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지 않는 소녀, 바비

자라지 않는 소녀, 바비

시장을 지배하는 성공적인 브랜드 가운데서도 사회적, 문화적 아이콘의 지위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그 제품이 특정 연령대, 특정 성별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면 아이콘이 되는 일은 더 어려울 것이다. 완구 브랜드 바비(Barbie)는 여성, 소녀를 대상으로 한 브랜드라는 한계를 넘어 애플, 코카콜라 등과 함께 첫손에 꼽히는 아이콘이다.

‘바비 인형’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러 가지다. 소녀들이 인형을 갖고 노는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고, 놀라운 신체 비율의 모델, 핑크색 상자와 화려한 의상을 연상할 수도 있다. 바비의 이미지를 제조사인 마텔(Mattel)에 묻는다면 소녀들의 무한한 꿈과 이상이라 말하겠지만, 《뉴욕타임스》는 바비의 창시자 루스 핸들러(Ruth Handler)의 부고 기사에서 바비를 “미국 팝 컬처의 아이콘, 예술가의 뮤즈이자 페미니즘 정치의 피뢰침”[1]이라고 묘사했다.

바비가 장난감을 넘어 미국 대중문화는 물론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바비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반세기 넘게 이어진 완구 회사 마텔의 브랜딩 전략뿐 아니라, 미국 장난감 시장의 동향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까지 다루는 일이다.

 

포르노 인형에서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바비의 일대기


1950년대 마텔은 히트작이라고는 장난감 우쿨렐레(Uke-A-Doodle) 하나에 불과했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장난감 회사였다. 마텔의 운명을 바꾼 것은 공동 창업자 중 한 사람인 루스 핸들러와 그의 딸 바바라(Barbara)였다. 핸들러는 바바라가 어른 흉내를 내며 종이 인형을 갖고 노는 것을 발견하고는 종이 인형을 3차원 인형으로 만들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던 중 또 하나의 발견을 했다. 바로 빌트 릴리(Bild Lilli) 인형이었다.

빌트 릴리는 독일 타블로이드지 《빌트(Bild)》에 실린 성인용 만화의 캐릭터였다. 화려한 금발 여성으로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부유한 남자를 유혹하는 성적 농담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빌트 릴리는 성인용 인형이었다. 빌트 릴리에 대해 미국 주간지 《타임》은 “총각 파티에서 돌리던, 웃기고 야한 선물(a prostitute gag gift handed out at bachelor parties)”이라고 일축한 바 있고, 《뉴욕타임스》는 아예 ‘섹스 토이(a sex toy)’로 정의했다. 핸들러는 이 인형을 미국으로 가져와 성적 요소를 완화한 10대 패션모델로 설정한 후, 딸의 이름을 따서 바비라고 불렀다.

마텔의 남성 임원들은 바비의 출시를 반대했다. 핸들러가 바비를 1959년 뉴욕 장난감 박람회에 소개하자 장난감 업계의 남성들까지 일제히 반발했다. 설문 조사를 해보니 부모들의 반대 의견도 많았다. 아이들에게 성인 여성의 모양(too much of a figure)을 한 인형을 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핸들러는 소녀들을 직접 공략하기로 했다. 디즈니의 아동용 쇼 프로그램 〈미키 마우스 클럽〉의 방영 시간에 대대적인 TV 광고를 실시한 것이다. 미국의 소녀들은 열광했고, 바비 인형은 출시 첫해에만 30만 개가 넘게 팔렸다.[2] 이전까지 소녀들을 위한 장난감은 ‘엄마 놀이’를 할 수 있는 아기 인형 정도였다. 반면 소년들은 카우보이 세트부터 블록까지 다양하게 고를 수 있었다.

동시에 1950년대는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등 전설적인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핸들러의 말대로 “모든 소녀가 장래의 꿈을 투영할 인형을 필요로 했던” 시기였다. 소녀들의 잠재적 수요가 있었기에 마텔은 시장이 성숙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마텔은 패션 인형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무혈입성했다.

1960년대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미국 대통령은 젊음과 활기를 약속하며 당선됐다. 바비의 패션도 50년대의 조신한 숙녀 스타일에서 경쾌하고 색채감 넘치는 모드(Mod)풍으로 변신했다. 1961년에는 바비의 남자 친구 켄(Ken)이 등장했고, 1962년에는 바비의 집 드림 하우스(Dream House)가 출시되며 바비의 세계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판매량도 증가해서 바비는 미국 소녀 완구 시장의 정상에 올랐다.

