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에서 선택으로
1화

북한 체제 붕괴론의 붕괴

북한은 시스템 국가다


한국에서 촛불 혁명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나고, 미국에서 비주류 정치인인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주를 이뤘다.[1]

대화를 통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전망을 받치고 있는 담론은 북한 체제 붕괴론이었다. 예방 전쟁이나 선제공격을 통해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해야 한다는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전 대통령의 정책이 적극적인 북한 체제 붕괴론의 대표적인 사례였다.[2]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소극적인 북한 체제 붕괴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북한 체제는 궁극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게 설계되어 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 체제가 무너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핵 실험이나 미사일 도발을 할 때마다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붕괴를 앞당기고자 했다.

전략적 인내는 전임자의 정책을 관성적으로 반복(echoes)하는 정책이었다. 변화를 중요한 가치로 내걸고 집권한 오바마가 소극적인 반복 정책을 답습한 이유가 의문스럽다. 전임자의 정책을 파기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정책을 선택(choice)하지 않고서는 비관론이 지배하는 북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열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붕괴한 1989년 이래, 급변 사태나 임박한 붕괴(imminent collapse), 갑작스러운 붕괴(sudden collapse) 등의 수식어를 달고 북한의 사회주의 독재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북한의 독재 체제는 조기에 붕괴되지 않았고, 식량 위기와 대량 아사, 핵 위기에도 살아남았다. ‘중동의 봄’으로 대표되는 소셜 미디어 기반의 민주화 혁명에도 전염되지 않았다. 북한은 3대 세습을 순탄하게 이루어 내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는 신가산주의(新家産主義)[3] 사회주의 독재 체제(neo-patrimonial socialist dictatorship)로 남아 있다.

북한 가산주의 독재 체제가 예외적인 내구성과 생존 능력을 보여 주고 있음에도, 붕괴론자들은 여전히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에서 일어나는 표피적 변화를 체제 붕괴의 징후라고 말하면서 북한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4] 북한이 자체적으로 붕괴하지 않으면 금융적, 경제적, 군사적 제재, 위협, 도발을 통해서라도 붕괴시켜야 한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 세력에 의한 강제적 체제 변화는 오히려 내부적 결속을 강화하고, 북한 인민들이 김정은에게 충성하게 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북한의 독재 체제가 예외적인 내구성과 생존 능력을 보여 주고 있기에 1989년 국제적 냉전 체제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는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5] 그렇다면 북한 독재 체제가 예외적인 내구성과 생존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핵심적 기능 요소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 독재 체제의 장기 지속을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은 신가산주의 독재 체제의 제도화다. 독재 정권의 지속성은 ‘독재의 제도화’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6] 북한의 독재 체제는 권력이 공식적인 제도나 규범보다 개인적 관계나 전통적 권위를 기반으로 유지되는 전통적인 가산주의 체제만은 아니다. 김정일 정권 이래 북한의 독재 정치는 가산주의 지배와 제도적인 관료 지배가 혼합된 신가산주의 체제로, 전근대적인 가산주의 독재와 구분된다.

북한의 독재는 공산당이라는 제도화된 대중 정당이 나라를 지배하는 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근대적인 사회주의 독재 체제다. 가산주의 요소가 제도적으로 체제에 침투해 독재 체제의 지배 논리와 산출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합리성의 논리를 통제하지는 못한다. 김일성 위원장 이래 북한은 공산당이 통치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주의 독재 체제를 견지해 왔다. 공산당(노동당)을 비롯한 강력한 권위주의적 제도들이 독재자의 지배 연한을 늘리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독재의 지지 기반을 확장하고, 반란의 위협을 막는 역할을 한다. 관료들과 공산당은 최고 지배 엘리트, 중간 단계의 관료와 당 간부, 그리고 군 장교들에게 질서 있게 지대를 배분함으로써 북한 독재 체제를 지속시킨다.

북한의 독재 체제 제도화에 관한 논란의 핵심은 당과 군 중에서 어느 권력이 북한 독재 체제의 지주(pillar)인가 하는 문제다. 김일성은 1948년부터 1994년까지 47년간 장기 집권했다. 김일성 정권의 장기 지속을 설명하는 논리는 그가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의 침략으로부터 북한을 지켜 낸 해방자’이며, ‘두 달 만에 농지를 개혁한 개혁자’이고, ‘어버이와 같은 자애로운 수령’이라는 이미지를 조작, 세뇌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협력에 대한 대가로 지대와 전리품을 나눠 주며 팔로어십을 구축, 반대파의 반란을 억제하고 독재자의 대중적 기반을 넓혔다고 한다.

