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2.0
1화

메타버스 2.0

아바타의 세계


메타버스는 2000년대 초반 게임 세컨드라이프가 등장하면서 처음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컨드라이프는 3D 아바타 기반의 인터넷 가상 세계다. 참여자가 직접 3D 물체를 제작해 거래할 수 있다. 린든 달러라는 게임 화폐를 통해서다. 심지어 부동산도 사고팔 수 있다.

최근 메타버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도 3D로 구현된 아바타 때문이다. 로블록스와 제페토가 대표적이다. 마인크래프트, 동물의 숲 등 메타버스 대표 주자로 꼽히는 서비스의 핵심도 3D 아바타다. 여기에 인터넷 기반의 소셜 네트워킹과 게임, 그리고 경제가 결합하면서 주목도가 크게 높아졌다.

메타버스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건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SF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였다. 스티븐슨은 아바타들이 활동하는 무대를 메타버스라고 불렀다. 아바타(avatar)는 ‘땅(terr)으로 내려오다(ava)’라는 의미의 산스크리스트어 합성어다. 새로운 땅이나 공간에 발을 디딘 존재라는 의미다. 가상 공간에서 사용자를 대신해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거나 의사소통하는 분신이다. 메타버스라는 말이 만들어질 때부터 핵심은 아바타였다.

세컨드라이프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상 세계는 그래픽과 통신 등 기술적인 한계로 3D보다는 2D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마이스페이스와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 유튜브, 틱톡 등이 그 예다. 현재는 기술적인 조건이 갖춰지면서 3D 공간에 아바타를 구현하는 서비스가 고도화되고 있다. 네트워크 발전으로 더 많은 기기가 연결됐고, 안정적인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데다, 3차원 공간 전체를 담아 현실과 흡사한 감각을 주는 360도 콘텐츠도 구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완전히 새로운 신원이다. 2D 온라인 세계에서 사용하는 프로필과 다른 점이다. 프로필은 온라인 세계의 내가 현실 세계에 실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페이스북, 링크드인 등에 실명과 이력을 입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즉 프로필은 디지털 세상이 현실 세계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반면 아바타는 보완적 존재가 아니라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자아다. 제페토, 동물의 숲, 로블록스 등의 온라인 세계에서 이용자들은 현실의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필요 없이 아바타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온라인 세계가 현실과 더 가까워진 것이다. 2000년대의 세컨드라이프, 사이버 가수 아담처럼 어설펐던 그래픽이 훨씬 자연스럽게 발전하면서 우리는 온라인 세계의 아바타를 진짜 나처럼 느낄 수 있게 됐다. 온라인 세계에서 더 편안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결국 메타버스는 온라인 세계가 더 현실 같아지고, 확장하는 흐름이다. 흔히 메타버스를 현실의 온라인화라고 착각하기 쉽다. 반대다. 메타버스는 가상현실의 확장이다. 가상현실의 현실화다. 

코로나19 이후 현실 세계는 위험하고 불안한 곳이 됐다. 사람들에게는 현실 공간을 벗어나 안전한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 5G 기술의 발전으로 네트워크 기술도 온라인 세계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되자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메타버스 1.0에서 메타버스 2.0으로

메타버스 1.0 분류. (출처: JohnSmart, JamaisCascio and JerryPaffendorf, 〈Metaverse Roadmap〉, 2006.)
가상 공간에서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이 벌어지는 것을 말하는 메타버스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증강 현실,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 세상(Mirror World), 가상 현실이다. 그런데 이 분류는 세컨드라이프로 메타버스가 관심을 받은 2006년 연구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가상 세계인지 현실에 기반한 세계인지를 한 축, 사용자가 바깥 세상을 관찰하는 방식인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지를 다른 축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이 분류가 만들어진 2000년도 초의 디지털 세계는 일상과 단절된 공간이었다. 모바일이 아닌 PC로 온라인에 접속해야 했고, 싸이월드 같은 네트워킹 서비스는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었다. 반면 현재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시간이 더 많을 만큼 디지털 세계 자체는 익숙한 곳이 됐다. 이런 환경에서 메타버스를 분류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메타버스 2.0 분류

