출시될 예정이다. 2나노미터는 잠정적으로 수년 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인텔 아웃사이드


밀레니엄 시작 무렵 최첨단 공장의 건설 비용은 10억 달러 수준이었을 것이다. 경영 컨설팅사 맥킨지(McKinsey)의 2011년 보고서는 선진 팹의 일반적인 비용은 30억~40억 달러라고 추산한다. 더 최근인 2020년 대만 남부에 완공된 TSMC의 3나노미터 공장에는 195억 달러(21조 5358억 원)가 들었다. 이 회사는 이미 또 다른 2나노미터 반도체, 혹은 그 이상의 생산을 고려하고 있다. 고꾸라진 인텔은 10나노미터에 멈춰 서 있고, 밥 스완(Bob Swan)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새로 부임한 팻 겔싱어(Pat Gelsinger)는 TSMC와 달리 반도체 설계도 하는 이 회사가 제조까지 계속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잠재적인 새 시장 진입자들은 엄청난 장벽에 직면한다. 팹의 경제는 기술적 진보를 매개로 장벽을 더 높이고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모든 반도체 제조에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는 대체로 오래되고, 덜 첨단인 반도체를 사용한다. 소형화는 널찍한 데이터 센터에선 덜 필수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요소도 있다. 가장 강력한 반도체만이 처리할 수 있는 전산 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 초연결 시대, 자동 온도 조절기부터 트랙터에 이르기까지 실리콘이 탑재되면서 반도체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 아마존, 구글, 엔비디아, 퀄컴(그리고 뉴스 보도가 사실이라면 조만간 인텔 역시)이 TSMC와 삼성의 고객 명부에 올라 있다. 자동차 같은 제품들이 더욱 컴퓨터화하고 전기화하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더 진화할 것이다. 미국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Tesla)는 이미 자체 자율주행 칩을 만들기 위해 TSMC의 7나노미터 팹에 의존하고 있다.

삼성과 TSMC가 서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아시아의 나노 단위 복점(複占) 체제는 치열한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만 TSMC의 영업 이익률은 15개 경쟁사가 있었던 2005년 이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는 제조비 상승을 논리적으로 고려하면, 최종적으로는 한 회사만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TSMC가 마지막 첨단 팹이 될 것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수년 동안 기술 책임자들은 이런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무시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우려는 반도체 산업이 정치적으로 중요해지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의 일환으로 미국은 중국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첨단 기술 반도체 공장을 짓는 능력 키우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중국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획에 2025년까지 반도체 분야의 자급자족을 달성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고 있다. 특히 미국 제재로 일부 해외 수입이 막혀 있는 지금은 더욱 집중적인 투자가 예상된다.

심화하는 집중 현상 이면의 구조적인 힘은 여전히 존재한다. 첨단 공장에 대한 접근권을 잃을 것을 우려하는 미국은 TSMC에 애리조나에 있는 팹으로 돌아오라고 손을 내밀었다. 삼성은 텍사스에서 운영 중인 공장을 확장할 수도 있다. 추가적인 보조금과 인센티브 패키지는 의회의 지지를 기다리고 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고급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지난해 12월 17일 EU 국가들은 2020년대 중반까지 첨단 기술 공장을 짓는 데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경제 부양 자금을 투입하는 데 합의했다. 반도체 산업의 역사는 투입 금액이 더 큰 규모로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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