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니다, 독립술집
2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독립술집의 조건

제품이 아니라 취향을 사고파는 시대다. 책방 주인의 취향과 감성이 고스란히 담긴 독립책방은 서울의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특색 있는 독립책방을 서너 곳 이상 알고 있고,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트렌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방을 발품 팔아 찾고, 그 공간과 커뮤니티를 즐긴다. 일반 서점과는 ‘뭔가 다른’ 것이 독립책방에 있기 때문이다.

술집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서울에는 술과 취향을 함께 파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기획자라 부르며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를 창조하고 있다. 그런 가게를 ‘독립술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해 보기로 했다. 독립술집은 세상에 없던 말이다. 그러나 언어가 없어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을 뿐 독립술집의 형태나 문화는 이미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독립술집에서는 술이라는 상품과 화폐가 등가로 교환되지 않는다. 독립술집의 주인들은 술을 매개로 라이프 스타일을 팔고 있다. 이런 술집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평범한 주점과는 ‘뭔가 다른’ 인상을 풍긴다. 가게의 규모와 분위기, 주인과 손님의 관계, 주인의 경영 철학 등에서 비롯하는 차이인데, 일반 술집과 구분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독립술집은 자본의 논리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독립술집의 주인들은 장사가 잘돼도 섣불리 가게 확장을 추진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방식의 체인점 출점이나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식의, 수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운영 방식을 배격한다. 이들은 자신의 고유성이 담긴, 남들이 베낄 수 없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의 아우라를 퍼뜨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다. 똑같은 공간을 여러 개 만들기보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공간을 연결하는 데 관심이 많다. 독립술집을 독특한 콘셉트를 파는 수준의 ‘감성 주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독립술집의 주인들은 공간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숙성시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매일 미세한 조정을 가하며 자신의 공간에 변화를 준다. 문손잡이부터 조명, 수저 하나까지 주인의 취향이 담기지 않은 것,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무조건적으로 유행을 따르거나 수지 타산을 따지기보다는 손님과 영감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둘째, 독립술집에서는 취향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제는 출신 지역이나 이력보다 취향을 따져 사람을 만나는 시대다. 독립술집의 주인들은 술집이라는 공간에 자신의 캐릭터를 투영하고, 여기에 호응하는 손님들이 독립술집을 찾는다. 주인과 손님이 부지런히 상호 작용하면서 취향의 공동체가 구성되고 확장된다. 주종과 안주의 구성이나 맛에 대해 손님과 주고받은 이야기는 실제 운영에 적용된다. 손님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투자로 술집 운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주인과 손님이 상호 작용하면서 결합된 취향은 새로운 트렌드로 발전해 또 다른 취향과 만나고 확대 재생산된다. 독립술집에서 술은 공간의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과 손님 사이의 상호 작용을 돕는 매개체로 존재할 뿐이다.

셋째, 독립술집은 젊다. 여기 소개된 다섯 명의 독립술집 사장들은 모두 20대~30대 중반의 나이에 가게를 열었다. 가장 생산적인 연령대에 술집을 차린 것이다. 젊음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을 내재하고 있다. 이들은 술집을 차리기 전에는 ‘술집 주인’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았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술집을 차렸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 트렌드에 다양한 컬러를 보탰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혹은 더 다른 모습의 미래를 그리며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독립술집의 문화를 즐긴다는 것은 우리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공유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 수 있다.

넷째, 독립술집은 확장의 공간이다. 독립술집의 사장들은 자신을 기획자 혹은 종합 예술인으로 정의한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매출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만들어 가고 있는 문화와 트렌드의 경계를 넓히는 것이다. 술집과 별도의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어 발전과 확장의 가능성을 찾고, 기성세대의 삶의 방식을 좇지 않고 고유한 길을 개척하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트렌드를 만들기 위해 뜻이 맞는 사람을 모아 기획하고 실행한다.

독립술집과 그곳의 주인들이 만들어 가는 서울의 새로운 트렌드를 전하고 싶었다. 상암동 원부술집의 원부연, 경리단길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의 안상현, 망원동 참프루의 변익수, 연남동 비노 라르고의 하상우, 통의동 심야오뎅의 김슬옹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취재를 끝내는 데 6개월이 걸렸다. 테이블 회전수나 매상처럼 수치로 드러나는 사실만을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왜 술집을 차렸는지, 후회하지는 않는지, 무얼 꿈꾸는지 더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물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한 생각이나 상황을 수시로 공유했다. 때로는 그저 술 한잔 마시려고 찾아갔다.

다섯 명의 독립술집 주인들이 보통 사람보다 유별난 성격이라거나 타고난 능력이 월등히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현실에 안주하며 속으로만 꿈을 그리는 부류가 아니라는 것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독립술집의 주인들은 오늘의 삶을 위해 술집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선명하게 그리고 실행하는 사람들이었다.

독립술집들은 멀리에 있거나 숨어 있지 않다. 오늘부터라도 동네 주변을 신경 써서 살피면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독립술집 주인은 당신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독립술집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고, 술을 매개로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는 공간이니까.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미식 예찬》의 저자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준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라고 말했다. 오늘 서울에서는 “당신이 어느 술집을 가는지 말해 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독립술집에 들르거든 술과 음식, 시간만 죽이지 말고 그곳의 주인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눠 보기를 권한다. 서울의 새로운 트렌드를 즐기는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서재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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