디지털 미; 현실의 나를 대신하다

라이프로깅은 일상의 디지털화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을 통해 일상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현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등 소셜 미디어들이 라이프로깅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6년 제시됐던 메타버스의 시나리오가 구현된 셈이다. 그런데 현재의 소셜 미디어는 현실 세계의 나를 증명하는 프로필을 걸고 기록하는 공간에서 아바타가 나 대신 활동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각 소셜 미디어마다 별도의 자아를 구성한다. 링크드인에서는 프로페셔널한 이미지, 페이스북에서는 친구들 속의 내 모습, 틴더에서는 매력적인 데이팅 상대로서의 모습을 각각 드러내는 식이다. 각 소셜 미디어에서 별도의 신원을 갖고 활동하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세계에서의 삶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나는 다양한 면모를 가진다. 가족과 있을 때, 친구와 있을 때, 직장 동료와 있을 때 모습이 모두 다르다. 디지털 세계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가 증가하면서 우리는 온라인 세상에서도 맥락에 맞게 각각 다른 신원을 갖게 됐다.

이런 점에서 메타버스 2.0에서의 라이프로깅은 아바타, 즉 디지털 미(Digital Me)로 정의할 수 있다. 물리적 한계가 없는 가상 공간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육체적 신원과 상관없는 새로운 신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 될 수도 있고, 성별을 바꿀 수도 있다. 아바타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다. 자동으로 기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가 모르는 나의 새로운 신원을 만드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미 스노우, 스냅챗, 제페토 등에 적용되고 있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시간 필터 기술도 더 발전하면 각자가 되고 싶은 나의 자아를 디지털 세계에서 만들 수도 있게 된다.

디지털 현실; 현실의 놀이를 대신하다

메타버스 1.0 분류의 가상 현실(VR)과 증강 현실(AR)은 확장 현실(XR, Extended Reality)로 통합해 재정의할 수 있다. 이전에는 VR과 AR이 각각의 콘솔이나 스마트폰에 종속적으로 구현되었다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두 가지를 통합해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CPND) 측면에서 같은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개발하는 툴도 같고, 클라우드를 통해 유통하며, 5G 네트워크에서 본격화된다는 점도 같다. 디바이스도 통합되고 있다. 기술 개발 초기엔 AR을 구현하는 디바이스, VR 디바이스가 각각 전용 기기였다면 현재는 머리에 착용하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혹은 안경형 기기에서 VR, AR 콘텐츠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XR은 극도로 실감 나는 디지털 현실이다. 현실과 가장 비슷한 감각을 제공한다. 기기를 착용하고 고개를 돌리면 그대로 입체적인 공간을 체험하고 조정할 수 있는 360도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콘텐츠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콘텐츠 속에 들어가서 움직인다. 디지털 현실은 메타버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분류기도 하다. 기술적인 요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가장 새로운 분야기도 하다.

디지털 트윈; 현실의 일을 대신하다

기존 메타버스 분류의 미러 월드는 구글 어스처럼 실제 세상을 그대로 복제한 것을 말했다. 앞으로의 메타버스에선 현실 복제를 넘어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집중하는 디지털 트윈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디지털 세계에 현실 속 사물을 복제한 뒤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모의 실험해 보고, 이를 적용해 기계를 자동화하고 최적화해 운용하는 것이 디지털 트윈이다.

디지털 트윈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을 자동화하는 방향이다. 블루칼라의 일, 화이트칼라의 일, 일상에서 하는 일들까지 모두 포함한다. 디지털 트윈이 공장에 적용되면 스마트 팩토리다. 원격으로 생산을 모니터링하거나 제어하고, 최적화를 넘어 자동화까지 할 수 있게 해준다. 인공지능으로 인간의 지적인 판단을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세탁, 설거지, 실내 온도 조절 등 집에서 인간이 해야 하는 일들을 자동화해주는 가전들도 더욱 고도화된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디지털 미, 디지털 현실, 디지털 트윈 세 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각각 인간의 소셜, 엔터테인먼트, 생산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메타버스는 디지털 월드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친구와 교류하고, 놀고, 일하는 활동이 모두 디지털 세계에서 가능해지는 것을 말한다. 메타버스라고 하면 전용 기기를 착용하고 몰입감 있게 VR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을 떠올리곤 하지만, 세 가지 중 하나에만 속해도 메타버스다. 디지털 세계도 현실처럼 사회적 교류, 엔터테인먼트, 생산 활동이 함께 이루어지는 곳이 되고 있다.