1970년대는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의 대결 구도 속에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감이 커진 시기였다. 히피 문화가 등장하고 60년대 민권 운동 결과로 흑인 문화가 성장했다. 여성 인권 운동에 불이 붙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 무렵부터 바비는 진취적인 신흥 브랜드가 아니라, 기성세력의 일부로서 사회적 비난을 받으며 방어하는 처지가 되었다. 1971년 출시된 말리부 바비(Malibu Barbie)는 캘리포니아 서퍼 걸(Surfer girl)의 이미지를 선보여 히트작이 되었지만, 바비의 성장세는 꺾이고 있었다. 1974년 마텔은 파산 위기에 직면했고 핸들러는 실적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1975년 사직했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 휘하의 1980년대 미국에서 정치의 흐름은 우익으로 급변했다. 여피족, 즉 도시의 젊은 고수익 종사자들이 시대를 주도했다. 소비 중심 문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겹치며 바비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70년대의 비난을 의식한 듯 바비의 직업도 다양해졌다. 진취적인 이미지를 되찾은 바비는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1986년에는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바비를 그린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1990년대에도 바비는 베스트셀러였다. 체조 선수 바비(Gymnast Barbie), 인어 바비(Mermaid Barbie), 제너레이션 걸 바비(Generation Girl Barbie) 등 히트작이 쏟아졌고, 바비 역사상 최다 판매작인 토털리 헤어 바비(Totally Hair Barbie,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 헤어가 특징이다)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마텔은 바비 상품을 본격적으로 다각화했고, 수집가용 바비 제품군도 정착시켰다. 패션 디자이너와의 의상 협업도 확대했다.

그러나 전성기를 재현하는 듯했던 이 시기에 위기도 닥쳤다. 성차별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브랜드라는 비판이 시작됐다. 1992년 출시한 말하는 바비(Teen Talk Barbie)는 바비의 대사가 성 역할의 고정 관념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도마에 올랐다. 1997년에는 오레오 바비(Oreo Fun Barbie)를 만들어 인종 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1997년에는 휠체어를 탄 바비(Share a Smile Becky)를 만들었으나, 휠체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2000년대에는 처음으로 등장한 라이벌 브랫츠(Bratz)와 법정 공방을 벌였고, 2010년대부터는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2년 전 세계 매출의 3퍼센트가 감소했고, 2013년에는 6퍼센트, 2014년에는 16퍼센트가 또 감소했다. 2014년에는 마텔의 주가가 40퍼센트 가까이 폭락했다. 10분기 동안 이어진 매출 감소 후에, 마텔은 2015년 바비를 대대적으로 리브랜딩(rebranding)했다. 그 덕에 2016년 매출이 반짝 증가하는 듯했으나 2017년에는 다시 매출이 감소했다. 마텔은 지난 4년간 세 번이나 CEO를 교체하며 혼란기를 겪고 있다.

부진에도 불구하고 바비는 여전히 마텔 최대의 브랜드이자 10억 달러 규모의 연 매출을 자랑하는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마텔은 2009년까지 150여 개 국가에서 총 10억 개 이상의 바비 인형을 판매했다. 《타임》에 따르면 미국의 3~12세 소녀 가운데 92퍼센트가 바비 인형을 소유한 적이 있다.

바비는 미국의 유년기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장난감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다. 1974년에는 뉴욕시 타임스퀘어 일부가 일주일 동안 바비의 거리(Barbie Boulevard)로 불린 적이 있다. 1976년에 묻은 미국 타임캡슐에는 바비와 남자 친구 켄이 포함되었다. 2002년에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들의 손자국이 새겨져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명소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바비의 손발이 새겨지기도 했다. 바비 탄생 50주년이었던 2009년에는 축하 행사의 일환으로 뉴욕 패션위크에서 바비 런웨이 쇼가 열렸는데, 쇼에서 바비에게 의상을 헌정한 디자이너는 베라 왕(Vera Wang),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을 포함한 50명의 스타 디자이너들이었다. 2016년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700개 이상의 바비 인형들과 바비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인 바비 전시회가 열렸다.

그러나 바비가 늘 환대를 받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바비를  두고 “미국 소비주의의 늘씬한 상징”이라 비꼬았다. 1997년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끈 덴마크 밴드 아쿠아(Aqua)의 히트곡 〈바비 걸(Barbie Girl)〉은 바비와 켄을 성적으로 묘사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마텔은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이 곡이 미국 수정 헌법 1조의 보호를 받는 패러디라고 판결했다.

 

바바라 밀리센트 로버츠


소비자가 캐릭터에 몰입하게 하려면 사람과 같은 프로필과 스토리가 필요하다. 바비는 프로필 수준이 아니라 비공식 전기까지 있는 살아 숨 쉬는 캐릭터다.

바비의 풀 네임은 바바라 밀리센트 로버츠(Barbara Millicent Roberts)다. 고향은 미국 중부 위스콘신(Wisconsin)주의 가상의 도시 윌로우즈(Willows)이고, 생일은 바비가 뉴욕 장난감 박람회에 처음 선보인 날인 1959년 3월 9일이지만 나이는 영원한 10대 후반으로 설정되어 있다.

바비는 수동적으로 옷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옷의 판매를 돕는 10대 패션모델로 설정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바비는 처음부터 직업이 있었다. 현재까지 바비가 경험한 직업은 우주 비행사부터 대통령까지 150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본업은 패션모델이기 때문에 비현실적 체형을 유지하면서 옷과 액세서리를 끝없이 수집한다.

