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화 이후의 도시

이상을 꿈꾼 도시 평양

 

평양 마스터플랜


평양은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이상적인 도시라고 평가받았던 곳이다. 루마니아의 대통령이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가 1971년 평양을 방문하고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라고 칭송한 일화가 있다. 차우셰스쿠 대통령은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Bukarest)를 평양처럼 사회주의 이념이 반영된 도시로 바꾸기 위해 대대적인 개조 작업을 진행했다. 두 지역 모두 현재는 독재자를 칭송하는 공간으로 많이 변질됐지만, 1970년대까지는 양국 모두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 힘썼다.

평양이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로 거듭나는 데에는 1950년의 한국 전쟁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미군의 공중 폭격을 받은 평양은 서울에 비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도시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북한은 평양을 사회주의 도시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에서는 폐허가 된 평양을 버리고 새로운 도시에 북한의 수도를 세울 것을 권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이 제안을 마다했다. 그에게는 제국주의의 산물인 일제 강점기의 근대 유산이나 중세 왕권 시대인 조선 시대의 유산을 잃은 것이 커다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폐허가 된 평양을 성공적인 사회주의 도시로 재건하면 혁명전쟁의 의미를 더 널리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일성은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이던 건축가 김정희에게 평양 재건 계획을 지시한다. 김정희는 1935년 모스크바 마스터플랜을 기초 삼아 평양 재건도를 만들었다. 모스크바 마스터플랜은 도시에 사회주의 이념을 구현하겠다는 생각으로 스탈린이 강하게 밀어붙인 종합 재건 계획이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도 기존의 도시 조직이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도시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러시아 대통령궁 크렘린(Kremlin)으로 통하는 고리키(Gorki) 거리[현 트베르스카야(Tverskaya) 거리]를 넓히고, 건물의 입면을 정리하는 등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많은 작업을 진행했지만 도시가 완전히 새롭게 조직화되지는 못했다.

평양은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김정희의 평양 종합 재건도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평양 마스터플랜에서는 전원도시 개념을 엿볼 수 있다. 김정희는 전원도시 이론과 같이 도시를 다양한 영역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녹지 공간을 두고자 했다. 도시의 중심은 김일성 광장에서부터 주체탑이 있는 맞은편까지로 설정했고, 대동강과 모란봉 등 평양의 자연 환경은 녹지 공간 영역으로 계획했다. 평양은 6~7개의 영역으로 다핵화됐다. 각 영역에는 도시에 필요한 상업 시설과 주거 시설이 있고, 중심 광장이 있어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인 상징성을 부각했다.
인민대학습당에서 본 김일성 광장과 주체탑
그의 계획은 평양이 300만 인구가 사는 대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마스터플랜은 물론, 평양의 초기 재건 과정에는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평양에서 읽을 수 있는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은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도시의 중심부, 충분한 녹지 공간, 그리고 도시 공간의 균등화를 위한 마이크로 디스트릭트(microdistrict) 계획이다.

김일성 광장은 아마도 미디어를 통해 가장 많이 소개된 평양의 도시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마당이나, 지도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장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독재의 산물이나 군사적 위협의 공간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광장은 사회주의 도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광장이 도시 공간의 일부로 존재했던 유럽 문화에서는 광장을 설치하는 것이 그다지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다. 하지만 광장의 역사가 전무했던 한반도에서 도시 중심에 대규모 광장을 건설하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사회주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평양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광장은 도시의 얼굴이자 혁명의 승리를 표현하는 무대이고, 각각의 위성 지역을 아우르는 중심 공간으로 기능해야 했다. 광장 주변의 시설에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북한은 평양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김일성 광장에 인민대학습당과 조선미술박물관, 조선중앙역사박물관 등의 문화 시설을 만들었다. 사회주의 도시에서 광장은 인민에게 돌려줘야 할 중요한 자산이었다.