 

포스트 스마트폰


메타버스 2.0 분류에서 디지털 미와 디지털 트윈은 꾸준히 성장해 온 분야라면, 디지털 현실을 구현하는 XR은 급격히 발전하는 분야다. XR은 360도 콘텐츠와 3D 디지털 세계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2D 동영상을 넘어서는 미디어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를 전달하는 미디어는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음성으로, 그리고 비디오로 진화해 왔다. 다음 단계가 3D 콘텐츠를 구현하는 XR이다. XR에서 더 발전한 단계는 콘텐츠가 현실 공간에 떠있는 것처럼 구현되는 홀로그램이 될 것이다.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감각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텍스트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가장 장벽이 높다. 이미지와 오디오는 그보다 직관적이다. 비디오는 이미지와 오디오가 결합된 형태기 때문에 더 직관적이고 몰임감이 있다. 그리고 XR은 비디오보다 더 현실에 가깝다.

현재 스마트폰에서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미디어는 비디오다. 여기엔 여전히 인지적 한계가 있다. 비디오는 결국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세상이다. 내가 디지털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있어야 한다. 반면 XR은 360도, 3차원으로 구현되는 콘텐츠다. 주로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나 안경형 기기를 통해 감상한다. 손으로 기기를 들고 있을 필요가 없고, 나 자신이 콘텐츠 속에 존재한다. 훨씬 친숙하고, 현실과 비슷하며, 직관적인 경험이 가능하다. 공간에서 느껴지는 거리감, 분위기까지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XR 기기 오큘러스로 이용할 수 있는 빅스크린(BigScreen)은 가상 세계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앱이다. 가상 세계 속에서 상대방과 어느 정도로 떨어져 있는지에 따라 소리의 원근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 내 뒤에 와서 속삭이면 가까이서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게 되는 식이다.

XR 기기는 스마트폰의 다음 단계다. 그만큼의 역할과 입지를 흡수하면서 새로운 콘텐츠 사용 환경을 만들어 더 많은 산업과 일상 영역을 장악할 것이다. 스마트폰은 각각 발전해 온 컴퓨터 시스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통신을 통합시켰다. 컴퓨터 시스템은 대형 메인프레임 컴퓨터에서 데스크탑, 랩탑, 태블릿을 거쳐 스마트폰까지 발전했다. 영화관의 영사기에서 출발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는 텔레비전을 거쳐 스마트폰에까지 안착했다. 통신 역시 공중전화, 집 전화, 휴대전화를 거쳐 스마트폰까지 진화했다. XR 기기는 지금 스마트폰이 통합하고 있는 컴퓨팅, 엔터테인먼트, 통신을 통합하되 몰입형 실감 콘텐츠 환경까지 제공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넘어선 XR의 역할. (출처: Hugo Swart, Qualcomm)
페이스북은 오큘러스 등 XR 기기를 다음 세대의 컴퓨팅 플랫폼(next computing platform)으로 정의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홀로렌즈를 출시하는 등 스마트폰 시대에 놓쳤던 기기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XR 기기가 스마트폰만큼 대중화되는 것이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 현재 XR 기기들은 스마트폰만큼 오랜 시간 이용하기 어려운 상태다. 가장 큰 이유가 눈의 피로감과 어지러움이다. 10분 이상 착용하면 눈이 시리다. 3D 콘텐츠 안에서 울렁거림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이는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무거운 헤드셋 형태 대신 안경처럼 착용하는 방식의 기기들도 개발되고 있다. 어지러움이 생기는 건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움직이면서 뇌에서 인식하는 것과 기기를 통해 보게 되는 화면의 시간차 때문인데, 데이터 기술이 발전할수록 시차는 줄어들 것이다. 이에 더해 인간의 적응력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지금 어린이들이 스마트폰을 아무런 피로감이나 어려움 없이 사용하는 반면, 노년층은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XR이 미디어 진화의 전 단계인 동영상보다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건 명백하다. 기술만 더 최적화된다면 이용자들은 빠르게 적응할 것이다.