바비의 성격은 바비의 비즈니스 모델에 최적화되어 있다. 바비가 세상에 나온 1950년대의 엄마들은 딸이 빨리 자라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자의 생계 수단은 사실상 결혼뿐이었던, 어른이 된다고 해서 좋을 것이 없는 시대였다. 바비는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의 꿈을 충족시켜 주면서도, 엄마들에게는 딸이 곱게 성장해 훌륭한 남편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꿈을 제공하는 이상형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바비에게는 반항아 기질이 없다. 바비 이외의 제품군, 즉 서브 캐릭터들을 출시하려면 친구가 많아야 한다. 동시에 수시로 새로운 의상을 탐내야 한다. 바비 인형은 아이들을 바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열쇠이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옷과 액세서리다. 최초의 바비 인형이 3달러에 팔려 나갈 때, 최신 유행에 맞춰 제작된 바비의 옷은 1~5달러에 판매됐다. 마텔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형성한 후에도 바비 인형의 가격을 10달러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유지하고 있다. 바비를 갖고 노는 소녀들은 바비 인형과 자기를 동일시하고 미래를 상상한다. 바비가 가진 물건들을 통해 소녀들이 대리 만족을 느끼는 지점에서 바비의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되는 것이다.

종합하면 바비는 상냥하고 친절하며, 패션에 대한 열정과 상상력은 충분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비 지향적인 소녀다. 이런 성격은 미국 사회가 경제적 번영 속에 소비를 중시하던 80~90년대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쇼핑 정도였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성격의 소녀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마텔은 바비의 성격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바비 공식 인스타그램[3]은 바비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한다. 바비에게 친구가 많은 것은 “타고난 리더”이기 때문이고, 다양한 직업을 시도하는 것은 “끝없는 열정과 결단력” 때문이다. 늘 새로운 의상과 드림 하우스를 구입하는 것은  바비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60년대 랜덤 하우스 출판사가 출시한 바비 소설 시리즈는 바비의 성장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비의 세계에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은 1961년 출시된 남자 친구 켄이었다. 바비가 누군가의 여자 친구라는 설정이었다기보다는 켄이 바비의 최종판 액세서리(ultimate accessory)[4] 역할을 했다. 1963년에는 바비의 첫 친구 미지(Midge)가 출시되었고, 1964년에는 바비의 동생 스키퍼(Skipper)가 등장했다. 이후 바비의 형제자매는 6살 막냇동생 첼시(Chelsea)까지 총 7명으로 불어났다. 이외에도 바비는 꾸준히 사촌과 친구를 늘리고, 40종이 넘는 애완동물과 시대마다 진화하는 드림 하우스를 보유하고 있다. 핑크색 컨버터블부터 캠핑카까지 다양한 종류의 차량도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가진 바비에게도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부모다. 랜덤 하우스의 소설에서 바비의 부모는 조지 로버츠(George Roberts)와 마가렛 로버츠(Margaret Rawlins Roberts)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멀쩡히 살아 있다는 설정이지만 한 번도 인형으로 제작된 적은 없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를 꿈꾸는 것은 부모로부터의 독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많은 아이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만 있는 세상을 꿈꾼다. 바비의 부모님 인형이 없고,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부터 해리 포터까지 아동 콘텐츠의 주인공 대부분이 고아이거나 편부모 슬하인 이유다.

바비에게는 아기도 없다. 바비 이전의 인형들이 주로 아기 모양이었고 소녀들이 엄마 역할을 하면서 인형을 돌보는 콘셉트로 판매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1960년대 초 소비자들이 바비의 아기 인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마텔은 바비를 성장시켜 엄마로 만드는 대신 남의 아기를 돌봐 주는 콘셉트의 베이비시터 놀이 세트(Barbie Baby-Sits)를 제작했다.

 

핑크, 블론드, 포니테일


통상 대기업의 브랜딩이라면 세련된 로고나 태그 라인, 패키지 디자인이 떠오른다. 마텔도 바비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디자인부터 마케팅까지 많은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목적은 소녀들의 꿈과 이상이라는 바비의 이미지를 사용자인 소녀들과 구매자인 부모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시각적 메시지의 핵심인 색상을 보자. 바비 하면 떠오르는 색상은 밝고 선명한 연분홍색이다. 마텔이 바비 로고, 상자부터 웹사이트까지 수십 년 동안 일관되게 이 색상을 사용한 덕택이다. 색채 전문 회사 팬톤의 색상 PMS219는 아예 바비 핑크(Barbie Pink)로 불린다.

