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탄생
 

11월 첫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됐습니다. 후보 수락 연설에서 정권 교체를 열 번 이상 언급했죠. 문재인 정권을 재산을 약탈하고 세금을 약탈하고 미래를 약탈하고 국민을 약탈하는 정부로 규정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한때나마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 수사를 주도해서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을 입증해준 검사였습니다. 국민의힘한텐 자신들이 세운 정권을 무너뜨리고 대통령을 구속시킨 적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돼버린 걸까요?

북저널리즘은 앞으로 120여 일 동안 이어질 20대 대통령 선거를 분석하고 통찰하고 전망한 스토리들을 독자 여러분에게 뉴스레터와 포캐스트와 라디오와 전자책과 종이책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전해 드릴 계획입니다. 이번 주 프라임 레터에선 윤석열의 탄생을 다룹니다. 이어서 다음 주 프라임 레터에선 이재명의 탄생을 다룰 예정입니다.

윤석열의 탄생 


윤석열 불가론. 2019년 5월과 6월 사이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선 윤석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가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최강욱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은 직속 상사인 조국 민정수석에게 세 번이나 윤석열 불가 보고를 올렸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의 기류를 반영해야 하는 조국 수석과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는 최강욱 비서관 사이에 언쟁이 벌어질 정도였죠. 윤석열 검증보고서에 나열된 불가 사유는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윤석열 후보자의 장모와 관련된 부동산 투기 의혹과 파주 요양병원 분쟁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후보자의 아내와 관련된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후보자 본인과 관련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 수수 연루 사건이 있었습니다. 본인과 아내와 처가와 관련한 의혹들만 놓고 봐도 윤석열 카드는 무리수였습니다. 나중에 여권이 검증보고서 내용을 모조리 윤석열 역공의 무기로 활용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당시 청와대는 윤석열의 약점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윤석열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던 겁니다.

민정라인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 낙점된 건 청와대의 오판 때문이었습니다. 청와대는 윤석열이 문재인 정부 사람이라고 오판했습니다. 검찰에선 소수파라고 오판했습니다. 무엇보다 윤석열의 충성 맹세를 믿을 수 있다고 오판했습니다. 검사 윤석열은 국정원 댓글수사국정농단 수사로 스타가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고 박근혜 정부의 목숨줄을 끊어놓은 사건이죠. 적의 적은 우리 편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오판했던 겁니다.

지금 윤석열 대선 캠프의 주축은 이명박 정부 사람들입니다. 윤석열은 박근혜 당시 대표가 천막당사로 살려냈던 한나라당의 후신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죠. 적의 적이 역시 적이었던 겁니다. 진보는 선악 논리로 세상을 봅니다. 세상엔 정의와 불의가 있을 뿐이죠. 정의로운 우리는 불의한 당신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정의도 불의의 일부가 되니깐요. 보수는 이해관계로 세상을 봅니다. 득과 실이 있을 뿐이죠. 득실계산에 따라선 어제의 적도 얼마든지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윤석열 캠프가 증거입니다.


윤석열 총장의 탄생 

검찰총장 인사 검증이 한창이던 무렵이었습니다. 윤석열 후보자는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과 종종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정치 입문 이후에도 윤석열은 야당 의원들과 호프집 회동을 자주 했죠. 윤석열 정치는 술주정 정치냐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죠. 2년 전에도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후보자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검찰총장이 되려는 야심이 있다면 여권의 기류를 바꿔야 한다는 걸 알았죠.

윤석열 후보자은 이렇게 스스로를 어필했다고 전해집니다. “검사 윤석열의 정체성은 국정농단 수사다. 그런 내가 문재인 정부한테 등을 돌릴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 사실상의 충성 서약이었죠. 청와대는 이 말을 믿었습니다. 지난 11월 5일 금요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문재인 정권 교체를 열 번 이상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재산을 약탈했고 세금을 약탈했고 미래를 약탈했고 그렇게 국민을 약탈했다고 공격했죠. 문재인 정부에게 등을 돌릴 수 없다던 그였습니다. 

청와대의 정말 치명적 오판은 따로 있었습니다. 윤석열이 검찰의 영원한 소수파라고 단정했던 겁니다. 윤석열 총장이 취임하고 바로 다음 날인 2019년 7월 26일 검찰 인사가 단행됩니다. 윤석열 사단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을 싹쓸이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사단과 인맥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 사회니까요. 검찰 조직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검찰은 대한민국 최강의 공권력 조직입니다. 청와대 권력의 상당 부분도 민정수석실을 통해 장악한 검찰 권력에서 나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거의 모든 권력은 검찰로부터 나옵니다.

여느 권력 집단처럼 검찰에서도 인사는 생명줄입니다. 보직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부피와 밀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인사권을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이 쥐고 있는 이유죠. 검찰 내부에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사단이 생겨나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칫 검찰 권력이 사유화될 수 있으니까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군부 안에 하나회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청와대가 윤석열을 검찰 내 소수파라고 봤던 건 인사에서 불이익을 입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 윤석열을 스타로 만든 한마디죠. 대신 윤석열은 좌천에 좌천을 거듭해야만 했습니다. 청와대는 검찰에서 윤석열이 외톨이일 거라고 봤습니다.