북한의 주요 도시는 상징 광장 인근에 공공 문화 시설을 함께 둔다. 도시의 공공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에 상업 공간이 아니라 광장이나 도서관처럼 공공장소를 만든다. 이는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다. 한국 사회는 도시를 개인이 소유한 필지들의 결합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도시를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자본의 플랫폼으로 여긴다. 인민대학습당이 김일성 광장에 있는 것은 롯데백화점 본점이 있는 서울 소공동에 학교가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인민대학습당은 약 3000만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소장 자료와 장비가 낙후되어 효율적으로 기능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건축이나 위치 면에서의 위상은 크다.

북한이 평양이라는 도시를 다핵화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은 도시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었다. 도시를 균등한 여러 지역으로 구분하면 지역 간의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도시인 평양은 정치적으로 특별한 위상을 갖는 구역을 설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선전과 선동을 위한 광장이나 건축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일성 광장이 있는 중심 지역을 선전과 선동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설정한 이유다.

이 중심 지역은 자본주의 도시의 도심 개념과 다르다. 자본주의 도시에서는 중심 업무 지구가 도심이 되는데, 이 지역은 도시에서 가장 토지 가치가 높고 자본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곳에는 토지에 대한 투자 이상으로 수익을 낼 공간이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업무 시설이나 상업 시설이 도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본 경쟁에서 취약한 행정이나 문화, 교육 시설은 지역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전원도시 개념을 차용한 평양의 마스터플랜은 녹지 공간을 통해 도시의 확장을 억제하고자 했다. 녹지는 상징 공간만큼이나 도시 공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평양은 대동강, 모란봉 등의 자연 환경을 활용하는 한편 새로운 녹지 공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평양의 인구가 예상과 달리 300만 명 규모로 늘어나면서 계획의 일부가 달라졌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평양은 녹지가 많다는 점에서는 서울에 비해 더 나은 도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 정권은 공원이 노동자에게는 휴식처가, 학생에게는 교육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과는 도시 내 녹지 공간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1980년대 평양이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는 녹지를 도시의 경쟁력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당시 평양은 국제 사회에 ‘평양, 공원 속의 도시’라는 문구를 홍보했다. 비슷한 시기에 올림픽을 유치했던 서울이 내세운 이미지는 현대화된 건축물과 도시였다.
 
모란봉 공원에서 춤을 추고 있는 평양 시민들
평양은 농지를 활용해 도시화를 예방하고 도시와 농촌 간의 간극을 줄였다. 도시와 농촌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행정 구역 안에 배치함으로써 도농 간의 구분을 없앴다. 실제로 평양의 행정 구역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도심 밖의 넓은 지역을 포괄한다. 평양의 규모는 서울의 세 배가 넘는다. 일각에서는 평양이 서울과의 규모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행정 구역을 넓게 설정한 것이라고 하지만, 평양의 행정 구역이 넓은 이유는 농촌 영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도시에 충분한 농지를 배치해 각 지역이 자생할 수 있는 도시 기반으로 삼았다. 평양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평양에서 소비하고, 함흥에서 생산한 것은 함흥에서 소비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도시 외곽의 농경지는 도시가 커지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도농 관계를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가 수도 서울이다. 서울의 강남이나 경기도 일산, 분당, 하남 등의 도시는 모두 농지를 개발해 만든 지역이다. 이에 반해 평양에서 농촌 또는 농지는 도시화 과정에서도 꼭 유지해야 하는 영역으로, 도시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 지대다. 지금도 평양에는 도시와 농촌 간의 명확한 구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개발이 많이 진행되어 도심이 넓어지고 있으나 농지를 침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많은 선진 도시에서 도시와 농촌 또는 도시와 농촌의 생산물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는 점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만 파는 가게들이 생겨나고,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지역에서 난 재료를 가지고 요리한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자 하는 이들, 유전자 조작 식품이나 방부제가 들어간 가공 식재료를 꺼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추세를 타고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생산의 도시를 그리다