XR 기기는 지금 스마트폰으로 치면 블랙베리가 나왔을 때쯤의 발전 단계에 있다. 아직 아이폰이 나온 후만큼 대중화된 것은 아니지만, 얼리 어답터와 B2B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R 기기 홀로렌즈2는 국내 가격이 약 500만 원에 달하고, 기업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미래 컴퓨팅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홀로렌즈를 만들고 있다. 홀로렌즈엔 윈도우 PC가 내장돼 있다.

반면 페이스북은 기존 서비스 사업자로서 XR 기기에 접근한다. 페이스북을 보면 XR이 B2C 시장에선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 파악할 수 있다. 페이스북의 XR 기기 오큘러스2는 40만 원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 확장을 노린다. 가상 현실 서비스 페이스북 호라이즌(Facebook Horizon)도 2020년 8월부터 베타 서비스 중이다.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를 통해 친구들과 교류하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오큘러스로 호라이즌을 이용할 수 있다. 가상 현실 서비스를 XR 기기로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페이스북은 오큘러스를 상용화하면서 기존의 페이스북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호라이즌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기존 스마트폰 제조사인 애플은 자사 기기를 중심으로 XR 서비스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아이패드 프로에 탑재된 라이다(LiDAR) 센서를 이용한 AR 게임, 가구 배치 시뮬레이션 앱 등을 이미 제공한다. 애플 내에서 XR 기기와 관련된 팀은 2015년 말부터 구축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1000명 규모라고 알려졌다. 단,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처럼 XR 시장이 어느 정도 형성된 다음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진출하는 시점에 XR 기기의 B2C 시장이 본격화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소프트웨어, 서비스, 스마트폰 사업자 외에도 순수 XR 기기를 만드는 매직 립(Magic Leap) 같은 신생 기업도 있다. 매직 립은 1조 원의 투자를 유치해 VR 기기 하나를 만들었다. 초기엔 B2C로 접근했지만, 2020년 전체 인원의 약 50퍼센트를 해고하면서 시장 전략을 변경했다. 현재는 B2B 중심으로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아직은 블랙베리 정도의 초기 단계에 있지만, XR은 스마트폰을 대체하고 넘어설 전망이다. 사람에게 더 익숙하고 현실과 가까운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직 실감나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폰이 출시됐던 것과 같은 대중화 단계를 넘어서면 변화는 급격히 일어날 것이다. 피처폰이 가장 많이 팔렸던 것도 스마트폰이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한 2010년이었다. 스마트폰이 피처폰 판매량을 추월한 건 2013년이었다. VR 기기에서도 OS와 앱스토어 등의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는 윈도우 10을 탑재하고 있다. 애플은 안경 타입의 XR 기기를 개발하는 중인데, 스마트폰의 OS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오큘러스는 이미 앱스토어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스마트폰과 별도의 앱스토어 구축도 본격화할 것이다.

 