그러나 김일성 정권의 장기 지속은 김일성이 군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를 제도화하는 주체사상 전체주의 체제를 수립함으로써 가능했다. 김일성의 주체 전체주의는 단일 공식 이데올로기로서의 주체사상, 단일 대중 정당으로서의 조선노동당, 군에 대한 당과 국가의 완벽한 독점적 통제, 그리고 경제에 대한 국가의 독점적 소유와 통제로 완성됐다. 김일성의 전체주의 정당인 노동당은 군에 대한 제도적 통제를 확립함으로써 군부 내의 반란뿐만 아니라 민중의 항의와 폭력적인 저항을 억제했다.

김일성이 1994년에 급작스레 사망한 뒤 장남인 김정일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 수립 이래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권력을 승계했다. 핵 위기, 대량 아사와 경제 위기 속에서 가산제적 권력을 계승해야 했던 김정일은 권력 기반을 당에서 군으로 이전했다. 선군(先軍) 정치로 불리는 군 우위의 정치는 권력 기반의 이동을 의미할 뿐 아니라 김일성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체제에서 신가산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로의 변동을 의미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맡고 있었던 당과 국가의 주석을 공석으로 하고, 자신은 당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권력을 행사했다. 선군 정치로 김정일은 당과 국가의 공식 권력을 맡지 않으면서 권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다.

김정일의 가산주의적 체제의 성격은 유훈 통치에서 나타난다. 김정일은 위대한 아버지의 후광, 유산, 카리스마, 세습적 자산에 의지해서 아버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자신의 정통성을 유지하려 했다. 또 가산주의에 의거해 군을 김씨 왕국의 사병 또는 가병(家兵)으로 만들었고, 군에 특혜를 베풀어 김씨 왕조를 보호하게 했다. 공식적인 폭력인 군을 사유화함으로써 김정일은 군대를 자신의 호위대로 삼고, 군인을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기 위한 일꾼으로 이용했다. 김정일 시대의 군인들은 농민들을 도와 농사일을 했고, 국경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무역 일꾼으로 일했다.[7]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2011년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 진행됐다. 세습 과정은 상대적으로 순조로웠다. 김정은의 세습 성공은 아버지 김정일이 선군 정치로 키워 놓은 군을 어떻게 장악하고, 군의 군사 기술 사용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당분간 김정은은 군에 대한 당의 독점적 통제라는 김일성의 전체주의와 김정일의 선군 정치와 같은 신가산주의를 혼합해 통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은 김일성의 카리스마와 전체주의 통치를 닮으려 하는 쪽에 가깝다. 관료와 군, 보안 기구가 조선노동당의 지도하에 단결하고 김정은에게 충성하는 전체주의 체제를 만들고 싶어 한다.

김일성은 공산당을 핵심 지주로 하는 전체주의적 독재의 제도화에 성공해 47년 동안 집권할 수 있었다. 김정일도 수많은 고난, 아사와 기근, 핵 위기에도 불구하고 군을 우위에 두는 신가산주의적 독재 체제를 제도화함으로써 17년간 집권하고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한 뒤 사망했다. 3대 세습의 주인공인 김정은이 장기 집권하기 위해서는 군에서 당으로 권력 이동을 실시, 120만 명에 달하는 북한군을 효과적으로 통제, 장악해야 한다. 실제로도 김정은은 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당 우위 정책에 대해 군부 엘리트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군부가 금전적 보상, 수혜, 특전 등을 받으면서 계속 김씨 왕조의 충성스런 집정관적 호위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란을 일으켜 김정은을 제거하고 집단 지도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가산주의 체제는 김정은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안정적인 메커니즘이 아니다. 김정은의 장기 집권은 군과 군사 기술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유훈 통치를 따라 군에서 당으로 권력의 중심축을 이동시키기로 한 것은 본인의 생존을 위해서 적절한 선택이었다.

 

핵보유국이 된 북한


방어적 현실주의(defensive realism)는 한반도에서 60년이 넘는 정전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를 외적 균형(external balancing)에서 찾고 있다.[8] 과거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북한을 압도했으나 군사적으로는 열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은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통해 열세를 극복했다. 한미 동맹의 재래식 군사력은 북한을 압도했고 북한 정권의 군사 공격을 막아 주는 방패가 됐다. 그런데 냉전 체제 붕괴 이후 북한이 경제난을 겪으면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이 한미 동맹의 군사력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해지자, 북한의 지배자들은 효율적인 억지력으로서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북핵 문제는 1993년 북한이 국제 원자력 기구(IAEA)의 특별 사찰을 거부하고 핵 확산 금지 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1차 위기를 맞는다. 1차 북핵 위기는 북한이 핵 개발 중단을 약속하면서 타협점을 찾는 듯했다. 1994년에 체결된 제네바 기본 합의(Agreed Framework)에서 북한은 영변 플루토늄 시설을 봉인하고 IAEA 감시 체제를 복원하는 대가로 경수로 원전 2기 건설, 미국의 중유 공급이라는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클린턴 정권에 이어서 집권한 부시 정권의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한 후 이들이 고농축 우라늄 원자탄을 개발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2002년 10월 부시 전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규정하며 제네바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제네바 기본 합의 체제가 붕괴하자 김정일은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이에 놀란 부시 정권은 동북아에서 최초로 6자 회담이라는 다자주의의 틀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6자 회담은 2005년 가을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 협정을 병행한다는(in parallel with) 9.19 합의를 만들어 냈으나, 미국 재무부를 비롯한 강경파가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에 예치된 북한 자금을 동결하면서 합의가 이행되기도 전에 파국을 맞았다.