평양은 도시에 농촌 영역을 편입시키고, 공업 생산 기지를 구축해 생산 도시로서의 모습을 지켰다. 일제 강점기에 병참 기지 역할을 했던 평양에는 한국 전쟁 이전부터 여러 공장이 있었다. 평양은 재건 과정에서 공장 기반 시설을 활용해 많은 제조 공장을 설립했다. 평양 공업 지구는 북한에서 가장 큰 공업 단지다. 평양과 위성 도시인 남포, 대안, 송림, 사리원 일대에 조성된 단지로, 대동강 유역을 따라 북한의 주요 경공업 및 중공업 시설이 분포한다. 생필품 등 필수적인 소비재를 각 도시에서 자급하는 구조를 갖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무엇보다 평양이 생산 기지로 기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라는 생활 단위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도시의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도, 커뮤니티로 기능하는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다. 사회주의 도시들이 사회의 근간이 되는 단위를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인 코뮌(commune)으로 생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나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에는 주거부터 교육, 탁아, 공공, 상업 시설 등이 포함된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안에 사는 가족은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초등학교에 보내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휴식을 취하는 일을 모두 한 구역에서 해결할 수 있다. 사회주의 도시에서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란 자생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개념이었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가 도시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면 모든 주민이 각자의 주거 단위 내에서 충분한 녹지와 편의 시설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960년대 북한은 소련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개념을 차용해 북한만의 주택 소구역 계획 이론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주택 소구역의 규모를 설정하고, 하나의 블록 안에서 주거 영역과 부대시설을 배치하는 방법 등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지역이나 지형 특성에 따라 아파트가 병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좋은지, 자유롭게 들어서는 것이 좋은지까지 제시하고 있다. 개별 단위의 소구역 안에 학교와 탁아소, 주민 생활에 필요한 상점과 공공시설을 설립해야 하고, 주민들의 공동 생산이 가능하도록 가내 수공업 형식의 생산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규칙은 평양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를 계획하는 과정에서도 활용되는, 북한의 주택 공급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주택 소구역은 크게 세 개의 단위로 구성된다.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는 초급 봉사 단위다. 반경 100~150미터 범위에 주민 2000~3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단위로, 여기에 포함되는 공공시설은 밥공장[1], 어린이 놀이터, 공동 녹지 등이다. 그다음으로 큰 단위는 소규모 봉사 단위로 반경 400~500미터에 주민 6000~9000명을 포괄한다. 이 단위에는 도서관, 두부 공장, 체육관, 연료 공급소, 동사무소 등 초급 봉사 단위의 공공시설보다 큰 규모의 공간들이 들어선다. 가장 큰 단위는 구역 봉사 단위로 2000~2400개 가구에 1만 명~1만 5000명 정도의 주민이 대상이다. 경공업 시설이나 작업장을 배치해 주민들이 주거 지역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2]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주거 지역과 공장의 인접성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생산 시설을 포함하고 있었다. 김일성 광장에서 바라봤을 때 대동강 맞은편에 있는 동평양 지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체탑에서 본 동평양 지역의 모습
이 지역은 1930년대 일본이 처음 개발했지만, 본격적인 개발 단계를 밟은 것은 한국 전쟁 이후다. 1960년대 동유럽 국가의 지원을 받은 북한은 이 지역에서 사회주의 도시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 지역의 주택 소구역 계획은 메가 블록이라고 불리는 가로세로 250미터의 격자 시스템을 채택했고, 블록의 가장자리에는 주거 시설을 두고 내부에는 기타 공용 시설과 작업장을 배치했다. 이런 특징은 자본주의 도시에서 보이는 복합 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공공성이 더 강한 작업장이나 공용 시설은 서비스와 외부인의 접근성을 고려해 외곽에 두고, 사적인 영역인 주거 공간은 블록의 안쪽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도시에서 소구역 내의 작업장과 공용 시설은 구역 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이기에 외부인의 접근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주택 소구역 계획은 1980년대 후반 3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 통일 거리와 광복 거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1960년대의 아파트와는 사뭇 다른 형태지만 구역 개념이 적용된 것은 비슷하다. 1960년대 동평양 지역의 아파트는 격자형 블록에 약 10층 내외 규모로 들어섰다. 아파트 자체가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고, 블록 안에는 주민들을 위한 편의 시설과 생산 시설이 위치하는 형태였다. 지금 이들 거리에 있는 아파트는 단지 간의 거리가 모호하고 조형성을 강조하는 고층 형태로 변했지만, 부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평양은 여전히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개념을 적용해 각 단지에 학교와 편의 시설을 함께 배치한다. 거주자가 직장 생활, 자녀 교육, 탁아, 공원에서의 휴식, 생필품 구매 등을 모두 단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주택 소구역 모델이 적용된 평양 문수 거리. 탁아소, 유치원, 학교 등과 함께 제조 공장과 작업장이 주거 단지 안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공공을 위한 도시