청와대가 보고 싶은 것만 봤던 겁니다. 검찰의 인맥은 인사뿐만이 아니라 수사로도 만들어집니다. 대형 사건 수사팀으로 한솥밥을 먹은 사이끼리 끈끈한 유대 관계가 맺어집니다. 심재륜 사단이 대표적입니다. 심재륜 사단은 김영삼 정부 시절 한보사건김현철 사건을 수사했던 심재륜 대검 중수부장의 인맥입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검찰 권력이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사건이 김현철 사건입니다. 아버지 김영삼 대통령의 후광을 믿고 소통령으로 군림했던 아들 김현철을 구속시키는데 성공했죠. 이때부터 심재륜 수사팀을 중심으로 검찰 특수부 인맥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막강한 정치 권력에 맞서는 정의로운 검찰 특수부 검사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도 이 때부터였죠.

수사로 검찰 사단이 형성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수사로 거악을 처단한다는 명분 아래 함께 일하면서 끈끈한 동지가 되는 겁니다. 윤석열 사단은 2003년 SK분식회계 사건과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 그리고 2006년 외환은행 론스타 헐값 매각 사건에서 기원합니다. 론스타 사건은 영화 〈블랙머니〉로 만들어졌습니다. 배우 조진웅은 풍채부터가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부 검사를 연상시키죠. 이 무렵 윤석열 검사의 소울메이트가 되는 인물이 윤대진 검사입니다. 나중에 대윤과 소윤으로까지 불리는 윤석열 사단의 중심입니다. 윤대진 검사의 형이 윤우진입니다. 민정수석실이 세 번이나 윤석열 불가론을 제기하게 만들었던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사건의 당사자죠.

당시 청와대는 윤우진 사건의 본질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표면적 쟁점은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변호사를 윤석열 현직 검사가 직접 소개해줬느냐의 여부였죠. 현직 검사가 검찰 수사를 받는 사람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건 변호사법 위반입니다. 당시 청와대는 중범죄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실제로도 과태료 정도의 처분 대상입니다. 진짜 문제는 보지 못했습니다.

대윤과 소윤이 변호사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서로를 물심양면 도울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놓쳤습니다. 또 소윤은 대윤과 달리 검찰 안에서 두루 인맥이 넓고 심지어 정관계까지 친분이 두텁다는 사실을 놓쳤습니다. 윤대진 검사는 윤석열 검사와 달리 적을 많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윤대진의 인맥이 윤석열 검사를 비호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열 검찰 총장 인사 과정에서도 소윤 인맥이 움직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 사단은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대윤과 소윤이라는 쌍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 뿐이었습니다. 굵직한 특수부 수사들을 공동 경험하면서 검찰이 거대 정치 권력에 맞서 대한민국의 법치를 지킨다는 신념으로 뭉쳐 있는 집단이었죠. 우리가 나라를 이끈다. 우리가 나라를 바로 세운다. 다른 말로는 구국의 결단이죠.


윤석열 검찰의 탄생

2019년 7월 검찰 인사는 수사로 맺어진 윤석열 사단이 인사를 통해 검찰 전체를 장악하는 계기가 됩니다. 청와대는 소수파인 윤석열 총장이 검찰을 장악할 수 있도록 윤석열 총장에게 사실상 검찰 인사권을 내줍니다. 민정라인을 통해 검찰총장과 검찰 조직을 견제한다는 법제도의 취지를 청와대가 스스로 허문 겁니다. 윤석열은 우리 사람이라는 믿음 탓이었죠. 문재인 대통령조차 2019년 7월 25일 열린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신임 윤석열 총장.” 문재인 대통령은 추윤 갈등이 극에 달했던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입니다.” 검찰에겐 우리란 오직 검찰을 의미하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 아니라 43대 검찰총장이 있을 뿐이란 사실을 몰랐던 거죠. 그런 검찰주의의 화신이 윤석열 총장이란 사실도 말입니다.

청와대의 예상과 달리 인사에 예민한 권력 집단인 검찰은 정권이 밀어주는 윤석열 총장 라인으로 순식간에 줄을 서버립니다. 소수파였던 윤석열 사단과 다수파였던 검찰 조직은 화학적 결합력이 매우 높았습니다. 검찰주의라는 신념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구성원을 조직과 일체화시킵니다. 신입 사원 연수의 목적이죠. 일반인을 삼성맨과 현대맨으로 탈바꿈시킵니다. 평범한 평사원조차 조직 안과 밖을 구분해서 사고하게 만들죠. 검찰에도 평범한 검찰맨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형사 사건 담당 검사들이죠. 영화 〈강철중〉의 주인공 검사 강철중이 대표적입니다. 낮엔 서류더미와 씨름하고 밤엔 조폭들과 씨름하는 정의의 파수꾼들입니다. 특수통이 병정개미라면 형사통은 일개미들입니다. 역할은 달라도 모두가 검사들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이끌고 세운다는 자긍심만큼은 똑같죠. 윤석열 사단은 이걸 건드렸죠. 검찰 수뇌부를 장악한 윤석열 특수통 사단은 형사통과 공안통과 기획통이라는 검찰의 4개 분파를 통폐합해버립니다. 전무후무한 일이었죠. 윤석열 사단은 순식간에 윤석열 검찰이 됩니다.