이런 조치에 반발한 김정일은 2006년 1차 핵 실험을 감행하고, 2009년에도 2차, 3차 핵 실험을 실시했다. 김정일을 계승한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 노선에 따라 2016년 1월에 4차, 2016년 9월 9일에 5차, 2017년 9월 3일에 6차 핵 실험을 단행해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 있는 경량화된 핵폭탄을 개발했다. 김정은은 핵탄두 능력의 고도화, 경량화와 함께 장거리까지 핵 운반이 가능한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역량과 기술을 집중했다. 2016년 8월 24일 북극성 발사를 성공시켜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기술을 확보했고, 2017년 2월 12일 북극성 2호를 발사해 한미 동맹 킬 체인(kill chain)[9] 시스템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2017년 11월 29일에는 화성 15호 발사에 성공해 미국 대륙에 도달할 수 있는 ICBM을 확보했다고 선전했다.[10]

북한의 핵무기 개발 경로를 살펴보면 전환기마다 강조점이 이동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냉전 해체 이후에 찾아온 경제난으로 재래식 군사력에서 한미 동맹에 비해 압도적인 열세에 처한다. 김일성은 이 격차를 만회하기 위해 내적 균형(internal balancing) 전략의 핵심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으나, 김정일은 제네바 기본 합의를 통해 영변 핵 시설에 저장하고 있는 플루토늄을 봉인하는 것을 받아들여 사실상 핵 개발을 동결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제네바 기본 합의 체제 붕괴 이후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11]이라 불린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2002년 부시의 악의 축 발언과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놀라 체제 생존 전략으로 2차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2005년에 자위용, 방어용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2006년에 1차 핵 실험을 단행함으로써 북한이 핵보유국이 됐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 주려 했다.

김정은은 권력을 세습한 이후 아버지의 선군 노선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 기본 노선의 변화를 시도했다. 김정일의 선군 노선에서 핵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북한을 지켜 주는 방패 역할을 했으나, 김정은의 병진 노선에서 핵은 재래식, 통상 전력에 들어갈 비용을 절감해 주는 경제적 무기이자 적으로부터 북한을 지켜 주는 ‘만능 보검’이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이룩한 핵 기술을 고도화해 경량화, 규격화, 표준화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 핵무기의 고도화, 경량화 등을 바탕으로 김정은은 자위용, 방어용 핵무기에서 나아가 공격용으로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 2013년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밝힌 선제 타격론과 ‘우리 식의 정밀 핵 타격’을 천명한 이래 2017년 상반기까지 핵 공세를 이어 갔다.

그러나 2017년 하반기부터는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완성했다고 선언하면서, 핵무기를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적의 공격에 대비한 억제력으로 규정한 선대의 방어용 핵무기론으로 선회했다. 2018년에는 핵·경제 건설 병진 노선에서 경제 건설 집중 노선으로 기본 노선을 전환함으로써 경제 건설에 집중하기 위해 비핵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유화적 자세로 돌아섰고, 남북, 북미, 북중 회담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 하고 있다.

2006년 김정일이 1차 핵 실험을 실시하고, 2017년 김정은이 6차 핵 실험으로 핵무기 완성을 선언하기까지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 한국의 보수 정권은 제재로 일관했다. 김정은의 6차 핵 실험을 제재하기 위해 2017년 9월 11일 미국 주도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는 제재 2375호를 의결했다. 미국은 김정은의 수소 폭탄급 핵 실험에 대해 사상 최고의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난산 끝에 나온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12]이었다. 2375호 제재안은 강력한 제재 수단으로 거론됐던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유류 공급 금지를 포함하지 못했고, 핵 실험을 주도한 김정은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

2375호 제재안은 2006년 1차 핵 실험을 계기로 채택된 1718호 제재안 이래 아홉 번째 제재였다. 미국은 북한의 핵 도발 때마다 제재를 통해 핵 폐기를 압박했지만 참담하게 실패했다. 대북 제재는 북한의 지도자들에게는 생존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와 더 강력한 핵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했고, 북한 주민들에게는 김정은이 이야기하는 핵 개발의 정당성을 수긍하게 만들었다. 북미 간의 핵 개발과 제재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은 60여 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됐고, 미국 뉴욕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 간 탄도 미사일까지 발사했다. 10년 넘게 계속된 대북 제재는 애초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만드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하며 파산했다.

