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짊어진 사람들
6화

드미트로와 아르촘 ; 푸른 눈 뒤에 펼쳐진 세상

드미트로와 아르촘 ⓒBehind Blue Eyes
드미트로 주브코프(Dmytro Zubkov)아르촘 스코로호드코(Artem Skorokhodko)는 키이우의 브랜드 액티베이터로, 직장 동료이자 오랜 친구다. 몬스터에너지(Monster Energy Inc.)의 마케팅부에서 일한다.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드미트로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피자 가게에서 노인, 병원 직원, 군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배달해 왔다. 봉사 활동을 넓혀 가는 와중에 도착한 체르니히우의 루카시브카 마을에서 아이들을 위해 ‘비하인드 블루 아이즈(Behind Blue Eyes)’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희망을 카메라에 담는다. 드미트로, 아르촘과는 9월 20일에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전쟁 지역의 아이들


각자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아르촘 아르촘 스코로호드코다. 인터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미안하게 생각한다. 근간에 현지 사정으로 매우 바빠 연락이 원활하지 못했다. 드미트로와 둘이 함께 ‘비하인드 블루 아이즈’라는 프로젝트를 창립했고 여기에서 자원봉사단을 꾸려 나가고 있다.

드미트로 드미트로 주브코프. 몬스터에너지 우크라이나 지사의 마케팅부에서 브랜드 액티베이터로 일하고 있다. 쉽게 말해 마케터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리는 여러 가지 자원봉사를 함께 하기 시작했다. 지금 하고 있는 비하인드 블루 아이즈는 체르니히우의 루카시브카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원래 우리는 키이우에 살고 있다. 도시는 여러 종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우리 역시 민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다양한 자원봉사를 해 왔다.

두 사람의 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아르촘 드미트로와 나는 수년간 같이 일해 온 직장 동료다. 나와 달리 지마(드미트로의 애칭)는 회사에서 업무 스케줄이 좀 더 자유로운 편이라 회사 일 외에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으로 해 왔다. 그는 페스티벌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나를 불러줬는데 서로 닮은 구석이 많아 친해지게 됐다.

키이우에서 체르니히우로는 어떻게 옮겨가게 됐나.

드미트로 전쟁 양상에 따라 그렇게 됐다. 처음엔 키이우가 해방됐고 두 번째로 해방된 곳이 키이우 동북쪽의 체르니히우다. 그곳에 위치한 세 개의 마을에서 1000여 명의 주민들을 돕게 됐다. 키이우 밖으로 처음 나간 자원봉사였다. 가장 큰 마을인 야히드네를 시작으로 슬로보다, 루카시브카 순서로 매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사람들을 도왔다.

당시에는 어떤 봉사 활동을 진행했나?

드미트로 사이드 프로젝트의 하나로 키이우에 ‘스테이션 피자(Station Pizza)’라는 피자 가게를 하나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건물의 지하가 꽤 넓다. 피자 가게라 전문 요리사는 없긴 하지만 이 장소를 좀 살려보고 싶어 직접 음식을 만들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달했다. 키이우에서의 봉사 활동도 대부분 음식에 관한 것이었고 주로 노인들, 병원 직원분들 그리고 군인들을 위해서 요리했다. 처음엔 이러한 조리 및 배달이 우리의 주요 활동이었는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정작 생필품이나 의약품, 수리에 필요한 공구 등을 더 필요로 하더라. 전해 주는 품목이 하나둘 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피자 가게 지하가 자원봉사 본부처럼 변하게 됐다.

지금 하고 있는 비하인드 블루 아이즈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아르촘 아이들의 눈에 담긴 우크라이나 마을의 모습을 필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는 프로젝트다. 전쟁이 휩쓸고 간 지역의 아이들에게 일회용 필름 카메라가 담긴 가방을 주면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도시의 모습을 담는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은 인화를 거쳐 비하인드 블루 아이즈 인스타그램에 공개된다. 이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후원자들의 기금은 아이들의 위시리스트에 담긴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사용된다. 아이들은 사진으로 창작 활동을 하며 전쟁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Valya의 사진 ⓒBehind Blue Eyes
앞선 봉사 활동과는 결이 꽤 다르다. 비하인드 블루 아이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아르촘 계획적으로 만든 프로젝트는 아니다. 봉사 활동차 체르니히우를 5~6주 동안 매주 방문하다 보니 오며 가며 동네 아이들과 친해지게 됐다. 6주쯤 지났을 때였을까. 한 번은 음식이나 구호품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가져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감이나 아이들이 입을 만한 옷, 장난감 칼, 스노우볼 등을 가져갔는데 그 중 일회용 필름 카메라도 있었다.

