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MBTI
4화

한국 사회와 심리검사

학교의 MBTI 검사


MBTI가 어떤 심리검사도구인지 알기도 전에 많은 이들이 온라인에서 엄청난 양의 MBTI와 관련한 정보를 접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MBTI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이유는 온라인에서 접할 수 있는 무료 간이 검사[1]의 확산과 그에 접근이 용이한 MZ세대의 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 MZ세대는 다양한 심리검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을까? 심리검사도구가 활발하게 사용되는 한국의 학교 및 사회와 관련이 깊다.

기본적으로 성인의 심리검사와 학생의 심리검사는 자발적인 참여 여부에서 차이가 있다. 성인의 경우 삶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MBTI를 포함한 심리검사를 접하게 된다. 대부분 심리 치료, 혹은 정신건강 전문의를 통한다. 상담 및 치료 과정에서의 심리검사는 내담자의 검사에 대한 자발성이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필요에 의해 심리검사에 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심리검사는 이와 다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삶을 상상해보자. 처음 만나는 다양한 학생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한다. 교사는 학생에게 학급에서 지켜야 할 다양한 규칙들을 가르친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면 교과 과정 학습 외에 사회성 발달을 위한 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서서히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공부하는 방법과 함께 사회성을 발달시키기 시작한다. 학생의 개인차, 발달 수준, 가정환경 등으로 인해 사회성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교사의 개입이 필요한 문제 상황도 발생한다.

한국 사회의 변화 속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빠른 편이다. 이에 따라 학교 문화도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교사들의 학생 지도 문화도 변화하고 있지만, 더불어 학생 지도에서의 어려움 또한 다양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부모 갈등, 학생의 학교 부적응, 학교 폭력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학생의 학습 결손이 장기적으로 일어나거나,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의 문제로 인해 교사가 학생을 이해하고 교육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2]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며 이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교사는 학생의 문제를 다각도에서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내·외적 자원을 동원한다. 이때 교사는 학생의 문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심리검사를 활용한다. 학생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포괄적인 청소년 문제가 점점 더 낮은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상황도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이유 중 하나다.[3] 학교에서 활용하는 대표적인 심리검사는 진로적성검사, 인성 및 성격검사, 학습검사, 창의성 검사, 지능검사 등이 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심리검사는 학생의 다양한 문제를 개인의 심리적 측면에서 원인을 찾고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지만, 심리검사를 활용하는 학교 현장 상황을 들여다보면 심리검사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간과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보인다.

심리검사에 대한 전문성 결여 ; 학급에서 심리검사를 사용하는 교사는 심리검사에 대한 사용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혹은 검사 이후 심리검사 전문가를 통해 검사와 해석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정 심리검사 결과에 나타난 특성에 대한 해석은 해당 심리검사 전반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에게서 안내를 받아야 한다. 전문가의 해석이 동반되지 않은 심리검사결과 프로파일을 교사나 학생이 한 번 읽고 넘어가는 수준에서 파악해 버리면 중요한 결과 데이터들을 읽어내지 못할 수 있다. 나아가 주의가 필요하거나 위험 수준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결과도 방치하게 되는 위험한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심리검사 결과에 대한 비밀 보장 ; 심리검사 결과는 비밀 보장이 필수적이다. 피검자의 검사 결과는 피검자의 동의 없이 공개되어서도 안 되고, 피검자가 동의하더라도 교사나 전문가는 검사 결과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 심리검사 결과를 받아들이는 피검자의 이해 수준과 내적 성숙도는 같지 않다. MBTI를 예로 든다면, 자신의 성격유형과 다른 유형을 가진 사람을 섣불리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유별나거나 이상한 사람이라는 식의 극단적 이해나 반응을 할 가능성이 있다. 학급 전체 학생들과 MBTI 검사와 함께 유형 이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각 유형에 대한 전문가의 해석이 동반된다면 유형에 대한 오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나 이러한 과정 없이 개별적으로 실시한 심리검사 결과를 학급이나 집단에 공개할 경우, 다층적인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