우리가 흔히 아는 평양은 서울보다 낙후된 도시인 데다, 정치적 의사 표현이나 상거래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이다. 탈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어 많은 도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서울에서 다른 도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면, 비슷한 과정을 거친 뉴욕, 도쿄, 런던 등의 대도시나 도시 환경을 잘 정비한 싱가포르 같은 곳을 살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도시와 평양을 말하는 이유는 도시 생산 주거라는 삶의 양식에 있다.

한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은 소비자이면서 생산자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사는 공동체는 경제적 성공과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저녁상을 차릴 때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이 만든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는 상상을 해보자.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보다 더 건강하고 맛도 좋을 수 있다. 자생적인 모델을 꿈꿨던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생산된 농업 생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일본의 경제학자 미무라 미쓰히로(三村光弘는) 북한이 오랜 시간 경제 제재를 당했음에도 주민들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로 지역 순환 경제를 지목했다. 외부 요소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다면, 자생 도시의 조건을 갖출 수 있다. 이런 모델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도시 생산 주거의 한 모델인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다.

산업화 시대에는 농산물이건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이건 대량 생산 기지를 갖추고, 물류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의 손까지 이동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효율에 바탕을 둔 도시 구조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많은 도시가 지역 생산, 지역 소비를 강조하고, 지역의 순환 경제 시스템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 시스템의 원형이 사회주의 도시 모델이다. 100년 전에 나온 사회주의 도시 모델은 많은 건축가의 꿈이었다. 도시의 공공성이 살아 있는 도시, 주민의 환경을 질적으로 개선한 도시 모델이었다. 사회주의 도시에는 자본의 논리도, 도시 공간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나 도시 공간의 이점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누리는 특권층도 없었다. 도시에 사는 누구나 공공재로서 그 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오류도 있었다. 자본의 논리를 무시하다 보니 인간의 개성과 욕망까지 억눌렀고, 비효율적인 도시 운영 방식으로 경쟁력을 잃었다.

이제는 많은 자본주의 도시에서 사회주의 도시 개념을 받아들이려 한다. 도시의 공공성은 점점 더 주목받고 있고, 도시와 도시를 경쟁 관계로 보는 관점도 달라지고 있다. 어떤 도시가 다른 도시에 비해 얼마나 잘사느냐보다 한 도시가 자생적인 경제 단위로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현대의 도시 계획 전문가들은 어떻게 하면 도시 경제가 원활하게 순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도시 안에서 농업이 발달하는 현상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탈산업화는 연결되어 있다. 도시 안에서 농업이나 지역 생산이 발달하는 배경에는 농업 기술의 진보뿐 아니라, 효율성을 추구하는 대량 생산 제품보다 개인의 취향을 고려하는 소량 생산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주의 도시 모델을 우리 사정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산업의 논리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도시 생산 주거는 사회주의 도시 모델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보다 진보한 개념이다. 한 도시 안에 생산 영역과 소비 영역, 주거 영역이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도시 생산 주거의 근간에는 산업 구조의 변화, 소량 생산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대응하는 시장 논리가 깔려 있다.