드미트로 딱히 이 프로젝트 때문에 사들인 건 아니다. 이미 우리가 하고 있는 마케팅 사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일회용 카메라를 여러 대 보유하고 있었는데, 평시에 판매하려고 구입해 뒀던 터였다.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나눠주다 보니 아이들이 선호에 따라 선물을 가져갔는데, 사실 카메라는 작동 방법을 잘 모르면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일주일 후에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두면 나중에 인상해 오겠다고 약속했다.
ⓒBehind Blue Eyes

 

렌즈 너머의 순수


아이들은 어떤 것을 카메라에 담았나.

드미트로 아이들은 비극을 담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 해방된 마을이고, 사람들 역시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투 및 점령 과정에서 모두가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을 텐데, 아이들은 이를 다른 감정으로, 다른 피사체로, 다른 시각으로 담아내는 것 같았다. 전쟁의 틈바귀에서도 피어난 꽃을, 평온한 일상을, 서로의 웃는 얼굴을 담아냈다. 물론 전쟁 상황이기 때문에 파괴된 건물이나 무너져 내린 잔해가 담긴 사진도 많다. 하지만 이마저 마냥 비극적인 광경으로 비치지 않았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아이들의 감정은 어땠나?

드미트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 들으면 아마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걱정과 우려, 안쓰러움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존재가 긍정적인 감정들을 우리에게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사진 속에서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감정이 느껴졌다.

아르촘 전쟁이란 게 참 무섭고 불편한 상황이었을 텐데 이 무거움 속에서도 아이들은 아직까지 가벼움을, 그리고 따스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밝은 눈으로 밝은 감정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희망찬 감정을 다른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전달해 주고 싶었다.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카메라의 사진에 담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Valya의 사진 ⓒBehind Blue Eyes
아이들은 위시리스트에 주로 무얼 갖고 싶다고 적었나?

아르촘 사실 아이들한테 그냥 “너희 뭐가 갖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아마 우리가 이뤄줄 수 없는 꿈을 말할 것이다. 우주에 가고 싶다거나 람보르기니를 타고 싶다거나 일론 머스크(Elon Musk)를 만나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약간의 꾀를 냈다. 아이들에게 생일이 언제인지, 갖고 싶은 생일 선물은 무엇인지 등을 물어봤다. 생일이 지난 많은 아이들은 대부분 전쟁 중에 생일을 맞이했기 때문에 당연히 생일 선물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전쟁이 2월부터 이어지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는데 가장 많은 아이들이 적어 낸 1순위가 스마트폰이었다. 당시 아홉 명 정도가 적어 냈는데 지금까지 총 여섯 개의 스마트폰을 선물했다.

드미트로 신기하게도 2순위는 자전거였다. 지금까지 다섯 대의 자전거를 구매해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원래 우리 예상으로는 아이들이 아이패드나 데스크탑, 노트북 등을 원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루카시브카의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았다. 시골 아이들이라 컴퓨터보다는 자유롭게 뛰노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신기했던 건 아이들이 적어 내는 아이템의 개수와 규모인데, 어떤 아이는 일곱 개의 아이템을 위시리스트에 적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서너 개, 어떤 아이들은 단 한 개만 적기도 한다. 그런데 여러 아이템을 적어내는 아이들은 각 물품이 좀 작은 규모고 저렴한 것들이다. 비싼 것 한 개를 적으면 다른 것들은 저렴한 것으로 채워 넣더라. 그래서 얼추 모든 위시리스트의 비용이 비슷하게 맞춰졌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나?

아르촘 마샤라는 한 아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위시리스트에 무려 친칠라를 갖고 싶다고 썼다. 우리가 받은 위시리스트 중에서 유일하게 물건이 아닌 동물을 원했던 친구였다. 우리가 마샤의 위시리스트를 공개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원했다. 우리 프로젝트에 참여를 원하는 분들은 아이들의 위시리스트를 보고 그 물건을 직접 구매해 우리에게 전달해주시거나 우리가 직접 살 수 있게 금전적 지원을 해 주시는데, 친칠라를 구해주겠다는 분만 40분이 넘었다. 그래서 일종의 장기자랑 대회 같은 것을 열어 한 분을 선정했고 그 분이 대표로 선물해 주셨다.