 

대북 제재는 왜 실패했는가


지정학적으로 북한과 중국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북한이라는 입술이 사라지면 중국은 21세기의 단일 패권 국가인 미국과 완충 지대 없이 바로 대치해야 한다. 지정학적 구조는 중국이 G2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시진핑(習近平)이 신형대국(新型大國)[13]을 선언한 가운데 미국이 아시아로 회귀하며 더 견고해졌다. 시진핑이 김정은의 핵 개발을 반대하면서도 북한 체제의 붕괴나 정권 교체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의 제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입술 국가인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이다. 시진핑이 김정은을 버리면 북한이라는 입술을 훔치려 했던 러시아의 지도자 푸틴이 중국의 대체재 역할을 담당할 우려도 있다. 대북 제재를 작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의 제재를 우회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한 대북 제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세계에서 무역 의존도가 가장 낮은 나라이기에 대북 제재가 북한 경제를 옥죄는 효과는 개방 경제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북한은 공무역(국가 또는 국가 기관에서 경영하는 무역)보다 압록강과 두만강 변에서 이뤄지는 밀무역(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민간인이 불법으로 하는 무역)에 의존하기에 공식적 제재의 효과는 더 떨어진다. 더불어 장마당[14]이 가계 소득의 70~90퍼센트를 점유할 정도로 시장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북한 경제가 3퍼센트 내외의 성장 궤도에 진입한 시점에서 비핵화를 위한 경제 제재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제재 레짐을 대체할 대안은 대화다. 북한과 김정은을 악마라고 규정하고, 이들을 국제 사회에서 제거하겠다는 비현실적인 대안에 목매지 말아야 한다. 악마와의 대화를 통해 안전과 번영을 수호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가는 악마와도 대화하고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악마와도 대화하고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
[1]
임혁백,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서울대학교 출판부, 2017. 
[2]
빅터 차(Victor Cha)는 매파적 개입(hawk engagement)이라는 용어로 부시 정권의 공격적인 체제 전환론에 분칠을 했다.
[3]
가산제는 가부장 제도하에서 아들과 종속자에게 일정한 토지와 가재도구를 할당해 줌으로써 권력을 분산적으로 유지하려는 지배 구조다. 베버는 이 개념을, 국가가 군주의 세습 재산처럼 취급되어 통치권과 소유권에 구별을 두지 않는 정치 형태로 규정했다. 신가산주의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 권력을 세습받은 가업과 같이 사유화하는 구조를 말한다.
〈가산제〉, 《두산백과》
[4]
Bruce W. Bennett, 《Preparing the Possibility of North Korean Collapse》, Rand, 2013.
[5]
임혁백,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안보와 평화》, 한울아카데미, 2014.
[6]
간디(Gandhi)와 쉐보르스키(Przeworski)는 독재 체제의 장기 지속은 독재의 제도화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Jennifer Gandhi and Adam Przeworski, 〈Authoritarian Institutions and the Survival of Autocrats〉,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2007. 
[7]
김정일이 선군 정치를 추구한 이유는 핵무기 개발에서 군이 전문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8]
외적 균형과 내적 균형(internal balancing)에 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조하면 좋다.
Robert A. Pape, 〈Soft Balancing against the United States〉, 《International Security》, 2005.
[9]
북한이 핵, 미사일 등을 발사하기 전에 우리 군이 선제타격한다는 개념. 적의 미사일을 실시간으로 탐지해 무기의 종류와 위치를 식별한 뒤 공격 수단 선정, 타격 여부 결정, 공격 실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공격형 방위 시스템을 지칭한다.
〈킬 체인〉,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10]
임혁백,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서울대학교 출판부, 2017. 
[11]
북한이 1990년대 중후반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극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구호다. 김일성이 만주에서 일본의 토벌 작전을 피해 혹한과 굶주림을 견디며 100여 일간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
[12]
태산이 울릴 정도로 그 소리가 요란하더니 나타난 것은 쥐 한 마리뿐이었다는 의미.
[13]
2013년 6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미중 정상 회담에서 시진핑이 언급한 개념. 미중이 기존의 대립과 충돌을 피하고, 서로의 핵심 이익과 관심사를 상호 존중하며 공동 번영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 신형대국의 내용이다.
[14]
북한에서 시장 경제의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곳. 북한의 배급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늘어난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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