5G에서 시작돼 6G에서 보편화하는 메타버스


XR을 비롯한 메타버스 서비스의 기술적 기반은 통신이다. 5G는 XR 서비스가 달릴 수 있게 해주는 고속도로다. 도로에 따라 달릴 수 있는 차가 달라지는 것처럼 통신 환경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진다. 1G, 2G는 무선 통화를 가능하게 했다면, 3G와 4G에선 영상 멀티미디어를 전송할 수 있다. 5G와 6G부터 가능해지는 것이 XR,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5G는 도입은 되었지만, 실질적으론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5G를 구현하기 위해선 기기, 주파수, 기지국, 코어망이 필요하다. 기기와 주파수는 갖춰져 있다. 기지국은 만들어 두기는 했지만 제대로 투자가 안 된 상태다. 코어망은 5G 기술의 척추에 해당하는데, 현재 국내 서비스들은 4G 코어망을 사용하고 있다. 5G의 핵심은 초고속(eMBB), 초저지연(URLLC), 초연결(mMTC) 통신을 하나의 망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물인터넷, 가상 현실용 망을 별도로 구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4G까지는 각각 별도의 망이 필요했다. 그런데 4G 코어망을 사용하는 상황에선 이런 장점을 구현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현재는 데이터를 많이 필요로 하는 고도의 XR 서비스는 유선으로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대로 된 투자가 이루어지고 5G 기반이 구축된다면 무선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고, 메타버스 서비스들이 더 보편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네트워크 환경에서도 메타버스 서비스들이 구현은 되지만, 폭발적으로 이용자가 증가하려면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10년은 기술 혁신의 주기이고, 20년은 세상이 변화하는 주기라는 말이 있다. 통신 기술에서 1G, 3G, 5G는 기술적 발전이 일어난 단계였고, 2G, 4G, 6G는 기술을 상용화해 실질적인 삶의 모습을 바꾸는 단계다. 지금은 5G의 등장으로 XR, 사물인터넷 서비스가 출시되기 시작한 시기다. 2020년대 후반에서 2030년 초반이 되면 이런 기술들의 사용성이 급격히 확장될 것이다.

 

클라우드, 블록체인, 디바이스

메타버스의 가치 사슬. 5G와 6G 네트워크 기술이 기반이 되고, 클라우드 플랫폼이 뒷받침되면서, 메타버스 콘텐츠와 기기가 사람들 속에 스며들 것이다.
5G와 6G가 네트워크 측면에서 메타버스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라면, 플랫폼 차원에선 클라우드와 블록체인 기술이 메타버스를 뒷받침한다. 클라우드는 PC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온라인에 존재하는 데이터 센터에서 연산 등 정보 처리를 하는 방식이다. 현재도 구현돼 있지만, 속도와 안정성이 더 발전했을 때 디지털 트윈을 더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격 수술 프로그램을 구동하려면 데이터 처리가 지연되거나 오류가 나지 않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확보돼야 한다. 원격으로 조종한 움직임에 오류가 생긴다면 바로 의료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블록체인은 메타버스 안에서 데이터 복제를 막는 보안 기술로 활용된다. 현실과 비슷한 디지털 세계에 누구든 접속할 수 있게 되면 보안과 소유권 증명의 문제가 생긴다. 누구든 해킹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메타버스 안의 내 물건을 내 것이라고 인증할 방법이 필요하다. 가상 세계 속 화폐도 마구 복제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블록체인과 NFT 기술은 기록을 여러 장소에 나눠 저장해 복제를 막음으로써 가상 세계에서 안심하고 물건이나 화폐를 소유하게 해준다.

네트워크와 플랫폼 측면의 기술이 뒷받침되면, 메타버스 콘텐츠는 디바이스를 통해 구현된다. 오큘러스, 홀로렌즈처럼 3차원 콘텐츠 환경 자체를 제공하는 중앙 기기와 더 실제에 가까운 감각을 주는 주변 기기가 개발되고 있다. 중앙 기기는 점차 착용 편의성이 높은 안경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주변 기기로는 사람 손가락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기기가 이미 상용화돼 있다. 촉감을 구현하는 기기, 심지어는 미각과 후각을 구현하는 기기도 개발 중이다. 아직 상용화가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기술이 더 발전하면 디지털 세계에서 정말 현실 같은 오감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가 먼저 메타버스에 올라탈 것인가

로블록스의 구찌 가든 ©Roblox
현재 메타버스 서비스의 핵심은 게임과 소셜 미디어 분야다. 게임과 소셜 미디어의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혁신가이고, 초기 수용자다. B2C 서비스는 이들을 중심으로 가장 먼저 발전할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동물의 숲, 제페토 등이 이 영역에 있다. 지금 이들 서비스를 이용하는 초기 수용자들과 Z세대에 접근하려는 기업들은 고객 소통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메타버스 서비스와 협업하고 있다. 구찌가 특히 이런 시도에 적극적이다. 이탈리아 플로렌스에 있는 ‘구찌 가든’을 로블록스 게임 안에 만들어 유저들이 경험할 수 있게 했고, 제페토에서는 아바타를 위한 의상, 핸드백, 액세서리 등을 정식 출시했다.
구찌 의상을 입은 제페토 캐릭터들 ©Gucci
혁신가가 아닌 수용자들도 빠르게 메타버스로 유입시킬 수 있는 분야는 엔터테인먼트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는 비즈니스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SM이 세계 최초로 연 온라인 유료 콘서트 ‘비욘드 라이브’엔 증강 현실 기술이 적용됐다. 슈퍼주니어 시원의 아바타가 무대 크기만 한 아바타로 등장했다. 이 기술은 사실상 아주 실감 나거나 고도화된 형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호응은 컸다. 팬들의 욕망을 충족해 주는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메타버스가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욕망과 결합하면 큰 시너지가 난다.