1990년대 개방화 수순을 거쳐 자본주의 도시가 된 사회주의 도시의 사례를 보면, 도시에서 공공성이 사라지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굉장히 컸다. 가장 먼저 사회주의 도시의 핵심이었던 공공 공간이나 녹지 공간이 자본에 침식당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활용하는 상징적 공간인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점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광장 근처에서 기본적인 경제 활동을 시작했다. 상업화가 진행되면 더 많은 가게들이 입점하고, 주변으로 쇼핑몰이나 영화관 등 대규모 상업 시설이 들어서며 공공성을 잠식하게 된다. 쇼핑몰을 공공 공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쇼핑몰은 소비를 해야만 그 효용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결국 모두가 편히 이용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소비자를 위한 공간만이 남는다.

녹지 공간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Sofia)에서는 시장 개방 이후 녹지 공간의 30퍼센트가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남아 있는 녹지에서도 개발이 진행 중이다. 시장 경제를 받아들인 사회주의 도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도시가 제반 시설을 구축하고, 정비 사업이나 주택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국민의 세금을 통해 부족한 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면 국가 소유의 공공 공간을 사유화하는 수밖에 없다. 여러 도시에서 공원의 개발권을 민간에게 넘겨주고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평양도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는 미래 과학자 거리나 려명 거리는 북한이 현대식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근래에 건설한 아파트 단지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북한 내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통했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계획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부동산 가치라는 개념이 북한 주택 시장에 들어온 후 도시의 최우선 목표는 좋은 위치에 많은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됐다. 부동산 가치로는 별 볼 일 없는 학교나 생산 시설이 뒷전으로 밀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2015년 완공한 평양의 미래 과학자 거리는 대동강변에 개발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다. ©Calvin Chua
이전까지 평양 주민들은 국가에서 공급하는 주택에서 적당히 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경제 활동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계층이 생기면서 주택에도 선호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제 평양 주민들은 적당히 사는 주택보다는 좋은 전망과 인테리어를 갖춘 화려한 주택에서 살고 싶어 한다. 평양에서도 자본주의 도시처럼 도시의 수변 공간인 워터프론트(waterfront) 개발과 아파트의 고층화, 고급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평양 외곽 지역에 부촌이 형성될 가능성도 높다. 사회주의 도시 공간과 자본의 충돌로 빚어지는 이런 현상은 많은 사회주의 도시가 거친 과정이다.

한국의 도시들과 서울이 배워야 하는 점은 평양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평양이 초기에 구상한 사회주의 도시의 모델이다. 시민들이 언제든 모여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심 속의 광장, 도시가 무질서하게 팽창하지 않도록 막는 충분한 녹지, 어떤 지역에 살더라도 적정 수준 이상의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균형을 갖춘 공간을 살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공간이 도시 내 생산 시설이다. 생산력의 회복은 도시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도시 내의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서울 시내에는 많은 광장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장이라는 개념은 한국의 사정에 맞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울시청 광장이나 광화문 광장, 청계 광장 등이 들어서는 이유는 도시의 공공성에 대한 공감대가 높아져서다. 미국보다 더 평등한 제도라고 불리는 한국의 의료 보험도 사회주의 요소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 도시가 사회주의 모델을 거부했다면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본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상대의 관점과 방향을 받아들일 수 있다. 서울과 평양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소비 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시민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갖춘 도시, 충분한 녹지가 있어 무분별한 팽창을 제어할 수 있는 도시, 균형 있는 발전 정책으로 양질의 삶의 수준을 보장하는 도시는 사회주의 도시 평양이 지향한 모습이자, 서울이 지향해야 할 미래 도시의 조건이다.
[1]
밥공장은 북한에서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주민들에게 밥을 공급하는 곳이다. 대량으로 밥을 지어 주민들이 필요한 시간에 받아 갈 수 있게 한다. 주로 도시의 주택 밀집 지역에 구역 단위로 1~2곳이 설치되어 있으며, 평양에는 한꺼번에 1000인분의 밥을 지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밥공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네이버 지식백과》
[2]
리순건, 《주택 소구역 계획》, 국립건설출판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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