연분홍색은 여성스러움, 달콤함을 상징한다. 채도와 농도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선명할수록 젊음과 활기를 연상시키고 연할수록 따뜻한 느낌이 강하다. 바비는 어린 소녀들부터 10대까지 선호하는 선명한 연분홍색을 채택했는데,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배스킨라빈스도 유사한 연분홍색을 사용하고 있다. 연분홍색을 사용하는 또 다른 브랜드로 미국의 온라인 섹스 토이 유통업체 베이브랜드(Babeland)가 있다. 업계가 다를 뿐 색상의 취지는 바비와 유사하다.
바비 로고
바비의 로고는 경쾌한 폰트로 Barbie라고 적거나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한 최초의 바비 인형 옆얼굴을 사용한다. 초기의 바비는 웃지 않고 옆을 보는 모호한 표정이었다. 바비의 조상 빌트 릴리처럼 말이다. 1971년 말리부 바비(Malibu Barbie)부터 정면을 보게 되었고 1977년부터 이를 드러내고 웃게 되었다. 인형 전체를 보면 11.5인치(약 30센티미터)의 키에 플라스틱 재질을 유지하고 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동작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비 인형의 이미지는 수십 년 동안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출시 단계에는 검은 머리의 바비도 있었지만, 현재 애니메이션이나 애플리케이션 등 모든 마케팅 채널에서 공통적으로 선보이는 바비의 머리카락은 금발이다. 금발의 10대 미국 소녀라는 바비의 캐릭터는 반세기 넘게 축적, 강화되면서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는 바꾸려 해도 바꿀 수가 없다. 왜 소녀들에게 연분홍색을 강요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면 아동복 회사는 푸른색 원피스를 출시할 수 있지만, 바비는 바비 핑크를 버릴 수 없다. 연분홍색의 사용 빈도를 줄이고 연보라 같은 보조 색상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과하면 브랜드의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

마텔로서는 바비를 바비답게 만드는 브랜드 요소 중에서 시대와 맞지 않는 것들을 수정하면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는 바비 브랜드에 대한 도전과 응전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마텔의 고민이기도 하다.

 

소녀들의 꿈이 달라졌다


영화 〈토이 스토리 3〉에는 바비가 조리 있게 정치적 견해를 말하자 다른 장난감들이 은근히 놀라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의 코미디 요소는 누구도 바비에게 깊이 있는 생각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바비에게는 외모에만 집착하는 멍청한 금발 여자(blond bimbo)라는 고정 관념이 있다. 마텔의 수석 브랜드 담당자였던 줄리아나 척(Juliana Chugg)조차 자신이 바비 브랜드의 부흥을 위해 채용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염려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비 걸이 아니었거든요.”[5]

바비가 할리우드 여배우의 모습을 본뜬 초기에는 누구든 바비 걸을 동경하고 선망했다. 그런데 60년대에 바비를 갖고 놀던 소녀들은 70년대의 젊은 여성이 되어 바비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바비 인형이 상징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텔이 우주 비행사 바비를 만들든 대학생 바비를 만들든 변주에 불과하고, 바비 캐릭터 자체는 공부 대신 외모에 집착하는 고교생,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여성으로 인식되었다.

마텔이 1992년 출시한 말하는 바비는 이 같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인형 안에 녹음된 270개 문장 중 “언제쯤 충분히 많은 옷을 갖게 될까(Will we ever have enough clothes)”, “수학은 어려워(Math class is tough)” 등이 문제가 됐다. 바비가 성차별적 선입견을 고착시킨다는 비난이 높아졌고, 마텔은 전미 여대생 협회(the 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Women)의 항의로 위 문장들을 삭제했다.

핸들러가 딸의 이름을 따서 바비를 만들었을 때, 소녀들에게 해로운 역할을 제시할 생각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바비는 오히려 소녀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엄마가 아닌 직업을 가진 여성, 가정을 생각하는 대신 자신의 욕망을 꿈꾸는 소녀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다만 마텔이 생각한 이상적인 소녀들의 미래는 실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마텔은 바비가 150개가 넘는 직업을 거친 커리어 우먼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실제로 마텔은 미국에서 첫 여성 우주 비행사가 탄생하기 훨씬 전인 1965년에 우주 비행사 바비를 만들었다. 미국 내 의사의 여성 비율이 9퍼센트에 불과했던 1973년에는 외과 의사 바비를 선보였다. 1992년부터는 대통령 선거철마다 대통령 바비를 제작하기도 했다.

여기서 다시 50년대 말로 돌아가 보자. 당시 바비는 신상품 정도가 아니라 신개념이었다. 어린 소녀가 성인 여성을 꿈꾸며 논다는 발상 자체가 혁신이었다.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제거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을 정도다. 마텔이 최초 TV 광고[6]에서 조신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요조숙녀 바비의 이미지를 내세운 이유다. 바비의 전기 작가 엠지 로드(M. G. Lord)도 “바비는 좋든 나쁘든 사회가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가르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7] 바비가 어떤 직업을 갖든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의 모습을 제시한다는 본령을 벗어날 수 없었던 셈이다.
〈Imagine The Possibilities | Barbie〉
2014년의 주가 대폭락 후 마텔은 대대적으로 바비의 재브랜딩을 시도했다. 그 한가운데에 2015년 10월에 발표한 유튜브 비디오가 있었다. “가능성을 상상해요(Imagine the Possibilities)”라는 제목의 비디오는 소녀들이 바비 인형을 갖고 놀며 교수, 의사 같은 새로운 커리어를 상상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호평을 받았던 이 캠페인은 2016년 바비의 매출이 단기적으로나마 반등하는 데 공헌했다.

 

내 몸매 얘기 좀 그만할래요?