모두가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 총장을 믿고 밀어줘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총장을 밀어준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국정 과제인 검찰 개혁을 검찰 안에서 완수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검찰 밖 제도 개혁은 정부 여당의 몫이었습니다. 검찰 안 인사 개혁은 결국 검찰을 잘 아는 신뢰할 만한 누군가에게 칼자루를 쥐어줘야만 가능했습니다.

문재인 청와대는 윤석열 총장을 적임자라고 봤던 겁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내내 소신 수사로 검찰 안에서 인사 불이익을 겪으며 외톨이 소수파가 됐던 인물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윤석열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을 법적으로 입증해준 장본인이었습니다.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은 적폐 수사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태극기 부대는 주말 마다 광화문에 모여서 박근혜 탄핵의 법률적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청와대는 적폐 수사로 연결된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검찰은 한 배를 탄 사이라고 봤습니다.

윤석열 검찰이 된 윤석열 사단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윤석열 사단에게 문재인 정부는 동맹이었습니다. 검찰에게 문재인 정부는 적이었습니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결속을 다져줍니다. 검찰 개혁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 검찰에게도 이제 적이었습니다. 배신할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명분은 조국이었습니다. 2019년 8월 27일 나라를 두 동강 낸 조국 사태가 터집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반토막이 나죠. 윤석열 검찰의 조국 수사는 필연이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카드는 윤석열 검찰총장 카드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인사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검찰 개혁을 완수해줄 쌍두마차라고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조국과 윤석열 모두 인사 참사였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들은 윤석열 검찰에겐 먹잇감이나 다름 없었으니까요.


검찰주의자 윤석열의 탄생

조국 불가론. 윤석열 총장은 2019년 7월 취임하자마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시에 한 달 동안 청와대와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조국 불가론을 주장했습니다. 반년 사이에 권력 핵심부를 관통한 윤석열 불가론과 조국 불가론은 사실상 검찰 개혁을 위해선 두 사람 모두 적임자가 아니었다는 걸 말해줍니다. 둘이 검찰 개혁의 환상적인 조합이 될 거란 기대는 일장춘몽에 불과했던 거죠.

윤석열 검찰의 조국 불가론은 청와대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일단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 인사에 간여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죠. 윤석열 검찰은 선을 넘습니다. 수사 내용이 야당에 흘러들어갔고 인사청문회 당일에 맞춰서 장관 후보자의 아내를 전격 기소했죠. 청와대 입장에선 윤석열 검찰이 사실상 야당과 공조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국 장관이 문재인 정부 검찰 개혁의 상징이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청와대가 조국 장관을 낙마시킬 경우 지지층에 균열이 생긴 게 뻔했죠. 조국 검찰 개혁 후퇴라며 노발대발했을 테니까요. 윤석열 검찰도 청와대의 딜레마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급소를 노렸듯이 문재인 정부의 약점이 조국이라는 걸 간파했던 겁니다.

조국을 낙마시키면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승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정부 여당이 주도하는 검찰 수술을 검찰 스스로 주도하는 셀프 개혁으로 후퇴시킬 수 있었죠. 조국 임명이 강행되면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 타격을 줄 수 있었습니다. 심재륜 시대 이후 검찰이 정권과의 전쟁에서 즐겨 써온 전술이었죠. 정권 핵심 인사의 치부를 들춰내서 정권을 길들이는 겁니다. 타겟은 대통령의 아들일 수도 대통령의 형일 수도 대통령의 비선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엔 대통령의 동지일 뿐이었죠.