낙인효과 ; 한 개인은 초・중・고등학생 12년 동안 내·외적으로 큰 변화를 거친다. 심리검사는 개인을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내적 변화를 거치는 과정 중 일부를 살필 수 있는 참고 자료일 뿐이다. 따라서 한 개인의 변화와 발달 가능성을 심리검사 결과로 제한하거나 고정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심리검사 결과를 통한 낙인은 타인에 대한 편의적 평가가 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심리검사 실시와 해석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전문가의 전문적인 해석이 동반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심리검사 실시와 결과 프로파일만 제공할 가능성 또한 크다. 심리검사를 실시한 학생은 그 프로파일을 보호자에게 전달한다. 무엇을 알아보는 검사인지도 알지 못하는 보호자는 자신의 이해수준에서 결과 프로파일의 내용을 숙지하기 시작한다. 전문가의 해석이 동반되지 않은 자녀의 심리검사결과 프로파일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할 확률이 크다. 전문가의 해석이 동반되지 않으면 검사 결과의 특정 문구나 내용으로 한 개인을 편의적으로 낙인찍을 수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예전에 한국 MBTI 연구소는 아동, 청소년용 MBTI인 MMTIC(Murphy Meisgeier Type Indicator for Children)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미국의 원저작권자와 논의를 거쳤다. 1993년 한국에서 표준화가 완료된 MMTIC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 큰 문제없이 학교에서 활용되고 있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교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MMTIC의 업그레이드에 대한 요청이 늘었다. 이유는 피검사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검사 문항 어휘의 현대화였다. 한국MBTI연구소는 요청에 따라 미국의 원저작권자와 소통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업그레이드를 추천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아동기에는 MMTIC를 포함한 심리검사를 많이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아동기는 성장기이기 때문에 심리검사결과가 부정확하며 심리적, 신체적으로 성장, 발달하고 있는 한 개인을 고정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군가는 다양한 심리검사를 통해 한 개인을 더 세분화해서 분석하려 하는 선택을 하고, 누군가는 다양한 심리검사가 한 개인의 성장과 발달을 수용하거나 담아내지 못하기에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문제는 심리검사가 하나의 상품이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심리검사가 상품이 되면서 판매하는 누군가는 마케팅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학교는 심리검사를 실시해야 하는 정확한 동인이나 학생의 선택 과정 없이 판매의 관점에서 심리검사를 실시하게 된다. 옆 학교에서 했는데 반응이 좋았으니 우리 학교도 뒤쳐질 수 없다는 정도의 생각이다. 그러나 심리검사가 적절한 과정으로 운용되지 않는다면 부작용은 더 커질 수 있다. 무분별하게 검사를 실시하기보다는 이 검사가 왜 필요한지, 어떤 과정을 통해 학생에게 닿아야하는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MBTI는 결핍을 말하지 않는다


MBTI는 특질이론이 아닌 유형이론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특질이론을 바탕으로 개발된 외향성 측정 심리도구를 통해 외향성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외향적 성향을 더 많이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향성 척도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성격 특질 중 외향이라고 규정된 성향이 결핍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유형이론을 바탕으로 개발된 MBTI는 해당 성향의 절대적 양이 아닌 선호의 뚜렷한 정도를 범주화(약간, 보통, 분명, 매우 분명)한다. 다시 말해, 유형이론을 기반으로 한 검사에서 외향성-내향성을 측정하는 문항은 개인이 외향성 특성을 얼마나 많이 지니고 있는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유형이론을 기반으로 한 MBTI에서 외향성이 높은 이는 그를 내향성보다 더 선호할 뿐이다.

특질론을 바탕으로 개발된 심리검사는 측정(measuring)을 통해 얻은 수치화된 결과를 바탕으로 피검자의 향후 심리적 특성이나 행동 등을 예측하거나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질론을 기반으로 개발된 우울정도검사가 있다면, 해당 검사의 결과는 피검자의 우울 정도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로 인해 향후의 어떠한 병리적 상태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추정한다. 이와 달리, 유형론 기반의 MBTI는 피검자의 향후의 행동을 예측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MBTI 결과를 가지고 ‘외향형이기 때문에 그렇다’와 같은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MBTI 검사 결과로 4가지 선호지표의 선호 분명도 지수, 또는 원점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MBTI의 지수와 점수는 특질의 양이나 등급을 측정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2가지 상반된 선호 중 한 쪽 방향에 반응하는 응답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하나의 대극을 선호하는 것은 정서적 건강이나 인지적 기능, 심리적 적응 등의 관계에서 모두 가치중립적이다. MBTI에서 피검자의 문항 반응을 통해 선택된 한 쪽의 선호지표는 응답자에게 있어 다른 한 쪽보다 자연스럽게 선호하는 방향이다. 이 선호는 저울과 비슷하다. 외향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해서 내향적 특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삶의 전반에 있어 외향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대극(외향성E-내향성I, 감각형S-직관형N, 사고형T-감정형F, 판단형J-인식형P)에 있는 선호는 반대 대극 선호와는 개념이 구분되어 있다. 예를 들어, MBTI의 사고형(Thinking)은 ‘논리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사고형의 대극 선호지표는 감정형(Feeling)이다. 감정형이라는 대극 선호에는 정서적, 감성적, 허용적이라는 고유한 가치가 있다. 사고형이 논리적이라고 하여 감정형이 비논리적이지는 않다. 때로는 자신의 선호를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반대 지표를 부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외향형은 시끄럽다든지, 내향형은 소심하다든지 등이다. 한 개인의 선호는 결코 정답이 아니다.