바비는 출시 단계부터 몸매에 대한 비난을 꾸준히 받아 왔다. 성인 여성 체형의 인형이라니 성적 도구가 아닌가. 논란을 의식한 마텔이 바비의 모델이 된 빌트 릴리 인형의 지식 재산권을 사들여 판매를 중단한 후에도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바비의 체형이 너무 사실적이라고 공격하는 반대편에는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비 캐릭터에는 다이어트와 몸매 관리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었다. 1963년 베이비시터 바비 세트의 소품 중 하나였던 작은 책은 다이어트 논란을 일으켰다. ‘살 빼는 방법(How to Lose Weight)’이라는 제목의 책 뒷면에는 단 한 줄이 쓰여 있었다. ‘굶으세요(Don’t Eat).’ 바비가 극단적 다이어트를 부추긴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1965년 출시된 잠옷 파티 바비(Slumber Party Barbie)에도 포함되었다. 잠옷 파티 바비에는 눈금이 110파운드(약 49.9킬로그램)로 고정된 작은 저울도 포함되어 있었다.[8] 1994년 핀란드 연구자들은 바비가 실제 여성이었다면 생리를 할 만큼의 충분한 체지방이 없다고 발표했다. 1996년에는 바비의 신체 사이즈가 32-16-29의 불가능한 수치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9]

바비의 몸매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미인형에서도 멀어져 갔다. 200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비욘세(Beyoncé)나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처럼 굴곡 있는 통통한 몸매의 여성들이 인기를 누렸다. 신세대 엄마들은 마른 체형의 바디 이미지를 강요하지 않는 장난감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2016년 기준 미국 성인 여성의 58퍼센트가 과체중 또는 비만인 상황에서 바비는 실제 여성 체형의 정반대에 있었다.[10]

이에 대해 마텔은 바비가 인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을 편다. 같은 재질의 천으로 옷을 만들어도 사람에게는 얇지만 인형에게는 두껍다. 바비 인형에 옷을 입히다 보면 부피가 불어나기 때문에 인형의 원형은 가늘고 얇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비는 인형에 불과하다는 반론은 소용이 없었다. 애초부터 마텔은 소녀들이 자신과 바비를 동일시하도록 만든다는 전제하에 비즈니스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1997년 마텔은 바비의 허리를 조금 굵게 하는 등 디자인을 거듭 개선했지만 문제를 정면 돌파한 것은 아니었다. 바비의 외모는 바비 캐릭터의 일부이고, 바비의 캐릭터는 바비 브랜드의 핵심이다. 마텔로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완구의 이미지를 변경하는 일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비난에 지친 마텔은 2014년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에 바비를 등장시켰다. ‘#미안할 것 없음(unapologetic)’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말이다.[11] 하지만 같은 해 매출이 급감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바비도 더 이상 당당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블룸버그 등 많은 언론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표지에 등장한 바비의 몸매와 관련해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
마텔은 소비자 인터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체형을 설계했다. 2015년 바비는 드디어 발목을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하이힐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2016년에는 원래 바비 체형과 다른 커비(curvy), 프티(petit), 톨(tall) 3개 체형의 인형을 내놨다.

마텔이 다른 체형을 지칭하는 단어를 고르고 외국어로 들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번역하는 데에만 몇 달이 걸렸다. 예전에 사 둔 인형 옷이 새 체형에 맞지 않는다는 엄마들의 항의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헬프 데스크도 개설했다.

이 도전으로 바비는 《타임》의 커버스토리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타임》의 표지 문구는 ‘이제 내 체형에 대해 그만 얘기할래요?(Now can we stop talking about my body?)’였다.[12] 바비의 글로벌 브랜드 담당 사장이었던 이블린 마초코(Evelyn Mazzocco)는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거대 기업에서 변화는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백인, 금발, 바비


바비는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팔리고 있다. 마텔도 세계의 인형(Dolls of the World)이라는 시리즈로 각국의 문화에 영감을 받은 바비를 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비는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국에서 흑인 민권 운동이 불붙은 60년대부터 논란은 시작되었다. 마텔은 1967년 첫 흑인 인형 유색 프랜시(colored Francie)를 출시했으나 이는 바비의 영국 사촌 프랜시의 피부색만 다른 버전이었다. 이듬해 바비의 첫 흑인 친구 크리스티가 등장했고, 1988년 히스패닉 친구 테레사, 1990년 아시안 친구 키라가 등장했으나 전형적인 백인 미인이라는 바비의 이미지를 희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1997년에는 논란을 일으킨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오레오 과자를 만드는 나비스코사와 협업해 만든 오레오 펀 바비였다. 같은 인형의 백인 버전, 흑인 버전을 만든 것이었는데, 흑인 사회의 반발로 금세 단종됐다. 오레오는 ‘겉은 흑인인데 속은 백인’이라고 조롱할 때 쓰는 비하적 표현이었기 때문이다.[13]