문재인 대통령은 정면돌파를 선택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다운 결단이었죠.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합니다. 윤석열 검찰은 문재인 정권에 손쉬운 판정승을 거두는 데 실패합니다. 이제부턴 장기전이었습니다. 이것도 뜻대로 안 됐죠. 조국 장관은 취임 한 달 만에 사임합니다. 윤석열 검찰의 명분을 약화시키려는 포석이었죠. 이제 윤석열 총장이 검찰 개혁의 선봉장이 아니란 건 확실해졌습니다. 피아가 선명해진 거죠. 문재인 정권은 윤석열 총장의 손발을 묶기 시작합니다. 검찰 조직은 윤석열 검찰과 문재인 정권의 내전 지대로 전락합니다. 청와대 입장에선 검찰 개혁을 완수하려면 차라리 윤석열을 식물총장으로 만들고 검찰 조직을 혼란에 빠뜨리는 게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된 인물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었습니다. 추미애 장관은 조국 장관과는 결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형사법 전문가가 아니라 현실 정치가였죠. 검찰 개혁에 대한 검찰의 조직적 저항이 시작됐고 그 중심에 윤석열 총장이 있다는 게 드러난 이상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건 학자가 아니라 전사였죠. 추미애 장관은 인사권과 수사지휘권을 활용해서 윤석열 검찰을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자타공인 윤석열 총장의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대표적이었죠. 검찰처럼 이전투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채널A 사건이 대표적이죠. 윤석열 검찰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월성원전 경제성조작사건을 만들어서 문재인 정권을 공격합니다. 정작 양측 모두 상대방한테 치명상을 입힐 만한 유효타는 없었습니다. 시끄러운 여론전이었죠.


대선 후보 검찰총장의 탄생

진짜 변수는 민심이었습니다. 국민은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의 전쟁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조국 사태는 탄핵 이후 궤멸됐던 보수에게 부활의 빌미를 줬습니다. 이것만 보면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주자가 된 건 차라리 자연스럽습니다. 윤석열은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적폐 수사의 칼잡이지만 그 칼로 문재인 정권에도 치명상을 입히면서 보수의 활로를 열어줬습니다. 김영삼 정부 심재륜 사단 이후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권력은 겉으론 국민에게서 나왔지만 실제론 검찰로부터 좌우됐습니다. 국민이 선출한 정권을 검찰이 붕괴시키고 새로 세우기를 반복해왔기 때문입니다. 1차적 책임은 부패하거나 실수하거나 순진했던 정권한테 있습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죠. 번번이 군부 쿠데타를 허용하는 남미 정권처럼 말입니다. 문민 통제는 실력이 따라줘야만 가능합니다. 통제할 대상이 군사 권력이든 검찰 권력이든 말입니다. 문재인 정권 역시 검찰 권력을 통제하려고 노력했지만 대선 후보 검찰총장을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검찰총장 대선 후보는 상징적입니다. 겉보기엔 윤석열 개인의 정치 참여입니다. 시대적 함의는 검찰의 정치세력화입니다. 검찰이 직접 유권자들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으려는 시도죠.

특수통 검사다운 행보입니다. 검찰에서 민심에 가장 예민한 검사들이 특수통들입니다. 형사통은 여론에 무관입니다. 거리에 침 뱉고 다니는 조직폭력배를 잡는 걸 반대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공안통은 여론에 무지합니다. 남파간첩을 잡는 일이든 공안사범을 잡는 일이든 충성의 대상이 국민보단 국가이기 때문이죠. 특수통은 다릅니다. 재벌 수사든 정권 수사든 상대는 권력을 쥔 존재입니다. 그 권력엔 돈과 제도뿐만이 아니라 언론과 여론 그리고 국민적 지지까지 포함되죠. 비자금을 수수한 대기업 총수 하나를 구속시키려고 해도 국가 경제를 우려하는 언론과 여론을 돌파해야만 합니다. 국민이 검찰 편이면 회장님을 휠체어에 태워서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면 수사팀이 날아갑니다. 옷을 벗어야 하죠.

그래서 검찰은 법조 기자단을 통해 오랜 동안 언론을 길들여왔습니다. 검찰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는 언론한테만 수사 정보를 흘려주면서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맺어온 것이죠. 언론에겐 수사권이 없습니다. 통신 내역에 금융 정보까지 들춰볼 수 있는 검찰이 던져주는 수사 정보는 대부분 특종감이죠. 흔히 수사를 생물이라고 부릅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수사를 둘러싼 여론 탓이 큽니다. 여론의 흐름을 잘못 타면 수사를 실패합니다.

윤석열 총장은 특수통으로 잔뼈가 굵은 검사입니다. 민심을 읽는 감각에선 결코 정치인 추미애 장관한테 뒤지지 않았죠. 오히려 0선 총장이 다선 장관보다 더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추미애 전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윤석열 전 총장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됐습니다. 극에 달했던 추윤 갈등 역시 결과적으론 윤석열 전 총장에게 더 득이 됐습니다. 원래 청와대의 전략은 윤석열 총장의 힘을 조금씩 빼는 것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호하는 방식이었죠. 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역전승의 달인이었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불법적인 부분을 찾아내서 절차의 하자를 물고 늘어졌죠. 통쾌하진 않아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윤석열 검사를 상대로도 같은 전술을 구사하려고 했죠.

정작 추미애 장관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언론에 끊임없이 추윤 갈등의 소재를 제공했죠. 자신이 윤석열 검찰을 때리고 있다는 걸 보여 줬습니다. 검찰 개혁의 상징을 자처했습니다. 야심 있는 정치인 장관의 한계였습니다. 파격적인 인사와 공격적인 수사지휘권 행사로 윤석열을 식물총장으로 만드는 것까진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윤석열도 정치적 대중적으로 키워주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윤석열은 맞을 때마다 오히려 존재감을 키울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특유의 언더독 전략 덕분이었죠. 정권의 박해를 받는 검사의 이미지는 윤석열의 정치적 기반입니다. 이젠 정권의 박해를 받는 총장의 이미지까지 갖게 됐죠.

