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핀테크
1화

프롤로그; 중국 금융의 퀀텀 점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기존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기대하는 소비자 니즈(needs)가 커지면서 핀테크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2010년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핀테크 산업 투자는 금융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이 주도해 오다가 최근 급성장한 중국이 가세해 3국 경쟁 체제로 재편됐다. 2016년 핀테크 산업 투자액은 5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해 130억 달러를 상회했다.[1] 2017년 세계 핀테크 시장 규모는 800조 원으로 추정된다.[2]

미국은 기술 혁신을 통해 세계 최대의 핀테크 허브(hub)로 부상했다. 전 세계 핀테크 스타트업 투자금의 절반 이상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미국은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분석, 인공 지능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핀테크 기술 개발의 선두에 서 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창업 인프라를 갖춘 실리콘밸리는 혁신적 기술 스타트업의 성지로 꼽힌다. 소상공인을 위한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 스타트업 스퀘어(Square), 전자상거래에 적합한 모바일 결제 스타트업 스트라이프(Stripe) 등 세계적인 O2O(Online to Offline) 지급 결제 플랫폼이 여기서 탄생했다. 지급 결제 외에도 P2P(Peer to Peer) 대출, 투자 및 자산 관리, 금융 정보 분석, 금융 보안 등 핀테크 전 분야의 선도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영국은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런던에 ‘핀테크 클러스터 레벨 39(Fintech Cluster Level 39)’를 조성하고, 런던 동쪽의 테크시티를 스타트업 중심지로 육성했다. 영국의 금융 인프라와 ICT 환경을 기반으로, 바클레이즈(Barclays), 로이드뱅크(Lloyds Bank) 등 공신력 있는 글로벌 금융 기관과 정부가 협력해 핀테크 산업을 발전시켰다. 글로벌 금융 센터로서 런던이 지닌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한편 중국은 정부 주도로 온라인 소비 정책을 펼쳐 모바일 금융 시장을 급성장시켰다. 정부 차원에서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 등 ICT 기업을 지원하면서 이들의 핀테크 기술을 활용해 금융 서비스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금융 혁신은 낮은 신용 카드 보급률과 그림자 금융 대출 시장 등 낙후된 금융 서비스 전반을 한 번에 해결하는 효과를 낳았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EY(Ernst&Young)의 ‘핀테크 도입 지수 2017’에 따르면 모바일 결제 시장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핀테크 도입률은 69퍼센트로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2016년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58조 8000억 위안(9957조 원)[3]으로 미국(126조 원)[4]의 80배에 달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모바일 결제 업체 알리페이(Alipay)의 일평균 거래 건수는 1억 5300만 건으로 페이팔(Paypal)의 10배 수준이다.[5] 총 가입자 수도 중국의 막대한 인구 덕분에 8억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페이팔의 4배를 넘는다.[6] 알리페이의 모기업인 앤트파이낸셜(蚂蚁金服)은 2016년 글로벌 컨설팅서비스 업체 KPMG와 호주 핀테크 벤처투자기관 H2벤처스에서 발표한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P2P 대출 시장에서도 중국의 약진이 눈에 띈다. 중국 P2P 대출 거래 규모가 2013년 156억 달러에서 2016년 3044억 달러로 3년 만에 18배 넘게 성장했고[7], P2P 플랫폼 기업도 같은 기간 800개에서 2448개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민간 금융인 핀테크가 기존 금융권이 독점하던 대출 시장의 대안을 넘어 주류로 등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핀테크가 단기간에 중국 금융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중국은 낙후된 금융 인프라로 인해 신용 사회로의 전환이 더뎠다. 중국 금융권은 신용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려웠다. 신용 카드가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금보다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모바일 결제가 금융 소비자들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다. 모바일 결제는 핀테크 발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중국의 무현금 사회를 앞당긴 모바일 결제는 신용 사회 구축의 토대가 되었다. 대부분의 금융 거래가 모바일로 이뤄졌고 누적된 결제 정보는 신용 점수에 활용됐다. 신용 정보를 빠르게 수집한 중국의 핀테크 산업은 P2P 대출, 무담보 신용 대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모바일 재테크 상품까지 기존 금융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 나갔다. 신용 관리라는 개념마저 희박했던 중국인들은 순식간에 핀테크 기반 신용 사회로 빨려 들어갔다. 중국인에게 핀테크는 이미 보편적인 금융 거래 수단이다. 가히 ‘퀀텀 점프’라고 할 만한 변화다.

핀테크를 육성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의지도 핀테크 산업 급성장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금융업 진입 규제들을 제거함으로써 산업 자본인 핀테크 기업들이 자유롭게 판을 짤 수 있었다. 2010년 제정된 ‘비금융 기관 지급 서비스 관리 방법 실시 세칙’은 금융업에 한하여 허용했던 지급 결제 업무를 비금융 기관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펀드 운용과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 등 금융 업무 전반을 비금융 기관에 허가해 새로운 플레이어의 시장 진입을 지속적으로 유도했다.

중국의 규제 완화는 핀테크 원년으로 알려진 2013년부터 폭발적인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P2P 대출이 급증했고, 고도화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으로 시장이 더욱 확대됐다. 온라인 전용 보험 회사와 증권 회사가 최초로 설립됐고, 알리바바의 위어바오(余额宝), 텐센트의 리차이퉁(理財通), 바이두(Baidu)의 바이주안(百赚) 등 온라인 전용 펀드 직접 판매 채널이 개설됐다. 여기에 텐센트의 위뱅크(Webank)와 알리바바의 마이뱅크(Mybank) 같은 인터넷 전문 은행까지 설립되면서 핀테크는 온라인 금융 거래의 연결 통로를 넘어 창구 없는 금융 서비스 자체를 의미하는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온라인 전용 서비스 출시로 기존 금융 기관의 거의 모든 업무를 온라인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은 핀테크를 육성해 낙후된 금융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했다. 나아가 국유 은행이 관치금융의 보호막 아래 대형 기업 담보 대출에만 매달리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대대적인 금융 개혁을 실시했다.

중국 당국의 개혁 의지가 금융 공급자를 핀테크 금융 혁신의 길로 밀어 넣었다면, 금융 소외 계층을 포용하는 신기술은 중국 국민을 끌어당겼다. 중국의 핀테크 재테크 상품은 단돈 1위안만으로도 가입이 가능하다. P2P 대출 및 무담보 신용 대출은 은행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던 중소상공인이나 소외 계층의 자금줄이 되었다. 중국의 핀테크는 단순히 한 산업 분야가 부흥한 수준을 넘어섰다. 중국 사회 전체가 신용 사회로 퀀텀 점프한 강력한 배경이다.
[1]
〈The Pulse of Fintech〉, 《KPMG》, 2016.
[2]
〈모바일 전자결제 시장 기준〉, 《Gartner》, 2016.
[3]
〈2017年中国第三方移动支付行业研究报告〉, 《iresearch》, 2017. 
[4]
〈US Mobile Payments Will More Than Triple By 2021〉, 《Forrester Research》, 2017.
[5]
〈中国数字化消费何以领先世界?〉, 《中国经济信息网》, 2016. 12. 9.
[6]
최덕수, 〈한국이 알리페이 글로벌 결제 1위된 이유?〉, 《앱스토리 매거진》, 2016.
[7]
〈2017-2022年中国P2P网贷行业市场前瞻与投资战略规划分析报告〉, 《前瞻产业研究院》, 201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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