인종 감수성에 대한 압박은 점점 거세졌다. 2000년대 미국 사회에서는 흑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히스패닉의 비율이 높아지는 동시에 동양계의 경제력이 강화되었다. 마텔도 재브랜딩 과정에 인종적 다양성 문제를 고려했고, 2015년 8개 피부 톤, 14개 얼굴형을 가진 23개의 새 인형 시리즈 바비 패셔니스타(Barbie Fashionista)를 출시했다. 2016년에는 20개 이상의 피부 톤을 소개하며 ‘인형은 진화한다(#TheDollEvolves)’는 표어를 내걸기도 했다. 바비의 웹사이트나 소셜 미디어 등 마케팅 채널에서도 비백인 등장 비율이 현저히 높아졌다.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브랜드의 주인공인 바비가 백인인 이상 어떤 친구를 소개하든 백인 주인공의 이국적 들러리라는 차별적 관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바비라는 캐릭터는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도 인구의 90퍼센트가 백인인 위스콘신 출신의 금발 백인 소녀다. 반세기 넘게 쌓은 브랜드의 일관성을 깨면서 바비의 고향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해 바비의 라이프 스타일을 어디까지 바꿔야 할지도 모호하다.

 

세상이 변했다, 바비만 빼고


바비는 ‘수학은 어려워’라고 불평하거나 살 빼려면 굶으라고 폭언하는 등의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바비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사고는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바비는 변하지 않았는데 세상이 달라져 버렸고, 바비가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비의 출발이 진취적이고 공격적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바비는 성인용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준다는 도발적 발상에서 출발했고, 당시로서는 기성세대를 뛰어넘어 신세대를 직접 공략한 진보적 시도였다. 그러나 시장을 지배하게 된 이후에는 초기의 진취적 이미지가 희석되었다. 제품군을 확장하고 전 세계로 진출하면서 새 브랜드를 시도하기보다는 기존의 성공적 브랜드를 반복하는 단계가 지속되었다.

마텔이 주저한 것에도 이유는 있다. 바비에 대한 비판은 사용자인 아이들이 제기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인 어른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장난감의 사용자와 구매자가 다른 특성이 다시 드러난다.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바비 인형은 긴 머리 바비였다. 소녀들은 인형의 긴 머리를 빗질하는 것을 즐길 뿐 바비 인형의 직업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진 적이 없다. 여성의 인격보다 성적 매력을 강조하며 획일적인 체형을 강요하는 문화나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은 어른들이 만들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부모들, 특히 엄마들의 바비에 대한 불만은 어린 시절부터 강요당한 사회 관념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비 인형의 몸매를 가질 수 없었던 통통한 소녀는 여전히 모델 체형을 고수하는 바비를 보며 분노한다. 자라면서 자기와 닮은 인형을 갖고 놀 수 없었던 흑인 소녀는 엄마가 되어 딸에게 선물할 인형을 고르면서 슬픔을 느끼기 마련이다. 엄마들은 바비를 보며 자신의 삶에서 직면했던 사회적 요구들,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싸워 경력을 지켜야 했던 세월을 떠올린다. 마치 바비와 그 배후의 기성 사회가 ‘여자는 이래야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자라며 느낀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바람은,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강력한 기제다.

앞서 언급한 마텔의 유튜브 광고가 성공적이었던 것도 부모의 시각에서 바비 인형을 정상화시켰기 때문이다. 마텔은 아이가 바비를 갖고 놀 때에는 바비에게 상상력을 덧입힌다는 점을 포착하고 소비자가 바비 인형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를 다시 프레이밍(framing)하고자 했다.

 

모범생 바비 vs. 반항아 브랫츠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사용자인 아이들이 바비를 버릴 때 찾아온다. 새로운 인기인이 등장하면 기존의 여왕은 초라해진다. 바비는 1959년 패션 인형 시장을 창출한 이래, 반세기 가까이 90퍼센트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자랑했다. 전체 장난감 시장에서 마텔의 경쟁자인 하스브로(Hasbro)도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에야 바비는 처음으로 위협적인 경쟁 상대를 맞이했다. 2001년 시장에 나타난 브랫츠 인형이었다. 어른들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이상적인 신체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바비와 달리, 브랫츠는 무표정한 얼굴에 불편할 정도로 큰 눈을 가진 색다른 인형이었다. 금발에 푸른 눈, 백인으로 상징되는 바비와는 달리 브랫츠는 인종적으로 모호하다. 손에는 스마트폰과 립글로스를 들고 있다.
브랫츠 인형
브랫츠는 소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급성장했다. 2005년 바비 인형의 매출이 미국에서 30퍼센트, 전 세계적으로 18퍼센트 하락하는 동안, 브랫츠의 전 세계 매출은 20억 달러로 성장했다. 2006년에는 패션 인형 시장에서 점유율 40퍼센트를 차지했다. 전통의 경쟁자인 하스브로도 아니고 작은 장난감 회사 MGA사의 브랜드라 무시하던 마텔도 바비의 시장 점유율이 눈에 띄게 감소하자 대응을 시작했다. 하지만 착한 아이 바비가 반항아 브랫츠를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바비는 아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면 어른의 수단을 쓰기로 정했다. 2008년을 기점으로 소송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마텔은 브랫츠가 마텔 전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을 두고 MGA가 마텔의 지식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2008년 7월 17일, 미국 지방법원은 마텔의 손을 들어주었고 2008년 12월 3일에는 MGA의 브랫츠 인형 제작 및 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마텔의 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2011년 연방법원은 MGA가 인형 아이디어를 훔치지 않았고, 지식 재산권을 침해하지도 않았다며 오히려 마텔이 MGA에게 소송 비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4년 MGA는 10억 달러가 넘는 손해 배상액을 청구했고, 이 소송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법적 공방이 10여 년 넘게 이어지는 동안 브랫츠는 건실한 브랜드로 성장할 동력을 잃어 갔다. 결국 2015년 브랫츠의 리브랜딩은 실패로 돌아갔다. 막대한 소송 비용을 고려하면 결국 마텔이 자본의 힘으로 신흥 경쟁 상대를 누른 셈이다.