시대도 윤석열 총장 편이었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윤석열 검찰의 계산에서 어긋난 변수였죠. 코로나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국내외 정책들은 꼬여만 갔습니다. 온 국민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남북정상회담은 코로나로 트럼프 대통령이 실각하면서 용두사미가 됐습니다. 코로나로 500만 자영업자들은 사지로 내몰렸고 당연히 정부 탓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를 살리려고 풀어버린 돈들은 실물경제 대신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공급도 못하고 수요도 못잡고 대출만 늘리고 전세만 없애고 월세만 늘리는 부동산 실정까지 더해지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나마 국제 무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원맨쇼로 대통령 지지율만 30퍼센트대 이상을 유지할 수 있었죠. 민주화 이후 최초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 되는데는 성공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추미애 장관의 야심 찬 윤석열 때리기와 문재인 정부의 불운한 집권 후반기가 겹치면서 윤석열 대망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결정타는 2020년 10월 22일 국정감사였습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국정감사는 윤석열 총장에겐 매번 정치 무대나 다름 없었습니다. 1대 다수 상황에서 단기필마로 무수한 국회의원을 일거에 제압하는 윤석열 총장의 언변은 타고난 재능입니다. 국정감사는 윤석열 원맨쇼가 됩니다. 이때부터 윤석열 총장은 현직 검찰 총장인데도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윤석열 총장도 여론 조사에서 이름을 빼달란 얘기를 하지 않았죠.

이때부터 윤석열이 대통령을 꿈꿨던 건 아닙니다. 특수통 검사 시절 여론을 수사의 동력으로 삼은 것처럼 대권 지지율을 윤석열 검찰의 지지대로 삼으려고 했었죠. 추미애 장관이 문제였습니다. 국정감사 한 달 뒤인 2020년 11월 24일 윤석열 총장을 직무정지까지 몰아붙였습니다. 윤석열 총장에게 쏠리는 반문재인 민심을 꺾어보려는 시도였죠. 사실 당시 추 장관의 행보에 관해선 여권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추 장관이 나가도 너무 나간다는 우려가 컸죠. 돌이켜보면 당시 추미애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아니었습니다. 차기 대권 주자를 노리는 정치인 추미애였죠. 조국 사태로 드러난 검찰 개혁 지지층과 결합하기를 강렬하게 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추윤 갈등은 추미애 장관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서는 동력이 됐죠.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때리기는 검찰 개혁엔 양날의 검이었습다. 검찰 권력에 대한 제도적 개혁은 압도적인 여당 의석수 덕분에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공수처가 설치됐습니다. 국가수사본부도 발족했습니다. 중앙수사청을 만들어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면 제도적 검찰 개혁은 일단락될 일이었습니다. 검찰을 수사권을 가진 중앙수사청과 기소권만 가진 공소청으로 분리하는 게 대미였죠. 이건 윤석열 총장이 제왕적 검찰총장이라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 안에서도 추미애 장관의 무리수가 윤석열을 너무 키워주고 있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결과적으로 추미애와 윤석열의 추윤 갈등을 방치한 건 조국과 윤석열의 조윤 페어를 기대한 것 만큼이나 청와대의 결정적 패착이 됐습니다. 반문재인과 반진보를 열망했지만 구심점이 없었던 국민의힘과 보수층에 윤석열은 정권 교체를 이뤄줄 확실한 대안 카드로 비춰졌습니다. 대검 앞엔 화환이 깔리고 박근혜를 외치던 보수 유권자들이 윤석열을 외치는 희비극이 펼쳐졌죠. 별의 순간이 온 겁니다.


정치인 윤석열의 탄생

2021년 3월 4일 윤석열 총장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반대하면서 검찰총장직을 사퇴합니다. 사퇴의 명분은 검수완박이었습니다.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정권의 검찰총장 역할을 더 이상은 할 수 없다는 논리였죠.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권의 검찰 제도 개혁 방향에 관해 처음엔 이견이 없었습니다. 인지수사 부서를 축소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도 세계적인 추세라는 데 동의했었죠. 대한민국의 검사는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검사가 범죄로 인지하면 범죄 내사가 시작됩니다. 내사를 하다 범죄다 싶으면 기소하고 수사로 전환합니다. 걸면 다 걸립니다. 걸어다니는 공권력이죠. 그래서 윤석열 총장은 기획 있을 때마다 최소한의 법집행을 강조해왔습니다. 인지수사가 가능하다 보니 검찰이 법을 확대 해석하면 물이 너무 맑아서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무시무시한 법가의 시대가 펼쳐질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합리적이었죠. 정작 검찰총장 윤석열의 사퇴 명분은 검수완박 반대였습니다. 자기 모순이었죠.