드미트로 한 아이는 위시리스트에 자신의 것만을 적지 않았다. 자신의 남동생을 위해서도 자동차 장난감을 사 달라고 적었다. 가족들까지 챙기는 모습에 크게 감동받았다. 또 어떤 아이는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우리가 방문했던 날 마침 쌍둥이 형이 마을에 없었다. 부모님을 따라 도시로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쌍둥이 형을 위해서 위시리스트를 적어줬는데, 자신의 것으로는 자전거 하나만을 적고, 형을 위해서는 장난감 여러 개를 적었다. 왜 하나만 적었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하나만 적어야 다른 아이들도 위시리스트에 적은 것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이런 부분들이 너무 귀엽고 대견했다.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쉬운 전쟁 상황 속에서도 서로서로 생각해 준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너무 기특하다. 전시회는 성공적이었나.

아르촘 이틀 동안 진행됐던 전시에 약 1000여 명이 방문했다. 기간을 더 길게 할 수 있었지만 이것을 어떤 특별한 단번의 이벤트로 끝내고 싶지 않아 짧게만 진행했다. 앞으로 우리는 러시아군으로부터 해방된 모든 지역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다. 해방되지 않았더라도 전선에 인접한 지역들에 사는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명하고 싶다. 아이들은 미래의 눈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눈으로 본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다.
Sasha의 사진 ⓒBehind Blue Eyes
Tanya의 사진 ⓒBehind Blue Eyes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전쟁은 모두에게 가혹하지만 역시나 자라날 아이들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나.

드미트로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아이들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논의 단계를 지나 우리가 실제로 이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며 점차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첫째로는 이런 암울한 전쟁 속에서도 절대 꿈을 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기적은 일어날 수 있고 꿈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필름 사진을 통한 창작 활동으로 창의력을 자극해 아이들에게 꿈이나 목표를 만들어 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아르촘 둘째로는 우리가 이 비하인드 블루 아이즈를 대도시가 아닌 시골이나 지방에서만 하고 있지 않나. 사실 전쟁 전에도 이런 지방에서는 스스로 창작 활동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경제적으로 매우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예술에 대한 접근성의 벽을 허물어 주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당연히 즐길 수 있고, 단지 여가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목표가 될 수 있고, 일상 생활이 되고,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어찌보면 그냥 오락적인 목적에서 일회용 카메라가 담긴 가방을 주고 마음껏 찍어 보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이건 단순히 게임이나 놀이가 아니라 너희들이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이고, 그에 대해 우리가 정당한 대가나 사례비를 지급하는 것이라고. 너희의 위시리스트는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작업을 했고 전시물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정당한 보상을 얻는 것이라 말한다.

드미트로 우리가 이 이니셔티브를 시작했을 때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너희들 스스로를 절대 모종의 피해자라고 생각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너희들은 이 전쟁을 기록해주는 역할이라는 걸 주지시켰다. 아이들에게만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우리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전쟁 중이지만 창작 활동에 꿈을 키우는 아이들도 생길 수 있겠다.

드미트로 그렇다. 아이들은 전쟁을 극복하고 성장하며 나중에 다양한 인생을 살아갈 거다. 그중에는 분명 어떤 종류의 창작 활동을 하는 친구도 생길 거다. 예술적으로도 무척 발전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진로를 정함에 있어 예술이나 창작 활동이 정말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자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어떤 사람의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보람찰 것 같다.

비하인드 블루 아이즈를 돕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겠나.

아르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우리의 소식이나 언론 보도들 혹은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 소셜 미디어를 팔로우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널리 퍼뜨려 달라. 한국에 이 인터뷰가 공개되면 정말 뜻깊겠다. 두 번째는 후원의 방법이다. 아이들의 위시리스트에 해당하는 물건들을 선물할 수 있던 것은 많은 분들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미 한 지역에서 아이들을 위한 도네이션을 진행해 선물을 완료했고, 다음 지역의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후원 금액이 남아 있는 상태다. 감사하게도 금전적 후원을 해 준다면 다른 지역을 방문하여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며 아이들의 꿈을 이루어 주고 더 많은 아이들을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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