 

늙지 않는 바비와 성장하는 디즈니 공주들


이제는 마텔이 자본으로도 누를 수 없는 강력한 경쟁 상대가 나타났다. 바로 디즈니 공주들(Disney Princesses)이다. 마텔은 이제 인형 브랜드가 아니라 미디어 브랜드를 상대로 경쟁하게 된 것이다.

2015년까지는 마텔이 디즈니 공주 인형의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디즈니의 덕을 볼지언정 위협을 당할 일은 없었다. 라이벌 하스브로가 디즈니 공주들의 라이선스를 차지하게 된 것은 마텔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2013년부터 이어진 〈겨울왕국〉 프랜차이즈의 인기는 주인공 엘사를 비롯한 캐릭터 인형의 연이은 매진 사태로 이어졌다. 마텔이 엘사와 다른 디즈니 공주들로 인해 잃은 수익만 5억 달러가 넘는다. 마텔은 새로운 바비 체형을 제시하고도 2017년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에 시달렸다. 2017년에는 하스브로가 마텔을 매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까지 했다.

영화 〈원더우먼(Wonder Woman)〉 개봉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미국의 어느 소녀는 원더우먼 복장으로 유치원에 등교했다. 언제든 지구를 구하기 위해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텔은 〈원더우먼〉의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와의 라이선스 계약으로 원더우먼 인형을 제작 판매할 수 있게 됐지만 뻐꾸기 알을 품는 기분일 것이다. 원더우먼의 성공은 바비로서는 넘볼 수 없는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바로 스토리텔링의 영역이다.

어느 장난감이든 유행을 넘어 지속적 브랜드가 되려면 아이들을 그 장난감의 세계관으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아이들의 상상을 자극할 촉매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스토리텔링의 강자는 마블(Marvel) 히어로들과 〈스타워즈(Star Wars)〉 프랜차이즈에다 애니메이션 왕국 픽사(Pixar)까지 보유한 거대 미디어 기업 디즈니다.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라는 하나의 캐릭터에서 출발했지만 그 캐릭터에 브랜드 전부를 걸지 않았다. 이제 미키 마우스는 디즈니 영화의 오프닝 로고로, 디즈니랜드의 마스코트로, 하나의 상징으로 남았다. 디즈니 공주들도 어느 하나가 전체 브랜드를 짊어지지 않는다. 공주 한 명의 이야기가 끝나도 브랜드는 지속된다. 디즈니는 공주들에게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부여할 수 있고, 기존의 캐릭터가 시대에 맞지 않으면 새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덕분에 디즈니 공주들은 바비와 달리 상당한 진화를 거쳤다. 언젠가 왕자님이 오실 거라고 노래하며 낮잠 자고 청소하는 것 외에는 별 쓸모가 없던 최초의 백설 공주와 부족을 이끌고 대양을 탐험하며 사실상 지구를 구하는 모아나는 상반된 캐릭터다. 엘사도 금발에 비현실적 체형이지만 소비자로부터 반발을 사지는 않았다. 엘사의 배경 스토리가 자아실현과 자매애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스토리의 맥락 안에서 엘사를 수용한다.

그런데 바비에게는 본질적으로 스토리가 없다. 시련이 없고 성장이 없는 영원한 현재형이다. 바비 캐릭터가 곧 바비의 브랜드이므로 바비의 이야기가 끝나면 브랜드가 함께 끝나 버린다. 바비라는 브랜드를 아이콘의 지위로 견인한 바비라는 캐릭터가 브랜드의 발목을 잡게 된 형국이다.

여기에 장난감 시장의 일인자 레고는 소녀들에게 만드는 즐거움을 가르치겠다며 바비 사용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소녀들을 겨냥한 레고 프렌즈(Lego Friends) 제품군을 만들고 있다. 레고 프렌즈는 2012년 출시 이후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소녀들을 위한 건설 완구 시장을 9억 달러 규모로 성장시키며 2014년 레고가 세계 최대 장난감 회사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했다. 레고의 도전은 바비의 경쟁 상대가 패션 인형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바비에게 미래가 있을까


이제는 경쟁 상대가 달라졌다. 아이들은 손에 잡히는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패드로 게임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넷플릭스로 디즈니 만화를 본다.