SM은 그룹 에스파를 통해 아바타 아티스트를 실험하고 있다. 에스파 멤버들은 각각 자신에 대응되는 아바타를 갖고 있다. 아바타는 SM이 오랜 기간 아이돌 매니지먼트를 하면서 겪어 온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아바타는 계약과 관련한 갈등을 일으키지도, 탈퇴하지도 않는다. 사회적 물의나 사생활과 관련한 잡음을 일으킬 일도 없다. 아이돌 그룹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발생하는 헤어, 메이크업과 의상, 담당 매니저를 동반한 이동 비용도 없다. 단, 아직까지 아바타 단독으로 활동했을 때 인간적인 매력을 갖고 팬들로부터 좋아하는 마음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사람과 아바타를 결합한 그룹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SM의 행보는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 아바타 중심의 메타버스에 가장 충실한 걸로 보인다.
각 아티스트에 대응하는 아바타가 있는 그룹 에스파 ©SM 엔터테인먼트
반대로 아바타가 인간과 너무 닮으면 오히려 대중은 거부감을 느낀다. 그걸 불편한 골짜기라고 부른다. 1970년대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처음 공개한 이론이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로봇이나 아바타에게 느끼는 친밀도를 분석했다. 인간은 인간과 닮은 존재에 관해선 친밀도를 보이지만 인간과 똑같은 존재에 관해선 거부감을 느낀다. 때론 혐오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메타버스가 발전할수록 온오프라인 서비스 성패의 관건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적절히 결합한 고객 경험을 설계했는지가 될 것이다. 이미 오프라인에서 고객 경험을 잘 만들어 놓은 오프라인 기업은 그걸 어떻게 온라인화하는지가, 디지털 구현에 강점이 있는 온라인 기업은 오프라인 속 고객 경험을 얼마나 잘 학습하는지가 중요하다. 가령 지금 네이버쇼핑에 접속하는 것과 백화점에 방문하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다. 네이버쇼핑이라는 온라인 서비스는 오프라인 경험과 거의 무관하게 설계돼 있다. 메타버스가 발전할수록 오프라인에서 좋은 경험을 제공했던 매장 구조나 물건을 착용해보는 행동 등을 온라인에 어떻게 구현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온라인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이 확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2D 온라인 서비스와도 오프라인 매장과도 다른 경험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메타버스는 결국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서비스의 등장, 소비자들의 적응이 결합해 온라인 세계가 더 현실에 가까워지는 흐름이다. 메타버스는 현실의 확장이 아니라 가상현실의 확장이라는 말이다. 최근 메타버스 언급량이 급격히 늘어났고, 언론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메타버스 1.0 분류가 사실상 온라인 서비스들 대부분을 포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결국 마케팅 용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도 국내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은 해외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구글 트렌드상 ‘메타버스’의 검색량은 2021년 7월 초 ‘metaverse’ 검색량을 추월했다. 메타버스가 지금 트렌드이자 기업과 정부의 아젠다로 부상한 단어라는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메타버스의 본질인 온라인 세계의 확장은 ‘메타버스’란 용어와 상관없이 이어질 것이다. 온라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디지털 세계의 역할은 점차 확장돼 왔다. 네트워크, XR 기술 등 온라인 세계에서 확장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기반은 이미 갖춰졌고, 더 보편화하고 상용화하는 과정만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메타버스라는 용어도 다른 트렌드 용어로 바뀌겠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늘어난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 메타버스에 올라타고, 디지털 세계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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