명분이야 상관 없었습니다. 진짜 챙길 실리는 대선 출마였으니까요. 이때부터 사실상 서초동 캠프가 꾸려졌습니다. 공식 캠프는 나중에 광화문 이마 빌딩에 생겼지만 서초동 캠프가 먼저였죠. 지금 서초동 캠프는 겉으론 장모와 아내 사건을 전담합니다. 사실상은 검찰 밖의 검찰총장실이나 다름없습니다. 월성원전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가 옷을 벗고 변호사 신분으로 합류해 있습니다. 윤석열 총장은 사퇴했지만 윤석열 검찰도 윤석열 사단도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2021년 6월 29일 정치 참여를 선언합니다. 사실상의 대선 출마 선언이었죠. 대략 3개월 정도의 잠행을 끝낸 뒤였죠. 정치 참여와 대선 출마의 명분으로 윤석열 전 총장은 문재인 정권 심판과 정권 교체를 내세웠습니다. 이때 처음 윤석열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를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이라고 규정합니다. “집권 연장으로 국민을 약탈하려고 한다”고 비판하죠. 심판과 단죄는 검찰의 언어입니다. 검찰은 과거를 바로잡는 기관입니다. 정치는 미래를 바로 세우는 행위입니다. 정치인 윤석열은 검찰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한계였죠. 시간이 필요한 문제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5일 대선 후보 수락 연설도 사실상 지난 6월 29일 정치 참여 선언문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부패하고 무능하다. 내가 정권을 교체하겠다. 심판하겠다. 단죄하겠다. 

“국민통합의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대한민국 성장엔진을 다시 가동하겠습니다. 복지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문화 강국을 만들겠습니다. 창의성 교육을 강화하겠습니다. 든든한 안보 체제를 구축하겠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약속들입니다. 공정과 상식을 강조했어도 아무리 공정하게 말해도 상식적인 수준의 메시지들입니다. 결국 공정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문재인 정부를 단죄하고 심판하기 위해 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렇게도 읽힙니다. 윤석열 총장은 수사팀장으로 이명박 정부를 수사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박근혜 정부를 단죄했습니다. 대통령 후보 검찰총장으로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려고 합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수사와 단죄와 심판을 위해 대통령까지 된 전무후무한 특수부 검사가 되는 셈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3월 공직을 떠나고 6월 정치에 참여한 이후 11월 5일 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때까지 윤석열 시대를 대변할 만한 상징적인 정책을 거의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비전이 없습니다. 이쯤 되면 준비가 덜됐다거나 시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비전은 정권 교체와 정권 단죄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정권 교체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윤석열 후보가 제시한 집권의 목적은 아직 그것뿐입니다. 이른바 구국의 결단입니다. 전두환 신군부도 구국의 결단을 말했었습니다. 본질은 권력욕과 생존욕의 결합이었죠.

그래서 6월부터 지금까지 지난 4개월 동안 윤석열 후보는 사실상 입만 열면 지지율을 깎아먹었던 겁니다. 준비된 정치인은 말실수가 적고 메시지가 선명합니다.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확고한 가치관에 따라 답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 입으로 두 말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윤석열 후보는 정치인으로서 대중의 언어를 쓰도록 훈련받거나 단련되지도 못했습니다. 홍준표 후보한테 국민 여론 조사에서 10퍼센트포인트 차이까지 뒤처진 이유입니다. 홍준표 후보는 복잡한 사안을 대중의 언어로 간결하게 정리하는 데 도사입니다. 홍카콜라라는 별명은 그냥 나온 얻은 게 아니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비슷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에 윤석열 후보는 다변가입니다. 다변가한테 중요한 건 말의 문장이 아니라 말의 문맥이죠. 그러다 보니 말을 잘라 들으면 말실수가 되기 일쑤입니다. 대통령 권력의 요체는 말입니다. 대통령은 숨소리조차 정치적입니다. 말 한마디가 국민들한테 위로가 될 수도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윤석열은 반사체다. 여권의 정치인들이 윤석열 현상을 폄훼하면서 하던 말입니다.실제로 정치 데뷔 이후 윤석열 후보는 자체 발광을 할 때마다 표를 잃었습니다. 급기야 국민의힘 경선 막판엔 후보가 말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마저 캠프에서 나올 정도였죠. 그런데도 SNL에 나가서 사고를 쳤죠. 경선은 개판이었습니다. 사과를 개한테 줬습니다. 식용개와 애완견이 따로 있다고 말하고 그걸 물고 늘어지다가 투견판이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경선에 연막탄을 터뜨린 꼴이 됐습니다.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 홍준표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윤석열의 싸움은 어차피 윤석열이 홍준표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본선에서도 구도는 똑같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주장하는 검사 윤석열과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골라 하는 정치인 이재명의 싸움입니다.