아이들의 시선을 차지하기도 쉽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완구 상점 좋은 자리에 진열된 장난감을 탐내지 않는다. 장난감 유통업의 상징이던 토이저러스(ToysRUs)도 문을 닫는 마당에 장난감을 둘러볼 상점도 별로 없다. 자본으로 TV 광고를 독점하던 시기도 끝났다.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틀어 놓은 TV가 아니라, 자기가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유튜브, 넷플릭스를 택하고, 스냅챗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인기인들을 동경한다.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바비는 시장 지배적 지위가 아니라 신규 진입자에 가깝다.

레고도 극장용 영화를 안착시키며 위기를 극복하고 성인 사용자들을 끌어들인 바 있다. 디즈니 공주들은 디즈니 한 지붕 아래 픽사와 마블의 스토리텔링 노하우를 흡수하며 날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바비는 여전히 위스콘신 10대 소녀의 일상을 재생산하고 있다. 정보의 범람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문화는 전보다 빨리 자라고 있다. 최근 바비의 타깃은 3~6세로 좁아지고 어려졌다. 바비의 전성기는커녕 백화점에 즐비한 바비를 본 적도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바비는 엘사나 원더우먼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근래 바비의 브랜딩은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바비의 광고나 소셜 미디어는 “가능성을 상상해 봐요(Imagine The Possibilities)”,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YouCanBeAnything)” 등 아이들의 상상력과 잠재력을 자극하는 내용이다. “바비는 언제나 여성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한다”는 창업자 핸들러의 말도 부쩍 자주 보이고 있다. 어른들의 고정 관념과 달리, 바비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브랜드라고 외치는 듯하다.

최근에는 로봇 엔지니어 인형(Robotics Engineer Doll)을 피부색에 따라 4가지 형태로 출시하고, 그중 흑인 모델을 골라 바비 인스타그램의 프로필로 삼기도 했다. 여성의 과학계 진출 증가와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시류에 부합하려는 마케팅팀의 절박함이 느껴질 정도다.

마텔은 바비의 애플리케이션, 소셜 미디어, 유튜브 채널 등 온라인 마케팅 채널을 강화하고, 바비의 드림하우스(Barbie Hello Dream House)에 음성 인식 기능을 도입하는 등 IT 미디어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마텔은 2015년 초 말하는 기능이 있는 헬로 바비(Hello Barbie)를 출시했는데, 바비가 녹음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말을 알아듣고 쌍방향 대화를 하는 로봇 형태였다. 2017년 초엔 구글 임원 출신의 마고 조지아디스(Margo Georgiadis)를 CEO로 영입하기도 했으나, 1년 만에 사직했다.

바비의 스토리텔링을 강화할 바비 영화도 준비 중이다.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가 출연할 것으로 알려진 영화는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바비 세계에서 쫓겨나 실제 세계에 떨어진 바비의 모험을 그린다고 한다. 영화는 2020년 5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마텔의 대응은 수동적으로 보인다. 여전히 바비라는 캐릭터에 묶여 소비자의 평가에 의존할 뿐,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마텔 회장 리처드 딕슨(Richard Dickson)의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겠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릴 더 좋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라는 말은 바비 브랜드의 수동적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바비가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라 아이콘이라는 점은 마텔의 고민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바비를 아이콘으로 만든 요소들을 지우고 나면 그 브랜드는 여전히 아이콘인가. 아이콘의 지위와 미래 지향적인 브랜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큰 가치가 있을까.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소녀들은 물론 장난감 시장의 새로운 핵심 소비자로 부상한 비서구권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도 새로운 브랜딩 전략은 필요하다. 마텔이 2009년 중국 상하이에 세계 최초 바비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가 저조한 실적으로 2년 만에 폐점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중국 소녀들은 바비라는 미국 백인 금발 소녀에 스스로를 이입하고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디즈니의 변신과 확장은 바비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가 캐릭터에서 상징으로 물러나면서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할 공간이 만들어진 것처럼, 마텔도 바비를 브랜드의 상징으로 남기고 새로운 캐릭터를 중심으로 브랜딩을 시도할 때가 아닐까.
[1]
Sarah Kershaw, 〈Ruth Handler, Whose Barbie Gave Dolls Curves, Dies at 85〉, 《New York Times》, 2002. 4. 29.
[4]
〈Barbie〉, 《Encyclopedia Britannica》.
[5]
Christine Birkner, 〈How Barbie’s Makeover Brought the Brand Into the 21st Century〉,《ADWEEK》, 2016. 10. 21.
[6]
BarbieCollectors, 〈1959 First EVER Barbie Commercial〉, Youtube.
[7]
Eliana Dockterman, 〈Barbie's Got a New Body〉, 《TIME》, 2016. 1. 28.
[9]
David G. Myers, 〈Myers’ Psychology for AP*〉, Worth Publishers, 2010.
[12]
Eliana Dockterman, 〈Barbie's Got a New Body〉, 《TIME》, 2016. 1. 28.
[13]
Lauren LeVine, 〈27 Shocking Things That Have Been Done To Barbie〉, 《Refinery29》, 2016.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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