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9화

에필로그; 푸른 불꽃이 더 뜨겁다

일반적으로 창의성을 이미지로 표현할 때, 불이 반짝하고 들어오는 전구 모양이 사용되곤 한다. 구글에서 creativity를 검색하면 컬러풀한 수많은 전구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반짝하고 켜지는 것, 그리고 빛처럼 빠른 것이 창의성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창의 노동의 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망생들의 삶을 반짝이는 전구에 비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창조의 순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을 켜기까지의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을 생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한 과정야말로 창의성의 핵심이다.

과정을 소거하고 결과에만 주목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지망생은 한 번도 주목받는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영화 산업만이 아니다. 직장인이 되려는 취업 준비생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을 뿐이다. 언제나 과정은 서둘러 탈출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시기로 그려지고, 그 과정을 겪는 사람들은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된다. 과정에 있는 건 즐거운 일이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게 참 힘들다.

감독 지망생들의 이야기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진하고 있는 모든 지망생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다. 이들은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지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차가운 형태의 의지로 갈고닦으면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계를 견디고 있었다. 열정이 겁 없이 활활 타오르는 붉은 불꽃같은 것이라면, 지망생들의 의지는 조용히 타고 있는 푸른 불꽃이다. 푸르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차가운 듯 보이지만, 뜨겁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 지망생이라고 소개했을 때, 목표를 이루지 못한 백수가 아니라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의 목적은 일부 달성된 셈이다. 성과 중심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나, 지망생을 하나의 온전한 대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나 또한 한 명의 지망생이기에, 이들의 이야기를 과도하게 포장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들에게 꽃가루를 뿌려 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항해를 위한 포구와 등대가 필요하다.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돕는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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