심판자 윤석열의 탄생

대신 윤석열 후보한텐 남다른 전략이 있었습니다. 총장 인사 과정에서도 검찰 장악 과정에서도 효과를 봤던 방법이었죠. 특유의 보스 기질을 이용해서 주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습니다. 보스 기질은 청와대 검증보고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윤석열 후보의 특질입니다. 보스 정치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합니다. 카리스마로 조직을 빠르게 장악합니다. 일대일이든 일대 다수든 다양한 스킨쉽을 통해 빠르게 친밀도를 높입니다. 술자리가 대표적이죠. 윤석열 사단이 윤석열 검찰로 장악되는 과정도 그랬습니다. 지난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나서 의원들을 포섭해나가는 과정도 그랬죠. 이준석 대표가 부재한 채 입당한 걸 놓고도 설왕설래가 많았습니다. 그것도 전형적인 윤석열 보스 정치였죠. 대표가 있고 없고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겁니다. 어차피 마이웨이니까요.

보스 정치는 측근 정치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제도가 아니라 친소에 따라 권력이 분배되죠. 보스는 측근 말고는 믿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측근 그룹을 만듭니다. 정치 입문 이후 지난 4개월 동안 윤석열 캠프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랬죠. 광화문 캠프 말고도 서초동 캠프가 있고 거기에 코바나 캠프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코바나 캠프는 윤석열 후보의 아내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를 빗댄 표현이죠. 이러면 일을 하는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이런 보스 정치의 화신은 전두환이었습니다. 전두환은 특유의 보스 기질로 군부를 장악했고 결국 정권까지 장악했습니다. 5공화국에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라 하나회의 보스였습니다. 이건 박근혜 정부에서도 벌어졌던 일이죠. 다만 박근혜 정부에선 박근혜가 보스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보스를 움직이는 비선 실세가 따로 있었으니까요.

특유의 보스 기질로 윤석열 후보는 빠르게 국민의힘을 장악했고 압도적인 당내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로 대중적 지지는 상당 부분 잃었지만 단시간 내에 확보한 당내지지 기반 덕분에 승리했습니다. 정치인 윤석열의 장점과 단점과 뚜렷하게 드러난 지점이죠. 이제까지 검찰에서 특수통 검사로 살아오면서 진화시킨 리더쉽의 장단점이 그대로 드러난 셈입니다. 윤석열은 우리끼리 있을 때 강해지는 리더입니다. 모두의 리더여야 하는 대통령으로선 윤석열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후보입니다. 한편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선 이런 윤석열의 한계를 상쇄시켜줄 만한 러닝 메이트가 누구인지가 드러났습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였죠. 오랜 기간 선출직 공무원으로서 훈련받은 정치인입니다. 마지막 토론에선 사실상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이나 다름 없는 행보를 보여줬죠. 대장동 1타 강사를 자임하면서 윤석열 캠프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죠. 사실상 차차기를 노리는 것입니다. 사실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최전방 공격수를 자임한 건 이유가 있습니다. 윤석열 캠프의 핵심 승리 전략이 대장동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선후보 검찰총장이니까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정치평론가 시절에 했던 말이 있습니다. 올해 초였죠. 아직 누가 양당의 대선 후보가 될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였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어느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기 대선이 부패와의 전쟁 구도가 되면 윤석열 총장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다.” 시대정신에 따라 유권자가 필요한 후보를 무대로 불러올릴 거란 전망이었습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재명 경기지사로 결정됐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 3차 경선에선 이낙연 후보한테 역전 당했습니다. 대장동 의혹 때문이었죠. 1차와 2차 경선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만 않았다면 결선 투표도 가능했습니다. 실제로 각종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세는 꺾이는 분위기입니다. 대장동 의혹이 이재명 지지층을 바닥에서부터 흔들고 있는 겁니다. 윤석열 후보한텐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고 단죄하겠단 것보다 차기 권력인 이재명 후보를 심판하고 단죄하겠다는 메시지가 더 직설적입니다. 유권자는 대선에선 언제나 전망적 투표를 하니까요. 여당이 내세운 미래 권력이 심판과 단죄의 대상이라면 윤석열을 후보로 내세운 야당한텐 유리한 프레임입니다. 

대장동은 부동산 이슈이면서 반부패 이슈이면서 검찰 개혁 이슈입니다. 공공 개발로 땅을 싸게 사들여서 민간 개발로 집을 비싸게 팔아서 자기네끼리 이익을 나눠먹은 짓이죠. 개발 이익 수천억 원이 이재명 후보의 주변인들한테 흘러갔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2020년 7월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최종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대법관도 있습니다. 지난 2021년 9월 29일 이재명 캠프의 핵심 인물인 정진상 비서실장이 과거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 후보의 최측근으로 통했던 유동규와 검찰 체포 직전 통화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수사망에서 포위된 처지입니다. 이재명 후보로 이어지는 작은 연결 고리 하나만 나와도 선거 판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검찰은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 분위기입니다. 유동규에 대한 검찰 기소 내용선 당초엔 배임이 빠졌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직접 돈을 받지 않았어도 성남 시장으로서 배임 혐의에서는 자유롭긴 어렵습니다. 논란 끝에 검찰은 유동규를 비롯한 이른바 대장동 4인방의 기소 내용에 배임을 추가했습니다. 대한민국 검찰은 이전에도 유력 대선 후보의 비리 혐의를 눈감아 줬다고 의심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의 BBK 사건이었죠. 나라를 두 동강내면서까지 검찰 개혁을 민생 개혁보다 앞세웠건만 아무것도 진보한 게 없습니다. 수사 대상만 이명박 후보에서 이재명 후보로 집권 여당만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정부여당도 검찰개혁에 진심이라는걸 입증해야 하는데 하필 수사 대상이 여당 대선 후보입니다. 