내향은 외향의 부족으로 설명되지 않고, 외향 역시 내향의 결핍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외향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내향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신중하게 내면에서 숙고하는 것을 선호한다. 마찬가지로 사고형이 논리적이라면, 감정은 정서적이다. 그 어떤 선호도 부정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쪽의 선호에 가치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심리검사인가


성격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파악하는 심리검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될까? 성격을 표현하는 문항을 개발하고, 많은 검사를 거쳐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기본 과정이다. 이에 더해 알아보고자 하는 성격이 어떤 배경 이론에서 검증됐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해당 배경 이론에 의해 정의된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항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문항들에는 개발자가 파악하고자 하는 심리적 특성과 그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전제돼 있다.

MBTI의 이론적 배경인 융의 심리유형론을 포함해 다양한 심리검사도구의 배경 이론은 주로 심리학자의 문헌에서 출발한다. 이 문헌에서 하나의 가설이 만들어지고, 그 가설은 검증 과정을 거쳐 이론이 된다. 문헌의 내용은 다양한 인간의 행동을 반복적으로 관찰하고 측정해 구성된다. 장시간에 걸친 관찰과 면담, 인터뷰를 통해 연구자는 특정 행동을 드러내는 집단의 특징을 분석한다. 심리검사 문항은 이에 기반을 두어 구성되기 때문에 인간의 보편적 행동과 패턴을 밝혀낼 수 있다.

이 심리검사의 개발 과정에는 측정하고자 하는 특징이 보편적인지, 독특한 것인지, 병리적인 것인지가 전제돼 있다. 이 전제는 적절한 샘플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심리검사도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불특정 다수가 아닌 우울증을 앓는 이들의 특징이 필요하다. 이 검사 도구의 전제와 특징은 결과 해석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피검자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특징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등을 분석하여 병리적 특징을 구분해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심리검사에는 측정하고자 하는 특징과 대상자가 있다. 따라서 MBTI는 병리를 예측하거나 삶의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1]
대표적으로 16personalities.com이라는 무료 간이 검사 사이트가 존재한다. 이 무료 간이 검사에서는 정식 MBTI 검사 문항을 단 한 문항도 사용하지 않는다. 문항선택 방법도 리커트(Likert) 척도(‘매우 그렇지 않다’부터 ‘매우 그렇다’까지 1~5점, 혹은 1~7점으로 구성)를 사용하고 있는데, MBTI의 문항 선택 방식은 강제선택형으로 두 문장이나 두 단어 중 더 좋아하고, 편안한 문장 내용이나 단어를 체크하는 형태다. 무료 간이 검사 사이트에서는 심리검사라면 꼭 확보하고 있어야하는 심리측정결과(신뢰도 및 타당도)에 대해서 보고하고 있지 않다. 일반인들이 본 무료 검사를 MBTI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결과 코드가 동일하기 때문인데, 실제 코드를 비교해보면 이니셜만 동일할 뿐 용어와 내용은 큰 차이가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MBTI의 두 번째 코드 중 하나인 S는 Sensing의 첫 알파벳인데, 무료 간이 검사의 두 번째 코드인 S는 observant라는 단어의 중간에 있는 S를 가져왔다. MBTI의 마지막 코드 중 하나인 P(MBTI-Perceiving, 무료 간이 검사-Prospecting)도 마찬가지다. 선호지표 코드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무료 간이 검사가 무엇을 측정하는 검사인지에 대한 안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뿐 아니라 검사 후 전문가의 해석도 수반되지 않는다.
[2]
김종범, 〈청소년의 학교생활부적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 《임상사회사업연구》, 6(2), 2009.
[3]
구영하·여태철, 〈초등학교 교사의 심리검사 이해도와 활용도〉, 《초등상담연구》, 1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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