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10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천만 영화의 감독도 아니고, 이름 없는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할까. 누군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차라리 봉준호나 박찬욱 같은 유명 감독의 지망생 시절을 들려주었으면 할 것이다. 아직 돈도 명예도 거머쥐지 못한 이들이 과정에 과정을 거듭하는 모습은 어쩌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는 아니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은 ‘영화란 지루한 부분이 커트된 인생’이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삶은 대부분 지루하고 단조로운 나날의 연속이다. 삶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감독 지망생들은 통상 10년에 가까운 기간을 지망생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러한 과정을 각오하고 창의 노동의 장에 뛰어들었다. 결과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쉬운 선택이 아닌 만큼 이해받기도 힘들다. 지망생들은 너무나도 쉽게 백수로 폄하되거나, 꿈에 저당 잡힌 순진한 예술가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은 그들의 선택, 삶, 원동력 중 어느 하나도 설명하지 못한다.

저자는 그들의 생각과 삶을 ‘지망생 1인칭 시점’에서 들여다본다. 어떻게 예측 불가능한 길에 뛰어들 수 있는지, 어떻게 의지를 다잡는지 물어본다. 365일 그리고 24시간 이루어지는 노력과 분투를 듣는다. 이들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기도 하며, 시나리오 구상이 떠오를 때까지 몇 시간이고 ‘멍 때리기’도 한다. 아무런 소속도 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생업과 작업을 병행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미래를 계획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들을 질문해 보는 기회를 준다. 결과 뒤에 어떠한 과정이 있는지, 그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묻게 한다. 이 땅에는 수많은 영화감독 지망생이 있다. 그중 누군가는 제2의 봉준호, 제2의 박찬욱이 될 테고, 누군가는 무명 감독에 그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감독이 되는 길을 용기 내어 택했다는 사실, 지난한 과정을 치열하게 견뎌 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만 보는 세상에서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기 힘들다. 70만 명의 취업 준비생들은 구직난만큼이나 현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괴감 때문에 힘들어한다. 스포트라이트 뒤 그림자 속에 있는 것은 영화감독 지망생만이 아니다.

인내와 끈기로 채워지는 과정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지망생들의 열정과 의지를 존중하게 되었다면 우리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는 것이 어떨까. 꼭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한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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