대통령 윤석열의 탄생?!

2022년 3월 9일에 치러질 차기 대선은 준비 안 된 후보와 자격 없는 후보 가운데 차악을 선택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남은 122일의 선거 기간 동안 정치인으로서 진화해서 준비된 후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자격 있는 후보로 거듭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준비 안 된 대통령과 자격 없는 대통령 가운데 누가 더 위험한지를 저울질해야만 합니다.

분명한 건 차기 대선의 본질이 선악의 싸움 같은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진보층이 악마처럼 증오하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탄생시킨 건 바로 문재인 정권입니다. 윤석열은 정권의 실수입니다. 대장동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후보를 선출한 건 집권 여당입니다. 진보 유권자들은 2007년 대선에서 보수 유권자들이 마주했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부패한 후보지만 정권 교체를 위해 우리 후보에게 표를 줘야 하는가라는 딜레마죠. 이명박 후보는 부패했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물론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였죠. 그 탓에 한국의 시장 보수는 정당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제야 새로운 리더인 윤석열 후보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죠. 이재명 후보는 다를까요. 아니면 보수의 실수를 진보가 되풀이할까요.

이번 대선의 본질은 시대 교체가 아니라 세력 교체입니다. 민주당 정권의 주축인 586 운동권과 시민사회 세력이냐 검찰 개혁을 놓고 충돌하다가 아예 정치세력화돼 버린 일부 검찰공화국 세력의 권력 투쟁입니다. 지금 검찰 개혁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라는 마지막 능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검찰은 아직은 6대 중대 범죄에 한해선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중대범죄수사청이 신설되면 30년 검찰공화국도 해체 수순을 밟게 됩니다. 내로남불을 거듭하며 국민적 지지를 잃은 진보 세력과 검찰 권력을 넘어 아예 정치권력을 장악해버리려는 검찰 세력이 대선에서 정면충돌하고 있는 것이죠. 한편으로 이번 대선은 여권의 주류가 바뀌느냐의 권력 투쟁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여의도 경험이 없습니다. 청와대 경험도 없습니다. 민주정부 3기 내내 비주류였다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에서 내내 진보의 주류였던 586그룹과 명분과 논리보단 행정과 선거로 끝까지 온 비주류 후보의 여권 내 주도권 다툼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대선이 세력 간 파워 게임인 건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메시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트레이드 마크이자 시대 교체의 메시지로까지 평가받았던 기본 소득 시리즈를 숨겼습니다. 기본 소득 정책 설계자들도 캠프 전면에서 배제됐죠. 기본 시리즈에 반감을 갖고 있는 중도보수 유권자들을 의식한 것입니다. 대신 전환적 공정성장이라는 구호를 내세웠습니다. 보수의 언어인 성장이라는 화두를 선점하려는 것이죠. 윤석열 후보의 메시지는 정권 교체라고 쓰고 구국의 결단이라고 읽어야 합니다. 결국 세력 교체입니다. 양당의 후보 모두가 시대를 바꾸기보단 우리 세력으로 주류 세력을 교체하기 위해 집권하려고 합니다.

이번 대선이 도무지 뽑을 사람이 없는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구시대와 새시대가 경쟁하는 대선은 논쟁적이지만 생산적입니다. 양측 모두 서로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구세력과 신세력이 대안세력과 엉키는 대선은 소모적이면서 경쟁적입니다. 어차피 본질은 권력 투쟁이기 때문에 공약엔 차별성이 없습니다. 대신 네거티브가 강해집니다. 상대를 말소해야 우리가 이기니깐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모두 대장동 의혹과 고발 사주 의혹으로 난타전을 주고받고 있는 게 전형적이죠. 비전이 없는 시대의 정치인들은 그저 우리 세력으로 집권 세력을 교체하려고만 합니다. 집권 여당 안에서도 세력 교체일 뿐이고 여야 사이에서도 세력 교체일 뿐입니다. 집권 여당이 탄생시킨 윤석열 검찰 세력이 리더십이 부재한 보수 야당을 장악해서 다시 집권 여당 세력과 맞서는 것, 차기 대선의 구도입니다. 그렇게, 권력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윤석열이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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